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4~8일 평양을 방문하고 서울에 들른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석좌교수는 11일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전해줬다.
“북한의 고위 당국자부터 실무자까지 내가 만난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을 ‘수령’이라고 부르며 절대시하더라.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제1위원장의 입지가 확고해졌고, 그를 ‘수령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북한에서 수령은 모든 체제와 법 위에 있는 존재이다. 장성택 사건은 최고지도자를 ‘수령화’하는 과정에서 이에 도전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성택 사건은 2인자를 끌어내린 숙청이 아니고 일반 관료가 문제가 돼 제거된 처벌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권력투쟁의 성격을 갖는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차 질문을 드렸다.
“정말 북측의 간부들이 ‘수령’이란 호칭을 쓰던가요?”
“이번 방문기간에 북측의 학자들과도 대화를 나눴는데, 북측에서 ‘수령’이란 호칭에 대해 명확히 규정이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해석해서 말하자면 좁은 의미로 보면 수령은 곧 김일성 주석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최고영도자’를 ‘수령’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 같다.”
김정은 제1위원장을 ‘수령’으로 호칭
김정일 시대에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수령’이라고 부른 사례가 많지 않았다. 물론 아직까지 북한의 신문.방송이나 문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을 ‘수령’이라고 공식 지칭한 사례는 없다. 다만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한 호칭이 지난해부터 ‘최고 령도자’에서 ‘위대한 령도자’로 바뀐 것은 확인된다. <조선중앙TV>는 지난해 10월 3일 평양체육관 개관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해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라고 지칭해 처음 ‘위대한 령도자’란 표현을 썼다. 이후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은 동지 만세!”라는 현수막이 주요 행사 때 등장하기 시작했다.
‘수령’에 대한 개념 확장은 이미 지난해 6월 1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 국가, 군대, 근로단체, 출판보도부문 책임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에서 확인된다. 이 연설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을 호칭할 때는 ‘위대한 수령님’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호칭할 때는 ‘위대한 장군님’으로 호칭했지만 두 사람을 함께 언급할 때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지칭했다.
이 연설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에 대해 “수령의 혁명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수령의 령도 밑에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나가는 수령의 사상체계이며 령도체계”라고 규정했다. ‘수령의 혁명사상’에서 수령은 김일성 주석 또는 김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하며, ‘수령의 령도’에서 수령은 최고영도자, 즉 현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을 지칭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격적 리더십’의 강화
김 제1위원장의 호칭에 대해 길게 언급한 것은 호칭 변화에서 북한 내에서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위상변화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통상 북한에서는 ‘제도적 리더십’이 형성된 후 이를 보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격적 리더십’이 확립되는 단계를 밟아왔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2012년 4월 4차 당대표자회(4.11)와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 회의(4.13)를 개최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을 당영도체계(제1비서)와 국가영도체계(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영도자로 추대함으로써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제도적 리더십을 확립하고, 친민적(親民的) ‘어버이 수령’ 형상화에 주력해 왔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만 썼던 ‘위대한 령도자’란 호칭을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공식 부여하고, 비공식적으로 ‘수령’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보면 제도적 리더십과 인격적 리더십이 결합된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가 확고하게 수립됐거나 안정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북한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이란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세계적 추세’에 맞게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사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오직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는 북한 내부의 ‘이념세력’을 넘어서야 한다. 남북관계란 측면에서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하며 지칭한 ‘완고한 2급 보수’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빨간 신호등을 켜며 여러 가지 이유로 ‘우려와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간부들을 설득하고, 새총으로 빨간 신호등을 깰 수 있는 확고한 지도력이 필요한 것이다.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 첫날,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돌아가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내일 아침 또 회담을 하러 백화원초대소로 오겠습니다. 우리 간부들이 (초대소로 오는 걸) 반대하지만, (오는 길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으면 제가 새총으로 쏘아버리고 오겠습니다.”
북한 간부들의 우려를 ‘빨간불’에, 자신의 대화 의지를 ‘새총’에 빗댄 표현한 말이다.
박한식 교수는 북한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해 “북한은 유일체제라서 모든 게 최고지도자의 뜻대로 된다고 보는 건 당연하지만 실질적으로 정책이란 것은 밑에서 올라간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실무 정책담당자는 원칙과 정세를 우선시 하게 된다.
지난해 9월 북한이 ‘최고존엄’에 대한 비방과 ‘을지 프리덤 가디언’ 합동군사 연습에 미국의 핵전략 폭격기 B-52H편대 참가 등을 이유로 이산가족상봉을 연기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북한은 2월 12일 열린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 기간에는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개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14일 열린 두 번째 접촉에서는 이산가족상봉과 군사훈련은 별개라는 남쪽의 입장을 수용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빨간 신호등(원칙론)을 새총으로 깨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도 김정은 제1위원장 개인의 입장이라기보다 북한 내부의 집단적 결정에 따른 ‘수령’의 의지표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한 남북고위급접촉에 기존처럼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전면에 나선 것이 아니라 국방위원회 대표단이 회담 주체로 나온 것도 의미심장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급한 ‘완고한 2급보수’란 지칭이 남과 북의 군부를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왜 북한이 국방위원회 대표단을 회담 주체로 내세우며 남측에 국가안보실 관계자를 상대방으로 지목했는지 추측케 한다.
