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이 나온 지 15일만에 공식적으로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북한은 4월 1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것보다 못한 ‘드레스덴 선언’은 입에 올리기조차 더러운 민족반역과 위선, 반통일 속내로 얼룩진 시대의 퇴적물”이라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드레스덴 선언의 기저에 ‘흡수통일’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3월 28일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이후 여러 매체와 주민 반응 등을 통해 사실상 거부의사로 읽힐 수 있는 반응을 꾸준히 밝혀오다 공식 입장을 내놓은 셈이다.

북한, 드레스덴 선언 조목조목 비판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독일 드레스덴 대학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발표했지만 북한 국방위원회는 12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북한 국방위원회는 △드레스덴 선언은 민족 내부문제를 남의 나라 땅에까지 들고 다니며 비굴하게 놀아댄 민족반역자의 넋두리, △선언에서 밝힌 ‘대북 3대제안’이라는 것은 북남관계 개선과 발전과는 거리가 먼 부차적이고 사말사적인(자질구레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 뿐, △드레스덴 선언은 나라와 민족의 이익은 덮어두고 몇 푼 값도 안 되는 자기의 몸값을 올려보려고 줴친 반통일 넋두리라며 3가지 차원에서 비판했다.

비판의 핵심은 이산가족 상봉, 대북지원 등 ‘인도주의적 문제해결’은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에서 부차적인 사안이고 최우선 과제는 정치.군사적 대결상태의 해소이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 민족끼리’를 핵으로 하는 6.15남북공동선언 등 기존합의가 원칙적으로 이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한 사안은 역시 상호 비방.중상문제라고 볼 수 있다. 국방위 대변인 성명은 “지금 북남관계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불신과 대결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중요한 원인이 박근혜의 입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그 입이 열리면 동족을 시비하고 헐뜯는 온갖 얄미운 요설과 악의에 찬 험담이 쏟아져 나오고 그것으로 북남관계가 더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비방.중상문제를 들고 나왔다.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에서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 방치되어 있었고, 추위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란 대목을 문제삼은 것이다. 북한은 “문제로 되는 것은 ‘지원’과 ‘협력’, ‘교류’에 대하여 줴쳐대면서 그 누구의 ‘고통’이니, ‘배고픔’이니 하며 없는 사실까지 날조하여 우리에 대한 비방중상에 열을 올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발언도 거론했다. “반공화국 삐라살포와 보수 언론매체들의 분별 없는 비방중상”도 비판의 내용에 포함됐다.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발언들

북한이 남쪽 당국자들의 발언 중 ‘비방 중상’으로 판단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최고 존엄’에 대한 비난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 리설주 부인 등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난, ‘대북 선제타격’등과 같은 발언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북한은 지난해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대북 선제타격’, ‘북한 지휘부 궤멸’, ‘김일성.김정일 동상 파괴’, ‘개성공단 인질 구출작전’ 등의 강경 발언을 하자 강하게 반발한 바 있고, 합의됐던 이산가족상봉 행사도 연기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에 대한 비판이다. 북한은 지난해 3월 3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박 대통령과 윤병세 장관은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는데, 이때마다 북한은 이를 강하게 반박했다.

북한은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체제를 위협하는 ‘비방.중상’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반박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안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계속될 경우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지난 1월 16일 ‘중대 제안’을 내놓으면서 “서로를 자극하고 비방 중상하는 모든 행위부터 전면중지”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러한 고민이 깔려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14일 남북 고위급접촉 합의 때도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한미합동군사연습 기간에도 예정대로 진행하자는 남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현재 북한이 얼마나 비상.중상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남쪽의 현재 정치상황에서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방하고 흡수통일을 거론한다면 아무도 남북대화를 하라고 조언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박근혜가 력대 그 어느 통치배보다 ‘신뢰조성’에 대해 많이 외우고있지만 북남관계가 왜 신뢰조성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그와 반대되는 길로 걷잡을 수 없이 역행하고있는가를 심중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기로 합의해 놓고 박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부은 것은 설사 남측이 먼저 비방에 해당되는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상호 비방과 중상 중단이 선행돼야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북측과 협의해 실행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4가지 사안을 해결해야 한다.

