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반출됐다가 120여년 만에 귀환해 경매에 출품된 ‘해상군선도’가 26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 본사 경매에서 6억6000만원에 국내의 한 수집가에게 낙찰됐다.

파도와 구름을 배경으로 신선들을 그린 10폭 병풍 ‘해상군선도’는 구한말 고종이 1887년 건립한 한국 최초의 무역회사 세창양행 창업주였던 독일인 칼 안드레아스 볼터에게 하사한 그림으로 출품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국민일보 2013년 6월 12일자 24면 참조)
이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에는 작가를 알 수 있는 서명이나 낙관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 그림이 김홍도가 그린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이런 추정의 배경에는 김홍도의 팔선도(八仙圖)와 구도가 비슷하고 이런 정도의 화면을 연출하고 그려낼 수 있는 화가가 김홍도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김홍도라고 하면 으레 “씨름, 무동(舞童)”과 같은 풍속화를 떠올리지만 사실 김홍도는 인물, 산수, 동물, 꽃과 새 따위를 가리지 않고 잘 그렸던 화가이다.
특히 ‘신선도(神仙圖)’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여러 작품을 남겼다.
김홍도가 ‘신선도(神仙圖)’를 많이 그렸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깊다.
알다시피 조선은 주자성리학을 지배사상으로 하여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렴’이라는 실천 강령으로 ‘이상세계, 태평성대’를 추구했다.
유학(儒學)을 대표하는 공자, 손자, 노자사상에 주자는 없지만, 그렇다고 조선의 선비들이 오로지 주자의 성리학만 공부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거의 모든 유학을 공부했다.
‘신선도(神仙圖)’는 기본적으로 노장사상의 유학과는 별 관련이 없다. 오히려 도교(道敎)와 가깝다.
도교는 원초적인 민간신앙으로 주로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목적으로 한다.
신선들은 신성한 땅에서 살며 죽지 않는 존재들로 상징된다. 신선의 모습은 주로 백성들이 찾는 절집이나 무당집에 그려져 구복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김홍도는 도화서와 차비대령화원을 지낸 당대 최고의 화가였다. 또한 정조의 개혁정치와 깊은 관련을 맺은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김홍도의 신분과 역할을 생각할 때, 선비들의 사상과 별 관련이 없는 ‘신선도(神仙圖)’를 그리는 행위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신선도(神仙圖)’와 노장사상이 완벽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도교와 노장사상은 여러 부분에서 결합되어 있다.
선비들의 청빈은 ‘유유자적(悠悠自適)’으로 표현한다. 권력과 허영을 버리고 외딴 곳에서 글을 읽으며 소박하게 사는 것을 높은 경지에 오른 선비의 모범으로 보았다. 이런 모습을 마치 신선처럼 표현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 김홍도는 말년에 자신의 사는 모습을 그린 그림에 춤추고 있는 학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한마디로 신선같이 살고자 했다는 의미이다.
어쨌든 이것은 유연한 도교가 부족한 이론이나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장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인데, 반대로 김홍도는 민간신앙인 도교를 마치 노장사상처럼 보이게 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해상군선도의 뿌리는 요지연도(瑤池宴圖)에 있다.
요지연도는 서왕모가 주나라 목왕을 초대하여 연회를 여는 장면을 그린 신화그림이다.
서왕모를 주제로 한 그림에는 연회를 베푸는 모습과 각지의 신선들이 서왕모를 알현하려고 곤륜산 아래에 흐른다는 약수(弱水)를 건너오는 모습이 있다. 이것을 ‘군선경수반도회도(群仙慶壽蟠會圖)’라고 한다. 아무튼 원래는 별도의 그림이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이 두 그림이 하나로 결합한다.
해상군선도가 서왕모를 알현하고자 약수를 건너오는 신선들의 그림인 ‘군선경수반도회도(群仙慶壽蟠會圖)’에서 시작했는지, 아니면 두 가지가 결합된 요지연도에서 신선 부분만 특화시켜 그렸는지는 조금 애매하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보았을 때, 후자의 경우가 맞을 것이다.
