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Daum영화]

서울 한복판에서 단 3분 만에 은행을 터는 무장 강도 사건이 벌어진다.
아무런 단서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치밀함과 백주대낮에 도심에서 벌인 대담함에 더해 단순히 현금을 노린 은행털이가 아니라는 사건의 복잡함에 경찰은 비상이 걸린다. 강도들이 노린 목표물과 범죄 수법으로 보건대 사건의 배후가 심상치 않으며 잘 조직된 범죄 조직의 소행일 것으로 짐작되는 바, 경찰 내 특수조직인 특수감시반이 투입된다.

이들은 경찰청에서 정복 근무를 하는 공개 조직이 아니라, 외부 건물에 사기업으로 위장하고 활동하는 비밀 조직이다. 최고의 능력을 지닌 엘리트 요원을 선발하여 첨단 장비를 활용한 수사를 벌이되 조직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는 은밀한 활동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내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일단 노출되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이들의 수사 활동은 잠복과 감시, 도청, 미행, 위장 접근 등 온갖 비밀스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이야말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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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말은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부훈(部訓)이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효과적인 국가 통제를 위해 그 해 6월에 창설한 것이 정보수집기관인 중앙정보부였다. 1980년에 국가안전기획부(약칭 안기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작고 강력한 정보 기관을 지향한다는 의도로 국가정보원(약칭 국정원)으로 개칭했는데, 이때 부총리급이던 안기부장의 직급도 장관급으로 낮춰 그 위세를 좀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원훈(院訓)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뀌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들어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다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재미있게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의 원훈이 국정원의 역할과 가치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것에 비해, 이전과 이후의 원훈은 ‘음지’나 ‘무명’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 기관의 활동이 갖는 비밀스러운 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시절 바뀐 원훈은 ‘자유와 진리’라는 추상적 목표를 덧붙여 이 기관의 비밀스런 활동에 누구 하나 토 달 수 없도록 쐐기를 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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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특수감시반의 모델은 국정원은 아니다. 국정원의 공식적인 주요 업무는 해외 정보 및 국내 보안 정보 수집으로 독립적인 위상을 갖는데, 영화 속 특수감시반은 경찰 조직의 일부로 그 업무 역시 경찰의 범죄 수사 활동의 일환이다. 경찰청 범죄정보과 안에 있는 감시팀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시반의 치밀한 활동은 자꾸 착시 현상을 일으키게 한다.

‘감시’보다는 ‘사찰’이란 단어에 더 익숙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미행, 도청 등 전방위적 감시 활동은 중앙정보부에서 국정원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의 전매특허였다. 반면에 ‘과학 수사’ 하면 떠오르는 것은 미국의 인기 과학 수사 드라마 <CSI> 시리즈이고, 현실에서 우리 경찰이 보여주는 수사 방식은 영화 <살인의 추억> 쪽에 가까워 보인다.

탐문과 가설, 피의자의 자백 같은 것들에 의존하던 관행에 더해 요즘은 종종 잡힌 범인 수갑 풀고 도주하기라는 새로운 양상까지 나타나 경찰에 대한 불신을 더해 주고 있으니, 영화 속 스마트한 감시반의 활약을 대입시키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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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놈을 쫓는 천 개의 눈’으로 표현되는 CCTV는 세상 구석구석을 감시하는 유력한 도구로서, 곧잘 사생활 침해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 현실에서는 ‘눈’ 대신 ‘귀’가 그 역할을 했다.

미국 국가안보국이 자국 및 세계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이버 감시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운영해 왔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38개 나라 대사관의 전화와 팩스를 도청하고 인터넷 망을 해킹해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공포가 현실화된 셈이다.

이렇듯 ‘감시’가 나라 안팎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실을 의식해서인지, 감독은 시사회 때 “경찰청 감시팀은 사생활 보호 등의 이유로 CCTV를 영화처럼 활용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영화 속 특수감시반의 대척점에 ‘그림자’라는 강력한 절대악을 세움으로써 보이지 않는 범인을 추적하는 보이지 않는 감시반의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림자 대 그림자의 대결인 것이다.

‘그림자’ 제임스에게 범죄는 그가 의뢰받은 ‘일’이다. 그 대가는 당연히 엄청난 돈이겠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일’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는 오직 ‘어떻게’에 집중할 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가리지 않는다.

단, 한 순간의 실수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 잘 알고 있는 그는 돈에 눈이 어두워 치고 빠지는 순간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 범죄를 추구하는 범죄 설계자 ‘그림자’ 역의 정우성은 약간 살이 붙어 더 다부져 보이는 인상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특수감시반 전체와 맞먹는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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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관객이 현실 속에서 갖는 불안과 우려를 털고 특수감시반의 활동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상황을 설정했다. ‘그림자’가 의뢰받은 범죄들은 기껏 돈 몇 푼 노린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분을 살 만한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지닌 것들이다.

부실 저축은행의 대표가 파산에 앞서 고객들의 자산을 빼돌린다. 압수 수색을 앞둔 회계 법인 사무실에서 공개될 경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모종의 자료들을 훔쳐 낸다. 증권거래소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주가 조작을 기도한다. 따라서 감시의 목적과 대상에 있어 감시반의 활동은 정당화된다.

지능적인 범죄 설계 전문가 제임스의 반대편에 서 있는 황 반장은 오랜 관록과 동물적 감각으로 감시반을 지켜온 인물. “원칙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건 민간인 사찰이 되는 거야!” ‘원칙’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가 사실은 감시반의 내부 고발자였음을 암시하는 내용은 ‘감시’와 ‘사찰’이 한끝 차이이며, 원칙을 벗어난 감시가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 영화가 그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시의 과정이 원칙을 지킨다면 감시반의 활동은 믿을 수 있다고 영화는 관객을 안심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의로운 감시반원들의 헌신성이 보태지면, 이 매끈하게 잘 빠진 범죄 추리극은 설득력 있게 완성된다.

익숙한 서울의 거리들이 근사한 스케일로 시선을 사로잡고, 몸을 사리지 않고 수사에 최선을 다하는 감시반원들의 분투는 긴장감 넘치는 범죄극에 인간미를 더한다. 관객은 다람쥐의 희생과 하윤주의 정의감, 황 반장의 따뜻한 인간성으로 감시반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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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인가? 그림자는 범죄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이 고독한 냉혈한을 나는 연민한다. 배후는 드러나지 않았다.

황 반장은 어떤가. 내부 고발자가 된 전직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조직을 떠났고, 겨우 29살의 나이에 간첩 혐의로 미국의 수배자가 되어 세계를 떠돌고 있다. 미국의 기밀문서를 위키리크스에 유출하여 미국의 전쟁 범죄를 폭로한 25살 청년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간첩죄와 반역죄로 재판 중이다.

황 반장은 앞으로도 자신의 양심과 원칙을 지킬 수 있을까? 그림자를 고용했던 이들이 그림자보다 좀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찾을 때, 이 유능하고 헌신적인 조직이야말로 최적의 대안이지 않겠는가, 지금 감시받지 않는 감시자들 국정원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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