북한이 오는 9월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각각 350명씩 파견한다고 지난 17일 열린 남북 아시안게임 실무접촉에서 밝혔다.

그리고 선수단은 서해 직항로를 이용한 항공편, 응원단은 경의선 육로를 통해 이동하며, 현재 원산항에 정박 중인 '만경봉-92호'를 제주해협을 거쳐 인천항에 정박, 응원단 숙소로 사용하겠다는 구체적 방식을 내놓았다.

이는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5.24조치'로 중단된 하늘.땅.바닷길을 모두 열겠다는 시도로 풀이되고,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겠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5.24조치' 이후 서해 직항로가 막혔고, 북한 선박의 영해 해역 운항이 전면 불허됐다. 경의선 육로 중에는 현재 도라산 남북출입경사무소(CIQ)와 개성공단을 잇는 도로가 포함, 현재 사용 중이지만 북한의 대규모 인원이 이 길을 이용한 적은 없다.

서해 직항로를 이용한 항공기의 경우는 2009년 8월 고 김대중 대통령 북측 조문단 이용이 마지막으로, 이는 '5.24조치' 발표 전의 일이다.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이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북,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는 점에서, 경의선 육로의 상징적 의미는 크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인천아시안게임에 700명의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을 통해 남북 간 화합의 장을 열겠다는 뜻과 함께 이들의 이동방식으로 모든 경로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5.24조치' 무력화를 넘어 남북관계 개선 시도라는 분석이다.

이는 지난 7일 북한의 공화국 정부성명에서 의미를 엿볼 수 있다. 북한은 성명에서 "북과 남은 관계개선의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며 "북남사이의 혈연적 유대와 동포애의 정을 가로막고 있는 법적, 제도적 조치들을 해제하고 접촉과 내왕, 협력과 대화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의 원칙적 입장들과 선의의 조치가 실현된다면 악화된 북남관계를 정상화하고, 조선반도 정세를 완화하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 데서 전환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북한은 인천 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을 공언, 즉, 인천 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으로 협력의 물꼬를 열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북한이 선수단과 응원단을 육.해.공 모든 방법을 통해 파견, '5.24조치'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 시키겠다는 실천적 의지를 보인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대규모 인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낸다는 것은 남북관계 분위기 조성에 대한 의지, 한반도 문제는 자신들이 주도하겠다고 과시한 것"이라며 "대규모 민간급이 도로로 온다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 대범하고 큰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상징적인 것은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비록 아시안게임을 대한민국이 주도하지만 다른 것은 북측이 주도하고 있다는 대범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과거 남북 민간교류를 주도했던 한 민간단체 관계자도 "전면적으로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의지이다. 북한이 진정성을 과시하겠다는 것"이라며 "5.24조치 해제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의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북한이 선수단.응원단 파견과 다양한 방식의 이동 경로를 통해 5.24조치의 실질적 해제를 넘어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표명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정부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대규모 인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파견해 '5.24조치'를 사실상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며 "그렇다고 우리가 이를 막을 이유는 없다. 스포츠 분야라는 점에서 북한의 파견방식을 억지로 막을 필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는 정부도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5.24조치'를 선언적으로 해제하지 못하지만, 유명무실화하는 방향으로 사실상 해제되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한 대규모 인원 파견 방식을 허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명분을 쌓겠다는 것이다.

앞서 통일부가 통일준비위원회 공식 발족과 함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남북관계를 제대로 풀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드레스덴 통일구상'을 통해 대북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그 전제는 '북한의 아이들은 가난하고 불쌍하다'는 것이고, 이에 북한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 아시안게임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제기하지 않은 제반비용과 '대형 인공기' 사용 문제 등을 언급한 것은 북한에게 단순히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비춰진다.

그렇기에 비록 남북 아시안게임 실무접촉이 결렬됐지만, 앞으로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대규모 인원 파견 합의가 남북관계 개선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양무진 교수는 "정부가 비정치적인 행사에 북한의 대규모 인원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5.24조치 완화의 검증기회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통일구상에서 밝힌 민족 동질성 회복 내용과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이번 접촉에서 우리측은 '국제관례와 규정'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만약 북한을 동족으로 간주하지 않고 다른 외국 국가들과 동일시 한다면 북한과 통일하기 위해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정부의 적극적 태도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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