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Daum영화]

이런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자기 민족과 자기 나라 역사를 폄하하는 사람을 총리감으로 내세운다. 주변 국가의 외교적 부담을 덜어 주려는 통 큰 포석이다. 이분을 필두로 논문 표절, 연구 부정, 허위 경력 기재, 대필 논란 등 새롭고 다양한 의혹이 끝도 없이 제기되어 급기야 별명이 ‘까도 까도 양파’가 된 사람에게는 교육부 장관을 맡긴다. 본인의 명예도 아랑곳 않고 교육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의 오만가지 사례를 몸소 보여주어 반면교사의 길을 자청한 살신성인의 정신을 높이 샀음이다.

또한 군 복무 중 버젓이 박사 과정을 밟는가 하면 자기 논문 표절과 고액 보수, 위장 전입, 세금 탈루 의혹까지 꼼수로 일관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안행부 장관을 맡겨 국가 개조를 담당하게 한다. 상식에 따라 정도(正道)만을 지키는 안이한 삶의 태도에 경종을 울려 주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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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병역 특혜 의혹을 받는 이에게는 국방부 장관을 맡긴다. 그는 아들의 주특기가 소총수에서 보급병으로 바뀌었는데, 해당 부대 사정에 의한 것일 뿐 결코 특혜는 아니라 하니, 이런 분의 국방부 장관 임명은 병역 의무자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아들의 특기가 차량 운전이었다가 자대 배치 때는 군악대가 된 이도 있다. 게다가 악기병 특기로 다시 군악대 행정병으로 배치받았다니, 모르는 이들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생각할 법도 하지만, 이것도 특혜가 아니다. 청소년기 특기 적성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고교 시절 밴드부 경력을 높이 사 음대생도 뚫기 어려운 군악대에 배치한 조처는 우리 군대가 이 정도의 교육적 안목이 있었나 하는 감동조차 안겨 준다.

더구나 행정병 배치에 대해 그래도 악기를 이해하는 사람이 낫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는 해명에 이르러서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유명한 구절 “one for all, all for one(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 청년의 특기와 적성을 섬세히 고려하는 국가의 세심한 배려 앞에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의 깊은 뜻이 온몸으로 요동쳐 느껴진다.

하여튼 세간의 오해로 특혜 의혹에 휩싸인 이분은 일명 ‘차떼기 사건’이라는 불법 정치 자금 사건으로 벌금형을 받은 범죄 전력에 고액 보수 의혹까지 겹쳐 받고 있는데, 놀라지 마시라, 국정원장을 맡기려고 한다. 아무래도 음지에서 일하는 국정원의 특성상 이런 분이라면 국가 정보를 쥐도 새도 모르게 관리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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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군 복무 하면서 프랑스 유학한 사람에게 맡긴다. 그 높은 학구열과 창조적 인재상을 높이 산 것이다. 이분의 유학은 다 적법한 절차를 따른 거라는데,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어떻게 군 복무 중에 유학을 갈 수 있냐고 특혜라고 시비를 건다. 더구나 이분에게 세금 탈루 등의 자잘한 비리는 그저 부록으로 끼고 가는 것, 적어도 잔디밭에 고추를 심는 것과 같은 창조적 농법으로 투기의 새 지평을 여는 정도는 돼야 이분 앞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 그래서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조투기부 개명설까지 나오고 있다.

그 밖에도 아들은 병역 특혜, 딸은 취업 특혜 의혹을 받은 이도 있는데, 이분에게는 그 용의주도한 능력에 걸맞게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긴다. 아니나 다를까, 이해타산에 밝은 이분의 능력이 사익과 국익을 가리지 않고 성과 내기를 바라는 인사권자의 마음을 읽은 듯, 취임도 하기 전에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나오는 등 엄청난 추진력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분 집값이 떨어졌다는데 개인적 동기 부여도 국가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나라는 평소에 준법 의식이 박약하여 위장 전입 정도는 인간적으로 이해해 주기를 호소하고, 뒷돈 거래가 들켜도 대가성이 없다고 하면 되고, 세금 탈루 같은 건 미처 챙기지 못했다 변명하고, 불법, 탈법이 확실해도 관행이었다 한 마디면 넘어가 왔다. 그래서 법을 지키는 준법 투쟁이란 걸 하면 감옥 가는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여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방법도 법과 상식과는 좀 거리를 두는 편인 걸 이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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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나라 대통령의 어법이 좀 독특하다. 국가 정책을 비판하면 ‘흠집 내기’라고 하고, 부정과 비리를 폭로하면 ‘신상 털기’라고 표현한다. 대단히 창의적인 어휘 사용법이다.

그 사고 방식도 독특하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하트 여왕을 연상시킨다. 무슨 일이 있으면 목을 치라를 연발하는 하트 여왕처럼 문제가 있으면 그냥 없애 버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해경에 문제가 있다니 해경을 해체하라, 청문회 통과가 어렵다면 청문회 제도를 바꿔라, 추천한 후보자가 도덕적 비난을 받으면 국민들이 도덕적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게 문제니 기준을 낮춰라. 이런 식이다. 문제가 제기되는 근원을 발본색원하면 문제가 사라진다는 이 근본주의적 사고 방식은 참으로 범인(凡人)이 헤아리기 어려운 경지이다.

아, 물론 이런 나라가 현실 속에 있겠는가마는, 유사 이래 무수한 우화가 과장된 상상력을 통하여 현실 풍자의 효과를 달성했으니, 그쯤으로 이해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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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내친 김에 이런 나라도 상상해 보자.

