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Daum 영화]
이 애니메이션을 극장 가서 돈 주고 보고 왔다는 말에 팔순의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만화 보러 극장 갔다고? 아이구, 얘야, 너 참 철없이 사는구나. 그래, 무슨 만화를 극장까지 가서 보냐?”

요즘은 만화를 아이들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 세대는 여전히 어른들끼리 만화 보러 극장 가는 경우가 드물다. 나 역시 애들 어릴 적에 아이들 손잡고 가족 단체 관람을 몇 번 한 이래로, 나 홀로 ‘만화 보러’ 극장에 간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내 인생 최초로,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이 애니메이션 영화 자체를 보기 위해서 극장을 찾았다!

영화는 주변의 추천 평처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겨울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하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 애니메이션이 그려내는 영상은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인물들의 표정이 다채롭게 살아서 표정만으로 캐릭터를 표현해 내는 점도 놀랍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뮤지컬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인데,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은 노래는 노래 부르는 이의 청량한 음색과 어우러지는 선율도 아름답지만, 가사가 주는 울림 또한 커서 가슴을 두드린다.

그렇다. 내가 이 ‘만화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유는 바로 이 가사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사가 전해주는 범상치 않은 메시지에 매료된 탓이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겨울왕국이 되어 버린 가상의 왕국 아렌델에서 남녀 주인공들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마법을 풀게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익숙한 설정들이 있다. 얼어붙은 겨울왕국의 저주, 겨울왕국을 지배하는 여왕 또는 마녀의 마법의 힘, 그 마법에 맞서는 이들이 겪는 시련과 위기, 그리고 결국은 사랑의 위대함이 해피엔딩을 가져오리라 하는 결말.

그런데 그 상투적인 설정들에 살짝 변화를 줌으로써 영화는 단순한 교훈 그 이상의 의미심장한 주제의식을 던져준다. 그것은 아이들 몫이 아니라, 성년이 되고 나서도 갈팡질팡하며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 [사진출처-Daum 영화]

1.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아렌델 왕국의 여왕이 된 엘사에게는 비밀이 있다.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 어릴 적 저지른 치명적 실수로 인해 그녀의 능력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고,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위험한 능력은 비밀에 부쳐져 봉인된다. 그리고 비밀을 간직한 그녀는 자의반 타의반 세상으로부터 격리된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지만, 남다르다는 것이 항상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가 속한 사회의 척도에 따라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비난과 배척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남다르다는 것은, 이 사회가 선망하는 특정한 능력을 타고난 소수의 행운아를 제외하고는, 견딜 수 없는 비극과 불행의 서막이 된다. 성, 나이, 인종, 국적, 종교, 사상, 나이, 장애 등의 측면에서 한 사회의 지배적 가치 기준과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회적 소수자’라 부르는데,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란 나치가 유태인의 가슴에 달아 준 노란 별처럼 차별과 불평등의 낙인이 된다.

심지어 이들 소수자는 사회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존재로 적대시되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아우슈비츠가 존재하는가. 엘사를 괴물로 지목하는 사회에서 느끼는 엘사의 공포심에서 나는 소수자의 운명을 읽는다.

▲ [사진출처-Daum 영화]

엘사의 성장과 함께 그녀의 능력은 점점 강해진다. 성장하는 마법의 힘은 곧 성장하는 엘사의 자아이다. 하지만 자신의 본모습, 자신을 규정짓는 가장 강력한 능력, 그 힘을 발산하고 싶은 욕망, 그 모든 것을 그녀의 부모는 감추라고 말한다.

세상의 통념과 손가락질에 맞서 자식을 지킬 수 있는 부모는 흔치 않기 때문에 차라리 평범해지기를 바라며 그녀에게 견고한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 부모로서 베풀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길이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포로가 되어 버린 엘사는, 드디어 왕국의 지배자 여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불행하다. 자기 부정과 자아 정체감 상실로 이룩된 존재의 인생이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내면의 권력으로 자리잡은 모범생 초자아가 통제하는 자아란 조금의 틈새만 생겨도 부서지기 쉬운 허약한 것. 언제까지 자신을 속일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엘사에게 커밍아웃의 순간이 오고 만다. 엘사는 눈보라치는 설산(雪山)에서 두려움을 넘어 억압된 자아의 해방을 선언한다. 그동안 감춰뒀던 마법의 힘을 마음껏 과시하는 엘사의 모습은 자신감 넘치고 강하고 아름답다. 영화 속 최고의 명장면이다. 단정한 올림머리를 풀어내리고, 주목받지 않도록 발끝까지 온몸을 감싼 검푸른 드레스 대신 어깨를 드러낸 하늘색 옷자락을 휘날리며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엘사. 그 장면이 뿜어내는 힘차고 자유로운 기운은 관객의 심장까지 두근거리게 한다. 그녀는 비로소 진정한 여왕이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지 못한 자, 타인의 시선에 지배당한 자가 아니다.

여기서 터져나오는 것이 영화의 주제가 ‘Let it go’이다. “나를 두렵게 했던 것 이제 겁나지 않아.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봐야겠어. 한계를 시험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옳든지 그르든지 하는 규칙 따윈 없어. 나는 자유야.”

노래의 히트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엘사들이 살고 있을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노래를 듣고 가슴이 통쾌하거나 설레거나 뭉클했다면, 그는 또 다른 엘사일 것이다.

▲ [사진출처-Daum 영화]

2. 위대한 능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영화에서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세상을 얼리는 마법의 능력이다. 능력은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고 트롤은 경고한다.

