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회화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몇 명의 화가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화가들이 앞선 세대의 작품세계를 충분히 익히고 당대의 가치나 정서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정립되고 양식화 된 것이다.
조선은 부족국가, 봉건국가가 아니라 모든 군대를 통합하여 의정부 산하 병조에 귀속시키고 지방 관리를 중앙에서 임명하여 파견한 ‘중앙군현제’ 사회였다.
당연히 조선 팔도의 모든 가치는 궁궐로 집중되었고, 궁궐에서 만들어진 가치는 조선팔도로 퍼져나갔다.
궁궐의 미술은 왕이나 왕족의 개인 취향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권력이 중앙에 모여 있는 국가의 궁궐에는 조선을 지배하는 사상과 세력들의 가치가 총합될 수밖에 없다.
민족이나 국가, 사회를 대표하는 장소에는 언제나 그 성원들의 이상세계, 이상가치가 표현되어 있다.
천주교를 대표하는 교황청에는 교황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천주교 전체의 가치가 총합되어 있고, 미국을 대표하는 백악관에는 미국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가 표현되어 있는 사물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작게는 청소년이 자신의 방에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사진을 붙여놓거나 지식인이 자신의 서재에 자기 방식으로 꾸미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튼 조선의 이상가치는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을 통한 ‘태평성대’였다.
‘태평성대’란 전쟁과 다툼이 없고 공동체를 통해 각각의 생명들이 저마다의 가치를 구현하는 세상이다.

조선의 화가들은 이러한 시대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창작을 하면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화가들도 이상세계라는 방대한 가치를 하나의 그림 속에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내용이나 가치는 동일하지만 표현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고 그 영역도 저마다였다.
흔히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안견, 정선, 김홍도를 꼽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조선의 이상세계를 한 묶음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전쟁이나 경제상황, 주변국가의 변화에 다른 다양한 정치적 흐름이 있었다. 천재화가들도 시대를 따라 흐르는 변화와 흐름을 모두 반영하여 표현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화가는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작품 속에 구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흐름이나 변화는 마치 유행처럼 한 세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역적이 오늘의 충신이 되고, 오늘의 충신이 미래에는 역적이 되는 숱한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분한 역사적 검증을 거치기 전까지는 조선을 이루는 기본 가치는 변화하지 않는다. 궁중회화는 이러한 조선의 기본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그림이라서 변화나 흐름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검증될 때가지는 엄격한 형식과 양식을 고수했다.

궁중회화는 조선의 이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 안견의 몽유도원도, 정선의 금강전도, 김홍도의 해상군선도는 모두 이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당대의 유명한 화가이자 도화서 화원이었다. 이들의 작품은 역사적 검증을 거쳐 궁중회화에 녹아들면서 궁중회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완성된 궁중회화는 임모(臨摹)와 변주를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되고 재탄생된다. 이러한 큰 흐름을 미술사라고 한다. [자료사진 - 심규섭]

이러한 궁중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그림이 있었다.
조선초기에는 조선 선비의 자부심을 표현한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가 있었다. 중국의 명과 청의 교체가 일어난 후에는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가 [십장생도]에 미묘한 변화를 주었다. [몽유도원도]에 나타난 산천은 중국의 냄새가 많이 나고 국적이 불분명하지만 정선의 금강산 그림은 그야말로 우리 땅의 실경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경치, 즉 진경(眞景)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조선 말기에는 백성의 원초적 욕망인 도교를 수용한 김홍도의 [군선도], [신선도]가 있었다. 도교의 영향으로 궁중회화는 대중그림인 민화를 바탕을 만들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상징의 변화나 추가, 삭제 따위가 일어나고, 새롭고 발전된 미술재료를 수용하며 이에 따른 기법의 극대화가 발생한다. 초창기 먼 풍경구도가 주축이었던 궁중회화는 점차 시대의 요구에 따라 가까운 풍경구도로 정착된다.
이렇게 궁중회화는 500년 이상을 거치면서 시대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을 반영하면서 서서히 정형화된다. 일단 완성된 하나의 형식은 마치 단단한 차돌과 같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상황이나 나라의 멸망과 같은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한 변치 않는다.

