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휴머니즘)의 아름다움은 ‘인간미’이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신에 비해 열세인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높이기 위한 사상이다.
다시 말해, 신과 대적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지 인간과 인간, 즉 인간관계에 대한 사상은 아니다.
그리스로마문명의 적통자임을 자부하는 미국문화는 인본주의에 대한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신과 대적하여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높이는 방식은 언제나 ‘모험, 탐험, 도전, 개척, 실험’ 따위의 행동을 통해 구현된다. 신에 의해 규정된 인간의 운명을 거부하고, 그 운명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본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운명은 믿지 않지만 행운은 믿는다’ 혹은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행운의 여신이 웃음을 짓는다’라는 말이 있다. 운명을 개척하고 행운을 얻는 그런 사람을 가장 ‘인간미’가 있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지배철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상품광고에는 온통 ‘운명을 개척하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등산용품과 같은 레저상품, 옷이나 신발과 같은 의류상품, 자동차, 전자기기 따위를 광고할 때도 ‘모험, 개척, 실험, 성공’을 속삭인다.
인간의 미덕은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돈과 명예라는 보상은 행운으로 규정된다. 허영과 사치를 동반한 소비는 운명을 개척한 자의 특권이다. 반대로 과도한 소비를 하고 허영과 사치를 일삼는 사람은 마치 운명을 개척한 사람의 징표가 되어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인간미’가 있는 사람은 동료와 협력하고 어려움을 챙겨주고, 여자와 어린이를 보호하고, 연인과의 사랑을 지키고, 조직의 가치를 지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운명을 극복해 인간의 한계를 넘은 목표를 달성한 사람의 전리품에 다름 아니다.
실패한 인간에게는 ‘인간미’라는 가치가 주어지지 않는다. ‘승자승’ 원리에 따라 성공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패자는 잊혀진다.
인본주의의 인간미는 하늘을 향하고 있다. 신과 대적하여 운명을 개척한 사람이 곧 ‘영웅’이다. 영웅은 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이고 존경과 행운과 같은 보상을 독식한다. 동료와 같은 협력자는 행운의 부스러기를 얻어먹을 뿐이다.
이것은 곧바로 인간관계에서 피라미드구조를 형성한다.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신과 대적하는 영웅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와 국가, 국가조직, 기업조직, 학교, 가정 따위로 복제되고 확산된다.
물론, 이런 특별한 천재나 영웅들이 만들어낸 가치가 생산력의 향상과 같은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유럽의 사회주의나 복지제도는 왕이나 귀족, 자본가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재부를 빼앗기 위한 민중의 싸움의 결과이다. 하지만 인문학적 관점으로는 신에 대적하는 인간처럼 신격화된 영웅에 대항하는 대다수의 민중이 투쟁하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다.
결국 영웅을 인정하는 대신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인간의 기본 권리를 얻는 계약관계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중세유럽의 ‘종사제도從士制度’를 현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조선은 주자성리학이라고 하는 학문적 이념을 지배사상으로 삼아 건국한 나라이다. 중국의 유학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유학을 도교와 결합해 수용했다. 하지만 조선은 유학 중에서 엄격하기로 유명한 주자성리학을 지배사상으로 삼아 전 국가적, 사회적 질서로 만들고자 했다. 예법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규정한 것이다.
주자의 예법은 ‘관혼상제冠婚喪祭’에 집중되어 있다. ‘관혼상제’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겪는다. 결국 조선에 사는 모든 사람은 엄격한 예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주자성리학의 ‘인간미’는 예법을 지키고 체화시킨 사람이다.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법을 지키는 것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보았다. 예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예가 없는 사람을 ‘개, 돼지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멸시했다.
인간을 규정함과 동시에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규정하는 기준이 곧 ‘예禮’였다.
‘예’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는 척도이며,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준이다.
엄격한 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가 사회적 실천행위로 드러나는 것이 ‘자발적 청빈’이다.
