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6일 북한에서는 전국농업부문 분조장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알곡과 남새(야채), 고기, 과일 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한 모범적인 농업부문 분조장들과 일군들”이 참가했다.

대회에서는 “지난 시기 농업생산에서 이룩된 성과와 경험을 총화하고 농업근로자들이 당이 제시한 알곡생산목표를 점령하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이 논의됐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이 대회 참가자들에게 직접 <사회주의농촌테제의 기치를 높이 들고 농업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키자>는 제목의 ‘노작’(서한)을 보냈다.

농업개혁의 방향 제시

이 서한에서는 △사회주의농촌테제 발표 후 이룩된 전변에 대해 △농촌에서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힘있게 벌릴 데 대해 △농업부문 앞에 나서는 과업 등이 담겼다.

그러나 이 서한만 가지고는 김정은 시대 북한 농업정책의 핵심과 변화를 읽어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농사를 잘하여 농업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는 것”이라고 제시했지만 올해의 목표량이 얼마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추상적으로 “올해에 농사를 잘 지어 당과 국가가 제시한 알곡생산과제를 기어이 수행하여야 합니다”라며 “조선로동당창건 70돐을 맞는 2015년부터는 더 높은 알곡고지를 점령하여야 합니다”라고 제시돼 있을 뿐이다.

▲ 북한 농업과학원의 연혁실에 전시돼 있는 농업과학기술 성과 소개 자료. 이번 분조장대회는 이 같은 연구성과를 실제 농업 현장에 도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실마리는 있다. 과거의 문헌과 비교해 ‘계승’과 ‘변화’를 읽는 방법이다.
북한은 이번 전국농업부문 분조장대회가 “조선노동당의 영도 따라 농촌건설과 나라의 농업발전에 쌓아올리신 백두산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어나가는 데서 중요한 계기로 된다”고 개최 의의를 밝혔다. 김일성.김정일 시대 농업정책의 ‘계승’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 서한에서 “사회주의농촌테제에서 제시된 과업들을 철저히 관철하여 새 세기 농촌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고 농촌문제를 종국적으로 해결”할 것과 “농촌에서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더욱 힘있게” 벌일 것을 주문했다.

특히 과학과 기술의 시대, 정보화시대의 요구에 맞게 농촌기술혁명을 힘있게 벌여 농촌경리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더욱 강화하고 농업의 과학화, 현대화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나갈 것을 요구했다.

또한 알곡(식량)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는 것과 함께 남새와 축산, 과수를 비롯한 농촌경리의 모든 부문에서 새로운 혁신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주체농법, 과학농법, 유기농법을 제시하면서, 정보당 수확고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 ‘종자혁명’을 특별히 강조했다. 수확고가 높으면서도 비료를 적게 요구하고 생육기일이 짧으며 가물(가뭄)과 비바람, 병충해를 비롯한 여러 가지 피해에 잘 견디는 품종을 생산 보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 기조와 방향은 김정일 시대와 동일

농업 기반 확충과 농업증산을 위한 정책 방향이라는 측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서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3년 5월 2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우리 당의 농업혁명방침을 철저히 관철할데 대하여>에서 제시한 ‘방침’과 거의 동일하다. 실제로 이 서한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시대 당의 농업혁명방침을 제시하시여 농업문제해결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시였습니다”라고 평가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1년 10월 3일 담화 <강성대국건설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관리를 개선강화할데 대하여>에서 “모든 경제사업을 사회주의분배원칙과 실리주의원칙에 맞게 바로 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했고, 이에 따라 농업분야에서 구체적 과제를 내놓았다.

▲ 북한 농업과학원 연혁실에 전시돼 있는 종자 개량 흐름도. 북한이 농업생산 증대를 위해 가장 힘을 쏟고 있는 것이 종자개량이다. 과거에는 종자개량이 이뤄져도 수량 부족과 협동농장의 소극적 태도로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핵심은 김일성 시대의 ‘적지적작(適地適作), 적기적작(適期適作)’방침에 ‘과학농업’을 강조한 것이다. 이 방침은 경제관리개선을 위해 내각 산하에 조직된 ‘연구 그룹’이 내놓은 농업분야 개선책을 공식화 한 것이었다. 기본과제는 “농업생산과 기술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으로 설정됐다.

이에 따라 감사 농사 확대(감자농사혁명), 이모작 확대, 종자혁명, 미생물비료와 유기질비료 생산 확대, 토지정리사업, 농업과학기술 혁명, 종합적 기계화 등이 제시됐다.

김일성 시대의 농업정책을 계승하면서 변화된 현실에 맞게 ‘정보농업’(과학영농)을 위해 농촌에 대한 과학기술보급체계를 확립하고 불합리한 생산계획을 바로 잡아 노동의욕을 높인다는 정책방향을 내놓은 것이다.