그 나라에 엄청난 참사가 일어나 민심이 흉흉해진바, 총리는 이에 책임지는 뜻으로 사의를 표하고 대통령은 적폐를 일소하고 국가 개조를 하겠다며 새 총리 후보자를 내세운다.

처음에 천거한 후보자는 존경스럽게도 대법관 출신. 시급 5,210원이 최저 임금인 이 나라에서 5개월간 16억 원의 수입을 올린 능력자였는데, 전관 예우라는 그 비법이 논란이 되고 부동산 실거래가 위반 및 위장 전입 의혹, 아들의 군 복무 근무지 특혜 의혹 등 다발적인 의혹이 제기되자 사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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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후보자는 참 대쪽 같고 깨끗한 언론인 출신. 그런데 식민 지배도 하느님의 뜻이고 민족 분단도 하느님의 뜻이며 제주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라는 황당한 연설과 기고를 한 사실이 밝혀져 국민적 공분(公憤)을 일으킨다. 평소 친일파 윤치호의 말을 즐겨 인용하던 그는 갑자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안중근, 안창호이고 할아버지는 독립 투사라며 청문회를 준비해서 “끝까지 간다”고 한사코 버텼으나 결국 사퇴하고 만다.

​이에 대통령은 안타깝다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총리감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탄함으로써 중도 사퇴한 총리 후보자의 결격 사유가 ‘먼지’ 수준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면서, 결국 전 총리의 유임을 발표한다. 애초에 총리더러 당장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여론이 먼저 압박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총리가 책임 있게 사태 수습에 매진해야 할 시점에 뜬금없이 사퇴해서 국민의 우려를 낳았는데, 리턴 투 사임 총리라니? 총리 후보자가 연거푸 낙마한 일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지만, 이미 사임한 총리가 다시 유임된 경우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 이 나라 국민들은 이 기막힌 반전극에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국민들의 허를 찌르는 인사 파동이 절대 실수가 아니라는 것. 이 모든 과정은 사실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인데, 상식적인 삶의 지루함을 털어내 신선한 변화와 충격으로 국가적 상상력을 제고시키고자 한 브이아이피의 창조 경제적 통치 철학의 발로였다나 어쨌다나. ​

한 편의 영화가 되어도 손색없을 재치 있는 상상 아닌가. 스스로 자신의 상상력이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사실을 말한다면, 이 모든 기발한 상상은 모두 이 영화가 촉발한 것이다. 영화 <끝까지 간다>가 구성하는 부조리한 상황과 뒤통수를 치는 기막힌 반전이 나의 오금을 저리게 하여 나로 하여금 몇 날 며칠을 두고 머리를 굴리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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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재미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아내의 이혼 통보에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불행에 더해 감찰반 내사, 그리고 교통사고와 시신 유기. 영화의 주인공 고건수에게 인생 최악의 위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모든 나쁜 일은 원래 한꺼번에 일어나는 법. 그리고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그가 첫 단추를 잘못 꿴 순간,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하여 악몽이 된다. 이것이 영화의 첫 번째 재미이다. 고건수는 동정의 여지가 없는 인물, 관객은 아무런 감정이입 없이 그가 처한 요절복통할 상황을 관망하면 되는 것이다. 연민, 가책, 성찰에서 자유로운 남의 집 불구경은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는 잔챙이 비리 경찰이고, 그런데 경찰 조직은 사실 끈끈한 비리의 네트워크와 공범자 의식으로 결속되어 있고, 그러니 날 선 감찰반조차 부패의 고리애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래서 일반인의 눈에 경찰이란 합법적 상가 운영권 뺏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인 양아치나 다를 바 없어 보이고, 아니나 다를까, 내부의 엄청난 부정과 비리는 경찰의 명예라는 명분으로 덮이고…….

설마 대한민국 경찰이 다 이렇겠는가마는, 영화는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리는 것 같은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고건수를 통해 드러나는 경찰 집단의 부패와 비리가 리얼한 현실감으로 수긍되는 것은 우리가 ‘관피아’로 일컬어지는 부패와 협잡의 온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 후련한 고농도 풍자의 미학은 영화의 두 번째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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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챙이 비리 경찰 고건수는 일생일대의 센 상대를 만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언제나 한 발 앞서가는 적수는 고건수가 저지른 한 순간의 실수를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한다. 이제 잘못 꿴 첫 단추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으면서 반격에 재반격을 부르고 반전에 반전을 더하면서 상황을 끝까지 몰아간다. 특히 고건수를 협박하는 목격자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그리고 폐차창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떨어졌을 때의 충격은 소름돋는다. 이 예기치 못한 반전이 주는 서늘한 긴장감과 충격의 카타르시스, 이것이 영화의 세 번째 재미이다.

자, 나쁜 놈과 더 극악하게 나쁜 놈이 싸운다. 누굴 응원할까? 이 아이러니한 상황조차 즐길 수 있는 것이 영화의 네 번째 재미가 될 것이다. 현실은 훨씬 더 부조리하고, 얄팍하고 실수투성이인 우리와 고건수는 한끝 차이다. 그러므로 미워할 수 없는 나쁜 놈 고건수와 미움을 부르는 나쁜 놈 박창민 중에서 우리가 고건수를 응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고건수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첫 단추의 실책을 인정하게 되므로 적어도 이 영화에서 고건수를 응원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런데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해피엔딩인가? 맙소사, 씁쓸하게도 정의는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뒷끝 없는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어찌 이 영화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이선균과 조진웅만 한 적역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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