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안견/견본담채/106.5*38.7/1447년/일본 덴리대학교. [자료사진 - 심규섭]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 이용(李瑢)이 간밤에 꾼 꿈을 조선 초기 최고의 화가인 안견이 그린 것이다. 안평대군이 만 29세가 되던 1447년 때의 일이다. 이 그림은 제작 연유와 연도와 화가 이름이 정확이 기록되어 있다.
이 그림의 내용은 제목을 그대로 풀면 ‘꿈속에서 복숭아밭을 노닐다’가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은 크게 ‘몽유’와 ‘도원’이라는 두 단어로 분리하고 그 안에 담긴 정치사상적인 뜻을 알아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몽유(夢遊)’인데, 단순히 ‘꿈속에서 노닐다’로 해석하기 보다는 ‘간절히 원한다’로 보는 게 맞다. 또한 ‘도원(桃園)’은 단순한 복숭아밭이 아니라 ‘무릉도원’을 뜻한다.
무릉도원이란 이상세계의 다른 말이다.

무릉도원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온다.
간단히 정리하면,
‘4세기 무렵, 중국 후난성(湖南省)의 무릉(武陵)이라는 지역에 사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계곡 깊숙이 들어가다가 길을 잃었다. 봉숭아나무가 지천인 계곡을 따라 가다보니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좁은 동굴 안에 들어가니 넓은 대지가 나타났다. 넓은 대지는 평탄했고 손질이 잘 되어 있는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도 있었다. 잘 닦인 길과 커다란 집들이 있었고 그 집들의 뜰 안에서는 개나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나 머리를 땋은 아이들도 한가롭고 즐거운 모습이었다.마을 사람들에게 후한 대접을 받으면서 여기에 살게 된 경위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진(秦)나라 때 전란을 피해서 가족과 친지들을 이끌고 이 산속으로 피난을 왔다. 그 후로는 마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과는 인연이 끊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마을 사람들은 한(漢)이라는 시대도 몰랐다. 그러니 위(魏)나 진(晋)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략 500년 동안이나 바깥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다시 마을을 찾으려고 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 몽유도원도에서 복사꽃이 피어있는 동네의 모습이다. 동굴을 암시하듯 주변에는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위에서는 암벽들이 흘러 내리 듯이 표현되어 있다. 이상세계를 표현할 때 복숭아나무를 넣는 것은 오랜 전통으로 보인다. 도교의 영향인지 아니면 도화원기의 전설 때문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 둘의 상호작용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자료사진 - 심규섭]
이 무릉도원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일본,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추구해야 할 이상세계로 자리 잡았다.
유학의 이론적인 세계는 복잡하다. 또한 정치와 경제, 도교 따위의 내용과 결합하면서 더욱 어려워진다. 주자성리학이라고 하는 인문학을 건국의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추구해야할 이상적인 세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몽유도원도]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이상세계를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학문에 뛰어났던 안평대군은 도연명의 무릉도원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현실에서 읽은 무릉도원 이야기에다 몇 가지를 보태 꿈을 꾼 것이다.
안평대군이 꿈을 꾼 후에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에게 이 내용을 그리게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꿈은 잠에서 깨면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림으로 그려 놓으면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다. 꿈을 오랫동안 되새김질하면 현실로 바뀐다. 안평대군은 꿈을 핑계로 조선이 추구해야 할 이상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초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정치사상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부암동 계곡을 찾은 안평대군은 주변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주변 풍경이 꿈속에서 본 세계와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국화가 물에 떠 흐르는 것을 보고, 넝쿨과 바위를 헤쳐서 이곳에 이르렀다. 꿈에서 본 바와 맞추어보니 삐뚤삐뚤한 풀숲의 모습과 그윽한 물과 언덕의 자태가 거의 비슷했다.”

안평대군은 여기에 ‘무계정사(武溪精舍)’라는 집을 짓고 사람들과 아울려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면서 놀았다고 한다.