엘사의 능력은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아렌델을 눈에 파묻힌 저주받은 왕국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차가운 눈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안전한 폭약 다이너마이트는 안전한 무기로도 사용된다. 원자력은 고효율의 에너지원이지만 가공할 위력의 폭탄이 되기도 한다. 문명은 인류에게 더 편리하고 더 자유로운 삶을 선사했지만, 인류의 미래가 유토피아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노벨은 “오해되거나 오용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 역시 도구에 불과하고, 여기에 선악의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듯하지만, 천만의 말씀. 마법의 능력 그 자체는 선과 악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말이 윤리적 판단과는 별개라는, 가치중립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눈이 없는 마법 능력 대신, 그 능력을 가진 이가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엘사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능력을 숨기고, 다음에는 자신의 능력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산속으로 도피하지만, 엘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세상은 눈에 묻힌다, 깊이깊이. 적어도 죽음으로 갈라서지 않는 한, 우리는 정교하게 연결된 관계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원폭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우리가 한 것은 그냥 연구였을 뿐이라고 한들 미래의 재앙을 방조한 그들의 죄악에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미당 서정주의 친일 행적과 시를 별개로 평가하자는 말은 저주받은 겨울왕국과 엘사의 마법을 별개로 보자는 말처럼 무의미한 것이다. 엘사가 긴긴 유폐의 시간을 견디고도 다시 얼음성에 자신을 가둘 수밖에 없었듯이 특별한 능력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는 한없이 무거운 것이다. 그 고통을 견딜 수 없다면 그 능력을 누리는 것도 포기해야 한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하고 엘사로서는 억울하겠지만, 그녀는 스스로 가장 멋진 여왕과 무시무시한 마녀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선택해야 한다. 남다른 능력, 위대한 업적의 소유자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가 인류에게 축복인지 재앙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사진출처-Daum 영화]

3. 배려와 신뢰 없는 사랑이란 공허한 것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남녀 간의 사랑은 중요한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 오늘날 잠들어 있는 공주에게 왕자가 키스를 한다면 명백히 성추행에 해당하겠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 영화에도 멋진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며, 그들은 아주 쉽게 사랑에 빠진다. 구중궁궐에 갇혀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온 안나 공주는 처음 만난 외간남자 한스 왕자와 말 몇 마디 섞어보고 바로 소울메이트라고 확신, 첫 만남에서 프러포즈를 받는 데까지 일사천리로 진도를 나간다. 채 성년이 되지 않은 철없는 공주의 파격적 행보와 막무가내 결혼 발표는 신중한 언니의 심기를 건드리고, 이제 막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고 여왕의 자리에 오른 언니의 대관식 축하 파티 분위기를 급냉각시킨다. 영화에서 사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동력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발단이 된다.

그리고 안나는 자기로 인해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데, 맙소사, 예비 신랑 한스 왕자에게 전권 위임! 아무리 만화라지만 제 정신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판단력을 보인다. 하지만 이 천방지축 말괄량이 공주에게도 장점은 있는데, 대단히 저돌적이고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소심한 언니에 비해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가 있고,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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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예상대로 ‘사랑의 힘’이라는 피날레를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반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안나의 사랑은 배신당한다. 안나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상황에 내몰리고서야 ‘진정한 사랑의 힘’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난다. 대신 영화는 눈사람 올라프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네가 원하는 것보다 우선 순위에 놓는 거야.” 이것을 우리는 배려라고 한다. 그리고 또 말한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녹아도 괜찮아.” 사랑한다면 상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안나와 고락을 같이하며 그녀를 걱정하고 배려해 준 크리스토프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예상대로 그는 안나를 구하러 온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마음 약한 크리스토프가 안나와 잠시 동행하며 이 명랑 소녀의 엉뚱 발랄한 매력에 마음이 기울었다 한들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 더구나 안나가 약혼자가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가 안나에게 돌아오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천성이 착하여 남의 곤경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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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기서 기존 디즈니 만화의 공식을 버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엘사의 깊은 죄의식은 두 번이나 동생에게 상처를 입힌 일로부터 연유하며, 머리에 박힌 얼음조각 즉 이성과 논리가 입은 상처보다, 심장에 박힌 얼음조각 즉 마음의 상처는 회복되기 어렵다. 동생을 사랑하는 엘사는 절망하고 삶의 의지를 놓아 버린다.

이유도 모른 채 언니로부터 거부당했다고 생각해 온 안나는 결혼 문제로 언니와 맞서기도 하지만, 언니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 안나가 엘사에게 받은 상처는 엘사의 진의가 아니라 안나의 경솔함이 부른 실수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안나를 위기에서 구해 내는 올라프는 엘사와 안나의 추억의 산물, 그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엘사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올라프를 창조했으며, 차가운 눈사람이면서 따뜻한 세계를 동경하는 올라프는 엘사의 마음을 전하듯 안나에게 참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이렇듯 어떤 오해나 시기, 질투 같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둘의 자매애는 안나로 하여금 사랑의 힘으로 목숨을 구하는 대신 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길을 택하게 한다. 영화는 왕자와 공주의 사랑 대신, 오랜동안 서로 함께해 온 시간 속에서 견고해진 자매애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새로 정의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아름다운 추억이든 힘겨운 시련이든 과정을 함께하며 쌓아올린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얼어붙은 마음이 녹고 상처에 새살이 돋게 할 수 있다. 사랑은 한때의 달콤한 속삭임이 아니라, 이해하고 배려하며 희생하는 과정에서 검증되는 실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이토록 녹록지 않은 생각거리들을 담아낼 수 있다니, 상투성을 버린 상상력은 가볍지 않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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