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궁중모란도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꽃그림입니다.”

모란그림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그려졌다.
조선의 궁궐을 장식한 궁중모란도는 천년 이상의 세월동안 창작되면서 정형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된 그림이다.
단일 품종의 꽃그림이 이렇게 완성되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에도 엄청나게 많은 모란그림이 그려졌지만 완벽한 정형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 이지은/궁중모란도/디지털회화/2013.
궁중모란도에 나오는 모란은 현실의 꽃이 아니라 보편적 상징과 미술 조형성을 이용해 이상적이면서 모든 꽃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궁중모란도는 미술 조형적, 미학, 상징적인 면에서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궁중모란도는 주로 8폭, 10폭의 병풍으로 제작한다.
하지만 원래 궁중모란도는 단 한 점이다.
여러 폭의 병풍으로 만들어도 결국 한 점이 복제, 변주된 것에 불과하다.
한 점만 그려도 완벽하게 독립적인 작품이 되지만 여러 폭으로 복제, 변주하여도 독립적인 그림이 된다.
궁중모란도는 세로그림인데 병풍으로 만들면 가로그림으로 바뀐다.
세로든 가로든 상관없이 작품의 품격은 유지된다.

▲ 위-궁중모란도의 모란은 실제 모란의 생태적 특성을 넘어서고 있다.
아래-중국의 모란그림인데 궁중모란도와는 조형적으로 전혀 다르다. 부귀를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모란의 생태적 특성에 따른 화려함을 드러낼 뿐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모란은 꽃나무이면서 옆으로 펴져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궁중모란도는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
꽃의 색깔은 빨강, 노랑, 자주색, 흰색이라는 네 가지 색만 사용했다. 보통 하나의 모란 품종에는 같은 색의 꽃이 피기 마련이지만 궁중모란도에서는 여러 색의 꽃을 동시에 표현했다.
꽃은 활짝 핀 정면, 측면, 뒷면, 피기 직전 모습이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모란꽃의 시작과 끝을 모두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파리는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한 이파리에 앞면, 뒷면, 옆면의 모습이 통합되어 있다. 또한 모란 이파리 끝이나 가지 끝에는 실제는 보이지 않는 생명점, 즉 태점(胎點)이 그려져 있다.
어떤 작품에는 모란나무에도 태점이 그려져 있다.
이 모두는 궁중모란도는 현실의 모란꽃을 넘어 이상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징표들이다.

옆으로 퍼져 자라는 모란꽃을 세로로 세워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세로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바로 모든 생명은 하늘을 향해 위로 뻗는 보편성 때문이다. 하늘에는 암묵적으로 태양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세로로 그렸을 때 가로보다 훨씬 많은 꽃을 그려 넣을 수 있다는 조형적 필요가 있었다.

일단 바닥을 만들어 나무를 심고 세웠다.
이 과정을 통해 작은 꽃나무인 모란은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커다랗고 튼튼한 나무로 바뀐다. 여기에 마치 과실나무의 열매처럼 보이는 풍성한 꽃을 10여개 이상 그려 넣고 이파리를 풍성하게 넣는다.
꽃나무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크고 튼튼한 나무의 효과를 내어 원래 모란꽃이 세로인 것 같은 착시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궁중모란도는 원근과 명암이 없는 평면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밋밋하거나 가벼운 느낌이 아니라 풍성하고 깊은 맛의 시각적 효과를 내고 있다.
하나의 그림에 모란꽃이 많게는 열일곱 송이에서 아홉 송이까지 다양하다.
실제 하나의 모란나무에 이렇게 많은 꽃이 피지는 않는다. 하지만 많은 꽃을 넣음으로써 풍성한 느낌을 주고 다양한 느낌을 극대화했다.

꽃이나 나무줄기, 이파리끼리의 겹침은 거의 없다.
꽃과 꽃, 이파리와 이파리의 겹침을 만들지 않은 것은 원근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사물을 겹치면 앞과 뒤가 생겨난다. 많이 겹칠수록 앞과 뒤, 가깝고 먼 차이를 내기 위한 장치를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림은 복잡해지고 쓸데없는 조형적 요소를 투입해야 한다.
반대로 겹침이 없으면 시각적 풍성함과 다양함이 없어진다.
이런 모순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 조형방법이 바로 ‘반복’이다.
여러 색의 꽃은 앞면, 옆면, 뒷면 따위를 동시에 넣어 겹침이 필요 없도록 하였다. 이것은 우리그림의 조형적 특징인 확대원근법, 여러 시점 따위를 적용한 결과이다.
또한 이파리는 하나의 모양을 반복적으로 그려 넣음으로써 시각적 중독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무한 반복을 통한 시각적 중독은 작품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주어 작은 변화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이파리의 단순 반복이 꽃의 작은 변화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되는 치밀한 조형장치인 것이다.
이것은 모란꽃의 화려함과 풍성함을 극대화하면서도 안정성을 추구하려는 조형적 배치의 결과이다.

