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그림’은 선비들의 출세(出世)의 요구를 담은 그림이다.
조선시대 선비, 양반을 위한 그림에는 세 종류가 있었다.
문인화, 산수화, 출세그림이 그것이다.
문인화는 선비 스스로가 자기수양을 위해 그리는 그림이다. 그림의 형식이나 내용을 갖추고 있으나 자의성이 강한 주관적 그림이다.
출세그림은 선비에게 가장 현실적인 그림이다. 출세한다는 것은 곧 정치에 입문하여 학문적 뜻을 펼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학문적인 이상은 곧 ‘태평성대, 이상세계’의 구현이다. 그러니까 선비라는 존재는 ‘정치를 통해 태평성대를 구현하는 사람’이 된다.
산수화는 서양의 풍경화와는 다르다. 풍경을 소재로 삼고 있으나 그 내용은 ‘이상세계의 동경과 유유자적(悠悠自適), 풍류’를 담고 있다.

이 세 종류의 그림을 순서대로 연결하면,
‘자기수양(문인화)을 통해 성숙하면 출세를 통해 정치에 나서고(출세그림), 정치를 통해 학문적 이상인 태평성대(산수화)를 이룬다’가 된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이다.

▲ 문자유희를 이용해 연꽃에 ‘과거에 급제하다’는 상징을 부여했다. 갈대를 물고 있는 게, 두 마리의 잉어, 연꽃 아래 오리, 원앙, 두루미, 쏘가리 그림 따위는 모두 다양한 출세그림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연화그림은 대표적인 출세그림이다.
연화그림은 연꽃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연꽃이 출세그림의 주요한 소재가 된 것은 꽃의 생태적 특징이나 종교적 상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순전히 선비들의 문자유희의 산물이다.
연꽃을 뜻하는 연(蓮)이라는 글자가 연달아 연(連)과 발음 같고, 연꽃의 열매인 연과(蓮果)가 연과(連科), 즉 과거시험인 향시(鄕試)와 전시(殿試)에 연달아 합격하다는 의미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연꽃은 선비를 위한 선비의 상징이다.
연꽃과 더불어 오리, 쏘가리, 게, 두루미 따위를 함께 넣어 그린다. 물론 연꽃만 그려도 된다. 하지만 이런 소재들과 함께 그리면 그림의 내용은 증폭되고 화면의 구성이나 표현이 다채로워지는 장점이 있다.
연꽃과 함께 그리거나 독자적으로 그리는 오리, 쏘가리, 잉어, 게, 두루미 따위의 소재도 모두 출세와 관련이 있다.
오리는 한자로 압(鴨)이라고 하는데 압(鴨)이라는 글자 속의 갑(甲)은 ‘으뜸’이란 의미로 연꽃과 연결하면 ‘과거시험에 으뜸으로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는다.
쏘가리는 한자로 궐(鱖)인데 궁궐을 뜻하는 말과 발음이 같고, 게는 등갑을 가지고 있는데 등갑을 한자로 읽으면 ‘으뜸’이 되어 선택된 동물이다.
두루미는 일품(一品)의 뜻을 가지고 있어 최고의 벼슬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다.
이렇게 생태적 특성과 별 관련이 없는 소재를 선택하고 암호와 같은 문자유희를 사용했기 때문에 서로 뜻이 통하는 선비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속에는 선비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끼리끼리’의 생각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출세의 욕망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비들의 출세그림은 염치(廉恥)를 내포한 수준 높은 그림이다.

원래 연화그림은 한 폭의 작은 그림이다.
그러니까 한 폭의 단일 그림으로 완성된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선비가 출세를 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지만 정치는 돈과 권력이 나오는 곳이고 욕망이 꿈틀거리는 곳이다. 그래서 출세와 반대로 돈과 권력을 버리고 시골에서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도 선비의 커다란 미덕으로 칭송되었다.
출세그림보다 더 유유자적한 선비의 삶을 표현한 그림이 훨씬 더 많이 그려졌다.
출세를 하여 정치를 하는 선비의 요구도 정당하지만 반대로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선비의 모습도 아름답게 그려졌다. 출세를 하지 못하고 관직을 얻지 못하는 선비가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가 내포하고 있는 돈과 권력을 경계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출세를 담은 연화그림을 크고 화려하게 그려 장식을 하거나 남에게 자랑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손바닥만 하게 그려 책속에 숨겨놓거나 둘둘 말아서 보관했다. 이름 난 고관대작의 사랑방에서나 족자로 만들어진 출세그림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출세그림을 선비 자신이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부모나 친척 어른들이 선물을 했을 것이다.