궁중회화는 마치 미술교과서와 같다.
교과서에는 새로운 지식은 없다. 모두 과거의 지식이며 역사를 통해 검증된 것만 교과서에 남는다. 앞선 시대의 정치, 사상, 경제, 문화, 생활 따위의 방대한 지식을 배우는 일은 마치 수 십, 수 백 억 명의 삶을 통째로 배우는 것과 같기에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젊은 시절에 이렇게 많은 양의 지식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교과서나 역사서에는 엄청난 양의 지식을 단순한 모양으로 압축하는데, 이것을 상징화, 추상화라고 한다. 미술에서는 양식화, 정형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상징화되어 있는 개념 속에는 수많은 삶의 경험이나 그에 따른 지식이 숨어있다.
학교에서는 상징화된 지식을 수박 겉핥기처럼 가르친다.
학생이 어느 것을 선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학생은 그 중에서 자신에 맞는 상징을 선택하여 점차 좁게 영역을 만들어 파고 들어간다. 하나의 영역에 자신의 정서나 가치, 시대성을 반영하여 현재나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 내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결국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현재를 살고 미래를 조망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과서처럼 단단하게 정형화되고 상징화된 궁중회화를 잘 녹여낸다면 작게는 500년, 많게는 수 천 년의 역사적 경험이 농축되어 있는 지식을 한 번에 배울 수 있다.
궁중회화를 녹여내기 위해서는 일단 조선시대의 이상적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주자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건국한 조선은 중국에서도 하지 못했던 성리학을 조선의 방식으로 완성시킨다. 주자성리학이 복잡하긴 하지만 유학의 핵심 가치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에서 예(禮)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조선에서 가장 큰 문으로 흔히 남대문이라고 불리는 국보 1호인 숭례문(崇禮門)의 뜻은 ‘예를 숭상하는 상징적인 문’이고 그 문의 안쪽에 있는 궁궐, 즉 경복궁(景福宮)은 ‘예를 통해서 큰 복(이상세계)을 만드는(정치) 곳’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궁궐인 ‘경복궁(景福宮)’을 ‘큰 복을 받는 곳’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큰 복을 만드는 곳’이라고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큰 복을 받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십장생도’는 그냥 왕의 장수와 왕족의 번영을 뜻하는 그림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큰 복을 만드는 곳’으로 이해한다면 ‘십장생도’는 ‘생명력이 넘치는 이상세계’의 뜻이 된다.
왕이 없는 현대에, 시민이 주인인 이 시대에 왕의 장수와 번영을 뜻하는 그림을 창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차돌같이 단단한 궁중회화를 조형적으로 녹여내는 방법에는 ‘임모(臨摹)’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임모(臨摹)를 사전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서화 모사(模寫)의 한 방법. ‘임’은 원작을 대조하는 것을 가리키고, ‘모’는 투명한 종이를 사용하여 윤곽을 본뜨는 것을 말한다. 넓게는 원작을 보면서 그 필법에 따라 충실히 베끼는 것을 의미한다.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이 주장한 ‘육법’중 ‘전이모사(傳移模寫)’가 이에 해당된다. 임모의 목적은 앞 시대 사람들의 창작규율, 필묵기교 등 경험을 배우는 고전연구에 있다. 형체만이 아닌 화의(畵意)를 베끼는 것이 요체(要體)가 된다. 한편 투명한 종이를 위에 대고 베끼는 것을 ‘탑화(搨畵)’라고도 한다. 탑화는 당대(唐代)에 성행하여 궁중에도 수장(守藏)되었다고 하며 그 후에도 그림을 익히는 제1단계로 중요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모 [臨摹]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복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창작의 기본이다.
서양문화의 핵심인 르네상스는 그리스로마문명을 복제하고 부흥시킨 것이다. 현대 정치, 경제, 문화 따위의 바탕에는 르네상스가 있을 만큼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래서 창의, 창조의 핵심 원리는 ‘복제와 융합’이다.
임모(臨摹)하는 방법에도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베껴 그린다. 최대한 원작과 가깝게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구도, 조형원리, 채색방법 따위를 익힐 수 있다.
원작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면 다음에는 변주 단계가 있다.
변주는 원작을 바탕으로 현대적 가치, 화가의 정서를 투영하는 방법이다.
변주를 하기 위해서는 원작의 조형적 원리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조형적 원리를 모르면 자칫 엉뚱한 그림이 되어버리거나 원작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또한 원작 속에 들어있는 상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만약 ‘궁중모란도’의 상징이 ‘부귀영화’라고 여긴다면 최대한 화려하게 변주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만개’라고 이해한다면 화려하게 그리지 않고 단아하면서도 기품이 있도록 그릴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은 종종 유행과 혼동하기도 하고 역사적 검증을 바탕으로 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35년간의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흐름이라고 여긴 수많은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친일파의 길을 걸었다. 구체적인 상황과 유행은 널뛰기를 하겠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가치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모든 생명의 존엄, 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협력과 공영’이다.
이밖에도 현대적 미술재료와 기법을 도입하는 문제가 있다.
김치를 김장독에 담아 땅에 파묻는 전통방식만 고집했다면 김치의 발전과 세계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과 결합한 ‘김치냉장고’의 발명으로 김치는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발효음식이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든 진채기법과 3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만 고집한다면 궁중회화는 몇몇 장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수채화 물감, 아크릴 물감, 유성물감과 같은 현대적인 미술재료와 결합해야 하고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미술재료인 디지털 도구와 접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친구는 이 땅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김치를 사시사철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나 또한 매년 늦가을 김장김치와 수육을 함께 먹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에게 500여년의 가치와 경험이 농축되어 완성된 궁중회화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또한 궁중회화에 함께 한 안견, 정선, 김홍도와 같은 천재화가와 같은 땅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화가의 길을 걷는 나에게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눈물 나도록 고맙다.
무궁무진한 창작의 세계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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