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5월 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후방공급사업에서 모범을 보인 제681군부대 포병중대를 시찰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부대 창고에 가득한 우유 등을 보면서 커다란 만족을 표시한 후 후방사업 강화를 지시했다. 이 시찰 이후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군인들처럼 자기 단위의 살림살이를 알뜰하고 이악하게 해 나간다면 근로자들의 후방공급사업에서 전환이 일어난다”고 강조하며 이 부대 군인들의 모범사례를 따라 배울 것을 역설했다.
16년 전에도 후방사업 강조
후방사업이 “대중의 혁명적 열의를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정치사업”이라고 전제하고 이 사업을 “단순히 후방물자나 공급하는 실무적인 사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혁명임무 수행에 전심전력하게 하는 중대한 사업”으로 강조한 것이다. 특히 각급 기관 간부들에게 “일꾼들은 어려운 때일수록 근로자들에 대한 후방사업을 위해 늘 머리를 쓰고 뛰고 또 뛰어야 한다”면서 “모든 일꾼이 자기 단위의 후방사업을 책임지고 잘해나가면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은 더욱 힘차게 다그쳐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1995~1997년)를 마치고 ‘강성대국 건설’을 국가 발전 목표로 제시한 직후였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당국이 군인과 근로자들의 의식주문제를 제대로 보장할 수 없는 조건에서 군부대와 공장.기업소들이 후방사업을 잘해 군인과 근로자들의 부족한 의식주 등 생활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북한에서 ‘후방사업’이란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자기의 초소에서 맡은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그들의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문제를 잘 보살펴 주고 생활상 편의를 돌보아주는 일”을 의미한다.
북한 군인들의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제공하는 곳은 인민무력부 산하 후방총국이다. 치약, 칫솔, 비누, 면도기 등 생필품부터 피복, 쌀, 부식 등 식료품까지 모든 물자의 공급을 후방총국이 담당한다. 그러나 1990년대 최악의 경제난으로 북한은 군인들에게도 생필품과 식료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다. 북한 당국은 16년 전 후방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군인들의 부족한 생필품과 식료품공급을 군부대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것으로 촉구했지만 이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군인생활 향상이 올해 군사 사업의 중심고리”

김정은 제1위원장은 후방총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인민군대에서 올해에 콩 농사와 수산, 축산의 3대 열풍을 세차게 일으켜나가야 한다”며, “군인생활 향상에서 획기적 전환을 이룩하고 올해 말 인민군 후방일꾼대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 취임 이후 군에 대한 당적 지도 강화, 군 산하 무역회사의 내각이관, 군의 전투력 향상 등에 초점을 맞춰졌던 것에서 군인 생활 향상으로 정책방향을 옮기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해 5월부터 뚜렷하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북한은 4월까지 한미 군사훈련의 대응으로 야전 포병에 대한 ‘1호전투근무태세’까지 지시하며 군사적으로 긴장된 상태를 수개월간 유지했는데, 이후 긴장이 완화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군부대의 후방사업부문을 집중적으로 현지지도하기 시작했다.
김 제1위원장은 5월 중순 간장, 된장, 맛내기(조미료), 기름, 당과류 등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공급하는 식료품가공공장인 인민군 2월20일공장 시찰을 시작으로 군인들에게 물고기를 공급하는 제639군부대 동해후방기지와 즉석쌀밥, 간장, 된장 등의 식료품을 지원하는 제534군부대 산하 종합식료가공공장을 잇달아 찾았다. 이어 5월 말에는 인민군 제313군부대 산하 8월25일수산사업소를 현지지도했다. 이 수산사업소는 물고기를 잡아 전방의 군인들에게 공급하는 곳이다.

이어 6월 4일 최고사령관 명의로 나온 <마식령속도를 창조하여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란 호소문에서도 “후방사업이자 사회주의수호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당이 마련해준 현대적인 후방기지들이 실지로 은이 나게 하며 콩농사와 축산, 수산부업을 더욱 활성화하여 자체로 살아나갈 수 있는 토대를 튼튼히 다져 군인생활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됐다.
남흥화학을 후방사업의 ‘본보기’로 선전
북한의 후방사업에 대한 강조는 군대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군의 후방사업을 집중 시찰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어 6월에는 평안남도 안주시의 화학공장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남흥화학)를 방문해 공장.기업소의 후방사업도 강조했다.
