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회화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오봉도]가 있다.
[오봉도]는 왕을 상징하는 그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화폐의 배경그림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가장 대중적인 궁중회회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봉도]를 [일월오봉도]라고 부르고 양쪽의 두 개의 해를 해와 달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잘못된 해석을 오랫동안 사용하면 마치 진짜인 것처럼 굳어져 버린다. 특히 다수 대중들이 믿고 사용하면 미술전문가라도 어쩌지 못한다.
[오봉도]는 [장생도]를 왕의 상징에 맞게 정형화시킨 것이다.
[오봉도]의 해를 달로 해석하면 그림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진다. 또한 [오봉도]의 뿌리인 [장생도]의 내용마저 왜곡되어 버린다.

달밤에 거문고를 타는 장면을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이 단지 풍류를 즐기려고 달밤에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의 어떤 응어리를 달래려고 하는 것이다. 선비의 현실은 달빛처럼 어둡고 또한 실낱같은 희망이다. 보름달이 떠있지만 그림의 분위기는 애잔하고 쓸쓸하다. 이러한 쓸쓸함을 거문고라는 악기, 즉 자기절제를 통해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 [자료사진 - 심규섭]
우리그림은 선비들의 사상을 담은 수묵화와 조선의 이상적 가치를 담은 궁중회화가 전부이다. 민화는 조선 말기에 궁중회화가 대중의 삶속에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독립적인 그림이라고 보기 어렵다.
궁중회화에는 달의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그림 속에 달이 표현된 것은 선비들의 수묵화이다.
우리그림속의 달(月)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달의 상징과 선비들이 생각하는 달의 상징은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달의 상징은 대부분 농사와 관련된 것이다.
농부들이 정확한 태양력을 쓰지 않고 불안정한 달력을 쓰는 것은 태양과는 달리 달은 움직임이나 변화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달이 기울고 차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원초적이고 감각적이다. 대중들은 이런 방식을 선호한다.
설날, 정월대보름, 추석 따위의 명절은 모두 보름달이 뜨는 날이고 이것은 농사와 연결되어 있다. 농사와 관련된 달의 상징은 모두 긍정적이다. 보름달은 충만함이고 풍부함을 상징한다.
또한 태양이 질서, 남성, 권위 따위의 고정된 가치를 상징한다면 달은 변화와 무질서를 상징한다. 여성을 달의 상징으로 만든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달은 어둠, 슬픔, 두려움, 그리움 따위의 부정적 상징을 가진다.
그러니까 달은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적인 상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측-이수문/묵죽화책 중/1424/종이에 수묵/44.5*30.4/일본 마쓰다이라 소장.
김홍도의 ‘소림명월도’는 흔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달을 그렸다. 매화와 달을 그린 것보다는 공간이 넓다. 하지만 쓸쓸함이나 적막감은 더욱 깊어 보인다.
이수문은 대나무와 달을 함께 그렸다. 대나무는 매화와 같이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매화보다는 운치가 없지만 대신 운동감을 얻었다. 이것은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이용해 어려움에 처해 힘들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는 선비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시(詩)와 노래는 한 몸이다.
시를 흥얼거리면 노래가 된다. 하지만 시와 음악은 다르다.
조선의 선비들은 시를 많이 지었다. 시(詩)는 선비의 사상과 인격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학문적 깊이를 보여주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선비들은 시를 짓고 이것을 사설이나 창이라는 방법으로 노래했다. 일종의 흥얼거림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래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곧 사라진다.
조선의 선비들은 시와 노래를 결합하기보다는 시와 글체와 그림을 한 몸으로 보았다.
흔히 이것을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라고 한다.
달과 관련된 시를 유려한 글체로 쓰고 그림으로 그렸다는 말이다.

우측-김두량/월하산수도/종이에 수묵담채/82*49.2/1744년/국립중앙박물관.
윤용의 월하산수도는 달밤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배를 대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깊은 밤에 급하게 배를 타고 찾아가려고 했을까.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곧 자신의 외로움과 다르지 않다.
김두량의 그림은 그야말로 달밤의 산수화이다. 나뭇가지에 이파리가 없는 걸로 보아 겨울밤이다. 추운 겨울밤에 보는 보름달, 혹은 보름달이 떠 있는 겨울밤의 풍경은 황량하고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학문적 이상에 대한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철저히 자기 절제를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중국 송나라 소강절(邵康節)의 청야음(淸夜吟)
月到天心處 달은 중천에 떠있고
風來水面時 바람은 수면을 스친다.
一般淸意味 이 같은 맑은 의미를
料得少人知 아는 이 적느니.
월하독작(月下獨酌) -이태백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 새에 놓인 술 한 동이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따라주는 친구도 없이 홀로 마시노라
擧盃邀明月 (거배요명월)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 대하니 세 사람 되었고녀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 달이야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거늘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만 부질없이 날 따라 마셔대누나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잠시 달과 그림자 벗되어 노니나니
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모름지기 행락이 봄과 함께한 듯 흥겹고야(후략)
우물 속의 달(井中月) -이규보(李奎報, 高麗)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승이 달빛을 탐하여
竝汲一甁中(병급일병중) 한바가지 길어 넣어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돌아와 때마침 깨닫게 되니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 기울였더니 달빛도 사라지네