향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네 가지 사안

첫째는 드레스덴 선언이 흡수통일론에 기초한 것이라는 북한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4월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남북통일의 기본방향을 설명하면서 “기본은 평화통일이 중요하며 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 정부는 화해.교류.협력을 통해 평화롭게 달성하는 통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고 강조했다. 류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드레스덴 선언이 사실상 북한을 흡수통일 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과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애초에 드레스덴 선언을 할 때 논의됐던 ‘흡수통일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빠진 점이 ‘패착’이었지만 그나마 시기적절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우리의 입장에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북측이 비방.중상으로 느끼는 사안들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이 더 신중한 발언을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1월에 ‘중대 제안’을 내놓으며 “조선반도 비핵화는 민족공동의 목표”이고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변함 없는 의지”라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따라서 북핵문제를 거론할 때 굳이 북한이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공식 채택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직접 비판하기보다 북한이 내놓은 ‘중대 제안’의 이행을 강조하면 된다. 외교안보라인의 조율되고 일관된 대북메시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셋째는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환경 조성을 위해 빠른 시일 안에 6자회담 재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특히 드레스덴 선언에서 박 대통령은 “우리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발전시켜 북한의 안보우려도 다룰 수 있는 동북아 다자안보협의체를 추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북아 다자안보협의체’ 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6자회담이 재개돼야 한다. 6자회담 재개 없는 ‘동북아 다자안보협의체’ 추진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넷째는 드레스덴 선언에 포함돼 있는 ‘실현 가능한 조치’들을 우선적으로 이행해 나가야 한다. 박 대통령은 “현재 추진 중인 나진.하산 물류사업 등 남북러 협력사업과 함께, 신의주 등을 중심으로 남.북.중 협력사업을 추진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의 공동발전을 이뤄갈 것”이라며 “남북한이 기존의 대결 패러다임을 바꿔서 DMZ를 관통하는 유라시아 철길을 연다면, 남북한을 포함하여 아시아와 유럽을 진정한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하는 21세기 실크로드가 될 것이고, 함께 발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우선 국제컨소시엄을 구성해 추진하려는 경의선 철도, 도로 건설사업에 남측 기업의 참여를 승인해야 한다. 이미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와 중국 상지그룹 컨소시엄은 경의선 철도, 도로 등 개발에 관한 MOU를 체결한 상태다.

물론 앞으로의 남북경협을 위해 5.24조치를 해제해야 한다. 류 통일부 장관은 4월 11일 “드레스덴 구상에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있으나 5.24조치 해제 없이 대규모 인프라 사업은 할 수 없다”며 5.24조치가 남북경협의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했다. 실제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을 철도로 잇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코레일.현대상선.포스코 등의 우리 기업이 참여할 예정이지만 5.24조치 때문에 직접투자가 아닌 러시아 기업의 지분을 인수하는 우회 방식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만간 출범하게 될 통일준비위원회에서 5.24조치 해제문제가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북한의 국방위원회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을 흡수통일 논리라고 비난하면서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남북관계 파국까지 선언한 것은 아니다. 한미합동군사연습이 끝나고 한미정상회담에서 미사일방어체계(MD)에 대한 합의 등과 같은 돌발변수가 없다면 남북대화의 동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남북고위급 접촉을 통해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을 직접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4가지 사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해답이 없다면 한 단계 진전된 남북대화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남북 간 상호 비방.중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은 논의조차 어렵게 될 가능성이 크다.

5월 중에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그 후에는 남북대화보다 6자회담이 한반도 정세를 이끌어 가는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개성공단 재개, 올해 이산가족상봉을 이끌어낸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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