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Daum영화]

1452년, 세종의 맏아들이며 약 30년간 세자로서 세종을 보필하다 왕위에 오른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 만에 병사한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그리고 12살의 어린 왕이 왕위에 오른다. 어질고 학문을 좋아했으나 병약했던 문종의 단명을 염려한 세종은 일찍이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신숙주, 이개, 유성원 등에게 세손(世孫)의 보호를 부탁했다.

후일을 염려한 문종 또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에게 고명(顧命)을 내려 어린 왕세자의 보필을 당부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향한 수양대군의 거침없는 욕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는 집에서 급습당해 두 아들과 함께 철퇴로 격살(擊殺)된다. 이어 거짓 어명에 속아 입궐하던 영의정 황보인, 병조판서 조극관, 이조판서 민신, 우찬성 이양 등이 궐문에서 죽음을 당한다. 그들에게는 안평대군을 추대해 역모를 꾀했다는 죄명이 들씌워졌다. 문인들의 신망을 받던 안평대군은 곧바로 강화로 귀양 조처되었다가 후에 사사(賜死)된다.

정변의 피바람 끝에 이제 세상은 수양대군 천하가 되었다. 무시무시한 하루였다. 이것이 바로 계유정난, 요샛말로 하면 수양대군의 쿠데타 전말이다.

무력으로 반대파를 제거하고 조정을 장악한 수양대군의 이후 행보는 말이 필요 없다. 스스로 영의정에 올라 전권을 장악했으며, 지방관까지 교체하며 세력을 공고히 하였다. 수양대군의 요구에 따라 측근인 금성대군을 비롯하여 숱한 종친과 신하들을 유배시킬 수밖에 없었던 어린 왕은 구중궁궐에 고립되어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 왕위를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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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세운 정권은 피로 지킬 수밖에 없다. 세조는 동생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어린 조카 단종을 비롯하여 수많은 정적들을 살해하며 무자비한 철권 통치를 폈는데, 후대의 사가(史家)들은 이 시기를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왕권이 강화되었던 때로 신생 국가 조선을 안정시켜 500년 역사를 이어나갈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세조의 공과를 논함은 기실 어불성설이다. 세조의 치적이란 상호 병렬적인 것들이 아니라 쿠데타의 성공을 전제로 가능했던 것들이다.

즉 원인 무효의 행위들에 대해 무슨 공과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했으니, 세조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어린 왕 단종이 왕의 자리를 보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든지, 세조가 아니었다면 조선이 그렇게 빨리 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잡기 어려웠을 것이라든지 하는 가정들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할 뿐, 우리 앞에 놓인 명백한 역사적 사실은 오직 하나, 세조는 쿠데타를 통해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 속 모든 쿠데타가 그러하듯이, 명분 없는 야망은 없게 마련이다. 불법 부당하게 권력을 찬탈한 인물치고 오로지 개인적 야망 때문에, 권좌를 탐내서라고 이야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의 야심이 현실 속에서 무능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계도, 세조도, 그리고 현대사의 사례에 이르러서도 성공한 쿠데타가 이룬 치적에 대해 ‘업적’이란 표현은 가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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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 계유정난이라는 난세에 휩쓸린 한 관상쟁이 이야기이다. 관상이든 사주든 현재의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하는 것은 살기 힘든 현실 속에서 느끼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정보란 기실 과거로부터 축적된 데이터베이스일 터, 어떻게든지 미래의 불운을 피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 알량한 정보에라도 의지하고파 자신을 점집으로, 관상쟁이 앞으로 이끌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결론부터 말하면, 조선 최고의 관상쟁이는, 자신이 조선 최고의 관상쟁이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피해 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운명론’인가. 관상쟁이를 동원해서라도 수양대군의 야욕을 막으려 했던 김종서의 실패나, 몰락한 양반의 후예로 조용히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던 아버지와는 달리 운명을 거슬러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펼쳐 보려 했던 진형의 죽음은 얼핏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수긍으로 읽힌다.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힘 앞에 보잘것없는 존재인 인간의 몸부림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한만을 남긴 채 파국으로 막을 내린다. 이런 면에서 영화 ‘광해’가 웃음과 감동 속에 왕의 자질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담아냈던 데 비해 ‘관상’에서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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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선 최고의 관상쟁이가 왜 자신의 운명을 읽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영화의 결론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영화는 그 이유를 비극의 당사자 내경의 입을 빌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관상이나 손금은 한 번 정해지면 바뀔 수 없는 사주와는 다르다. 오랜 세월 흘러내리는 강물의 흐름이 강가의 지형을 조금씩 바꿔 놓듯이 사람의 신체에 시간의 흔적이 새겨지며 타고난 골격이나 피부의 굴곡은 조금씩 달라져 간다. 살아온 환경, 삶의 이력, 가치관, 감정 등이 새겨져 얼굴에 깊이가 생기고 특유의 표정이 고랑져 주름을 만든다. 그래서 젊어서의 얼굴은 유전적 형질에 좌우되지만, 중년을 넘기면 대체로 윤곽이 엇비슷해지면서 표정이나 분위기가 도드라지게 된다.