모란꽃이나 이파리의 형태는 선묘를 이용해서 흐트러지지 않게 잡았고 명암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꽃의 모양을 만들고 채색으로 보완했다.
모란꽃은 원래 종이처럼 얇은 꽃잎이 여러 겹으로 싸여 있다. 이런 모란꽃의 특성은 입체감을 내는데 아주 불편하다. 하지만 궁중모란도에서는 얇은 꽃잎을 도톰하고 둥근 모습으로 바꾸어 겹침으로써 입체감이 드러나도록 표현했다. 또한 이파리는 앞면에 뒷면을 붙여 두 개의 면을 만들어 입체효과를 낸다.
간단한 선묘만으로 사물의 형태와 입체감을 동시에 표현한 것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 모란그림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보편적 상징과 조형적 정형화를 거쳐 궁중모란도로 완성되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앞에서 궁중모란도는 완벽한 꽃그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궁중모란도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모란그림이라고 하지 않고 꽃그림이라고 정의한 것은 궁중모란도가 단일 품종의 모란을 넘어서서 모든 꽃그림의 총합이자 대표라는 말이다.
흔히 모란을 ‘꽃의 왕’이라고 부른다.
이 말이 모든 꽃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모든 꽃을 대표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궁중모란도를 보면 모란꽃을 몰라도 본능적으로 꽃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중모란도를 보고 모란꽃을 유추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는 이미 궁중모란도의 형식에 익숙해져 비슷한 모습만 보고도 모란꽃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궁중모란도를 본 적이 없는 외국인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마도 풍성한 꽃을 그린 그림이라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
궁중모란도의 모란꽃은 실제 모란과 닮지 않았다.
그것은 궁중모란도가 모든 꽃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을 이루는 요소인 꽃잎과 이파리, 꽃술, 꽃대, 줄기와 나무가 빠짐없이 그려져 있다.
모란은 꽃나무이고 다년생이고 겹꽃이면서 큰 꽃이다.
한해살이 꽃과 다년생 꽃나무에서 폭이 더 넓은 것은 다년생 꽃나무이다.
또한 꽃나무는 풀꽃을, 큰 꽃은 작은 꽃을, 겹꽃은 홑꽃을 포함한다.

꽃은 인간의 삶에 녹아들어 다양한 은유와 상징의 대상이 되었다.
꽃에는 생태를 이용한 다양한 상징이 붙어 있는데, 특히 꽃은 화려하면서도 시각적 자극을 주기 때문에 은총이나 복락(福樂) 따위의 부귀영화, 아름다운 여성이나 존경하는 사람, 맑고 깨끗한 순결, 사랑 따위를 상징한다.
꽃의 보편적인 상징은 꽃이 활짝 핀 상태에서 나온다.
꽃이 떨어지고 시드는 모습, 혹은 몽우리의 모습을 비유한 것도 있지만 결국은 활짝 핀 상태를 전제한 것이다.
은총, 복락, 부귀, 존경, 사랑 따위는 모두 생명의 유지와 확대, 발전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궁중모란도는 이러한 갖가지 꽃의 상징을 ‘생명의 만개(滿開)’로 통합한다.
‘생명의 만개(滿開)’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 전체가 생명력이 충만한 상태’를 말한다.
다양한 정치, 사상, 철학, 종교, 제도, 군사, 경제, 문화 따위도 생명을 풍부하게 확충하고자 하는 수단이다. 궁중모란도는 ‘생명의 만개(滿開)’를 통해 정치, 종교, 이념,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고 있다.

궁중모란도라는 개념은 일반 모란그림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했다.
일반 모란그림이 실제와 똑같이 재현한 그림이라도 궁중모란도와는 엄격한 차이가 난다.
모란의 생태적 특징을 정확하게 반영했다고 해서 궁중모란도란 이름을 얻는 것은 아니다.
궁중모란도는 모란꽃의 생태를 넘어 모든 꽃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상징을 통해 ‘생명의 만개, 생명의 이상’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중모란도는 ‘생명력이 충만한 이상세계’를 표현한 ‘십장생도’와 함께 우리그림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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