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이 무릉도원에 관한 꿈 이야기를 조선 최고의 화가 중에 한명인 안견에게 그리게 하여 탄생한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이다.

[몽유도원도]의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안평대군의 꿈과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감나는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림은 소설이나 이야기와는 다르게 추상적인 가치를 쉬우면서도 구체성을 가진 대상으로 만든다. ‘보면 안다’라는 말이 있다. ‘백 마디 말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라는 말도 있다. 가상의 이상세계가 눈에 보인다는 것은 강력한 믿음과 설득력을 가진다. 바로 이러한 믿음과 설득력을 미술의 주술적 기능이라고 한다.

그래서 [몽유도원도]는 상당히 정치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림의 주인인 안평대군은 자신이 원하든 아니든 간에 정치적 중심에 있었고 그 격랑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정치인은 정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세계에 대한 나름의 철학과 더불어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정치적 이상세계를 담은 그림이다.
무릉도원에 사는 백성들의 삶은 전쟁과 약탈, 죽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화목하고 평화롭다.
꿈의 주인공은 안평대군이고 동행하는 사람은 신숙주, 박팽년, 최항 같은 정치적 동지들이다.
주자성리학이라고 하는 지배이념은 수양대군과 같았겠지만 정치적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실천방도는 달랐을 것이다.

경복궁(景福宮)을 ‘백성들을 위한 크고 좋은 가치를 만드는 곳’으로 해석하듯, 궁궐은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조선의 정치가 총체적으로 녹아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궁궐을 장식했던 숱한 그림에는 이상세계를 향한 의지와 염원이 다양한 형상으로 담겨있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그림이자 조선 궁궐의 곳곳을 장식했던 그림은 [십장생도]이다.
[십장생도]는 조선의 이상세계를 담고 있는 그림이다.

그렇다면 안평대군의 이상세계를 그린 [몽유도원도]와 [십장생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몽유도원도]는 1447년에 안견이 그렸다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십장생도]는 국가미술기관인 도화서 화원들이 조직적으로 창작한 그림이다. 그래서 창작자의 이름도 없고 연도도 불분명하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십장생도]는 대부분 18세기 전후로 그려진 것이다. 그 이전에도 많은 장생도가 그려졌겠지만 기록이 없고 남아있는 그림도 없다.

궁중회화는 엄격한 형식과 양식의 전통을 지킨다. 궁중회화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이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궁중회화는 시대의 요청에 따른 변화를 미묘하게 수용한다.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도 장생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 고려가 불교를 지배이념으로 삼았다면 당연히 장생도에도 불교적인 가치가 녹아들었을 것이다.
주자성리학을 지배이념은 삼은 조선도 초기에는 불교와 도교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낼 수 없었다.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백성들의 삶속에 깊이 녹아있는 불교를 단번에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선비들도 유학적 이상세계를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의 왕과 선비들에게 유학적 이상세계를 보여준 최초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몽유도원도]는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중국의 무릉도원에 관한 그림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화폭도 크고 구현된 화면구성은 웅장하면서도 격조가 높다.
중국의 주자성리학을 수용하여 조선에 맞는 형식으로 발전시켰듯이, 중국의 무릉도원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선 특유의 이상세계를 그림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인 자부심과 독자성의 발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몽유도원도]의 이상세계는 [십장생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몽유도원도]를 그릴 당시 안견은 궁중화원이었다.
종이가 아니라 비단에 담채로 그릴 수 있었던 것도, 3일 이라는 짧은 시간에 웅장하면서도 치밀한 화면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도 궁중화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안견이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화가이기도 했지만 도화서의 조직적인 뒷받침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안견이 도화서 화원이라는 것은 [몽유도원도]와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그려진 [십장생도]와의 관계를 끈끈하게 맺어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조선시대 내내 선비들에 의해 추앙받았던 안평대군이 직접 관여한 점을 고려한다면 설득력이 있다.

[몽유도원도]은 임진왜란을 전후에 유실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 많은 도화서 화원들이나 사습생도에 의해 모사되고 응용되어 그려졌을 것이다. 좋은 그림을 베껴 그리거나 흉내 내어 그리는 것은 자연스런 전통이면서 동시에 창조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몽유도원도]와 [십장생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자.
첫째, 도화서 화원이라는 공통점과 수묵 담채와 진채의 차이가 있다.
도화서 화원은 당대 최고의 화가들로 이루어져있다. 이들은 수묵화나 진채화를 모두 잘 그렸다. 특히 조선 초기는 선비들이 선호하는 수묵화가 주류를 이루었을 것이다.