한 시대의 흐름과 그 시대를 겪어온 사람의 역정(歷程)이 그의 손이나 얼굴에 아로새겨져 손금이 되고 관상이 된다면, 우리가 그것을 통해 읽는 것은 그의 과거의 행적이요, 점치는 것은 그 행적이 가져다 줄 그의 미래일 것이다. 즉 그가 처한 상황에서 그가 살아온 삶의 방향을 읽으면 그것이 곧 ‘운명’인 것이다. 그리고 삶이 방향을 틀면, 운명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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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경이 조선 최고의 관상쟁이로 인정받게 된 계기가 관상으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아낸 일이다. 여인의 관상은 젊어서 비명횡사할 상이 아니건만 여인과 상극의 상을 지닌 남편을 만나 여인의 운명은 뒤바뀌어 버렸다. 관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가 관상을 지배하고 운명을 바꾼 것이다.

역으로 한명회는 부관참시를 당함으로써 결국 '목이 잘릴 상'이라는 관상이 적중하게 된다. 그는 ‘목이 잘릴 상’이라는 관상을 듣고도 목을 자르러 오는 사람을 막을 생각만 했지, 목이 잘릴 만한 일로 점철된 자신의 행적은 돌아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관상이 예언하는 운명이란 수많은 현실적 변인 속에 놓인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운명은 갈리기 시작한다. 관상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역모를 예방하려 한 김종서의 노력은 관상을 조작한 한명회의 지략에 밀린다. 역심(逆心)을 먹은 수양이 옆에 둔 것은 지략가이지 관상가가 아니었다. 대신 그는 장안의 관상가를 다 모아놓고 칼로 자신의 관상을 보고, 자신에게 협력하지 않은 관상가에게 협박과 보복으로 그 관상을 비웃어줌으로써 관상을 지배한다.

운명을 체념하지 않겠다고 발버둥친 진형은 황포정사가 낳은 폐단만 보았지 그것이 수양을 견제하는 유력한 방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정치적 안목은 없었다. 진형을 도우려던 팽헌은 진형의 억울함만 생각했을 뿐 정작 정치적 역관계 속에서 김종서를 제거하는 것이 자신들의 입지도 파멸로 몰아 갈 것임은 따져 보지 못했다.

파도만 보고 그 파도를 막으려 한 이들은 결국 바람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 눈치로 관상을 대신하는 연홍의 영리함은 본능적으로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감지하고,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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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을 읽는다는 것이 시류에 영합한다거나 얄팍한 대세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격랑이 넌 누구의 편이냐 물을 때, 신하의 도리를 지키려는 김종서의 강직함과 불의와 부정에 맞서는 올곧은 관리가 되려는 진형의 순수함을 보면서 내경은 잠시나마 흔들린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내경이 후회하는 것은 이러한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눈앞의 관상만 믿고 교활한 술수에 농락당한 자신의 어리석음과 현실의 복잡한 정치적 지형을 읽지 못하고 수양의 야망에 안이하게 대처해 일을 그르친 자신의 순진함이다.

파도를 몰고 오는 바람의 복잡한 기류를 간파해야 파도를 피할 수 있는 법이다. 천재 관상가의 뼈아픈 실책은 역사를 관통하는 큰 바람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통찰력과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하게 심술을 부리는 바람의 복잡다단함을 꿰뚫어보는 지혜로움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영화는 관상을 소재 삼아 역으로 관상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바람 없는 바다가 없듯이 평범한 개인에 불과한 이 땅의 민중들에게 어느 시대인들 난세 아닌 때가 있었을까. 역사의 파고(波高)가 높아질 때, 자식을 위해서라면 두 눈을 파내도 좋을 아비들, 자식한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던 아비들의 소박한 소망은 무력하게 좌초되었을 터, 내경 일가의 비극을 목도하는 것은 애달프고 숙연한 일이다.

(10일 오전 10시 47분 내용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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