이 같은 정책은 실상 자본주의사회의 농업에서도 똑같이 강조되는 과제들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변화’는 ‘알곡증산도 경제관리의 개선으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구호와 함께 시행된 농산물의 수매가격 인상과 토지사용료 제정 등의 구체적 조치로 나타났다. 역시 핵심은 ‘평균주의 분배’를 없애고 분조 단위로 성과급제를 실시해 성과에 따른 차등 분배를 실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회주의분배원칙을 실시하는데서 평균주의를 철저히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균주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나 건달을 부리는 사람에게나 다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며 로동집단의 로력적 열성을 떨어뜨리고 건달풍을 조장하게 됩니다. 작업반과 분조, 매 근로자들에게 작업과제를 명백히 알려 주고 그 수행결과에 따라 일한 것만큼, 번것만큼 로동보수와 본배몫이 정확히 차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2001년 10월 3일 담화)

▲ 나노 기술을 이용해 '나노 살충제', '나노 미량비료', '식물성장촉진제' 등을 생산하려는 구상을 엿볼 수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분배방식이 바뀌면서 협동농장의 경영방식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정한 토지사용료를 납부하고, 비료․영농자재 등 생산경비와 농민들의 생활비(현물 및 현금 분배)를 제외하면 남은 농산물은 협동농장의 경영을 위한 자금으로 쓸 수 있게 됐다.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으로 개편되면서 개별 농민뿐만 아니라 협동농장도 시장에서 제한적으로 농산물을 팔게 됐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서한에도 이러한 기조가 그대로 반영됐다.

“분조관리제를 실시하는데서 분배를 철저히 사회주의분배원칙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배에서 평균주의는 사회주의분배원칙과 인연이 없으며 농장원들의 생산의욕을 떨어뜨리는 해로운 작용을 합니다. 분조들에서 농장원들의 로력일평가를 로동의 량과 질에 따라 제때에 정확히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주의분배원칙의 요구에 맞게 분조에서 생산한 알곡가운데서 국가가 정한 일정한 몫을 제외한 나머지는 농장원들에게 그들이 번 로력일에 따라 현물을 기본으로 하여 분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국가적으로 나라의 식량수요와 농장원들의 리해관계, 생활상요구를 옳게 타산한데 기초하여 알곡 의무수매 과제를 합리적으로 정해주어 농업근로자들이 자신심을 가지고 분발하여 투쟁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분배 방식의 변화

그렇다면 김정일 시대와 달라진 부분은 무엇일까?

첫째, ‘평균주의 분배’를 확실히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식량 증산이 이뤄지고, 노력일에 따른 차등분배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농업분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상황이 개선돼야 가능하다. 북한이 10년 전부터 ‘평균주의의 해악’을 지적했지만 여전히 이것이 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만큼 협동농장의 경영상태가 열악했다는 반증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협동농장의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이 같은 점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

“지금조건에서 협동농장들이 자체로 농사를 짓는 것이 쉽지 않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모범적인 여러 협동농장들에서는 농장원들의 자각성과 열의를 높이고 모든 영농공정을 빈틈없이 짜고들어 자체의 힘으로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고 농장원들의 분배몫도 늘여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협동농장들에서 모범적인 협동농장들의 경험을 본받아 자체의 힘으로 농사를 짓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전반적으로 식량생산량이 자급수준에 근접하게 됐고, 여러 협동농장에서 국가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경영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시점에서 이제 모든 협동농장에서 평균주의 분배를 없앨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둘째, 농민들의 실질 수익을 높이는 방향에서 분배 및 수매정책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국가의 식량 수매량을 최소화하는 한편, 수매가격을 시장가격에 연동해 책정하는 방향으로 변화된 셈이다. 농민들의 분배몫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수매를 하더라도 시장가격 수준에 맞춰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매가격이 2012년보다 2~3배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 시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계획 초과 생산물의 농민분배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최근년간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렵게 되자 일부 경제지도일군들과 학자들이 물질적 자극에 대하여 많이 말하면서 근로자들의 생산의욕을 높이기 위한 방도를 주로 물질적 자극을 강화하는데서 찾으려 하는데 그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중한 후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돈과 물건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자본주의적 방법입니다. …사회주의분배원칙을 물질적 자극의 수단으로만 보아서는 안되며 로동에 대한 물질적 평가에 정치적 평가를 잘 결합시켜 실시하여야 합니다. 로동의 결과에 따라 일을 많이 하고 더 잘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더 많은 몫이 차례지고 정치적으로도 응당 평가를 받게 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적은 몫이 차례지게 할 뿐 아니라 정치적평가도 받을 수 없게 하여야 합니다.”(2001년 10월 3일 담화)

그런데 이제는 ‘정치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을 적절하게 결합하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물질적 자극’을 과거보다 확대하겠다는 방향인 듯하다. ‘분조관리제의 우월성’을 강조함으로써 분조 간 경쟁을 강화하고, 계획 초과 생산분에 대한 분배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서한’에서 협동농장 ‘분조원들의 집체적 지혜와 창발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분배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농민이 분배받은 식량을 자유롭게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수반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러한 농업개혁이 ‘과거의 부정’이 과거의 경험과 노선을 계승하면서 현실 변화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분조장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계승’과 ‘변화’란 두 측면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변화’란 측면도 새로운 정책의 시행이라기보다는 조건의 성숙에 따른 ‘실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10년 전 김정일 시대의 농업개혁이 제반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거나 시범사업에 한정됐다면, 김정은 시대 북한의 농업개혁은 강한 실천의지가 뒷받침되고 있고 대내외 환경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열린 이번 전국농업부문 분조장대회를 통해 ‘제한된 범위’에서 시도되거나 중도에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농업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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