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일본을 다녀왔다. 3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1년 4개월만에 북.일 정부간 공식 회담을 앞둔 시점이라 일본의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이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입장에 관심이 많았다. 반대로 필자는 북일회담에 대한 일본측의 입장과 북일관계에 대해 일부 국내언론이 보도한 내용의 진위여부가 궁금했다.

‘평화’와 ‘자주권’

특히 일본의 기자들은 북일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연속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배경에 많은 질문을 던졌다. 북한이 대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미사일은 왜 발사하느냐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2년 4월 15일에 한 첫 공개연설에 그 해답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에 있어서 평화는 더없이 귀중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이 더 귀중합니다.”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첫 공개연설에서 ‘평화’와 ‘자주권’이란 단어를 통해 대외정책의 기본방향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즉 한반도에서 냉전체제의 완전한 해체와 경제건설을 위한 환경 조성 차원에서 한국, 미국, 일본과 적극적인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 기본노선이지만 자주권을 훼손하는 대북 적대시정책에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북일회담은 ‘평화’로, 미사일 발사는 ‘자주권’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또한 2012년 이후 김정은시대 북한의 대외, 대남정책도 이 같은 틀에서 봐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최근 시사한 핵실험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미군이 2월 24일부터 시작한 ‘키 리졸브 연습’ 등 한미합동 군사연습에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미 공군 B-52 전략폭격기가 투입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2월 27일 스커드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3월에 5차례에 걸쳐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3월 26일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에 맞춰 노동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의장 명의로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규탄한다”는 내용의 ‘구두 언론 성명’을 발표하자, 북한은 3월 3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로켓 발사가 “미국의 더욱더 노골화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침략적인 핵전쟁 연습에 대처하기 위한 자위적인 군사훈련”이라며 “원수들이 칼을 내들면 장검을, 총을 내들면 대포로 맞서는 것이 우리의 대응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4월 위기설’의 허점

과거 북한의 외무성이 핵실험을 시사한 후에는 실제 핵실험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곧바로 ‘4월 위기설’이 불거졌다.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이에 대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될 경우 이에 맞대응해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너무 성급한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북한의 ‘무력시위’는 한미합동 군사연습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미연합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은 주한미군 7500명, 한국군 20만명이 동원되는 세계 최대의 전쟁연습으로, ‘북한군 격멸, 평양점령’을 상정한 ‘작전계획 5027’뿐 아니라, 도발 시 지휘부(후방)까지 타격한다는 ‘국지도발대비계획’, 핵사용 징후라 판단될 경우 핵무기를 포함한 선제타격을 가한다는 ‘맞춤형 억제전략’ 등이 추가 적용되어 갈수록 공격적인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연합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이 1993년 팀스피리트 훈련 이후 21년 만에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더구나 국방부는 올해 한미합동 군사연습을 앞두고 지난해와 달리 핵 항공모함과 B-2와 B-52 등 전략 무기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항공모함과 전략 무기 등이 동원됐고, 언론에도 공개됐다.

지난해보다 긴장 수위를 낮추기 위해 한미 합동 군사연습 기간에도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진행한 북한측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대응 강도 면에서 보면 아직까지는 지난해보다 낮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움직임은 포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북한이 먼저 레드라인을 제시해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이미 붉은 선(레드 라인)을 그어놨다. 미국은 이걸 넘어서는 안 된다. 넘을 경우 우리가 어떤 대응조처를 취할지 미국은 알고 있다.”

지난 4월 4일(현지시각) 리동일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미국이 새로운 방식으로 북한의 정권 교체를 노리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정권 교체를 하려는 어떤 시도도 금지선(레드라인)을 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3월 30일 발표된 북한 외무성 성명을 통해서도 북한은 “미국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더 이상의 긴장고조를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다.

미국은 지난해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이자 “복잡하고 불붙기 쉬운 (한반도) 상황”을 악화시키길 원하지 않는다면서 예정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 III의 시험발사를 연기하고, 한미 군사위원회 회의(MCM)도 연기하는 조처를 취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고 밝히자, 평양주재 외국공관에 전쟁 가능성을 이유로 철수권고를 내리며 발사 단추를 누르겠다던 북한도 미사일 발사를 중단했다.

지난해는 미국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올해는 북한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따라서 미국이 추가적인 군사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단기적으로 더 이상의 긴장 고조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레드 라인’ 언급과 핵 실험 경고는 실제 행동보다는 국면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면 전환의 신호들

4월 6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의 주요 간부들과 함께 인민군 해군과 항공 및 반항공군을 대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갈매기팀과 제비팀 사이의 남자축구 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국면 전환의 신호는 아닐까?

북한은 4월 9일 13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를 개최하고, 곧이어 북한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행사기간에 돌입한다. 내부적으로 긴장 완화의 필요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4월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전후에 북한이 무력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북한은 일단 무력시위보다는 6자회담 재개 쪽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레드 라인’을 언급한 것이다. 지난 3월 8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 우리는 오직 하나의 ‘레드라인’이 있는데 전쟁과 동란 발생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 정부의 한반도 문제 처리 방안에 대해 “언덕을 오르고, 구덩이를 건너서, 바른 길을 가야 한다”고 비유적으로 언급했다. ‘언덕’은 비핵화, ‘구덩이’는 북미 사이의 심각한 불신이며, ‘바른 길’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의미한다. 특히 그는 ‘바른 길’과 관련해 “대결은 긴장만을 불러오고 전쟁은 더 많은 재난을 일으키게 된다”며 “평등한 대화, 담판과 협상이 바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왕이 부장은 “회담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고, 늦은 회담보다는 빠른 회담이 더 낫다"라며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을 설명했다. 엄격한 회담 재개조건을 고집하고 있는 한.미.일에 대한 중국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미국이 언제까지 중국의 6자회담 재개요구에 소극적인 태도로 버틸지 자못 궁금하다. 올해 상반기에 6자회담 재개에 돌파구에 열리지 않을 경우 북한의 핵 능력 강화로 6자회담 자체가 완전히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이미 6자회담 대표 또는 차석대표 회담을 가졌다. 4월 7일부터 한.미.일은 워싱턴에서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를 연다. 그리고 4월 말 오바마 대통령이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거쳐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판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에만 초점을 맞출지,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정책에 지지를 표하며 6자회담 재개와 관련된 메시지를 가지고 올지 주목된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선언’의 운명은 북한의 ‘공개적인 비판’보다 북미대화와 6자회담 재개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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