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장생도]의 배경에는 웅장하고 높은 산이 나온다.
또한 화면의 앞부분에는 기암괴석이 차지하고 있다. 산과 바위는 엄밀히 다르지만 한 몸처럼 붙어있다. 표현기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 산에는 나무와 풀, 흙과 바위가 뒤섞여 있다. 또한 바위에는 이끼나 풀 따위가 붙어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청회색, 갈회색, 황색, 녹색과 같은 다양한 색들이 뒤엉켜 있어 산과 바위의 색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십장생도의 산과 바위는 일률적으로 청색과 녹색, 은은한 황색의 조합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청색과 녹색을 중심으로 채색하는 것을 ‘청록산수’ 혹은 ‘청록산수기법’이라고 한다.
청록산수는 천연광물성 안료인 남동광의 청색과 공작석(말라카이트)의 녹색을 이용해 산수자연을 그린 것을 말한다. 중국 당나라 때 크게 유행했으며, 국내에는 조선시대 숙종 때에 성행했다고 한다.
청록산수는 원래 그림에 채색을 하는 것을 뜻했지만 나중에는 산과 바위를 채색하는 양식화된 기법을 말하는 좁은 개념이 되었다.
그림에 채색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그림도 모두 채색화이다.
하지만 그림에 채색을 입히는 것은 색이 없는 검은 선묘로 사물의 형태만 그리는 수준의 훌쩍 뛰어 넘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미술재료나 도구의 발전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안료를 채취하여 미술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기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급기술에 속한다. 특히 자연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안료는 구하기도 어렵고 극히 소량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원색의 안료를 얻었다고 하더라고 혼색을 하거나 퇴색을 방지하며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통한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또한 안료를 화면에 부착시키는 미술용 접착제, 다양한 붓, 물감을 담는 용기나 비단과 같은 화폭, 장식하고 보존하는 표구기술의 발전도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안료를 이용해서 사물을 그리고 효과를 내는 채색기법을 발전시켜야 한다.
하지만 안료는 너무 비싸고 채색 기술을 가진 화가의 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채색화는 왕이나 귀족, 제사장과 같은 핵심 지배계급의 주변에서만 발전할 수 있었다.
양반이나 백성을 위한 그림은 대부분 선묘그림이나 수묵화 일색이다.
청록산수기법이나 채색이 들어가 있는 장생도, 궁중모란도, 오봉도와 같은 궁중회화는 국가의 안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도화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술의 3대 핵심 요소는 형(形), 상(像), 색(色)이다.
형은 사물의 형태를 말하고, 상은 사물에 붙어있는 상징이며, 색은 사물의 실재감과 공간감, 장식을 담당한다. 수묵산수화는 미술의 3대 요소에서 색을 뺀 그림이다. 색을 빼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장기를 둘 때 차나 포를 버리는 것과 같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색을 버렸던 것이 ‘허영과 사치의 배제, 자발적 청빈’이라는 가치 때문이긴 하지만 미술조형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결함을 드러낸다. 사실, 색을 사용하고도 얼마든지 소박하고 정갈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림에 색을 칠하는 일이 경제적이나 기술적으로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알려준다. 요즘에는 유치원 아이들도 천연색 물감을 사용할 정도로 일반적이지만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채색물감의 사용은 극소수의 화가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청색과 녹색을 중심으로 산과 바위를 그렸다. 이런 채색법을 청록산수기법이라고 한다. 청록산수기법은 가장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채색방법이다. 청록산수기법이 가장 많이 적용된 그림은 궁중회화의 정수인 십장생도와 그 변주그림들이다.
청색과 녹색이 화면 전체를 조율하고 있는데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십장생도의 내용을 잘 충족시켜주고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중국, 조선,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의 회화는 평면적이다.
입체감을 만드는 원근법과 명암법은 발전하지 않았다. 서양에서도 원근법과 명암법이 완성된 시기는 14~16세기 무렵 르네상스 때이다.
