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象徵’은 생체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어떤 가치를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현실적 사물에 투영한 것을 말한다.
상징은 사회적인 영역이다.
개인이 모여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는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상징은 개인들의 생각들이 모여서 오랜 세월동안 사회적 합의를 거쳐 형성되며, 반대로 사회적 상징은 개개인의 생각이나 생활을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상징은 그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철학의 총합이다.
특히 예술은 사회적 상징을 가장 많이 사용하여 창작을 하며 사회적 상징을 널리 퍼트리는 역할을 한다.
상징은 탁월한 개인이라도 쉽게 만들 수도 없고, 한번 만들어진 상징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특히 오랫동안 삶과 생활을 공유하면서 만들어진 민족의 상징은 유전자 속에 깊숙하게 자리잡아 세대를 이어 연결된다.
흔히 미국을 대표하는 상품을 ‘코카콜라와 청바지, 헐리우드 영화’라고 한다.
흔해빠진 요소이지만 코카콜라와 청바지, 헐리우드 영화 속에는 미국의 정치, 경제, 철학 따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물건들이 어떤 나라에 유행한다는 것은 미국식의 삶을 수용하고 있다는 말과 비슷하다.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꽃은 뭘까?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는 무궁화이다.
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것은 대한민국 건국 시기이고, 무궁화가 알려진 것은 일제 강점기이다.
그 전에도 무궁화가 있었겠지만 우리 전통그림에 등장하지 않는 걸로 보아 특별한 상징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민족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사랑받은 꽃은 ‘모란, 매화, 복사꽃’이다.
여기에서 모란꽃은 ‘생명의 만개(滿開), 부귀영화’라는 이중의 뜻이 담겨있다.
매화는 겨울바람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피는 생태적 특성으로 인해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지조와 절개의 대상을 임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조선의 왕은 하늘의 혈통을 가진 절대적 존재가 아니었다. 조선의 지배사상인 성리학을 정치적으로 구현하는 대표적 인물로 보았다. 결국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의 대상은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과 청렴’이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흔히 ‘염치(廉恥)가 없다’라고 한다.
모란이 백성의 꽃이라면 매화는 선비의 꽃이다.
이에 비해 복사꽃은 백성의 꽃도 선비의 꽃도 아니다.
복사꽃을 한자로 도화(桃花)라고 한다.
도화에 대해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이렇다.
‘복숭아꽃은 쌍떡잎 식물강 장미목 장미과 나무인 복사나무의 꽃이다. 복사나무는 크기 6m 정도이며, 꽃의 색깔은 연홍색이다. 개화 시기는 4~5월경이고 과실의 수확 시기는 7~9월이다. 잎보다 먼저 연홍색의 꽃이 1~2개씩 가지 끝 짧은 꽃줄기 끝에 달리는데. 꽃잎은 5개로 원형이고, 꽃받침 잎은 난형이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타원상 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에는 밀선이 있다.복숭아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과실의 맛이 좋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던 꽃이다. 대표적인 양목(陽木)으로 알려져 동쪽으로 난 가지가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으며, 꽃과 열매가 선경(仙境)과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의미하는 신선들의 과일로 상징된다. 한편 복숭아꽃 자체가 화려하므로 시세에 아첨하는 무리들로 표상된다. 이점은 사군자와 대조되는 문학적인 알레고리로 이해된다.[네이버 지식백과]’

필운대는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바위언덕을 말하는데 인왕산 중턱의 전망대를 의미한다. 선조때 재상을 지낸 이항복의 집터가 있던 곳이면서 현재는 배화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그림은 제목처럼 필운대에서 꽃놀이를 하는 선비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버드나무와 복사꽃이 만발한 서울풍경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자료사진 - 심규섭]
복사꽃에 대한 노래는 우리가 어릴 적 흔히 불렀던 [고향의 봄]에 담겨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동요가 창작될 시기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이고 일본이 창덕궁 마당에 벚꽃을 심을 시기이다. 울긋불긋한 복사꽃, 살구꽃으로 치장해 화려한 대궐 같은 고향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복사꽃은 진달래만큼이 흔한 꽃이었다.
복숭아나무가 많은 동네라는 뜻의 인왕산 아래의 ‘도원동’이나 경기도 부천의 ‘복사골’도 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 본 무릉도원과 똑같다며 무계정사를 지어 놀았던 부암동 계곡에도 복사꽃이 만발하였다고 한다.
또한 선비들이나 백성들은 복사꽃, 살구꽃 아래에서 꽃놀이를 즐겼다.
복사꽃에 대한 상징은 여러 가지이다.
‘벽사, 아름다운 여성, 소인배, 장수’ 따위로 좋고 나쁨이 함께 공존하여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이렇게 여러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특별한 상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길을 묻는데 손가락으로 사방을 가리키면 그냥 길을 모른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복사꽃에는 소소한 상징을 붙일 수 없었고, 글이나 이야기에 복사꽃과 연관한 상징을 넣었다고 해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복사꽃에는 이미 범접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상징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그림에 나타난 도화는 ‘무릉도원, 이상세계’의 상징이다.
안평대군의 이상세계가 담긴 [몽유도원도]에 도화가 나오고, 궁중을 장식했던 [십장생도]에도 도화가 나온다. 선비들이 모여 꽃놀이를 하는 그림에도 복사꽃이 등장한다.
한 나라가 추구하는 이상세계는 그 나라의 모든 가치가 총합되어 있다. 만약 [몽유도원도]에 복사꽃이 없다면 그냥 기이하고 이상한 세계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본다면 도화는 그야말로 조선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복사꽃 천지였다.
조선 후기의 문신 박문수(朴文秀)는 인왕산 일대의 봄 풍경을 보고 ‘희고 붉은 자두꽃, 복사꽃 만 가지에 가득 피었네’라고 했고, 유득공(柳得恭)의 시에도 ‘도화동 복사꽃 나무 1천 그루’라는 구절이 나온다.
조선시대 왕이나 선비들은 이 땅을 무릉도원, 이상세계라고 생각했고, 또한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수많은 복숭아나무를 심었고 복사꽃 아래에서 정치를 논하고 예술을 하며 음주가무를 즐겼다.
하지만 그 많던 복사꽃은 어디로 갔을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모여 있는 국회의사당 뒷길 윤중로(輪中路)에는 벚꽃나무가 1,500여 그루 심어져있다. 매년 봄이면 이 벚꽃을 보기 위한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윤중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벚꽃축제인 진해의 군항제가 있고 전국적으로 벚꽃길이 만들어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벚꽃 천지가 되었다.
벚꽃, 일본말로 ‘사꾸라’라고 한다.
일본의 나라꽃은 특별이 정해진 것이 없지만 일본과 전쟁을 치른 미국이나 우리나라는 ‘사꾸라’가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 일본에 의해 진주만 공격을 당한 미국은 벚꽃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했고, 우리나라도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벚꽃나무를 베어버리기도 했다.

