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Daum영화]

영화의 줄거리를 처음 들었을 때 어이가 없었다. 이 무슨 시대착오적이고 황당무계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인기 웹툰이란다. 영화 보기 전 최소한의 정보는 가져야 할 것 같아 아이에게 장르가 무어냐고 물어보았다, 코미디인지 드라마인지 첩보물인지.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코믹한 요소가 많긴 하지만, 웹툰의 인기는 주로 강렬한 액션에 있으므로 액션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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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영화에서는 액션보다는 코믹과 휴머니즘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전반부에서 액션의 역할은 양념 수준이고, 후반부는 액션이 주를 이루지만 몸싸움의 역동성은 깔끔한 수준이고 스펙터클한 활극을 연출하는 데는 어설퍼 보인다. 첩보 영화로서의 긴박함이나 긴장감도 다소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개봉 19일 만에 650만 관객을 돌파하고 7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웹툰을 보지 않은지라 온전히 영화로서만 감상한 내가 보기에, 영화는 꽤 재미있다.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라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훈훈한 세 젊은 배우는 멋지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관록 있는 배우들이 포진하여 영화의 알맹이를 알차게 채워 준다.

영화의 재미는 거의 전반부에 집중되는데, 달동네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깨알 같은 에피소드들은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입히며 순간순간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특히 무시무시한 간첩이라는 존재의 본질과 달동네 바보, 백수건달이나 다름없는 오디션 지망자,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는 현존재의 허접함으로 인한 괴리감은 당사자들에게는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고 관객에게는 의외성의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의 재미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위대한’ 임무를 띠고 남파되었으되 현재는 ‘은밀하게’ 처신해야 하는 이들의 딜레마가 달동네 주민들의 일상과 얽힐 때, 전전긍긍하는 이들의 상황은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 와중에 주민들과 애환을 나누며 결코 동화되어서는 안 될 그들과 한 가족처럼 정이 드는 과정은 애잔한 감동을 준다. '위대한 임무'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간첩이 되기에는 너무 어린 그들의 풋풋함은 안쓰럽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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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위대한 임무’가 영화의 전면으로 떠오르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들은 북쪽에서 버림받는다. 남쪽에서도 이들의 처지를 방관한다. 삶과 죽음의 절박한 기로에 선 세 꽃미남 간첩의 고뇌는 연민을 자아내고, 영화는 여성 관객의 감상을 한껏 자극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초록색 추리닝을 벗어던진 김수현의 수트발과 복근이 제대로 시선을 사로잡고, 원류환에 대한 경쟁심 때문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던 리해랑의 쿨한 면모가 드러나며, 원류환을 동경하던 리해진에게는 살짝 동성애 코드가 엿보임으로써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반부의 이야기 전개가 촘촘한 데 비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이 후반부는 얼개가 엉성해진다. 생존 여부를 확인해 주는 캡슐이란 설정은 좀 유치해 보이고, 남쪽의 국정원 직원은 인정에 끌려 본분을 망각한 행동을 하며, 북쪽의 특수부대 교관은 자신의 분신 같은 부대원들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이 정형화된 선악 구도의 인물들과 비현실적 상황 전개는 세 꽃미남 간첩을 궁지에 몰아넣고 이들의 안타까운 최후의 비장미를 더욱 극적으로 고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내용은 오히려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영화는 만화로 추락하고 만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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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본 이들은 영화의 싱크로율이 거의 100%라고들 한다. 전반부의 현실감이 웹툰의 탄탄한 이야기 구조의 덕을 본 것이라면, 후반부의 빈틈은 웹툰을 다 옮기지 못하고 놓친 부분에서 발생한 게 아닌가 한다.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의 경우, 원작의 존재는 영화에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영화는 영화적 완성도를 추구하며 원작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어쨌든, 일단 영화는 성공했다. 이 영화의 흥행을 보면서 나는 문득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늑대의 유혹>과 <늑대소년>. 상투적이거나 환상적이거나 하여튼 스토리의 개연성은 부족하지만 강동원과 송중기라는 미모의 배우를 주연으로 삼아 흥행몰이를 했다는 점에서 세 영화는 일맥상통한다.