동서양을 떠나 생물학적 인간은 원래 두 눈의 초점에 따른 원근으로 사물을 본다. 또한 명암에 따라 사물의 입체를 느낀다. 하지만 원근과 명암으로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과 원근법과 명암법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법(法)은 엄격한 형식과 체계이며 규칙이고 모범이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과 체계는 곧 철학이다. 서구의 인본주의와 동양의 유학은 세상을 수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그 철학을 반영한 그림이나 표현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높낮이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의 문제이다.
어떤 철학을 반영하던지 간에, 그림으로 표현하는 이상세계는 아름답고 실감나며 웅장해야 한다. 또한 그림 속에 표현된 공간은 넓고 깊으며 높아야 하고 시간은 최대한 길어야 한다.
평면적인 우리그림에 입체감을 부여하여 실재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은 농담과 준법과 채색이다. 서구의 명암법을 사용하지 않고 입체감을 내는 이런 방법을 통칭 ‘상징명암법’이라고 한다.
선묘의 강약, 먹이나 채색의 농담, 사물의 특징에 걸맞은 붓질을 통해 공간을 만들고 사물에 입체감을 주어 화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선묘로 만들어진 평면적인 형태에 채색을 한다고 입체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초기 채색법에는 농담이나 준법을 결합시켜 표현했다. 하지만 농담과 준법이 들어간 채색그림은 거칠고 칙칙할 수밖에 없다. 채색하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준법은 사리지고 물감의 농담이 아니라 색이 가지고 있는 자체 명도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이를테면, 청록산수기법처럼 산이나 바위의 끝부분은 짙은 청색을 칠하고 안쪽으로 올수록 점차 밝은 녹색으로, 중심에서 아래 부분은 은은한 황색으로 ‘바림질 기법’을 사용하여 칠하는 것이다. [바림-질: 색깔을 칠할 때 한쪽을 짙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게 나타나도록 하는 일. 그림을 그릴 때 물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물감을 먹인 붓을 대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도록 하는 일]
이 바림질 기법을 통해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의 그림을 창작할 수 있다. 동시에 사물의 입체감을 드러내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질감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청록산수기법은 단순히 산과 바위를 채색하는 방법이 아니라 모든 사물, 전체 화면에 적용되는 기법인 셈이다.
특히 산이나 바위처럼 넓은 면적에 적용하면 더 큰 입체감이 생긴다.
십장생도에서 청록산수기법과 같은 바림질 기법이 적용된 산과 바위는 화면 전체의 입체감과 더불어 넓고 깊은 공간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모든 채색기법의 핵심은 단일한 면적을 얼룩 없이 깨끗하게 칠하는 것과 색과 색, 밝은 색과 어두운 색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법은 단순해 보이지만 최소 5년에서, 많게는 10년 정도의 전문미술수업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렵다.
청록산수기법은 넓게는 우리그림의 채색법을 통칭하는 말이다. 좁게는 산과 바위를 표현하는 기법을 일컫기도 한다.
좁은 의미로 사용할 때는 청색과 녹색이라는 색과 그 결합이 중요해진다. 그렇다면 유독 산과 바위를 청록색으로 표현한 이유는 뭘까?
산과 바위는 그냥 자연이다.
산은 평지나 들판과 다르다. 산은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곳이고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산속의 생활은 권력과 부귀를 떠나 유유자적한 풍류를 즐기는 곳, 신선이 사는 곳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산은 가깝고도 먼 곳,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상세계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바위도 마찬가지이다. 평지나 들에는 거대한 바위가 없다. 큰 바위는 무겁고 움직이질 않아 선비들에게는 지조와 절개의 의미로 수용되었다. 또한 사람이나 동물을 닮은 기암괴석은 자연의 놀라운 조화(造化)가 투영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높은 산과 더불어 이상세계를 표현하는 데 주된 요소로 발탁되었다. 특히 산과 기암괴석이 결합한 바위산은 이상세계의 느낌을 증폭시킨다.