이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은 중인계층의 시인들이 만든 ‘옥계’라는 모임의 회원들이다. 버드나무와 복사꽃이 핀 옥계동 산자락에서 꽃놀이 겸 시 모임을 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어떤 사람들은 벚꽃나무가 제주도 왕벚꽃나무에서 유래한 우리의 것이라 주장하며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벚꽃나무가 제주도의 왕벚꽃나무에서 유래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가치나 상징은 전혀 다르다.
우리 전통에서 벚꽃에 붙은 가치나 상징은 없다.
벚꽃나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우리나라에 심어졌다.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벚꽃축제를 이용한 것이다. 일본은 창경궁에 벚꽃나무를 심고 매년 3~4월 밤에 벚꽃축제를 열었다.
벚꽃은 일본인들이 아주 좋아한다. 일본에서의 벚꽃축제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벚꽃에는 일본과 일본인들의 가치와 정서가 녹아든 상징이 붙는다. 일본에서 벚꽃의 상징은 ‘아름다움, 순결, 지조’ 따위이다. 모두 좋은 의미이다.
하지만 벚꽃은 사무라이의 상징이기도 하고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며 카미가제 자살특공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모두 활짝 피었다 갑자기 우르르 떨어져 버리는 벚꽃의 생태적 특성을 삶과 죽음에 투영한 것이다. 이것은 죽음의 미학이지 삶과 생명의 미학은 아니다.

포동의 봄 연못이란 제목이 붙어있는 이 그림은 복사꽃 아래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면서 꽃놀이를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자료사진 - 심규섭]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아름다움, 순결, 지조’의 상징인 벚꽃이 아니라 ‘침략과 약탈과 전쟁과 죽음’이라는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사꾸라’이다.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시절 우리나라에 준 것 중에서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좋은 것은 모두 자기들이 차지하고 나쁘고 좋지 않은 물건이나 가치만 남겨놓았다.
일본은 제국주의의 상징인 벚꽃을 우리나라에 이식하고자 했다.
이것은 마치 ‘코카콜라, 청바지, 허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국식 삶을 이식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사물에 붙은 상징은 시공간을 확장한다.
복사꽃에 붙은 이상세계에 대한 상징은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연결되어 무한한 시간의 확장이 일어난다. 또한 이상세계에 대한 공감하는 사람들에 의해 복사꽃은 많은 곳에 심어지면서 공간이 넓어진다.
제국주의와 죽음의 상징의 시공간이 확장되는가 아니면 공동체와 생명의 상징이 확장되는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복사꽃에 담긴 이상세계, 조선이 꿈꾸던 이상세계는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부귀영화의 세계도 아니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장생의 세계도 아니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패권의 세계도 아니다.
약탈과 살육의 전쟁이나 패권의 전횡이 없고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생명력이 넘치는 세계이다.
이런 세계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으면서 최종적으로 구현해야 할 인류의 꿈이다.

이태백은 <산중문답>에서 다음과 같이 무릉도원을 노래하였다.
問余何意棲碧山(문여하의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무슨 생각으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묻지만빙그레 웃음으로 답하는 마음 스스로 한가롭네 복사꽃 흩날려 흐르는 물에 고요히 떠내려가니또 다른 별천지, 인간 세상이 아니로세.
생명의 기운이 물씬 피어오르는 봄날, 복사꽃 아래에 앉아 이상세계를 꿈꾸어 보는 일도 멋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