‘중대 제안’은 전략적 정책
박한식 교수의 전언은 북한 내부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는 한국이나 미국 대통령의 신년사와 다르다. 거기(북)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하면 남북관계를 개선할까만 고민한다.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상봉행사를 하거나 합의하는 날(5일) B-52 전략폭격기 훈련에 대해 북한은 자신들을 우롱하는 게 아닌가 여긴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성사시키려는 분위기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올해 초 북한 국방위원회 명의로 나온 ‘중대 제안’과 남북고위급접촉 합의는 ‘위장 평화공세’라 아니라 ‘전략적 정책’으로 봐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우선 북한의 ‘중대 제안’은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다. 적어도 지난해 9월 이산가족상봉 행사 연기가 이뤄진 후 북한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과 결정을 통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가을부터 북한의 당과 정부의 간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최단기간에 관철할 결심을 내리시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이 남북고위급접촉에 나온 것에 대해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남북경협을 재건하지 않을 경우 북한 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대단히 초보적인 분석에 불과하다.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이란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것은 수령님의 유훈이며 온 민족이 통일된 조국에서 화목하게 잘살도록 하시려는 것이 수령님의 뜻이였습니다”란 김 위원장의 발언을 뜻한다. 여기서 ‘통일된 조국’은 단계적으로 보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혹은 ‘사실상의 연합제’ 형태의 ‘남과 북의 통일을 지향하는 안정된 공존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2007년 ‘10.4선언’에서 합의한 사안의 전면적 이행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남북고위급접촉 합의를 보도하면서 “쌍방은 북남 관계를 개선해 민족적 단합과 평화번영, 자주통일의 새 전기를 열어나갈 의지를 확인”했다며 10.4선언의 합의문구를 인용했다.
물론 지난해 벌어진 NLL논쟁으로 ‘10.4선언’에서 합의된 서해특구 구상은 어려워졌다. 그 현실적 대안으로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DMZ평화공원 구상에 대해 지난해부터 검토를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DMZ평화공원을 수용할 수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도 남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나는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어놓으려는 념원에서 해마다 해내외의 수많은 통일운동자들이 모여 통일행사를 벌리는 이곳 판문점에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세우도록 하였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분열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차원에서 ‘통일친필비’를 건립했다면 판문점 인근이나 남과 북이 합의할 수 있는 지역에 평화공원을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다.
북측의 통 큰 양보, 남측의 선택은?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과 관련한 역사적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을 언급했다.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당시 서명에 의미를 부여해 1995년 8월 판문점 북측지역에 ‘김일성, 1994.7.7’이라는 친필서명 비석을 세운 것이 바로 ‘통일친필비’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김일성 주석의 생애 마지막 친필 20돌을 강조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당국간 대화 의지를 표명한 것이고, 당연히 대화과정에서 DMZ평화공원도 의제로 상정될 수 있는 셈이다.
이번 남북고위급접촉에서 북한은 대단히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국방위원회의 ‘중대 제안’을 내놓으면서도 북한은 “실천적인 행동을 먼저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고위급접촉에서 우리측이 “남북 간에 우선 신뢰를 쌓아야 하는데 그 신뢰의 첫 걸음, 첫 단추가 이산가족 상봉행사이기 때문에 우선 믿고 행사를 그대로 진행을 시켜야 된다”라며 설득하자 북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를 중시하신다니깐 그 말을 믿겠다. 통 큰 용단을 해서 받을 테니 앞으로 잘 해보자”라며 남측 안을 수용했다. 후에 밝혀지겠지만 대단히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발언이다. 이외에도 북측은 남측이 제기하는 여러 현안에 대해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안을 준비해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내년인 2015년,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먹는 문제 해결과 6자회담 재개 등 대외관계 개선, 그리고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 등의 성과에 기초해 7차 노동당대회를 개최할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대 제안’과 유연한 회담 태도 등도 이것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남과 북은 7년 만에 공식 당국 간 대화자리에 앉아 5시간이 넘는 328분 동안 회담했다. 남측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북측의 ‘중대 제안’이 첫 단추를 꿰는 자리였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특히 남과 북에서 남북대화란 측면에서 보면 ‘완고한 2급보수’라고 지칭되는 국가안보실과 국방위원회가 마주앉은 회담이었다. 다양한 문제에서 치열한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올해 남북관계의 향방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