매창(梅窓, 1573~1610)은 부안(扶安)의 기녀로 고을 아전인 이탕종(李湯從)의 딸이다. 시와 노래에 능하고 거문고를 잘 탔다. 매창은 기녀로서 당대 많은 사대부와 교유하였으나 가까이 지낸 사람은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636)과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 묵재(黙齋) 이귀(李貴, 1557~1633)이며, 이 중 유희경과는 각별한 애정을 나누었다.
우측-어몽룡/월매도/1564~?.
조선시대의 화가. 자는 견보(見甫), 호는 설곡(雪谷), 본관은 함종(咸從), 벼슬은 현감(縣監)을 지냈다. 매화(梅花)를 잘 그려 황집중(黃執中)의 포도와 이정(李霆)의 대나무와 함께 삼절(三絶)로 꼽혔다.
달과 매화의 결합은 현실적으로 생소하다. 누가 꽃을 깊은 밤에 보겠는가. 하지만 달은 어두운 밤, 즉 어려운 현실을 뜻하면서 동시에 반사된 태양빛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상징한다. 이런 달의 상징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상징인 매화와 비슷하다. 비슷한 두 개의 상징을 결합하면 증폭된다. 이것이 [월매도]가 유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매창의 월매도는 어몽룡의 월매도에서 영향을 받았다. 매화 가지를 마치 창끝처럼 표현하는 부분은 지조와 절개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어몽룡의 매화그림은 유명하다. 어몽룡의 이 월매도에서 매화는 흐느적거린다. 강한 의지보다는 흔들림이 강조되었다. 흔들리는 매화는 나약해지는 마음이고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자료사진 - 심규섭]
선비들이 시를 쓰고 화가가 그림으로 그린 달의 상징은 매화의 상징과 거의 같다.
그래서 [월매도]처럼 매화와 달을 결합한 그림이 많았다.
매화는 선비가 가장 좋아했던, 그야말로 선비의 꽃이다.
겨울의 찬바람이 남아있는 초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의 생태적 특성은 유학적 가치를 지키고자하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의 상징과 결합했다.
하지만 지조와 절개를 지켜야할 때는 언제나 귀향살이, 옥살이, 낙향이라는 위기상황이다.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로움, 배신감 따위의 정신적 고통과 생활고, 병치레 따위의 육체적 고통을 동시에 이겨내야 한다.
초봄이라는 계절은 바로 이런 고통을 상징하고 꽃이 피는 것은 자존과 희망을 뜻한다.
달은 희미한 태양빛과 같으니 희망이자 동시에 밤을 상징하니 고통이다.
물론 이러한 고통과 어려움을 내면의 즐거움으로 승화하여 표현한 것이 시(詩)이고 그림이다.
우리그림 속의 달의 상징은 희망, 고통, 쓸쓸함, 허무함, 외로움, 지조와 절개, 내면의 즐거움 따위이다.
선비는 정치인이고 정치인의 삶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한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하고 모함을 받아 옥살이를 하거나 시골에 버려지기도 한다.
선비들은 정치적 상황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매화, 달, 파초, 술, 소나무, 눈(雪), 비와 같은 소재에 투영시켰다. 그래서 같은 소재라도 상황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출세를 해서 보는 달은 풍류가 되겠지만 귀향 가서 보는 달에는 고통과 외로움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궁중회화는 이러한 감정적 변화에 따른 상징의 흔들림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내용에 부정적인 상징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오봉도]의 해를 달로 해석하고 여성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민화의 관점이다.
민화의 관점은 곧 대중의 관점인데, 이것은 조선이 망해가는 과정에 나타난 생각이자 지식인의 나태함이 배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일반성을 가진다. 그렇다고 일반성이 보편적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대중들이 일본말과 일본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을지는 몰라도 보편적인 가치는 아니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우리문화를 지키면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 보편성을 획득한다.
궁중회화는 생명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담은 그림이다.
이러한 보편적 가치는 우리 민족에게 공동체의 사상과 창조적 영감을 무궁무진하게 선사하는 바탕이 된다. 궁중회화를 단순히 복을 받고 장수를 바라는 그림으로 전락시키면 보편적 가치는 사라져 버린다. 이것은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설익은 알을 꺼내어 먹어 치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