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조선노동당이 창당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북조선노동당과 남조선노동당이 합당해 조선노동당의 이름으로 공식 창당된 것은 1949년 6월이지만 북한은 1945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서북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10~13일)를 당 창건일로 삼고 있다. 북한은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내년 10월 35년 만에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를 열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당 규약에 따르면 통상 4년마다 당의 최고기관인 당대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국내외 정세에 따라 당대회를 불규칙적으로 개최해왔다. 그러나 30년이 넘도록 당대회를 열지 않은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2015년 10월 7차 당대회 개최 예정

▲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 중요한 정책 기조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1980년 10월 개최된 제6차 노동당대회 모습. 김일성 주석(앞줄 왼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노동당 비서)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북한은 6차 당대회 이후 당대회를 개최한 적이 없다. [자료사진 - 민족21]

김일성 주석은 1983년에 “1985년까지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10대 전망 목표 가운데 중요한 고지들을 기본적으로 점령하고 1986년에 우리 당 제7차대회를 열려고 합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북한은 1980년대 중반 제2차 7개년계획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2년 간 조정기(1985~1986)를 거쳤고, 제3차 7개년계획(1987~1993)도 목표치에 미달했다. 더구나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에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으며 ‘고난의 행군’, ‘사회주의 강행군’ 길을 걸어야만 했다. 당 대회를 열 경제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던 셈이다.

1999년 북한은 10여 년 만에 경제가 플러스성장으로 돌아서고, 새로운 경제계획을 제시할 필요가 생기고 국제환경이 호전되자 2010년 10월 당 창건 55주년을 맞아 당대회 개최를 고려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개최, 북미대화 급진전 등으로 당대회 개최는 또 미뤄졌고, 2002년 제2차 북핵위기가 조성되면서 더욱 어려워졌다. 당 창건 50주년인 2005년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당 총비서 추대 10주년인 2007년 당대회에 개최될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그후 북한이 ‘강성대국의 대문의 여는 해’라고 선포한 2012년에 당대회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됐지만,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무산됐다. 북한은 후계자의 공식 등장과 추대 행사도 당대회가 아닌 임시 당대회에 해당하는 당대표자회로 대신했다. 당대표자회에서도 당규약 개정과 인사개편을 할 수 있지만 통상 당대회 보다는 규모가 작고, 비중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1980년 이후 당대회가 준비하고 무산되는 과정을 보면 북한은 경제문제와 안보문제가 풀려야 당대회를 열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최근에는 통일문제까지 새로운 조건으로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께서 조국통일과 관련한 역사적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을 남기신 20돌이 되는 해”라며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을 받들어 올해의 조국통일운동에서 새로운 전진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당대회 개최를 위한 국내외 조건은 모두 김일성 주석의 유훈(遺訓)과 직접 관련이 있다. 유훈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 생전에 남긴 훈계나 교훈을 말한다. 북한은 선대 지도자가 남긴 유훈을 철저하게 관철하는 것을 후계자나 계승자의 최고 덕목으로 선전하고 있다. 북한에서 유훈의 중요성은 북한 전역에 세워진 ‘영생탑’을 통해서도 손쉽게 확인된다.

평양국제공항에서 시내 중심부로 오다보면 100m에 달하는 거대한 탑을 만나게 된다. 김일성 주석 서거 3주기를 맞아 건립한 ‘영생탑’이다. 이 탑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란 글이 새겨져 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서거 이후 전국의 도.시.군.리 소재지들과 주요 공장.기업소.학교 등에 영생탑을 세웠다.

실제로 평양을 방문하면 “김일성 주석은 오늘도 우리 인민과 함께 계신다”란 북한의 선전을 실감하게 된다. 1998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가주석직을 폐지하면서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했을 정도다. 그만큼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여전히 모든 정책의 방향을 정하고 정당성을 획득하는 지표로 작용한다.