유학의 인격적 완성체인 ‘군자君子’가 되기 위한 덕목에는 ‘인의예지신’과 더불어 ‘염치廉恥’가 있다. 염치는 ‘자발적 청빈, 혹은 자기절제’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염치가 없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모욕적인 말이다. 염치가 없는 사람을 ‘파렴치한’이라고 부르는데 살인, 강도, 사기와 같은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거나 ‘삼강오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이다. ‘파렴치한’은 사망선고를 받아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사회적 응징을 받는다.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라는 사회적 행동의 결과에 따른 물질적 보상은 없다. 다만 인격적 완성이라는 정신적 보상이 따를 뿐이다.
‘예법과 자발적 청빈’을 실천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그 삶도 가치 있으며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으로 존경받는다. 주자성리학의 감동은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 속에서 원초적 욕망을 절제하면서 인간관계의 예를 지켜나가는 것에서 나온다.
또한 뛰어난 개인적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인간 자체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수렴된다.

조선의 그림에는 ‘문인화, 수묵화, 궁중회화, 민화’가 있다.
이 중에서 ‘문인화’는 선비가 유학을 공부하면서 자기 수양을 하는 방편이다.
수묵화에는 선비가 나오는 그림과 풍경을 그린 산수화가 있다.
수묵산수화는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라는 주자성리학을 공부하고 정치적으로 실천하는 선비들의 이상세계를 그린 것이다. 색채를 버린 수묵화는 그 자체가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수묵산수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예법과 청빈’을 지키는 선비들이다.
그래서 수묵산수화에는 언제나 쓸쓸함, 유유자적한 아름다움이 있다.
조선 말기에는 실경, 진경산수화가 발전하면서 쓸쓸함, 유유자적함을 넘어 ‘풍류미’로 발전한다. ‘풍류미’는 자연과의 정신적 교감을 통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실경, 진경산수화는 상상 속의 풍경과 달리 현실적인 풍경이다. 구체적 이름과 장소가 있는 풍경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의 공간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곧 자연의 본질이나 질서가 잘 드러난 곳이라고 여겼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직접 오감을 통해 체험하면서 어렵고 힘든 자기절제의 아름다움을 긍정적이고 활달하면서 평화로운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르네상스 인본주의 사상을 미술작품 속에 구현했듯이 주자성리학의 핵심사상을 미술작품에 담은 것이 수묵화이다.
[모나리자]에서는 인본주의의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수묵화에는 주자성리학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올곧이 구현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은 선비만이 사는 곳이 아니다.
대다수의 농민과 상민과 각종 행정업무를 맡았던 중인 따위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왕과 선비를 포함한 조선의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이해와 요구와 꿈을 담고 있는 그림은 궁중회화이다. 궁중회화에는 조선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꿈꾸는 이상세계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아름다움은 좋고, 유익하며 실천해야 하는 감정이다. 지배사상이 추구하는 이상세계는 지배사상의 아름다움, 즉 미학이 총화 된 곳이다.
서구 인본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세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에 반해 조선의 화가들은 [몽유도원도], [금강산도], [신선도] 따위를 통해 이상세계의 구체적 모습을 그려 내었다. 화가들이 이상세계를 그렸다는 것은 조선의 지배계층인 선비들이 구체적인 이상세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궁중회화의 대표작인 [십장생도]를 조형적으로 분석해 보면 조선이 추구했던 이상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 심규섭/통일장생도2/디지털회화/2014. [자료사진 - 심규섭]

[십장생도]의 조형기법에는 확대원근법이 적용되어 있다.
인본주의가 일인칭 원근법에 의해 창조된 시공간이라면 확대원근법은 여러 사람들의 시점에 의해 구현된 시공간이다. 일인칭 시점이 큰 것과 작은 것, 가까운 것과 먼 것, 중심과 부심을 확연히 드러내는데 비해 확대원근법에는 이런 구분이 없거나 약하다. 여러 사람의 시점이 결합되어 있고 각 사물의 표현은 대등한 비중을 차지한다. 사물의 본질은 뛰어난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 즉 공동체의 합의로 결정된다.
확대원근법은 개인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시공간을 창조한다. 다시 말해, 개인이 상상하는 이상세계가 아니라 공동체가 상상하는 이상세계인 동시에, 개인의 힘이 아니라 공동체의 힘으로 구현하는 세계란 뜻이다.
이것은 탁월한 영웅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집단주의와는 다르다. 탁월한 영웅적 개인이 아니라 인격적 완성체인 군자들의 수평적 공동체이다.

