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미술작품은 시각적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을 그리든, 풍경이나 동식물과 같은 자연물을 그리든 관계없이 미술의 소재는 모두 상징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의 얼굴을 그린 그림은 ‘노동하는 존재’ 혹은 ‘정치적 주체’라는 상징이 담겨있으며 아름다운 풍경 그림에는 ‘민족애와 애국심, 자연합일, 유유자적’ 따위가 상징으로 녹아있다.
심지어는 조형요소인 선, 면, 색, 붓질 따위에도 상징이 붙어있고 사용하는 방법이나 기법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하기 도 한다.
이렇게 미술의 소재에 상징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의 화면으로 많은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조형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고 인간의 삶을 함축해 표현하는 예술의 원리이기도 하다.

시각적 상징은 미술이 사회와 소통하는 언어이다.
사람들이 미술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는 미술적 언어인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은 현실경험에 기반을 둔 언어를 사용하고 미술은 연역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연역적 언어는 일반사람들의 경험적 논리와 상식을 쉽게 무너트리고 추상적 언어는 정해진 답이 없는 해석의 영역이다.
상징을 사용하는 미술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꽃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무슨 꽃이구나.’라고 생각하면 헛수고를 하는 것이다.
부분을 보고 보이지 않는 나머지를 유추해야 제대로 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미술적 상징은 8할 이상의 내용을 바닷물에 숨긴 빙산의 일부와 같다.
그래서 미술과 같은 예술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나 자연에 대한 많은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술은 모두 상징을 사용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미술은 관념과 추상의 요소가 강하다.
그림에서 실제 사물의 모습과 다르게 표현할수록 추상성이 강해진다.
수묵화나 문인화는 추상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들의 그림과 혼동하면서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의 못 그린 그림과 전문 화가들의 추상적인 그림은 분명 엄격한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상징과 추상을 사용하는 것은 비슷하다.
어린 아이들은 세상을 상징의 형태로 이해하고 점차 나이가 들면서 쓰임새와 가치에 따른 구체적인 현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상징은 어떤 특정인이 만들지 못한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상징의 대상은 인간의 삶을 둘러싼 모든 사물이다.
인간과 주변 사물의 관계를 통해 복잡한 사연이 하나의 사물에 투영된다.
처음에는 주로 쓰임새나 생태를 기반으로 한 상징이 만들어진다.
같은 사물이라도 환경이나 삶의 방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상징을 가진다.
호랑이를 보는 상징은 제각각인데, 서양에서는 용맹과 전사, 왕의 상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액을 막고 귀신을 쫒아주는 상징으로 사용한다.
또한 장미꽃에 붙어있는 상징도 은총과 축복, 헌신, 회춘, 사랑, 경계 따위로 모두 다르다. 같은 내용이라도 투영하는 대상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경우도 있다.
사물에 붙어있는 좋은 상징이 시대가 달라지면서 나쁜 상징이 되기도 한다.
생태적 상징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유사한 요소를 통합하고 쓸데없는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쓰임새나 생태의 상징을 넘어선 보편적인 상징으로 발전한다.

보편적 상징은 민족이나 국가, 시대를 넘어서 모든 인류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편적 상징은 논리나 경험의 세계를 넘어선 직관의 세계이다.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그 의미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보편적인 상징을 생태적인 상징으로 해석하면 이해의 폭이 좁아지거나 오류가 발생한다.

▲ 안보영/십장생도/디지털회화/2013.
십장생도에 나오는 자연물과 동물은 생태적 특성에 따른 추론으로는 전혀 해석이 되지 않는다. 이 그림에서 장수(長壽)의 뜻을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해와 하늘, 바다, 구름, 바위산은 우주를 포함한 자연을 상징하고 동물과 식물은 모든 생명체를 상징한다. 이런 상징들이 결합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이상세계라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보편성은 흔해 빠진 일반성과 다르다. 모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추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진리를 뜻한다. [자료사진 - 안보영]

우리그림은 상징의 결합체이다.
좀처럼 내용을 알기 어려운 고도의 상징부터 실생활의 경험과 연관된 다양한 상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궁중회화의 경우는 보편적 상징을 사용했고, 대중그림인 민화는 사물의 쓰임새나 생태적인 상징을 주로 사용한다.
화가의 수묵화는 문자와 언어라는 추상요소를 활용한 상징을 주로 사용한다. 궁중회화와 민화의 중간쯤의 상징을 사용한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민화는 쓰임새나 생태적 특성을 이용한 상징이 대부분이라 보편성이 없다.
또한 화가들의 그림은 문자와 언어의 추상성을 이용해 상징을 만들어 생태적 상징의 한계는 벗어났으나 일반성마저도 충족하지 못해 가장 난해한 그림이 되었다.
조선시대 선비 외에는 전혀 알 수 없는 그림이라 이것을 해석하는 데만 약 100년이 걸렸다.

