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장생도]에는 구름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하늘에 구름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구름이 없는 하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하늘에는 한두 점의 구름이라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묵화에는 구름을 표현하지 않는다. 구름뿐만 아니라 아예 하늘을 그리지 않았다. 하늘을 그리지 않았는데 구름을 넣을 까닭이 있겠는가. 비가 오는 날이나 청명한 날에도 그림 속의 하늘은 비어있다.
하늘은 그저 아무 것도 없는 여백으로 남겨두었고 사람들은 작품의 내용이나 분위기를 통해 하늘의 상태를 짐작할 뿐이었다. 이를테면 우비를 입은 사람이 등장하면 하늘에는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고 선비들이 시회(詩會)를 하고 있으면 맑은 하늘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구름이 끼었지만 비가 오지 않는 하늘도 있고, 맑은 하늘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 무시되었다.

사실, 하늘이나 구름은 조선시대 선비나 화가들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천자문(千字文)의 첫 구절에는 천지현황(天地玄黃)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하늘은 가물가물하고 땅은 누렇다.’라고 해석한다. 땅이 누런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하늘이 검거나 가물가물한 것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혹 밤하늘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어림없는 상상이다. 인간사회의 주된 활동은 주로 낮에 이루어진다. 동양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천자문에 낮 하늘을 배제하고 뜬금없이 밤하늘을 표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늘을 ‘검다’, 혹은 ‘가물가물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하늘에 대한 해석이나 접근을 처음부터 막은 것이다. 검거나 가물가물한 하늘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가끔 선비들은 시를 통해 하늘을 푸르다(靑天, 碧天, 蒼天)고 표현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주변 환경, 날씨, 마음의 상태, 정서 따위를 표현한 것이지 하늘을 규정한 것은 아니었다.
참고로, 하늘과 구름의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하늘의 개념을 정의하면 동시에 구름의 개념이 생긴다. 구름은 그야말로 하늘의 얼굴표정이다.
흔히 먹구름이 끼고 천둥, 번개가 치면 ‘하늘이 노했다’라고 여긴다. 폭우가 와서 사람이 다쳐도 하늘의 뜻이고, 구름이 없어 가물어도 하늘의 뜻이 된다. 이런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비슷하다. 생각하는 하늘, 표정을 가진 하늘은 곧 인격체를 가진 신(神)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하늘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하늘의 뜻’, ‘하늘의 기운’ 따위의 말처럼 하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인격화된 하늘은 아니었다. 인격화된 하늘은 ‘옥황상제, 하느님’ 같은 도교적 개념일 뿐이다.

하늘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구름에 대한 특별한 개념이나 상징도 없었다.
그럼에도 [십장생도]에는 구름이 표현되어 있다.
완성된 장생도, 즉 십장생도에 구름을 표현한 것은 반드시 넣어야 할 상징적, 조형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구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을 함께 그려야 한다. 하지만 장생도의 하늘색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늘을 그린 것은 해를 그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장치로 보인다.
장생도의 해는 시간의 순환, 생명의 영속성을 드러내기 위해 아침 해를 그렸고, 하늘은 아침이라는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 불그스름하게 그린 경우가 많다.
구름으로 최대한 하늘을 가리고 있는 장생도도 있고, 구름이 낮아서 하늘이 많이 보이는 경우에는 바탕색(한지의 색과 비슷한 엷은 황색)과 거의 동일한 색으로 칠했다. 바탕색과 동일한 색을 칠한 것은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상태와 같다.
장생도의 변주그림인 [오봉도]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그려져 있다. 하늘의 색은 검정에 가까운 짙은 청색과 녹색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특정한 하늘색이라기보다는 천자문의 검고 가물가물한 하늘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하늘과 해가 별 관련이 없듯이 하늘과 구름도 아무 관련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십장생도의 13가지 요소 중에서 하늘은 빼는 게 맞다.

▲ 위-오봉도의 하늘은 짙은 남색이거나 짙은 녹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밤하늘이 아니라 검거나 가물가물한 하늘이다. 이것은 하늘을 표현하지 않은 것과 같다.
아래-정선, 심사정, 안견이 그린 수묵산수화인데 하늘은 아무 것도 칠하지 않은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또한 안개나 구름으로 공간의 깊이나 높이를 확장하고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하늘과 관계가 없는 구름은 곧바로 땅과 연결된다.
장생도에 표현된 구름은 대부분 높은 구름이 아니라 낮은 구름이다. 구름은 산에 걸려있거나 바다(海)에 낮게 깔려있다. 이것은 하늘과 관련된 구름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세상, 땅과 관련한 구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 장생도에 표현된 구름이다. 장생도의 각 상징들은 복잡하지 않고 직관적이다. 직관적 상징은 십장생도가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보편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름은 생명활동을 위한 최적의 기후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공간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조선 말기에는 도교의 영향으로 장생도의 구름이 화려해진다. [자료사진 - 심규섭]

