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하는데 군사훈련’ 불만

설 계기 이산가족 2차 상봉이 한창인 24일, 북측 안내원과 기자 등 관계자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유연한 태도로 남측 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북측 관계자들의 주요 화제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미합동 군사훈련이었다. 2차 상봉 이틀째인 24일 오찬시간, 금강산호텔 12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남북 인사들이 함께 반주를 곁들여 점심을 나눴다.

북측에서 가장 먼저 화제로 올린 것은 역시 한미합동 키리졸브.독수리 연습이었다. 대부분의 북측 인사들은 “오늘부터 한미 군사훈련이 시작된다”며 “흩어진 가족들이 만나는 와중에 미국이 끼어든 훈련이 진행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특히 군사연습의 정확한 규모에 대해 거듭 질문하면서 “흩어진 가족들이 만나는 데 미국을 끌어들여서 되느냐”고 미국이 개입한 훈련에 대해 불만을 계속 표출했다.

‘핵문제를 남북 간에 해결할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과거 1950년대 조선반도에 핵문제를 끌어들인 것은 미국이다. 지금의 핵폭탄은 민족이 모두 말살되는 규모가 된다”며 “올해 한미군사훈련이 규모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전체 참여인원은 더 늘어난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북측의 어떤 관계자는 한.미가 같이 하고 미국 주도로 하는 것이니까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라고 공감하는 반면, 다른 관계자는 최고 통수권자가 그것 하나 못 미루냐며 비판하기도 했다.

“3년 넘게 싸웠는데 갑자기 만나서 뽀뽀할 수 있갔어?

북측 단장 자격으로 만찬사를 한 리충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는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중대제안을 내놓았으며 그를 실현하기 위한 첫 출발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마련하였다”며 “오늘의 상봉을 시작으로 북과 남은 마음을 합치고 뜻을 모아 대결과 분렬의 골을 메우고 통일의 봄을 앞당겨 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전망을 묻는 남측 기자의 질문에도 “더 논의해봐야죠”라면서도 “지금 분위기가 좋으니까”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북측의 한 안내원은 “좋은 계절은 봄을 얘기하는 건데, 남측 신문 보니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것 같더라”며 “날씨 좋은 날 하면 금강산도 구경하고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남측의 일방적 일정 추진에 불만을 비치기도 했다.

북측 인사들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측의 의지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남북관계의 첫 단추가 이산가족 상봉인데 그렇다면 그 이후는 무엇이냐”며 추후 우리 정부의 조치에 관심을 보였다.

북측의 한 베테랑 안내원은 천해성 통일부 정책실장이 국가안전보장회의 안보전략비서관에 발탁됐다가 낙마한 사건에 관심을 표시하며 “기래도(그래도) 천해성 대변인이 상으로 보면 안정감이 있고 어디다 강약을 줘서 말해야 하는지 아는 대변인이었다”며 “비서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을 왜 그렇게 했냐”고 물었다.

또한 기자들의 설명을 들은 뒤 “완전 짤린 건 아니고만, 다행이야”라며 “그래도 안보실에 통일부 사람이 좀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남북관계에서 ‘군부 입김’을 걱정하는 기자의 발언에 “기런 건 신경쓰지 말라우”라며 “이번에 우리 군부가 다 보장해 줘서 행사 잘 치르는 거 아니갔어”라고 답하고 “국정원 너무 눈치 볼 것 없다”며 “괜찮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중대제안을 앞으로 계속 밀고 나가는 거냐’고 묻자 단호한 표정으로 “아 기럼, 그거이 특명이야 특명”이라고 강조하고 “그렇다고 우리가 북남관계 잘 해보려고 빌고 그러겠다는 건 아냐”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3년 넘게 계속 싸우고 그랬는데 갑자기 만나서 뽀뽀할 수 있갔어? 일단 손부터 좀 잡고 뭐 시간이 걸리갔지”라며 “그래도 박 대통령은 제 머리를 한번은 굴리는 분이라고 얘기 들었다”고 남북관계 개선에 기대감을 표했다.

단골 레퍼토리 ‘중대제안과 비방중상’

남측 기자들을 만난 북측 관계자들은 북한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중대제안, 그중에서도 상호 비상.중상 중지 문제를 단골 메뉴로 꺼내들었다.

북측 한 안내원은 “우리는 비방중상을 중단하라는 우리 중대제안을 내놨는데도 남측 언론들은 통제가 안 된다는 핑계만 댄다”며 “이렇게 좋은 행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데 또 뾰족한 기사가 나올 거 아니냐”고 선수를 쳤다.

또한 “이번에 1차에서도 그렇고 젊은 기자들이 많았다. 열의가 어찌나 높은지 서로 경쟁적으로 하더라. 한 가지라도 더 찍으려고 하더라”며 남측 기자들의 취재 열기를 평가하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남북합의서에 비방중상 중단이 들어간 게 처음이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기도했다. 북측 관계자들은 대체로 남북관계 개선이 중요한데 그 최전선에 가장 중요한 게 언론이라며 그러한 방향으로 잘 써주라는 당부를 많이 했다.

남측 S 기자가 북측 출입경사무소에서 노트북에 북한인권 관련 내용이 담긴 파일이 발견돼 쫓겨났다 되돌아 온 사건에 대해서도 “좋은 행사에 기자가 못된 짓 하려고 하면 되갔어?”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 질문에 북측의 다른 보장성원은 “이번 고위급 접촉 합의문 내용을 알고 있느냐... 특히 비방중상 금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하고 “그런데 남에서는 언론 통제 못한다고 하는데 그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측은 파일을 삭제하고 구두 유감 표명을 하는 선에서 당일 밤 S 기자를 다시 받아들이기로 합의하는 등 유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마식령 스키장 주로는 10개나 된다”

북측 관계자들은 이번 겨울에 개장한 ‘마식령 스키장’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했다.

북측 한 안내원은 “대학생, 중학생들이 다 지금 스키 타고 있다. 처음 타는 이들도 잘 탄다. 마식령 스키장의 주로가 몇 개인지 아느냐, 10개나 된다”고 자랑하고 “거기는 4월, 5월까지는 계속 눈이 온다. 그리고 여름에는 풀밭스키를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스키를 즐긴다는 북측 한 안내요원은 “1월에 마식령 스키장을 가보려 했는데 이번 행사 때문에 가보질 못했다”며 “행사가 끝나면 스키장부터 가려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차기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 알팬시아 경기장 공사가 끝났느냐”, “남측에는 스키장이 17개 정도 되지 않나” 등 남측의 동계올림픽 준비 상황에까지 관심을 나타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이미 대사관 외국인들은 죄다 불러서 초청해서 보여줬다”고 확인했다.

한편, 북측의 세대교체 분위기도 일부 감지 됐다. 북측 한 기자는 “어디든 세대교체를 한다”며 자신이 소속한 언론사에 대해서도 “주로 3,40대가 많다. 요즘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잘 안쳐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경덕 평양시당 비서가 안 보인다’는 질문처럼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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