▲ 정선/필운대 상춘/비단에 담채/1740-50년/개인 소장.
선비들이 인왕산 필운대에 올라 꽃놀이를 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 아래로 보이는 도성에는 온통 복사꽃이 만발하다. 요즘에는 복숭아꽃 대신 벚꽃을 보면서 꽃놀이를 한다.
인왕산은 봉숭아꽃으로 유명하다. 유득공의 시에는 ‘인왕산 복숭아나무 1천 그루’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무계정사가 있었던 부암동 계곡도 인왕산 기슭에 있다. 도화동이란 이름을 가진 동네도 인왕산 근처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실제 [몽유도원도]에서 보이는 풍경과 부암동 계곡은 많이 다르다. 기암괴석이 즐비한 동굴세계를 표현한 무릉도원과 도성 안의 작은 계곡이 비슷할 리는 만무하다.
안평대군은 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야기와 부암동 계곡의 풍경을 억지로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국화가 물에 떠 흐르는 것을 보고”라는 구절은 도화원기의 “봉숭아꽃이 만발한 계곡을 따라”와 연결시켰다.
“넝쿨과 바위를 헤쳐서 이곳에 이르렀다”는 도화원기의 “계곡이 맞닿는 곳에 작은 산이 나타났다. 계곡 물이 솟아 나오는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그 동굴은 아주 좁아서 한사람도 지나가기 어려웠다”와 비슷하다.
또한 “삐뚤삐뚤한 풀숲의 모습과 그윽한 물과 언덕의 자태”는 도화원기의 “넓은 대지는 평탄했고 손질이 잘 되어 있는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도 있었다”와 맞춘다.
공통점이 있다면 부암동 계곡이 있는 인왕산에는 복숭아나무가 많았다는 것이다.

안평대군이 무리하게 부암동 계곡과 무릉도원을 연결시키고자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릉도원은 그야말로 중국의 전설일 뿐이고 조선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조선이 꿈꾸는 이상세계가 중국의 알지 못하는 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독립된 나라의 왕자나 지식인이 할 소리는 아닌 것이다.
태종과 세종 시기를 거치면서 나라의 기틀이 완성되었고 정권도 안정기에 들어섰다. 이에 따른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고 중국과는 또 다른 조선만의 이상세계가 필요했다.
주자성리학이 동아시아의 공통된 가치라 하더라도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을 통해 추구해야 할 이상세계를 눈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부암동 계곡에 무계정사를 짓고 이 땅에 이상세계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안평대군의 생각은 정선의 금강산 그림에서도 나타나고 궁중회화에도 투영되어 있다.
궁중회화의 핵심인 십장생도에는 조선이 추구했던 이상세계가 정형화되어 표현되어 있다.

선비들이 꿈꾸던 이상세계는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
선비들이 추구했던 이상세계를 정리하면 ‘홍익인간, 재세이화’이다.
‘홍익인간’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고 해석하지만 주체가 빠져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주체는 하늘이나 귀신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고, 그 인간이 바로 왕이나 선비이다. 또한 ‘재세이화’는 ‘현실의 세계에 이상세계를 구현한다’는 의미이다.
죽어서야 갈 수 있다는 천국이나 극락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이 땅에 태평성대라는 이상세계를 구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현실에 구현하고자 했던 이상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한마디로 ‘태평성대’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도화원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도화원기에 나오는 동굴 안의 세상은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화려한 집이나 절세미인들의 사는 곳이 아니다. 또한 그곳에는 하늘을 날거나 바다를 걷거나 도술을 부리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은 소박한 집에서 농사를 지어서 생활한다. 동굴 안의 세계가 넓다고 하나 외부와의 교류가 없는 고립된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협력을 통한 생산력의 극대화가 필요하고, 동시에 아껴 쓰고 나눠 쓰는 청빈한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
도원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왔다고 한다. 전쟁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약탈, 강간 따위에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는 말이다.
결국 태평성대란 전쟁의 고통이 없고, 공동체에 기초한 협력과 청빈한 삶을 영위하는 현실을 말한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고 뭍 생명들이 존중받으며 공생 협력하는 세상은 우리그림에서 추구하는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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