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 출세(出世)를 찾아보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됨’이라고 나온다. 현대적 의미로는 ‘돈과 권력을 가져 부귀를 누리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출세를 조선시대의 개념으로 정리하면, ‘선비가 유학적 이상을 펼치기 위해 관직(정치)에 나간다’라는 뜻이다.
선비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왕과 함께 조선을 이끈 지배세력이다.
선비는 주자성리학이라고 하는 엄격한 예법의 학문을 지배이념으로 삼아 태평성대의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모든 권력은 군사력이 아니라 학문에서 나왔다. 조선시대 당쟁은 군사적 싸움이 아니라 예법논쟁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은 인문학을 정치에 적용시킨 발전된 나라였다.
선비는 학문을 통해 이상세계에 대한 이론과 방법론을 공부했고 이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법은 관직에 나아가 정치를 하는 것이다.
선비가 관직을 얻어 정치를 하는 계층을 양반이라고 한다. 양반(兩班)은 ‘무반(武班)과 문반(文班)’을 합친 말이다. 선비와 양반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선비가 양반보다는 넓은 개념이다.
출세라는 글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세상에 나간다’가 된다.
그러니까 세상에 나아가지 않은 상태는 선비가 공부를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면 과거시험이나 음서(蔭敍)를 통해 관직을 얻어 사회적 활동, 즉 정치를 하는 것을 ‘세상에 나간다’고 하는 것이다.
출세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하면 ‘정치’가 된다.
출세는 학문을 하는 선비의 실천적 행동이다.
출세를 통한 정치의 수혜자는 선비 자신이 아니라 백성이다. 현대에서 출세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물론 관직을 얻으면 월급이 나오고 권력이 생긴다. 선비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재물이 필요하다. 선비가 공부를 한다고 국가에서 월급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관직을 얻지 못한 선비는 농사를 짓거나 다른 생계활동을 해야 했다.
선비나 농민도 모두 양민계급에 속한다. 양민은 모두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농민이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을 얻는 경우는 드물었다.
농민의 자식들은 오랜 시간동안 안정적으로 공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500여년의 역사에 농민출신의 과거시험 합격자는 2000여명을 넘지 못했다.
농민이 관직을 얻어 양반이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선비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든 선비들이 관직을 얻어 정치를 할 수는 없었다.
관직의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 반해 선비의 숫자가 항상 많았기 때문이다.
출세가 학문의 실천적 행동이고 동시에 생계의 수단이기 때문에 선비들은 관직을 얻기 위해 발버둥을 칠 수 밖에 없었다.
화가들은 이러한 선비들의 정치욕구를 반영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른바 ‘출세그림’이다.
하지만 선비들은 명분(名分)과 체면(體面), 염치(廉恥)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출세를 원한다고 하나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책을 읽고 시를 쓰면서 평생 공부만 하는 선비, 때를 기다리며 빈 낚시대를 드리우는 강태공의 모습 따위를 미화하고 본받고자했다.
화가들이 그린 ‘출세그림’은 출세에 대한 욕망을 간접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작품의 제목은 한편의 시를 떠올리게 하고, 작품 속의 형상은 마치 관직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유유자적함을 즐기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문자의 독음을 이용해 직접적인 의미를 숨기고, 형상을 통해 그림의 내용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림의 격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하나의 그림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여 풍부하게 하는 것도 우리그림의 특징 중 하나이다.
연꽃을 그린 그림을 ‘연화도(蓮花圖)라고 한다.
연화도는 선비들의 대표적인 ‘출세그림’이다.
그러니까 오로지 선비를 위한, 선비의 그림인 것이다.


김홍도와 심사정이 그린 연지유압(蓮池遊鴨)그림은 전형적인 선비의 ‘출세그림’이다.
김홍도의 그림의 크기는 책 크기 정도의 작은 그림이다. 아마 선비들이 책 속에 숨겨두고 몰래 보면서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심사정의 그림은 제법 큰 그림이다. 고급스런 비단에 담채방식으로 색을 칠했다. 아마도 족자로 만들어 선비의 사랑방에 걸었을 것이다.
연꽃과 오리 한 쌍, 버드나무가 그려진 이 그림을 보면서 선비들의 출세를 떠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 특성에 따른 상징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제목도 ‘연꽃이 있는 못에 오리가 노닌다’가 되어 마치 한편의 시를 연상시킨다.
김홍도의 그림에 나오는 버드나무는 선비들의 유유자적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보인다.
이 그림을 해석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한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은 그림의 내용을 해석할 수 없고 단순히 연꽃과 오리를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여길 뿐이다.
오리를 한자로 쓰면 압(鴨)이 된다. 압(鴨)이란 한자는 갑(甲)과 조(鳥)의 결합이다.
갑(甲)은 으뜸이란 뜻으로 장원급제를 뜻한다. 두 마리의 오리는 이갑(二甲), 즉 향시(鄕試)와 전시(殿試)에서 모두 장원급제를 하라는 의미이다.
또한 못에 핀 연꽃에는 당연히 연과(蓮果)가 있는데 연과는 연과(連科)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연달아 과거시험에 합격하다.’는 뜻을 숨기고 있다.
선비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차마 이런 그림을 직접 구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통은 과거시험을 앞둔 선비의 아버지나 친척들이 구입해 선물했을 것이다.
연꽃과 학을 그린 그림, 소나무, 해, 학을 함께 그린 송학도(松鶴圖), 연꽃과 게를 그린 그림, 여러 마리의 사슴을 그린 백록도(白鹿圖), 쏘가리를 그린 그림, 잉어그림, 닭과 맨드라미를 그린 그림 따위는 모두 ‘출세그림’에 속한다.
출세의 목적은 학문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정치에 있다.
정치의 목적은 태평성대이고 그 혜택은 모두 백성에게 돌아갔다.
출세를 개인의 영달(榮達)을 위해 수단으로 사용하는 선비는 비난을 받았고 관직에서 박탈되었다. 단지 관직에 박탈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생명이 끊어졌다.
선비는 염치(廉恥)가 있는 사람이다.
염치는 청렴하고 청빈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부끄러우면 체면(體面)이 서질 않고 체면이 서지 않으면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렵다.
정치를 위해 출세하는 것이 선비의 당연한 일임에도 재물과 권력을 경계하고 부끄러워했다.
출세그림은 선비의 유유자적, 욕심 없는 마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내면에 출세의 욕망을 숨겨둔 염치가 있는 선비의 그림이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