안견이 채색화를 다룰 수 있는 도화서 화원이기는 하나 개인적인 자격으로 [몽유도원도]를 그렸다. 3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렸다는 것은 애당초 진채방식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10폭 병풍 장생도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화원 2~3명, 사습생도 2~3명 정도가 함께 최소 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수묵으로 그리고 담백하게 색깔을 입히는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구성을 보면 아무리 천재적인 화가라 하더라도 구현하기 어려울 만큼 웅장하고 치밀하다. 도화서에 축적된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동료 화원들의 조형적 협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둘째, 기암괴석을 중심으로 화면이 구성되어 있다.
한반도는 지형적 특성상 괴암괴석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상세계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아야 하며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현실에는 보기 힘든 기암괴석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이다. 둘 다 여러 시점이 결합한 확대원근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몽유도원도]가 먼 거리에서 본 풍경에 비해 [십장생도]는 조금 가깝다.

▲ 위-몽유도원도/안견/1447년/비단에 담채/일본 덴리대학교.
아래 3점-십장생도.
장생도와 몽유도원도는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그림에는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세계, 강이나 냇물이 흐르고 복숭아나무가 있으며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이상세계의 관문으로 설정된 동굴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둥근 테두리 안의 모습이 동굴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셋째,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에서는 안평대군 자신과 신숙주, 박팽년 따위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정작 그림에서는 한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십장생도]에도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슴, 학, 거북이와 같은 동물이 등장하지만 장생도에 나오는 동물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사람의 의인화가 아니란 말이다.

이상세계를 표현하는 그림에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사람이 등장하면 그 사람의 이름과 위상이 정해져 버린다. 그림 속의 사람은 신격화되고 우상화된다.
결국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특정한 인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몽유도원도]에 안평대군의 모습이나 사람이 그려졌다면 탁월한 조형적 기량에도 졸작이 되었거나 위험한 그림으로 판정받아 폐기되었을 것이다.
이상세계는 탁월한 개인에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치적 세력에 의해 총합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넷째, 동굴의 표현이다.
무릉도원 이야기에는 어부가 동굴을 통해 이상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이 서술되어 있다. [몽유도원도]에는 기암괴석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동굴 속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몽유도원도]의 중앙 하단 부분에 도원으로 들어가는 동굴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십장생도]에도 거의 빠짐없이 동굴이 그려져 있다. 조형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동굴은 있으나 마나한 요소이다.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동굴이 표현되어 있는 것은 무릉도원의 이야기가 의도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동굴의 표현은 이상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의 상징이다.
[몽유도원도]에서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가 함께 그려져 있고 동굴이 이 두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십장생도]의 동굴의 조금 애매하다. 들어가는 문인지 아니면 나오는 문인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십장생도]의 세계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를 함께 그린 것이 아니라 이상세계만 표현하고 있다. 결국 동굴을 통해 들어온 이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도화와 복숭아 열매의 표현이다.
무릉도원은 복사꽃이 만발한 세계로 상징된다. 복사꽃이 어떤 연유로 이상세계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몽유도원도]에는 동굴을 지나면 복사꽃이 만발한 세계가 펼쳐진다. 먼 거리 풍경이라 꽃잎이나 이파리, 열매를 꼼꼼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공력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제목처럼 복사꽃은 그림의 핵심 주제이다.

[십장생도]에서는 복숭아나무와 열매가 표현되어 있다.
복숭아나무, 꽃, 이파리, 열매가 모두 그려져 있지만 특히 복숭아 열매에 방점을 두고 있다.
[십장생도]에서 복숭아나무는 핵심 요소가 아니다. 소나무가 복숭아나무보다 우선한다. 그래서 십장생도를 압축한 [일월오봉도]에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십장생도]에 복숭아나무가 들어간 것은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의미와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도교적 상징이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장생도의 변주그림에는 소나무 대신 복숭아나무가 중심으로 표현된 그림도 있다. 다시 말해, 복숭아나무만으로도 이상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철학은 인간 스스로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기 위함이다.
인간과 자연이라는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으면 이상세계의 논리와 합리성은 성립되지 않는다.
[십장생도]는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를 담고 있는 철학적인 그림이다.
[몽유도원도]가 기암괴석과 복사꽃 풍경을 중심으로 태평성대라는 이상세계를 표현한 그림이라면 [십장생도]는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고 모든 생명이 풍요로운 이상세계의 표현이다.
[몽유도원도]는 [십장생도]의 또 다른 이름이고, [몽유도원도]를 품은 [십장생도]는 더욱 풍요로워졌다.
궁중회화는 조선 500년의 역사와 전통이 압축되어 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궁중회화가 고작 오래 살기를 바라는 그림이라고 주장하면 세계인들의 비웃음만 살 것이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일본제국주의가 심어놓은 노예근성에 충실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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