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화가는 대중그림인 민화가 발전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화가는 그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실기능력을 가지고 있고 아울러 선비계층과 연대하면서 학문과 지배철학을 체화하고 있었다.
위로는 궁중화원이 되어 조선의 이상적 가치를 담은 궁중회화를 창작하였고 안으로는 선비가 추구하는 세계를 수묵화로 그려내었으며 밑으로는 궁중회화나 수묵화의 가치를 현실적 요구에 맞게 녹여 화공들에게 넘겨주어 민화의 바탕을 만들었다.
화가들이 없었다면 민화는 액막이 그림인 부적이나 세화 수준을 넘지 못했을 것이고 대중그림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화가들은 지배계층인 선비와 양반의 취향에 맞게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 유학의 덕목’을 담은 수묵화를 주로 그렸다. 그림에 채색을 하는 경우에도 내용적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선비나 양반도 결국은 보편적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랐으며, 오래 사는 것과 많은 자녀를 낳기를 원했다. 또한 관직을 얻어 뜻을 펼치고자 했으며 나이가 들면 유유자적한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하기를 원했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수복(壽福)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 출세, 장수, 부부금슬, 화목한 가정, 우애, 편안한 노후, 액막이 따위는 모두 수복(壽福)을 위한 조건들이다.

중간-장승업/해노도(蟹蘆圖)/지본수묵/28*95/동아대 박물관.
우측-조지운 송학도/17세기 후반. [자료사진 - 심규섭]
선비들의 보편적 욕망은 ‘출세(出世)’로 집약되어 있다.
‘출세(出世)’는 ‘관직을 통해 유교적 이상을 구현하는 일’을 뜻하고 곧 ‘정치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화가들은 이런 선비와 양반들의 욕망을 정확히 알았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표현할 수는 없었다. 선비와 양반은 사회적 체면과 명분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출세(出世)’는 선비들의 존재가치이자 실천원리이고 욕망의 대상이었다.
선비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학문과 출세’는 언제나 한 몸처럼 움직인다. 선비의 보편적 욕망의 구현이라는 ‘출세’도 결국 ‘학문’의 형식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화가들은 선비, 양반들의 보편적 욕망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첫째, 궁중회화의 요소를 차용하는 방법이다.
궁중회화는 오랜 전통을 통해 검증되었으며 조선의 정치와 종묘사직이 있는 곳에 장식되어 있으며 공식적인 그림이다.
복합적인 상징과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는 궁중회화를 선비와 양반의 조건에 맞게 변주하면 체면과 명분을 세우면서도 기본적인 욕망을 드러낼 수 있다.
대표적인 그림은 ‘송학도(松鶴圖)’, ‘백록도(白鹿圖)’, ‘책가도, 책거리그림’,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따위가 있다.
위의 그림은 모두 궁중회화이거나 궁중회화에서 일부분을 가져와 변주한 그림이다.
장생도의 부분을 특화한 그림인 ‘송학도(松鶴圖)’, ‘백록도(白鹿圖)’는 출세와 장수라는 보편적 욕망을 교묘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해와 소나무와 학을 그린 ‘송학도(松鶴圖)’에서 붉은 해는 조정(朝廷)을, 소나무는 관직을, 학(鶴)은 일품(一品)이라 하여 높은 관직을 뜻한다. 여기에 붉은 해, 소나무, 학은 민간에서 장수의 의미로 사용한다.
여러 마리의 사슴을 그린 ‘백록도(白鹿圖)’도 ‘사슴 록(鹿)’이 관리의 녹봉(祿俸)과 발음이 같아 이중의미를 가진다. 장생도의 요소인 사슴은 장수를, 녹봉(祿俸)은 높은 관직을 뜻하니 ‘부귀영화와 장수’의 뜻이다.
또한 ‘책가도, 책거리그림’,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은 책과 문자라는 학문적 상징과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은 다양한 사물을 함께 결합하여 양반들의 사회적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
둘째, 중국의 고사나 신화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했던 중국의 고사(古事)나 신화는 대부분 ‘지조와 청렴’ 혹은 ‘풍류’의 가치를 담은 내용이다.
하지만 해석하기 따라 욕망의 구현이 내포되어 있는 그림도 있다.