[십장생도]에는 명암의 표현이 없다.
장생도에는 분명 해가 그려져 있지만 태양의 위치에 따른 사물의 그림자가 없다. 사물의 표현은 그림자 없이 선묘와 채색으로 형태를 만들고 질감을 부여했다.
명암법은 손이 잡힐 것 같은 입체감을 부여하여 가상의 시공간을 현실처럼 보이게 하는 조형기법이다. 일인칭 원근법과 명암법이 결합하면 가상의 시공간은 더욱 현실감 있게 증폭된다.
현실감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며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느낌이다. 이상세계가 현실감이 높다는 것은 몸으로 체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몸으로 체득하면서 수용하는 세계는 물질의 세계, 즉 돈과 같은 재부와 연결된다.
평면적이면서 현실감이 약하다는 것은 관념의 세계이다. 관념은 추상적인 정신의 세계를 말한다. 다시 말해, 조선이 추구한 이상세계는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곳이 아니라 ‘인의예지신’ 따위의 정신적 가치가 풍요로운 세계인 것이다.
정신적 가치가 보편성을 획득하여 이상세계의 가치가 되려면 공동체를 위한 ‘헌신, 희생, 절제’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십장생도]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장생도에 나오는 학, 사슴, 거북은 사람의 의인화가 아니라 하늘과 땅, 땅과 하늘, 바다와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이자 육, 해, 공 짐승의 대표일 뿐이다.
이상세계를 표현한 그림에 사람이 등장하면 곧 신격화된다. 신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유학적 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실제 조선은 영웅의 사회가 아니라 독립적 개인인 선비를 중심으로 정당을 통한 집단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왕을 우월한 혈통을 가진 절대자로 보지 않고 선비의 대표로 보았다. 그래서 왕은 ‘경연經筵’을 통해 신하 선비에게 학문을 배웠다.
신권을 추구했던 배경에는 선비세력이 있었고 왕권 강화의 배경에도 선비세력이 있었다. 왕권과 신권의 싸움에서 어느 편도 승리하지 못했다. 조선 말기 정조의 개혁정치 실패 이후에 선비들이 세도정치를 통해 왕권을 장악하면서 조선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견제와 협력이라는 집단정치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장생도에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배제한 이상세계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이상세계를 구현하고 향유하는 존재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십장생도]에는 모든 자연이 표현되어 있다.
자연은 유기물과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총합이다.
해, 구름, 하늘, 산과 땅, 바위, 바다, 소나무, 대나무, 복숭아나무, 영지를 비롯해 육, 해, 공의 동물을 대표하는 학, 사슴, 거북이 그려져 있다. 각각의 자연 요소의 비중은 대등하고 작아도 존재감이 높다.
학은 날고, 사슴은 뛰놀고 거북은 헤엄친다. 소나무와 대나무는 푸르고 복숭아나무는 꽃을 활짝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해는 붉고 둥글며, 구름은 웅장하고, 바다는 역동적이며, 산과 바위는 숱한 식물이 자라나는 청록의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자연의 생명력이 풍부하면서도 극대화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를 표현한 것은 생명에 대한 지극한 존중과 생명활동의 찬양이다.
이것은 풍류도의 ‘접화군생接化群生’ 사상과 다르지 않다.
‘접화군생’을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 무기물까지 우주만물을 가까이 사귀어서 감화시키고 변화시키고 진화시켜 해방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시인도 있다.
자연의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과 생명활동도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인간의 생명도 자연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조화와 협력, 공생을 통해 풍성해진다.
이것을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공공성公共性’, ‘공공미公共美’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생명활동에 대한 찬양은 곧바로 전쟁과 약탈, 살육, 강간, 굶주림처럼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
조선의 군사력은 무시 못 할 정도로 강했지만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으며 최소한의 방어적 전쟁만 수행했다.

[십장생도]에는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의 아름다움이 표현되어 있다.
그 안에는 생명을 존중하고 찬양하는 ‘절제미’, ‘공동체미’, ‘공공미’, ‘풍류미’, ‘평화미’ 따위의 여러 가지 아름다움이 들어가 있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해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주자성리학의 미학이자 조선의 미학이고 우리그림의 미학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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