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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 ‘젊어지는 법’까지 배우다<산행기> 6.15산악회 6월 사패산 산행
유영호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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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24  14: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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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호 / 6.15산악회 회원

 

   

▲ 사패산 산행중 백범이 한때 피신했던 회룡사 ‘석굴암’에 모두 모였다.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6월 22일, ‘6.15산악회’(회장 권오헌)는 6월 산행으로 도봉산 북쪽 자락에 위치한 사패산(賜牌山)을 등반했다. ‘사패(賜牌)’란 왕이 공을 세운 왕족이나 신하에게 땅이나 노비를 하사할 때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문서로 선조의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 하여 그 뒤 사패산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본래 이 산은 그 모양이 삿갓처럼 생겨서 ‘갓바위산’ 또는 ‘삿갓산’으로 불렸던 산이다.

우리는 의정부역 바로 전 정거장인 회룡역에 집결하였다. 이 날 함께 한 사람은 총 31명으로 적지 않은 수였다. 등반코스는 회룡역-회룡탐방지원센터-회룡사 입구-석굴암-사패능선-사패산 정상을 선택하였다. 하산코스로는 정상에서 사패능선까지는 왔던 길로 오다 회룡사로 흐르는 회룡천을 따라 다시 회룡역에 이르는 길을 택하였다.

“자살하러 가십니까?”

   
▲ 등산로 입구에 설치된 자살예방 문구. [사진-유영호]

   
▲ 사패산 정상에서 바라본 자운봉, 오봉과 삼각산의 절경.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회룡역에서 출발하여 주택가를 거쳐 산 아래 이르렀다. 등산길 초입에 있는 회룡탐방지원센터 근처에서 뜻하지 않는 공고판을 보았다. 그 제목은 <자살하러 가십니까?>. 현실에 힘들었던 몸을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맡기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이라 생각했던 곳에 역설적인 공고판이 서 있음에 순간 나는 놀랐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강과 산을 갖고 있다 하여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배웠던 우리 국토가 이제는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곳으로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너무도 슬펐다. 조선의 궁궐로 지금의 경복궁 자리를 선택할 때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강이 흘러야 명당의 터라 잡은 것이 아니었던가? 인간이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명당의 핵심적 조건이었던 ‘산과 강’이 이제는 생명을 버리는 죽음의 조건으로 바뀌었다는 현실이 무섭다.

한강 다리 위에 자살을 예방하려는 여러 문구가 있다는 소식은 언론을 통해 들었지만 이제는 산도 그렇게 변한 것이다. 마치 경쟁사회가 몰고 온 우리 사회의 슬픔을 보는 듯했다. 우리의 이번 산행은 이런 슬픈 현실을 느끼며 이렇게 시작되었다.

석굴암과 김구

   
▲ 회룡사 ‘석굴암’, 백범 김구가 1948년 이곳에 머물며 남긴 글(石窟庵, 佛, 戊子仲秋遊此)이 새겨져 있다. [사진-유영호]

등반을 시작하며 계곡을 따라 오르다 처음으로 만난 곳이 회룡사 ‘석굴암’이었다. 암자의 입구의 소개 글에 의하면 ‘백범 김구가 상해로 망명하기 전 한 때 피신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이곳에 자주 들러 자연을 즐기며 고금(古今)을 회상했다’고 전한다. 또 석굴암 입구 3개의 자연석에는 그의 친필(石窟庵, 佛, 戊子仲秋遊此)이 조각되어 후대에 전하고 있다.

이 글에 의하면 해방 후 1948년(戊子年) 음력 8월(仲秋) 백범이 이곳에 바람 쐬러 왔다(遊) 남긴 글이다. 그러니 백범이 남북연석회담(1948.4)에 참가하고 그 뒤 암살되기 약 10개월 전이다. 당시 백범은 분단을 앞두고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고, 미국과 반민족세력은 이러한 통일세력의 활동을 저지시키고자 온갖 책동을 벌이고 있을 시기이다. 그러니 백범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 시기였던가? 이승만 단독정부가 들어서고 자신의 통일노력이 좌절되는 속에서 머리를 식히려 이 곳에 들렸을 터인데 그 뒤 경교장으로 돌아가 분단을 막고 통일정부를 세우려 노력했던 그에게 돌아 온 것은 안두희의 총탄이었다.

사패산 정상

   
▲ 사패산 정상(552m).에서.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사패산에 오른 여성회원들.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사패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사진-유영호]

석굴암에 잠시 쉬며 석굴암과 백범의 인연을 생각하고, 다시 우리는 정상으로 올랐다. 비록 길지는 않지만 가파른 산길을 따라 땀을 흘리며 올랐고, 사패능선에 도착하여 다시금 잠시 쉬고 마지막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펼쳐지는 경치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좌로부터 자운봉, 오봉, 삼각산(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고산 등이 한 눈에 펼쳐져 보였다. 그 동안 힘들게 올라 오며 흘렸던 땀을 이곳에서 모두 식히고 다시 하산하며 우리는 식사할 곳으로 옮겼다.

항상 그렇듯 식사는 인간에게 즐거운 시간이다. 이처럼 땀 흘린 뒤 먹는 식사란 더욱 그렇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져온 도시락이야 비록 작을 지라도 이것이 모여 다양함과 푸짐함을 만들어 내니 항상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이렇게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다시 우리는 회룡천을 따라 회룡사로 향했다. 항상 그렇듯 연로하셔서 정상까지 함께 하기는 힘드신 몇몇이 회룡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전향장기수의 산상강연

   
▲ 37년 옥고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 비전향장기수 양희철 선생의 산상강연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회룡사에 내려와 다시 모두가 함께 만나 그곳에서 6.15산악회의 백미인 ‘산상강연’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강사로 비전향장기수 양희철 선생님이 해주셨다. 37년간 옥살이하며, 온갖 고문과 회유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 분이다. 이런 분의 강연이라 뭔가 정치적이고 강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강연제목은 ‘건춘법(建春法)’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몸과 마음이 늙지 않고 항시적으로 젊고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산에 올라 건강함을 느끼던 터에 젊어지는 법까지 강연을 들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 것인가.

양 선생님은 그 방법으로 생활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말 것과 ‘과음과식을 피할 것’ 그리고 ‘음양의 조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소위 ‘신념의 불사조’라 불리는 ‘비전향장기수’로부터 듣는 것이기에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강연 이후 소낙비라 쏟아져 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회룡역으로 가다 잠시 뒤풀이를 하였다.

   
▲ 하산길 회룡천 계곡에서. [사진-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그만 헤어짐의 아쉬움을 접고…

   
▲ 힘들었던 산행을 마치고 헤어지는 길 아쉬워 잠시 이루어지는 뒤풀이의 모습. [사진-유영호]

비록 산행에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뒤풀이 자리에 함께 하기 위하여 또 새로운 두 명의 회원이 함께 하였다. 최근 건강이 안 좋아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범민련 강인옥 회원과 지난 날 암수술 등 건강상 이유로 함께 산행을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사패산 근처에 살고 있기에 얼굴조차 안 볼 수는 없다며 나오신 김영옥 선생님. 비록 이들이 함께 산행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날 6.15산악회의 6월 산행에 함께 한 사람은 33명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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