김 제1위원장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는 후방사업도 만점이고 체육관, 수영장, 휴식조건, 생활조건도 모두 만점입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후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전경선 남흥화학 당 위원회 책임비서가 “후방사업을 사회주의 수호전으로 밀고나가는 데서 훌륭한 모범을 창조했다”며 그를 ‘당일꾼의 본보기’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전경선 책임비서는 지난해 조선노동당 이론지 《근로자》(제10호)에 <후방사업은 사회주의수호전이다>란 제목으로 직접 남흥화학이 후방사업에서 이룬 성과를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후방사업은 그 포괄범위가 매우 넓고 다양한 전투형식”이라며 “종업원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 하나만 보아도 거기에는 식량, 남새, 고기와 알생산으로부터 기지건설과 정상적인 운영, 공급체계를 세우는 문제를 비롯하여 생산과 건설, 경영 등의 복잡한 문제들이 수없이 얽혀 있다”라고 지적한 후 남흥화학에서 이룬 후방사업의 성사를 적시했다.
“알곡 수천t을 생산할 수 있는 수백 정보의 농경지, 방대한 면적의 태양열온실과 많은 남새(야채)를 생산할 수 있는 수십 정보의 남새밭, 각종 고기의 많은 건사료를 생산할 수 있는 축산기지, 기초식품생산기지, 여러 척의 고깃배를 가진 수산기지, 여러 정보의 과수원, 자체로 살아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생산기지들, 2,500여 세대의 살림집과 현대적인 문화후생시설들… 이 모든 것은 어떤 조건에서도 끄떡없이 종업원들의 물질문화생활을 공고하게 담보할 수 있도록 전망적으로 타산되고 단계별로 실현되여온 기업소의 자체생활토대이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남흥화학은 비료생산이라는 본업 외에 자체적으로 농사도 짓고, 야채.고기.과일 생산을 위한 온실, 축산단지, 과수원 등을 자체적으로 운영해 근로자들의 식생활을 보장하고 있다. 이 같은 모범사례를 다른 공장.기업소에도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북한 당국의 복안인 셈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버섯재배와 어획량 증산에서 일부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7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534군부대 산하 1116호 농장에 새로 건설된 버섯공장을 현지시찰하면서 “버섯공장을 많이 생산해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풀라”고 지시한 것을 계기로 양강도 혜산, 라선직할시 등에 버섯공장을 완공했고, 함흥시를 비롯해 평안남도와 황해북도 등에도 버섯공장을 건설 중에 있다.
고아원과 양로원을 위한 수산사업소 조직 지시
지난해 12월 군부대에 수산물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한 ‘인민군 수산 부문 열성자회의’를 건군 이후 최초로 개최한 북한은 올해 들어서도 수산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 초 고아와 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수산물을 공급하는 수산사업소를 군대에 만들라고 지시했다.
김 제1위원장은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이 새로 건설한 수산물냉동시설을 시찰한 자리에서 “전국의 육아원, 애육원, 초등 및 중등학원, 양로원들에 1년 365일 하루도 번지지(빼놓지) 말고 물고기를 공급해주는 사업을 인민군대가 맡아 하자”며 육아원 등에 물고기를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수산사업소를 조직하라는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했다.
김 제1위원장이 고아들과 노인을 위한 수산사업소의 신설을 지시한 것 역시 주민 생활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대가 나서서 취약계층을 위한 수산사업소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내각이나 기업소가 운영하는 수산사업소가 낙후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군대 수산사업소와 사회 수산사업소의 어업 실적이 큰 차이가 난다며 “경제부문 일꾼들이 조건타발(투덜거림)을 앞세우면서 인민군대처럼 당의 사상관철전, 당정책옹위전을 힘있게 벌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군부대가 “군인생활 문제를 푸는 데 선봉대”가 될 뿐만 아니라 공장.기업소의 후방사업에도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게 북한의 경제현실인 것이다.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북한은 ‘사회주의 문명국가’를 내세우며 평양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편의봉사, 문화시설을 확충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인라인스케이트장, 유희장, 극장.영화관, 전문상점 및 슈퍼마켓 건설 등이다.
취임 3년째를 맞아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군인생활 향상에서 획기적 전환”을 이룩하고 연말에 ‘인민군 후방일꾼대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올해 북한이 군인과 근로자들의 후방사업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