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다.
화려한 색과 좋은 향기, 탐스럽고 다양한 모습을 가진 꽃은 아름다운 여성에 비유되기도 하고 인생의 절정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절대자나 신을 찬양할 때 바치는 예물로 활용되고 아름다운 공간을 장식할 때 이용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애를 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꽃은 아름다움, 풍요, 환희, 행복, 헌신, 사랑 따위의 좋은 상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꽃의 상징은 세계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나라, 민족도 꽃을 싫어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천국과 천당을 표현한 대부분의 그림에서는 화려하고 다양한 꽃들로 둘러싸여 있다.
어찌 보면 꽃과 이상세계는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위-초기 장생도에는 꽃이 그려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복숭아꽃이 없이도 장생도의 형식과 내용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이 그림은 고종 때 그려졌지만 장생도의 원형에 충실한 그림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그런데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의 내용을 담은 장생도에는 꽃이 없다.
초창기 장생도에는 꽃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상세계를 드러내는 장생도에 꽃을 그리지 않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장생도에는 자연의 다양한 요소가 나온다. 태양, 구름, 바다, 바위, 동물과 소나무, 대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이 나오지만 그 중에 꽃은 없다. 또한 식물 중에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은 소나무, 대나무, 영지뿐이다. 나머지는 그냥 대략적인 얼버무려진 식물로 표현한다.
원래 구체적 형상을 가지면 구체적인 상징이 붙게 마련이다.
구체적인 형상을 가진 요소는 사슴, 학, 거북(현무)와 소나무와 대나무, 영지(靈芝) 뿐이다.
사슴, 학, 거북은 하늘과 땅, 바다와 땅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사철나무인 소나무, 대나무는 이상적인 세계를 구현하는 존재를 상징하고 있고 영지(靈芝)는 이상세계라는 공간을 상징한다.
태양, 구름, 바다, 바위는 구체적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극단적으로 양식화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자연의 전부를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시키는 장치이다.
식물들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것도 전체, 전부라는 상징을 얻기 위함이다.

‘십장생도’에만 꽃이 없는 게 아니다.
조선시대의 화가들이 그린 산수화는 그야말로 선비들의 추구했던 이상세계이다.
그 수묵산수화에도 꽃은 등장하지 않는다.
산수화에 등장하는 꽃이 있다면 도화(桃花) 즉 봉숭아꽃이나 매화이다.
하지만 도화는 이상세계를 뜻하는 상징이고 매화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다.
수묵산수화의 꽃에는 아름다움, 풍요, 사랑과 같은 일반적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렇게 장생도나 수묵산수화에 꽃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꽃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징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청빈과 절제를 통해 이상세계를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풍요, 허영과 사치의 내용을 뜻하는 꽃을 멀리한 것이다.

상업이나 공업과 같은 2, 3차 산업이 발전하지 않았던 조선이란 나라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물자를 아끼고 독점을 피하며 골고루 나눠가져야 한다.
선비들은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라는 주자성리학의 행동지침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사상은 시공간이라는 물적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70%의 산과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라는 지형은 풍요로운 땅이 아니다. 국가 간의 교역도 청과 왜나라 밖에는 없었다. 대부분의 재부는 농업을 통해 만들어졌고 가뭄이 들면 금주령을 내려 곡식을 아껴야 했으며 보리가 나기 전의 춘궁기에는 정부가 백성을 먹여 살려야 했다.
이런 경제적 조건에서 백성들을 먹여 살리면서 국가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졸라 매어야 했다. 그 당시에도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서는 침략과 약탈이라는 전쟁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물질적 풍요는 모두가 바라는 욕망이지만 모두가 함께 살려면 억제해야 할 욕망이기도 했다. 꽃은 풍요와 화려함의 상징이기에 선비들은 허영과 사치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렇다고 모든 꽃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물질적 사치를 뜻하는 꽃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반면 절제와 청빈을 뜻하는 꽃은 수용되었다.