이런 산과 바위가 벌거숭이 모습을 하고 있으면 기이한 수준을 넘어 괴기스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반대로 수풀에 가려 산과 바위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괴기스럽고 삭막한 분위기의 이상세계는 없다. 이상세계는 항상 풍요로운 공간이자 뭇 생명들의 왕성한 활동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
당연히 생명력이 넘치는 산과 바위의 표현은 신비롭고 높은 느낌을 주는 청색과 풍성한 숲의 색인 녹색이 제격이다.
하지만 산과 바위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뭇 생명이 자라는 풍성한 숲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평면에 단색을 칠해도 느낌이 난다. 왼쪽 그림은 높고 먼 산의 느낌, 중간그림은 푸른 산의 느낌이다. 오른쪽은 이 둘을 결합하고 혼색과 바림질 기법을 이용하여 입체감과 공간감을 살렸다. [자료사진 - 심규섭]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청색과 녹색을 붙여 한 번에 칠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산과 바위의 끝이나 외각에는 청색을 칠해 형태를 만들어 높고 단단한 느낌을 낸다. 안쪽으로 들어올수록 녹색을 칠해 풍성한 수풀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청색만 칠하거나 녹색만 칠하는 경우보다 훨씬 뛰어난 시각적 효과를 낸다. 이를테면 산의 외각을 녹색으로 칠하고 안쪽을 다홍색으로 칠하면 사람들은 꽃이 만발한 산, 혹은 단풍이 든 산으로 느낀다. 구체적인 형상이 없이 색상만으로도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청색을 먼저 칠하고 녹색을 나중에 칠하는 데에는 조형적인 이유도 있다.
청색은 색의 명도가 녹색보다 어둡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채색하면 입체감과 더불어 공간감이 표현된다. 반대로 녹색부터 청색으로, 즉 밝음에서 어둠으로 칠해도 입체감은 나온다. 하지만 공간이 막히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그림이 어둡고 무거워지는데 이것은 밝고 화사한 이상세계의 느낌을 없애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장생도에서 청록산수로 표현한 산과 바위는 전체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청색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녹색이 많이 들어가기도 한다. 혹은 진하게 표현한 것과 조금 엷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산과 바위의 색상이나 진하기에 따라 전체 분위기가 조율되는 것이다.
산과 바위에 적용된 청록산수기법은 색의 결합을 통한 느낌이기 때문에 질감이나 구체성은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여러 표현수단이 있다.
대부분의 청록산수기법에 들어간 산과 바위에는 은은한 황색이 바림질 기법으로 칠해져 있거나 군데군데 들어가 있다. 바림질 기법의 황색은 산과 산, 산과 바위, 바위와 바위 사이에 들어가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청록일변도의 색상을 다양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산과 바위가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된 느낌을 낸다.
앞쪽에 있는 산과 바위의 경우는 간단한 수풀을 넣는다. 이것은 민둥산이 아니라 나무와 숲이 무성하다는 암시를 주는 구체적인 장치이자 동시에 단조로운 산의 외곽에 변화를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산과 바위에는 구슬 같은 태점(胎點)들이 무수히 박혀있다. 이러한 태점은 색상과 준법을 동시에 사용하던 시기에 준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채색법이 발전하고 화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복잡한 준법은 사라졌지만 상징적인 모습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준법의 특징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산과 바위에 변화와 활력을 주는 역할이 더 크다. 결국 산과 바위의 높음과 푸름을 드러내는 청록산수기법에서는 무수한 새 생명이 태어나는 생명점으로 변화한다.
우리그림의 채색화 전통은 아주 오래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불화, 조선시대의 궁중회화로 이어져 내려왔다. 청록산수라는 용어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중국, 대만이나 일본에서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핵심은 오랜 전통을 가진 채색법이 궁중회화에 함축적으로 녹아 완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평면적 회화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채색을 결합하여 공간의 깊이를 창조하고 동시에 화면의 밀도를 높여 현실감과 장식성이 뛰어난 미술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청록산수기법은 색의 결합만으로 높고 푸른 산과 바위를 표현하고 동시에 공간감까지 드러낸 탁월한 우리그림의 채색법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