인민생활 개선이 첫 번째 유훈

▲ 김일성 주석의 대표적 유훈으로는 인민생활 향상이 포함돼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한 2010년 9월 28일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기념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제1위원장(당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그렇다면 북한이 강조하는 김일성 주석의 대표적 유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는 부강조국 건설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서거 이틀 전에 마지막으로 지도한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도 경제문제와 인민생활문제에 대하여 간곡한 교시를 주었다며 경제 건설을 유훈으로 강조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1994년 10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에서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생활을 높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민 모두가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 수령님의 평생의 소원”이었다며 인민생활분야에서 만족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둘째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이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핵폐기를 요구할 때마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대답을 내놓고 있다. 2010년 1월 북한은 평화협정을 제안하면서도 “비핵화에 관한 전략적 결단이 없이 평화협정 회담을 제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총부리를 내리고 역전되지 않는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은 ‘유훈’ 관철의 맥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북한은 최근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라며 “조건 없는 조속한 6자회담 재개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1월 16일 국방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중대제안’에서도 북한은 “조선반도비핵화는 민족공동의 목표”라며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변함 없는 의지”라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셋째는 조국통일 3대헌장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기 하루 전인 1994년 7월 7일 남북관계 및 통일과 관련한 문건에 서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이 문건에 대해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중대문건’이라는 정도로만 밝혔다. 남과 북은 1994년 6월 예비접촉을 갖고 그해 7월 25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했으나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7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란 글에서 김 주석이 통일방안으로 발표했던 ‘조국통일 3대원칙’(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히 관철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여기서 언급된 ‘조국통일 3대헌장’이 김 주석의 유훈인 셈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북한의 당과 정부의 간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유훈을 최단기간에 관철할 결심을 내리시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유훈’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전면적 이행을 의미한다. 북한 <조선중앙TV>도 첫 남북고위급접촉 합의를 보도하면서 “쌍방은 북남 관계를 개선해 민족적 단합과 평화번영, 자주통일의 새 전기를 열어나갈 의지를 확인”했다며 10.4선언의 합의문구를 인용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2007년 ‘10.4선언’에서 합의한 사안들을 변화된 상황에 맞게 이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해 우리 정치권에서 벌어진 NLL논쟁으로 ‘10.4선언’에서 합의된 서해특구 구상은 단기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3대 유훈 외에도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기했으나 이루지 못한 개별사업들도 유훈으로 거론된다. 북한은 지난해 6월 김정은 제1위원장이 현지지도한 보성버섯공장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기로 건설을 시작한 ‘유훈 사업’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부대에 건설임무를 맡겨 완공했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는 달성해야 할 목표로 유훈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구체적으로 성과를 낸 후 이를 유훈 관철로 선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7차 당대회는 유일영도체계 확립을 선포하는 행사

일본의 한 교수는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2015년까지 인민생활 개선, 평화협정(안보문제), 남북관계 개선 등 김일성 주석의 주요 유훈 관철에서 최대한 성과를 내려고 움직이고 있다”라며 “이러한 구상에 성과를 내 내년 10월 당 창건 70주년에 맞춰 제7차 당대회를 열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한국과 미국의 대북 담당자나 북한전문가들은 빈번하게 북한의 불예측성, 돌발성, 불확실성을 거론한다.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조사국(CRS)도 <북한의 대미 관계, 핵 외교, 내부상황>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장성택 처형은 여러 차원에서 김정은 정권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앞으로 더욱 도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평가는 북한을 외부의 시각과 기준에서 보기 때문에 나타난다. 북한의 논리나 내부 정치흐름을 역사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북한의 행동은 오히려 예측하기 쉬운 측면이 있다.

지난 1월 29일(현지시각) 미국 국가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국가정보국(DNI)가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증언) 보고서에서 내린 최근 북한 정세에 대한 평가가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북한 김정은은 권좌에 오른 지 2년이 지나면서 유일한 지도자와 최종 결정 권력자(authority)로서 그의 지위를 더욱 강화했다. (인적) 인사와 숙청을 통해 그의 통제력과 충성심을 더욱 강화했다. 김정은은 노동당 전원회의 개최 등을 통하여 노동당 관료들을 주요 자리에 배치하는 등 노동당의 위상을 높였다. 김정은과 그의 체제는 계획 경제 기조를 유지하면서 북한 인민들의 삶과 어려워진 경제를 개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김정은은 이러한 정책을 핵무기 개발과 경제 개발을 (동시에) 이루는 듀얼 트랙(dual-track, 병진정책) 정책으로 명문화했다.…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로 인해 북한 지도자가 억제와 방어에 초점을 맞추었다. 장기적인 분석에 따르면 북한 입장에서는 이러한 핵 능력이 억제와 국제적인 위상, 그리고 고압적인 외교(정책)를 의도하는 것이다.”

미국 국가정보국의 이러한 평가는 ‘장기적 분석’과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있는 그대로의 정보’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북한의 인식과 내부 상황 파악에서 ‘신뢰도’를 담보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북한의 급변사태’를 언급하는 미국의 개별 관리나 전문가들과 달리 미국의 정보당국은 대체로 북한의 정세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일 수도 있다.

북한이 내년에 노동당 7차대회를 열 경우 북한 정치의 투명성, ‘예측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9년부터 2010년에 걸쳐 이뤄진 당, 정, 군에 대한 조직개편이후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 파행적으로 운영되던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 회의,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2월 정치국 확대회의→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4월 최고인민회의→내각 확대전원회의 개최를 통해 ‘경제건설과 핵 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법제화 및 예산 편성, 실무 대책 등 후속조치를 마련해 가는 의사결정과정은 김정일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김정일시대에 파행적으로 이뤄지던 당의 운영이 정상화되고 ‘집단적 협의구조’가 복원됨으로써 북한의 노선과 정책을 좀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5년 노동당 7차대회 개최는 북한이 ‘비상체제’에서 ‘정상체제’로 안정화되고, 김정은 제1위원장 중심의 유일영도체계가 확립된 것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연초부터 ‘중대 제안’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중국을 중재자로 6자회담 재개를 모색하고 있다. 올해 북한의 자체 설정한 식량생산 목표는 650만톤이다. 평균적으로 모든 주민에게 규정량의 식량을 분배 및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2015년 10월까지는 1년 8개월이 남았다. 북한이 이 기간 동안 ‘3대유훈’ 관철에 목표한 성과를 달성해 당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과 미국의 호응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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