원래 초기 연화그림은 대부분 수묵으로 그렸다. 수묵 자체가 선비를 대표하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색을 없애 청빈함이나 염치를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랬던 연화그림이 조선 말기로 들어서면서 8폭이나 10폭 따위의 병풍그림으로 바뀐다.
종이에 수묵으로 그리던 것이 수묵에 담채, 다시 수묵에 채색, 진채로 그려지고 재료도 고급스런 비단으로 바뀐다.
한 폭의 완결된 그림을 여러 폭의 병풍으로 변주해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궁중모란도’처럼 한 폭의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는 경우도 있으나 연화그림의 경우는 ‘궁중모란도’처럼 정형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그림이다.
정형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그림을 병풍에 맞게 크게 그리기 위해서는 여러 점의 독립된 작품을 이어 붙이는 방법 밖에는 없다.

▲ [연꽃을 중심으로 흩어져있던 출세그림을 한 곳에 모아 그린 연화병풍이다. 세속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요소가 비빔밥처럼 섞인다. 염치가 있는 선비그림인 연화그림은 조선이 망해가는 세월 속에서 염치가 없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출세는 태평성대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돈과 권력을 상징하게 되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그래서 초창기 연화병풍그림은 이렇게 각각 다른 연화그림을 이어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독립된 그림을 이어 붙여 그리다가 점차 연꽃이라는 동일한 중심소재로 통합하고 거기에 부분 소재를 통해 변화를 주는 형식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선비들의 은밀하고 염치 있는 연화그림은 그 빛을 잃고 대중화의 길을 걷는다.
대중화, 세속화 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가치는 하향평준화하고 비빔밥처럼 여러 가지 요소가 섞이고 융합한다. 그래서 가족, 장수, 부귀영화 따위가 연꽃그림에 따라붙는다.

연화그림은 선비들의 염치 있는 출세그림이지만 조선 말기에는 크고 장식적인 병풍으로 만들어져 드러내고 출세를 바라는 염치가 없어진 그림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선비나 양반들이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을 지키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조선은 이미 500년을 훌쩍 넘긴 노쇠한 국가였다.
새로운 사상이 유입되지 않았고 선비나 양반들은 관료주의, 보신주의, 자기반복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청나라를 통해 서구의 문물을 간접적으로 수용하고자 했으나 외세는 군함과 총칼을 앞세워 조선을 위협했다.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라는 선비의 덕목 대신에 돈과 허영과 사치이라는 재물 중심의 가치가 그 자리를 채웠다.

조선은 주자성리학이라고 하는 학문을 통해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사람을 규정하고 사회관계의 질서를 만들고 연결하는 모든 부분에는 엄격한 예법이 있었다.
선비는 지배계층으로 출세와 정치를 통해 이상적인 세상을 구현하는 존재이다.
선비는 밖으로는 엄격한 예법을 지키고, 안으로는 자발적 청빈과 염치를 통해 백성들과 동료 선비들의 존경을 이끌어 냈다.
이것은 정치적인 힘의 근원이었다.
모든 존경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자기 헌신, 희생으로부터 나온다. 존경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다. 100명의 사람들이 농기구를 들면 돈이 나오고 칼을 들면 무력이 나온다.
정치의 속성상 권력이 생기고 권력은 곧 재물을 만들어내고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권력은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라 자기 헌신과 존경으로부터 나왔다.
아무튼 선비가 정치를 통해 사회적 가치와 재부를 창조하지만 그 혜택을 백성과 나라에 돌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돌리면 사회적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정치의 향유자가 백성이어야 하는데 정치하는 자가 백성을 위하는 헌신과 희생이 없이 스스로 향유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정치가를 존경하고 따르지 않고 선비와 양반은 지탄과 원망의 대상이 된다.
지배계층인 선비와 양반이 무너지면 정치가 무너지고, 정치가 무너지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백성의 삶이 고단해진다.

옛말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글이 있다.
이 말은 정치인은 자신과 가정을 잘 다스려야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 말 속에는 ‘다스림’이 우선한다.
가정을 다스리고 정치를 하고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그 시작에는 ‘수신(修身)’이 있다.
수신(修身)의 요소에는 학문, 지식, 경험, 전문성 따위가 있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수신(修身)의 충분조건은 바로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고 다른 말로 ‘헌신과 희생’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하면 제가(齊家)가 되고, 백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면 치국(治國)이 된다.

출세그림인 연화그림을 독립적으로 해석하면 오해가 생긴다.
출세그림 앞에는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을 목표로 하는 수신(修身)의 ‘문인화’가 있고, 출세그림 다음에는 정치의 가치를 백성과 나라에게 돌리는 ‘평천하(平天下)가 있다.
희생과 헌신 없는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는 공염불이고 이상세계, 태평성대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지 못한 출세(出世)는 오히려 나라와 백성을 삶을 망치는 지름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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