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세상 노래하자 곱게 비꼈나 백두에서 한라까지 통일 무지개~"

남북 이산가족 상봉 2차 행사가 열린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 취재단 일원으로 다녀왔다. 상봉행사가 열린 금강산 외금강호텔, 이산가족면회소, 금강산호텔을 다니면 귀가 멍할 정도로 들리는 노래가 있다. 바로 '통일 무지개'와 '반갑습니다'이다.

상봉단이나 취재단이나 너나 할 것없이 들리는 북한 노래는 귀 울림을 넘어 머릿속을 멍하게 만든다. 여기저기서 60여 년 만에 만난 남북 가족들의 오열과 통곡소리는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 살배기였던 남측의 딸은 주름진 얼굴로 북측의 아버지를 만나고, 한집안의 기둥이었던 북측의 큰 오빠는 64년만에 만난 세 여동생들에게 집안에 관해 하나라도 더 이야기해주는, 죽은 줄 알았던 남측의 누나를 보고 놀란 북측의 남동생은 연신 눈물을 흘리던,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오는 눈물을 눌러가며 취재해야 하는 기자 직업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6차례 2시간씩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가족들은 한 시라도 서로의 모습을 놓칠세라 눈을 떼지 않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는 오빠를 한 번 더 보겠다며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나가 유리창 앞에서 오열하던 여동생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도대체 사전에는 어떤 의미로 적혀있을지 모르는 '작별상봉'이라는 단어를 뭐라 풀이해야 할까. 버스에 올라탄 북측의 가족들 앞으로 달려나가 차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이들의 심정을 뭐라 기사로 풀어야 할지 직업적 난감함은 분단의 현실과 직면했다.

이산가족 사연 취재보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북측 관계자들과 기자들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나 취재수첩을 써내려가는 모습에서 '명색이 기자'라는 직업적 현실을 찾게 됐다.

만찬장에서 나오는 리충복 북측 2차 방문단 단장이 승용차에 올라타려는 찰나에 달려들어 짤막한 질의응답을 하고, 화장실에 있다 마주친 박용일 북측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실행위원과 기 싸움을 하는 등 이산의 눈물에 앞서 취재의 즐거움은 배가 됐다.

오랜만에 만난 파란색 '보도' 완장의 남측 기자들과 녹색 '기자' 완장을 찬 북측 기자들은 서로 취재력이 얼마나 좋은지 경쟁하고, 금강산호텔 12층 라운지에서 점심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상호 비방중상' 책임자들의 모습이 아닌 '통일'을 써내려가는 기자들의 모습이었다.

남측 기자가 북측 기자에게 남측 언론통제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자 "이해한다"며 "남쪽 언론도 되도록 민족을 위한 언론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남 언론인들이 모이는 자리가 빨리 만들어져야 해. 서로 이해하고 그런 자리가 만들어져야지"라는 말이 얼마나 고마운가.

눈 덮인 '개골산' 금강산의 비경을 무대로 펼쳐진 2박 3일의 이산가족 상봉 2차 행사가 마무리되는 25일 오전. 이산가족들의 눈물과 함께, 남북 언론인들도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진하게 악수를 하고, 떠나가는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던 북측 기자의 모습은 마식령스키장 홍보에 열을 올리던 눈빛도 아니었고, 1차 행사에서 남측 언론을 '하로동선'이라고 비하하던 얼굴도 아니었다.

이산가족들의 울음이 그치자 북한 노래도 그쳤다. 버스는 야속하게도 설경의 금강산을 나와 초미세먼지로 뿌연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산가족들의 눈물은 여전히 마음에 남았고,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북한노래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남북의 큰 관심사였던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끝나고, 남북은 또 다른 만남, 또 다른 교류를 모색하는 모양이다. 먹구름이 머금은 비가 한바탕 내리면 햇살이 무지개를 만들어 내 듯, 이제 이산의 눈물은 '통일 무지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작별의 순간 외치던 어느 한 가족의 말을 전한다. "건강하시라. 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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