세 영화 모두 핫한 배우를 내세우고 그들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순정만화적 캐릭터에 태생적 비극성을 안김으로써 관객에게 연민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 흥행의 비결이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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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늑대의 유혹>이 비극의 원인을 불우한 출생과 불치병이라는 구태의연한 소재에서 찾은 데 비해, 최근의 두 영화 <늑대소년>과 이 영화의 비극은 그 근원이 ‘분단 상황’에서 배태되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 상황에서 살인 병기를 개발하다 태어난 늑대소년이 개발 계획의 폐기와 더불어 제거 대상이 되듯이, 분단이 낳은 남북한 적대 관계가 탄생시킨 괴물 같은 인간 병기 부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라져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이제 분단은 극장에서 아무 때나 등장하게 되었다. 영화에 새겨진 분단의 낙인은 모든 비인간성의 원천이요,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고 있는 비극의 근원이 된다. 우리는 분단의 피해자이다.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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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단에 의식이 가위 눌린 외에, 우리는 분단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영화는 분단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특수부대처럼 남쪽에도 북파의 밀명을 위해 양성하는 특수부대가 현존하고 있음은 얼마 전에 TV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우리 역시 잔혹하고 무자비한 훈련을 통해 적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한 인간 병기를 길러내고 있다. 현실에서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분단은 남북 모두에게 비인간적 상황을 강요한다.

분단 상황에 대한 성찰 없는 피해자 의식은 더 나아가 현실을 오도한다. 현실 속에서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정치 공작을 일삼으며 내부 고발자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국정원의 행태는 북쪽에서 버림받은 간첩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조직의 명령조차 거부하는 숭고한 휴머니즘의 발현으로 대체된다.

북의 첩보원은 간첩이라면 으레 기본이 되어야 할 높은 정치 사상적 무장은 고사하고,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졌다’는 광고 문구처럼 불우한 출생을 만회하기 위해 공작원이 되었으며, 부모의 영달을 위해서거나(원류환) 개인적 콤플렉스에 대한 인정 욕구에서거나(리해랑) 사춘기적 감수성에 의한 동경심에서(리해진) 간첩이 되었다.

한 마디로 비현실적인, 함량 미달의 간첩들이다. 그러다 보니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 맞서는 이유조차 분명치 않다. 스스로 변절자가 아니라고 외치지만, 맹목적으로 명령에 따르는 간첩들이나 합리적 이유를 대지 못하고 상황을 관망하는 이들의 망설임이나 주체적 판단과 의지가 결여되어 있긴 마찬가지이다. 이 생각 없는 간첩들은 북을 판단하는 우리의 의식을 보여준다. 대화는 개뿔.

▲ [사진출처-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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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비극의 원초적 시발점은 분단 상황이지만, 그것이 비극으로 실현되는 것은 분단 상황의 변화이다. 변화가 비극을 가져오는 것이다. 살인 병기 계발 계획의 중도 폐기도 살인 부대의 해체도 남북 간 긴장 완화와 관련이 있다.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첩보원의 비애를 초래하는 상황은 영화 <베를린>에서도 발견된다. 분단이라는 비인간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또다른 비인간적 상황을 부르는 것이다. 왜 정부의 실책을 인정하고 늑대소년에게 새 삶을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으며, 남파 공작원들을 귀환시켜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시대 변화에 걸맞는 새로운 직장에 배치하지 않는가.

이 이성적, 논리적으로 해명되지 않는 비극적 상황의 설정에는 남북 화합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다 정략적 의도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불신이 엿보인다. 나아가 분단 체제의 변화에 대한 불안감을 깔고 있고, 이는 현실 속에서 수구와 퇴행의 편에 서게 된다.

영화의 흥행이 세 남자의 순수하고 인간적인 매력, 그들 사이의 우정과 의리에 감응한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흥행이 분단을 파먹고 자라는 우리의 의식과 궤를 같이할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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