땅은 뭇 생명과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생명과 관련한 구름의 가치는 뭘까?
구름은 곧 비바람이다. 비바람은 기온과 날씨, 천둥, 번개, 비와 눈과 어름, 파도 따위를 만든다. 이런 모든 요소는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환웅신화에 따르면 환웅은 천부의 인(印) 세 가지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데리고 태백산에 내려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바람과 비와 구름을 부리는 능력은 나라를 세우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문명은 풍부한 수원(水原), 넓고 비옥한 땅에서 출발한다. 이런 땅은 곧 인간과 뭇 생명이 생존할 수 있는 적합한 기후를 가진 곳이다. 비가 오지 않는 사막이나 너무 많은 열대우림, 바람이 차고 눈이 내리는 남극이나 북극 같은 기후에서는 사람이 살기 어렵다. 이런 척박한 기후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이런 곳은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명만 존재한다.
특히,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 구름은 생존과 연결된다.
구름이 낀다는 것은 곧 비가 올 것이라는 징조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그래서 농사꾼들은 하늘을 보고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라 구름의 적고 많음을 보고 농사를 지었다.
장생도의 내용은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이다.
구름은 장생도에서 생명활동에 가장 적합한 기후를 상징한다. 구름이 가진 상징은 직관적이다. 누가 보아도 척하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구름과 비바람은 조금 다르고, 왜 비바람을 함께 그리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물론 구름이 없이도 바람은 불고 구름이 있어도 비가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구름은 비바람에 비해 시각적이고 일상적이다. 또한 그림은 최적화 원칙에 따라 반복되고 중복되는 요소는 제거한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릴 수 없고 비(雨)는 화면을 복잡하게 만든다.
비바람이 없이 구름만 있어도 그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수가 있다.

미술 조형원리로 구름을 살펴보자.
수묵화의 핵심 조형원리는 선묘와 여백이다. 선묘는 형태를 만들고 여백은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장생도와 같은 채색화는 빈 공간, 즉 여백을 표현할 수 없다. 채색화에서 모든 공간은 색으로 채워야 한다. 색으로 채우지 않으면 미완성이 되어 버린다.
여백은 일인칭 원근법에 따른 수평선이나 지평선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우리그림은 여러 시점이 결합된 확대원근법이라는 조형원리에 따라 그려진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이 보이면 곧바로 일인칭 시점으로 바뀌고 원근법을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간이 뒤틀어져 버린다.
또한 여백은 사물의 앞과 뒤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 우리그림에 적용된 확대원근법은 앞과 뒤의 사물을 거의 똑같이 표현한다. 이 때문에 자칫 앞뒤 사물이 붙어버릴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요소가 바로 여백이다. 이렇게 표현된 여백은 공간을 높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바로 이런 여백의 역할을 채색화에서는 구름이 하는 것이다.
바다에 낮게 깔린 구름은 수평선을 가린다. 산의 끝부분에도 구름으로 가려 지평선을 없앤다.
산과 산 사이, 나무와 산 사이, 바위와 산 사이 같은 곳에 구름을 넣어 앞뒤를 구분하고 공간을 ‘높게’ 만드는 것이다.
서양화법의 일인칭 원근법과 명암법은 시공간을 창조한다. 원근투시법에 의해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명암법은 공간을 더욱 깊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반면 우리그림의 확대원근법은 한 사람의 시공간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시공간이 표현되어 있다. 물론 개인의 관점을 포함한다. 사물의 위치에 따른 원근은 서양화법에 비해 약 30% 정도 사용한다.
확대원근법에 따라 명암법은 사용하지 않고 대신 사물의 특징에 따른 농담으로 입체를 드러내는 ‘상징명암법’을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그림은 평면적으로 표현된다. 평면은 입체에 비해 공간의 깊이가 나오지 않는다.
장생도는 가로그림인데 옆으로는 충분한 공간을 확장한다. 바다와 육지를 동시에 표현할 만큼 넓은 공간을 표현한다. 세로그림이 많은 수묵화는 위 아래로 공간을 확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산 위에 산을 겹쳐 그리는데 그 사이에 구름이나 안개를 넣는 방식을 사용한다. 원래는 앞산에 가려 뒷산이 보이지 않지만 확대원근법의 원리를 이용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니까 공간은 넓고, 깊고, 높아야 하는데, 서양화법은 가로공간이 좁은 반면 깊은 공간을 창조하는 장점이 있다.
우리 화법은 가로공간이 넓은 대신 깊이는 약하다. 하지만 이렇게 부족한 깊이의 공간을 높이로 보완한다.

구름의 표현은 이상세계를 극대화 시킨다.
구름은 불투명으로 표현되고 구름 뒤의 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뭔가가 가려져 있으면 사람들은 상상하게 된다.
또한 구름은 보이기는 하지만 손이 잡히지 않는 신비한 존재이다. 하늘을 떠다니고 높은 곳에 존재한다. 구름이 끼어 있다는 것은 그곳이 높은 곳,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실제 장생도에는 산 중턱에 구름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산이 구름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은 곧 이상세계를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법인 것이다.

여기에 구름을 화려한 색으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 어떤 장생도에는 구름을 금박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이것이 민화로 내려오면서 오색구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민간신앙에서 구름은 주로 신선이나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운반체 혹은 상상의 동물인 용을 감싸고 있는 신비로운 기운 따위로 묘사된다.
이것은 김홍도의 ‘신선도’를 통해 도교적 내용이 장생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구름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표현하는 것은 조선 말기 때이지만, 어쨌든 이상세계를 더욱 멋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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