우리그림을 대표하는 ‘십장생도(十長生圖)’와 ‘궁중모란도’는 보편적 상징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십장생도(十長生圖)’에서 십(十)은 열 가지라는 뜻이 아니라 완성되었다는 상징 언어이다.
‘십장생도(十長生圖)’에 나오는 각각의 요소는 생태적 상징을 넘어서고 있다. 태양을 비롯한 하늘과 구름, 바다와 산, 바위는 우주를 포함한 자연을 상징한다. 소나무는 사철나무라는 생태적 상징을 넘어 나무의 총합이면서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의 상징이 된다. 대나무는 곧게 자라는 생태적 상징을 넘어 인간의 이상적인 정신세계를 상징하고 봉숭아나무와 불로초는 현실세계를 넘어선 선계(仙界)의 상징이다.
또한 하늘의 두루미, 땅의 사슴, 바다의 거북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의 보편적 상징이다.
그래서 ‘십장생도(十長生圖)’는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보편적 상징을 담은 그림이 된다.
소나무가 자라지 않는 나라, 두루미를 볼 수 없는 나라, 사슴에 다른 상징을 부여한 나라의 사람들이 생태적인 상징으로 장생도를 본다면 해석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생태적 상징에 연연하지 않고 작품을 감상한다면 온 세상의 생명들이 자연의 질서 속에서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궁중모란도는 모든 꽃의 총합이자 ‘생명의 만개(滿開)’라는 보편적 상징을 가진 그림이다.
궁중모란도의 모란은 모란꽃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 특징이나 상징을 훌쩍 넘어서 있다. 꽃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활짝 핀 상태’의 상징을 극대화시킨다. 옆으로 퍼져 자라는 꽃을 나무처럼 세로로 세웠고 꽃은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렸으며 생명점을 넣어 현실의 모란을 극복한다. 그래서 인간의 제한적이고 상대적인 욕망인 ‘부귀영화’를 넘어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의 풍요와 환희를 가지는 절대적인 가치로 승화시킨다.

대중그림인 민화는 이러한 궁중회화의 보편적 상징을 생태적 상징으로 녹여 낸 그림이다.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를 담은 장생도는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장수도(長壽圖)’로 좁게 해석하고 ‘생명의 만개’라는 보편적 상징을 가진 궁중모란도를 ‘부귀영화’라는 생태적 상징으로 해석한다. ‘사회적 생명을 가진 사람이 지극한 정치를 통해 얻은 정신적, 물질적 가치’라는 보편적 상징인 ‘수복(壽福)’은 ‘오래 살고 복락을 누리는 것’으로 바꾼다.
물론 이러한 상징 변화의 중심에는 화가들이 있다.
날짐승의 총합이자 신령스런 새인 두루미를 선비들에게 필요한 출세(出世)의 상징으로 바꾸어 표현하면 단단하던 장생도의 상징이 물렁해진다. 민화는 이렇게 물렁해진 두루미의 상징을 백성들의 욕망에 부합하는 ‘장수’의 상징으로 다시 변주한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백성들 사이에는 장생도의 원래 상징은 희미해지고 ‘장수와 복락’이라는 상징이 자리 잡는다.
온전한 장생도를 본 적이 없고 원래 뜻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장생도를 본다면 자연스럽게 ‘장수도’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다.
원래 문화는 고급에서 저급으로 흘러내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세속화를 겪는다.
세속화는 수준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사람들에게 깊은 철학적 내용이 함축된 궁중회화의 상징을 강요하여 이해시키는 과정은 쉽지 않다.
또한 대중들이 ‘장생’을 ‘장수’로 이해하는 일이 틀리거나 나쁘지도 않다.
‘장생’이라는 보편적 상징 속에 ‘장수’라는 생태적 상징이 포함되어 있으며 일반사람들의 현실적 요구와 쉽게 접목된다.

통일신라의 김유신 장군 묘에는 12지상(十二支像)이 둘러져있다.
12지상은 열 두 개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하나의 별자리가 다음 별자리로 이동하는 시간은 대략 2160년 정도라고 한다.
이 별자리 동물을 사람의 출생에 맞춰 ‘말띠, 원숭이 띠’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용 띠’인 사람과 ‘호랑이 띠’를 가진 사람이 만나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싸울 팔자라고 해석한다.
‘주역’에 나오는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에서 오행의 요소인 화수목금토(火水木金土)를 대중적으로 해석하여 화(火)를 가진 사람이 수(水)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사랑이 식는다고 풀어낸다.
우주의 운행원리나 철학적 개념을 동물의 생태와 연관시키고 물질요소의 특성에 빗대어 해석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요즘 그림모양에 따른 카드 점술(타로)이나 혈액형에 따른 성격구분 따위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 원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별자리 동물을 각 개인의 출생에 맞춰 결합함으로써 사람들은 거대한 우주질서의 일원이 된 자부심으로 얻게 되었고, 사주팔자에 음양오행론을 결합시켜 철학적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원본에서 비교한다면 수준이 떨어졌지만 대중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대중들의 생태적 특성의 경험과 상식에 따른 해석과 수용은 강력한 중독성과 확산성을 가진다.

보편적 상징과 생태적 상징은 서로 보완관계이다.
보편적 상징은 생태적 상징으로 출발해 오랜 세월동안 여러 상징을 통합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면서 정립된다. 이렇게 정립된 보편적 상징은 다시 자신의 몸을 녹여 수많은 생태적 상으로 분화된다. 분화되는 과정에서 기존 생태적 상징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다. 또한 보편적 상징을 녹여 변주하는 과정에서 사회문화적인 창의성과 다양성이 쏟아져 나온다.

‘생명’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다.
어떤 사상과 철학도 ‘생명’의 가치를 넘지 못한다.
모든 정치, 문화, 종교, 경제활동은 ‘생명의 존엄, 생명의 발전과 확산, 생명의 풍요’를 위한 수단과 방법일 뿐이다.
세상에는 ‘생명의 가치’를 다룬 수많은 예술작품, 미술작품이 있지만 보편적 상징을 획득한 작품은 거의 없다.
우리그림에 ‘생명’이라는 인류 보편적 내용과 보편적 상징이라는 조형성을 동시에 획득한 궁중회화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또한 궁중회화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인류의 소중한 미술적 재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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