곤륜산 아래에 흐른다는 약수가 깊은 물이라고는 하나 해상군선도에는 그 제목처럼 아예 바다로 표현되고 있다. 그림 속의 신선들도 멀리서 찾아오는 자세가 아니라 모여서 놀고 있는 모습에 가깝다. 이 그림을 궁중회화와 연결시킨다면 장생도의 인물화 판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각종 신령스런 동물과 장생도를 결합시킨 ‘서수장생도’와 비교해도 좋을 것이다.
인물이 들어가 있지 않은 장생도보다는 신선이라는 인물이 들어간 장생도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훨씬 직접적으로 수용이 된다.

요지연도(瑤池宴圖)는 상당히 정치적인 그림이다.
정조는 부족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선비나 백성들의 힘을 끌어당기고자 차비대령화원과 미술작품을 활용했다.
원래 그림은 강력한 주술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흔히 현대를 이미지의 시대라고 한다. 사람들은 반복된 이미지의 공세에 노출되고 그것은 곧 가치관이 된다.
사진이나 광고영상 따위는 모두 한 장의 그림을 바탕으로 한다. 영상은 1초당 29개의 그림을 겹친 것이다. 움직이는 그림은 현실처럼 보여 사실로 믿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진이나 영상이 없었던 조선시대에서 사람의 꿈이나 가치를 압축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미술작품은 백 마디의 말이나 수 백 권의 책보다도 강력했을 것이다.
정조는 학문의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책가도’를 통해 선비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다. 또한 도교와 불교의 냄새가 듬뿍 담긴 요지연도를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다.
요지연도에서 서왕모(마고, 삼신할미)는 백성들이 숭배하는 여신이고 주나라 목왕은 정조의 분신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조는 하늘의 부름을 받은 왕이 되는 것이다.
또한 병든 사람을 고치고 약자를 보호하며 불로장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다양한 신선들은 백성에 봉사하는 충성스런 신하들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요지연도에서 약수를 건너오는 신선의 모습만 특화하여 그림으로 그려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지연도는 상당히 복잡한 그림이다.
연회를 여는 장면과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오는 모습이 한꺼번에 표현되어 있다. 10폭의 그림이라고는 하나 이 많은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상대적으로 인물이나 각종 사물은 조그맣게 그릴 수밖에 없다. 요지연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화면의 대부분은 산이나 바다와 같은 배경이 차지하고 있다.
실제 사람들은 배경보다는 역동적이며 다양한 인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또한 인물중심의 그림은 화가가 기량을 발휘하는데 좋다.
도교는 일반백성들에게 널리 퍼진 생활종교였다.
신선은 곧 하늘님이고 부처이며 어르신이며 불로장수하는 이상세계를 관장하는 존재였다.
서왕모가 여신이기는 하지만 마고나 삼신할미보다는 현실감이 떨어진다. 또한 목왕은 귀족이고 양반의 상징이다. 반면에 신선은 특정 계급이나 관직이 없으며 백성들의 삶을 도와주는 존재이다. 백성들은 모두가 신선이 되고자 했다. 먹고 사는 근심이 없고 병들고 늙고 죽는 중생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영원의 삶을 꿈꾸었다.
신선도는 이러한 백성들의 요구와 화가의 표현문제 따위의 여러 요소가 반영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선비나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자했던 정조의 미술정치는 반대로 궁중회화의 정통성과 권위를 버린다. 궁중회화에 불로장생이나 부귀영화와 같은 백성들의 원초적 욕망이 결합한 것이다. 이런 과정은 고급문화가 대중문화로 흘러내리면서 생기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는 궁궐에 집중되어 있었다. 정조는 백성들의 힘을 원했고, 그 힘을 얻기 위해서는 뭔가를 내어 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백성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정조는 백성들에게 궁중회화에 압축되어 있는 이상세계라는 꿈을 주었다. 백성들은 정조에게 힘을 주는 대신에 장생도를 현실 속에 녹여내었다.
허접한 세화 정도에 머물던 백성들 삶 속에 장생도에서 녹아내린 숱한 상징과 형상들이 들어온다.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 학과 사슴과 거북은 장수의 동물로, ‘궁중모란도’는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수용된다. ‘책가도’는 학문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고 ‘책가도’ 속의 각종 기물은 소유욕에 불을 지폈다. 천상에 산다는 신선이 사랑방을 차지하고, 안방에는 화려한 꽃과 새가 노닌다.
그 결과, 백성의 꿈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다가왔다.
‘민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