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네덜란드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남북통일’과 ‘북한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시 주석은 “남북 양측이 멀리 내다보고 인내심을 갖고 부단히 화해와 협력 프로세스를 추진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실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언명한 점입니다.

박 대통령의 이번 네덜란드 방문과 뒤이을 독일 방문이 ‘통일기행’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밝히고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장도 직접 맡겠다고 하는 둥 강한 ‘통일 드라이브’를 걸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을 만나는 김에 이를 의식해 ‘통일’ 관련 발언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최근 ‘통일’ 발언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국통일문제’는 북측의 변함없는 지상과제이기도 합니다. 시 주석의 ‘통일’ 관련 발언은 남북 모두를 의식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시 주석이 ‘자주적’과 ‘평화적’이란 표현을 사용한 점입니다. 사실 후자인 ‘평화적’이란 단어도 매우 중요하지만, 일단 남북의 통일을 얘기하는 사람이라면 ‘평화통일’이 기본 관점이기에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의미심장합니다.

흔히 ‘자주’란 단어는 북한의 전유물로 받아들여집니다. 북한은 ‘자주성’을 생명보다 더 중요시 여긴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자주성은 북측이 남측에 대해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거나 ‘식민지성’을 지적할 때 사용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닙니다. 남과 북의 모든 합의문에는 이 ‘자주’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 천명됐는데, 북측이 이를 ‘조국통일 3대원칙’이라고 강조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이 ‘자주’가 꼭 북측만을 위한 용어라고 선을 그을 필요는 없습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도 ‘자주적’이란 단어가 첫째 항에 들어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주’에 대해서는 남과 북이 늘 합의해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 주석의 ‘자주’라는 표현을 두고 북측을 의식한 것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시 주석이 ‘평화’를 포함해 ‘자주’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남북에 대한 현실인식이 정확하다는 점이 오싹할 정도입니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을 만나 일방적으로 남측을 치켜세우거나 북측을 깎아내리지 않는 등 수준 높은 인식을 통해 양쪽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지도자는 언어를 잘 구사하고 또 표현을 정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시 주석을 만나 “북한의 핵개발과 경제건설의 병진정책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전략적 병진노선에 대한 습관적인 폄하입니다. 수차 지적해 왔듯이 이 같은 표현이나 대북인식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북측이 채택한 국가발전전략으로서 병진노선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북측의 노선을 중국에게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볼썽사납습니다. 박 대통령이 민족문제에 편향을 노출하고 오히려 시 주석이 남북관계에 배려를 한 기이한 정상회담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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