장생도에 꽃이 등장하는 것은 대략 18세기 전후라고 추정한다.
정조의 개혁정치라는 정치적 흐름과 김홍도의 신선그림의 영향으로 장생도에 복숭아나무가 등장하고 복숭아꽃이 함께 그려진다.
18세기는 청나라의 문화가 유입되는 시기였고 정조는 선비와 백성들의 힘을 끌어 당겨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다.
전문성을 가진 역관, 의관, 상인과 같은 중인계층들은 청나라와의 관계나 무역을 통해 많은 재부를 쌓는다. 또한 독점상업특권이라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혁파하면서 상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중국어를 할 수 있었던 역관이나 상인들은 청나라의 값나가는 물건을 소개하거나 구입하여 거간비를 받거나 비싼 값에 되팔아 재부를 축적했다.
부자가 된 중인들은 재물을 바탕을 권력을 얻고 화려한 소비를 통해 백성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상업의 발전을 통한 풍요는 절제와 청빈이라는 선비들의 가치와 충돌한다. 하지만 풍요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 욕망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었고 정조는 이러한 백성들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여 새로운 세상을 여는데 원동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위-복숭아나무와 모란꽃이 결합된 장생도인데 도화서에서 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나무가 빠지고 복숭아나무가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스럽게 표현된 모란꽃이 눈에 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장생도에 들어간 복숭아꽃은 아주 오래된 고목처럼 표현한 복숭아나무와 복숭아꽃, 그리고 이파리, 복숭아열매로 이루어져있다. 확대원근법의 원리에 따라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이파리가 자라며 최종적으로 열매가 달리는 시간의 간격을 무시하고 한꺼번에 표현한다.
산수화에서는 복숭아나무를 대충 표현한다. 그것이 복숭아나무인지만 알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이 원하는 복숭아나무는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이어야 한다.
또한 나무 자체보다는 그 나무가 뜻하는 핵심적인 상징을 부각시킨다. 백성들이 원하는 복숭아나무의 상징은 ‘불로장생’을 뜻하는 복숭아열매에 있다.
크고 탐스럽게 표현된 복숭아열매는 한번 먹으면 천년을 산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복숭아열매는 여성의 풍성한 가슴이나 엉덩이를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다산이나 풍요를 가져다주는 여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백성들의 복숭아나무는 신선세계의 상징이고 ‘불로장생, 다산, 풍요’를 뜻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선비들의 복숭아꽃은 유유자적하며 청빈하게 살고자하는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바로 이 때문에 복숭아꽃은 커다란 저항 없이 장생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선비들이 추구하는 도화와 백성들이 추구하는 복숭아는 그 뜻이 달랐지만 동시에 두 가지 의미를 가짐으로써 선비들은 은밀한 욕망을 추구할 수 있었고 백성들은 원초적 욕망에 이상세계라는 높은 가치를 덮어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장생도에 복숭아나무가 큰 저항 없이 안착하자 곧바로 새로운 꽃이 결합을 시도한다.
그것은 바로 모란꽃이다.
모란꽃은 일반적으로 ‘부귀영화’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징 때문에 자발적 청빈을 추구한 선비들은 모란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연히 화가들도 매화나 국화를 주로 그렸고 모란을 소재로 한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궁중에서 그려진 모란그림을 ‘궁중모란도’라고 한다.
물론 ‘궁중모란도’라는 명칭은 후대의 사람들이 일반적인 모란그림과 구분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그럼에도 일반 모란그림과 ‘궁중모란도’ 사이에는 엄격한 조형적, 내용적 차이가 존재한다.
‘궁중모란도’는 모든 꽃의 총합이자 대표 격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 ‘생명의 만개(滿開)’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귀영화’와는 별 관련이 없는 것이다.
만약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그림을 왕실에서 수용했다면 장생도에는 온통 모란꽃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또한 선비들의 사랑방 벽에는 매화그림 대신 모란그림이 차지했을 것이다.
‘십장생도’와 ‘궁중모란도’는 1000년 이상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의 그림이다. ‘십장생도’가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를 담은 그림이라면 당연히 ‘궁중모란도’도 그에 상응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내용의 ‘십장생도’를 ‘장수(長壽)’의 의미로 해석한다고 해서 크게 틀리는 것은 아니다. ‘장수’는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를 이루는 필요조건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만개’를 뜻하는 ‘궁중모란도’를 ‘부귀영화’로 읽는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는다. ‘생명의 만개’라는 범위에 ‘부귀영화’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사실 ‘부귀영화’는 폭이 넓은 개념이다. ‘부귀영화’라는 개념 속에는 ‘실천 강령’이 빠져있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방법에는 수 만 가지가 있다. ‘부귀영화’가 반드시 재물의 풍요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또한 ‘부귀영화’와 ‘사치와 허영’은 구분되어야 마땅하다.
재물을 많이 가지고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사치와 허영’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사치와 허영’은 부정부패를 낳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행위의 직접적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장생도에 모란그림이 결합하는 과정에서도 큰 저항은 없었을 것이다.
‘십장생도’나 ‘궁중모란도’ 모두 궁중회화였기 때문에 이 둘의 결합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조형적으로는 문제가 있었다.
‘궁중모란도’는 이미 양식적으로 완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변주가 거의 불가능하다. 장생도에 나무처럼 뻣뻣이 서 있는 모란꽃을 그려 넣는 것은 조형적으로 불편함을 준다. 그래서 장생도에 결합하는 모란꽃은 생태적 특성에 맞게 풀어서 그릴 수밖에 없었다.

1920년대에 그려진 창덕궁 재건벽화에는 모란과 원추리꽃이 표현되어 있다. 원추리꽃은 모란과 마찬가지고 ‘부귀영화’를 뜻한다.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서수낙원도’에는 모란과 연꽃이 등장한다.
장생도에 결합한 꽃은 복숭아꽃, 모란꽃이었고 도화서나 차비대령화원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 민간 화가들에 의해 변주된 장생도에는 원추리, 연꽃이 추가된다.

복숭아꽃과 모란꽃이 결합한 장생도의 등장은 시대적 상황이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궁중회화도 거대한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주된다.
하지만 장생도의 형식은 엄격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백성들의 원초적 욕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아무 꽃이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식은 오랜 세월동안 내용의 총화로 만들어진다.
‘십장생도’는 수 천 년을 이어온 생명에 대한 찬양, 자연의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에 바탕을 둔 이상세계를 함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십장생도’에 담긴 이러한 사상적 전통은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쉰다.
‘십장생도’가 부활하여 사람들의 아름다운 본성과 만날 때 ‘궁중모란도’는 만개할 것이다.
무제한적인 소비의 욕망, 이기적인 사치와 허영이라는 유령이 지배하는 어둠의 세상은 그렇게 끝장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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