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화려한 색과 좋은 향기, 꿀 따위로 벌이나 나비를 유혹하는 것은 종족번식을 하기 위함이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이다.
생식기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곳이다.
꽃이 핀다는 것은 생식기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동시에 생명을 잉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무튼 식물은 자신의 영양분을 내놓아 공유하면서 생명을 확장하는 전략을 통해서 지구생태계의 주인이 되었다.
꽃은 화려함을 상징한다. 또한 아름다운 여성이나 사랑을 뜻하기도 한다. 꽃에는 다양한 꽃말이나 상징이 붙어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꽃의 모양이나 향기, 색 따위에 삶과 생활을 투영시켰기 때문이다.
꽃에 붙어있는 상징은 대부분 꽃의 생태적 특성에 따른다. 가끔은 특별한 상황이나 사건과 연관된 상징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꽃에 대한 상징의 뿌리는 ‘꽃이 활짝 핀 상태’일 것이다.
활짝 핀 상태의 꽃은 생명력이 가장 높을 때로 가장 화려하고 향기도 좋으며 내부에 많은 꿀을 머금고 있다.
이렇게 활짝 핀 꽃은 인간사회의 황금기, 여성이 가장 아름다울 때, 관혼상제와 같은 삶의 꼭지점에 이를 때와 연결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꽃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전 세계의 다양한 꽃들이 수입되고 여러 모양으로 개량되어 소비된다. 각종 꽃에 붙어있는 상징은 복잡해지고 다양해져 원래 상징이 뭔지도 모를 지경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 몇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대략 무궁화, 장미, 진달래, 벚꽃 따위라고 대답할 것이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國花)이다. 조선시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때문이다. 무궁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대한독립 만세’라고 할 수 있다. 독립을 염원하면서 불렀던 노래에 무궁화가 나온다. 또한 독립된 우리나라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무궁화의 꽃말이 연결되어 있다.
장미는 ‘사랑과 은총’을 상징하는 꽃이다. 이것은 기독교 문화와 연결된 상징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대중의 요구에 의해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상징이 겹쳐지기도 한다.
진달래는 한반도 전역에서 피는 대표적인 우리 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란 시(詩)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꽃이다. 또한 남북의 통일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한때 진달래가 북한의 나라꽃이라는 유언비어가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나라꽃은 진달래가 아니라 ‘함박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심어져있는 꽃나무는 단연 벚꽃이다. 매년 봄이면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상춘객(賞春客)이 몰려든다. 벚꽃은 일제 강점기의 비애가 스며든 꽃이다. 공식적으로 일본의 나라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암묵적으로 일본의 나라꽃이라고 여긴다.

▲ 좌측-김홍도/주상관매도/종이에 수묵담채/164*76/개인소장.
우측 위-정학교/매화도/종이에 먹/ 28x17.5cm/개인 소장.
우축 중앙-조속/묵매도/종이에 먹/28.5*18.5/개인 소장.
우축 아래-강진/매화도/종이에 수묵담채/57*38.5/개인소장.
단백하고 소박한 매화그림이다. 여백이 많고 글씨가 들어가 선비들의 정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꽃은 복사꽃, 매화, 모란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시대를 대표하는 꽃이 달라졌다는 것은 시대의 가치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세 가지 꽃은 조선만을 대표하는 꽃은 아니다. 옛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거의 나라꽃 수준으로 사랑받았다.
이들 꽃에는 시대의 가치가 상징으로 녹아있다.
알다시피, 모란꽃은 민가에서는 ‘부귀영화’의 상징이다. 꽃이 크고 화려해서 생긴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집집마다 앞마당에 모란꽃을 심었다고 한다. 미술작품에서는 모란꽃, 목련, 해당화를 함께 그려놓고 ‘부귀옥당(富貴玉堂)’이라는 화제(畵題)를 썼다. 이런 화제를 쓴 것은 모란은 부귀, 목련은 옥 빛깔과 비슷해서, 해당화의 ‘당’을 차용하여 말장난을 한 것이다. 모란꽃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그림은 단연 ‘궁중모란도’이다. ‘부귀’라는 상징 때문에 화가들은 모란꽃을 그리지 않았다. 이것은 선비들의 ‘자발적 청빈’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모란그림이나 ‘부귀옥당’이라는 화제를 쓴 그림은 거의 조선 말기 이후에 창작된 것이다.
복사꽃은 ‘이상세계’를 뜻하는 꽃이다. 복사꽃의 생태적 특징과 이상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어렵다. 두보의 ‘도화원기’라는 이야기 속에 복사꽃이 만발한 풍경이 나오는데, 이것 때문인지 아니면 신선들이 사는 세계에 한번 먹으면 천년을 산다는 복숭아의 전설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복사꽃은 진달래와 함께 조선시대의 봄날 풍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꽃이었다.

매화에 붙어있는 상징은 생태적 특성에 따른 것이다.
이른 봄, 아직 겨울의 찬바람이 남아있는 계절에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생태적 특성을 어렵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이상적 가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선비들의 품성과 연결시킨 것이다.
그래서 매화의 상징은 ‘지조와 절개’이다. ‘지조와 절개’의 주체는 선비였고 대상은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라는 행동 가치이다.
매화는 선비의 꽃이다.
선비의 꽃이란 선비들의 정서와 가치가 투영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선비들이 추구하는 세상이 매화꽃이 핀 풍경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매화만 단독으로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매화에 참새나 까치가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매화는 주로 수묵으로 담백하게 그렸다.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즉흥적인 느낌에 치중해서 그려야 제 맛이라고 했다. 선비들이 공부하고 수양할 때 가장 많이 그렸던 그림이 난(蘭)이다. 난(蘭)은 조형적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그리기 쉽다. 하지만 단순하기 때문에 수준을 높이기가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매화도 비교적 쉬운 소재이다. 매화나무는 먹으로 거칠게 표현해도 효과가 뛰어나고 매화꽃은 작고 하얗기 때문에 간단한 선묘나 흰 물감으로 쿡쿡 찍어서 표현할 수 있다.
흔히 식물에 선비의 가치를 투영한 것을 [사군자]라고 부르는 매, 난, 국, 죽이다.
이 중에서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은 국화이고 비교적 쉬운 것은 난과 대나무이다. 매화는 중간쯤 된다고 본다.

조선 초기나 중기에 그려진 매화그림은 쓸쓸하고 외롭고 소박하다.
권력과 돈으로부터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살아가는 선비의 처지나 정서를 담아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의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 산다는 것은 고통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런 외로움이나 쓸쓸함의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쓸쓸함이나 외로움을 통해 선비의 절개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고통이라도 이것을 이겨내는 선비의 품격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달과 매화를 함께 그리는 작품을 [월매도月梅圖]라고 한다.

▲ 어몽룡/월매도/비단에 먹/119.2*53/국립중앙박물관.
매화와 달의 결합으로 서정은 풍부해졌으나 훨씬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매화나무가 직선으로 자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화가는 매화 가지를 창끝처럼 곧고 뾰족하고 표현했다. 선비의 강한 지조와 절개의 드러내기 위함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산창에 기대 서니 밤기운이 차가워라.
매화 핀 가지 끝에 달 올라 둥그렇다.
봄바람 청해 뭐하리, 가득할손 청향일다.“
[이황/ 달밤에 매화를 읊다.]

매화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드러내지만 그런 풍경에 흐르는 정서는 차갑고 쓸쓸할 수밖에 없다. 달(月)의 표현이나 상징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달을 태양과 견주어 음양의 조화라고 떠들지만 우리 그림에서 달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달은 태양의 반대이다. 태양이 권력과 부귀를 상징한다면 달은 청빈과 쓸쓸함의 상징이다.
둥근 달이 뜬 초봄에 매화를 본다면 쓸쓸함과 외로움은 더욱 커진다. 달빛을 받은 하얀색의 매화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이런 처량한 풍경을 보는 선비는 눈물을 흐릴지도 모른다.
달밤에 매화를 보는 느낌이 처량하긴 하지만 꽃은 여전히 꽃이다. 한 해 처음으로 만나는 꽃, 매화를 통해 이상세계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 조희룡/홍백매화/124.8*46.4/19세기/국립중앙박물관.
매화를 좋아하고 매화그림을 잘 그렸던 조희룡의 작품이다. 한 나무에 붉은 매화와 하얀 매화를 동시에 그려 넣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매화가 참새나 까치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매작도梅雀圖]라고 한다.
참새나 까치의 한자는 틀리지만 ‘작’이라는 발음은 동일하다.
매화에 참새나 까치를 결합한 것은 참새나 까치의 생태적 특성이 매화와 연결되거나 상징이 통하기 때문이 아니다. ‘작’은 중국어로 ‘희’라고 발음하고 ‘희’는 ‘기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매화와 참새를 함께 그리면 ‘이상적인 가치를 위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내면의 즐거움이다’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사람이 변하면 세상이 바뀌고 반대로 세상의 흐름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선비의 고고한 절개를 표현하던 매화그림은 점차 커지고 화려해진다.
붉은색 매화, 홍매화가 그림에 등장한다. 하얀색 매화는 수묵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홍매화는 반드시 채색을 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자극적인 붉은 색깔의 물감을 사용해야 한다.
붉은색은 벽사의 의미도 있고,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뜻하기도 한다. 일편단심은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다.
바로 이런 상징 때문에 홍매화는 색상이 있음에도 거부감 없이 수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붉은색이 들어간 매화그림은 점차 화려해진다. 커다란 10폭 병풍으로 제작되고 단아하던 필선은 거칠고 변화무쌍해진다.
조선 말기의 천재화가, 미술적 기량의 절정을 보여주었던 장승업의 매화그림에서는 선비의 지조나 절개의 느낌을 찾을 수가 없다. 그냥 하나의 독립된 매화그림처럼 보인다.
그 당시 선비들은 부패했고 나라는 외세의 힘 앞에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로웠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했던 장승업의 매화그림은 화려하고 변화가 심하면서 어지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 조희룡/홍매대련도/종이에 수묵담채/각 127.30.2/개인소장.
홍매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선비의 엄격한 지조와 절개는 사라졌다. [자료사진 - 심규섭]

▲ 장승업/홍백매 10폭 병풍/종이에 수묵담채/433.5*90/호암미술관.
커다란 매화나무를 앞뒤로 겹쳐 그리는 파격을 보여준다. 농담으로 앞뒤의 원근을 만들고 즉흥적이면서 현란한 붓질로 표현했다. 선비의 사상을 반영한 그림이 아니라 독립적인 매화그림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꽃에는 수많은 상징이 붙어있다.
그 상징은 사람들의 가치와 삶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꽃은 매화도 아니고, 복사꽃이나 진달래도 아닌 장미꽃이다.
화가들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이 장미꽃이란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장미꽃의 상징은 서양에서는 ‘사랑, 은총, 헌신’이고 조선시대에는 ‘회춘(回春)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꽃은 여전히 생명력이 넘치는 이상세계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민들레는 민중의 꽃이 되었고 한반도의 산천을 수놓았던 진달래가 통일의 꽃이 되었듯이 더 좋은 세상에 걸맞은 우리 꽃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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