‘신선도(神仙圖)’, ‘곽분양 행락도’, ‘요지연도(瑤池宴圖), ‘백동자도(百童子圖)’ 따위는 ‘풍류와 이상세계’의 뜻이지만 ‘출세, 부귀영화, 무병장수, 다산’의 뜻도 내포하고 있다.
셋째, ‘문자와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한 표현이다.
‘문자와 언어’는 학문의 바탕으로 하기에 선비들의 정서에 잘 부합된다.
‘언어의 유희’나 ‘문자의 유희’는 예로부터 글자를 알고 학문을 하던 사람끼리 소통했다.
읽은 소리를 독음(讀音)이라 하는데 같은 소리를 가진 다른 의미의 글자를 이용해 상징을 만드는 방법이다. 여기에 한자를 분리하여 해석하거나 같은 글자를 놓고 중국과 조선에서 발음하는 차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물고기 어(魚)는 남을 여(餘)와 발음([yu])이 같아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쏘가리의 한자음인 궐(鱖)이 대궐과 발음이 같아 출세를 뜻한다. 박쥐는 편복이라 하는데 박쥐 복자는 풍요로울 복(福)이나 부유할 부(富)와 발음([fu])이 같아 부유함을 뜻한다.
또한 ‘까치와 호랑이그림’에서 까치를 뜻하는 작(鵲)은 ‘기쁠 희(喜)’라는 중국식 발음과 같아서 차용되었고, 표범을 뜻하는 표(豹)는 중국에서 ‘bao’라고 읽는데 보답한다는 보(報)라는 말과 음이 비슷하여 ‘기쁘게 보답한다.’라는 뜻이 되었다.
고양이와 나비를 그린 그림은 고양이와 나비의 한자가 칠순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고희잔치의 선물용으로 쓰였다.
연꽃을 그린 그림은 연꽃을 뜻하는 연(蓮)은 연달아 과거시험에 합격한다는 연(連)과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선비들 방을 장식했다.
문자와 사물의 생태를 결합하여 새로운 뜻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게와 곡식의 줄기를 그린 그림은 이런 문자의 유희와 연관이 있다.
게를 한자로 쓰면 해(蟹)라고 한다.
각 지역에서 보는 향시(鄕試)에서 합격한 사람의 명단을 중앙 정부에 올려 서울의 과거에 응시하게 하는 것을 발해(發解)라 하였다. 해(解)와 해(蟹)의 음이 같고, 또 게는 등딱지가 갑옷처럼 되어 있어 과거에 갑제(甲第), 즉 1등으로 합격하라는 의미가 된다.
수탉과 맨드라미그림도 관직을 의미한다. 수탉의 벼슬이 모자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冠·guan)으로 읽고 관은 관직(官·guan)과 발음이 같다. 맨드라미(鷄冠花)도 마찬가지다.
사슴(鹿)은 봉록(祿)과 동음(lu)으로 여러 마리를 함께 그리면 ‘백록(百祿)’으로 ‘큰 월급을 받는 관직’의 의미가 된다. 심지어는 하얀 사슴(白鹿)을 그려놓고 ‘백록(百祿)’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문자를 읽고 해석하는 미묘한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암호와 같은 그림이 되어 버린다. 각각의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인 특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림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글장난, 말장난을 통해 만들어진 상징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선비와 양반의 취향에 맞추면서도 보편적 욕망을 표현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이다.
넷째, 각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 특성을 이용한 표현이다.
원앙은 짝을 지은 한 마리와 평생을 살아간다는 생태적 특성 때문에 ‘부부금슬’이라는 상징을 가진다. 씨앗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석류, 연꽃의 열매 따위는 다산의 의미이고, 매화는 이른 봄에 피는 생태적 특성 때문에 선비의 지조와 절개라는 상징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기러기는 따뜻한 곳을 찾아온다는 생태적 특징으로 ‘노안(老安)’의 뜻을 가진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선비들은 조선의 통치세력이었고 주류였다.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를 표현한 궁중회화나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라는 내용을 담은 그림이 높은 수준의 문화라 하더라도 백성들이 수용하기에는 간격이 너무 컸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현실과 삶에 맞는 그림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비화가들이 그린 철학적 그림보다는 선비들의 보편적 욕망을 표현한 그림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선비와 양반들의 보편적 욕망을 표현한 그림은 대부분 문자의 유희, 즉 말장난, 글장난을 이용한 것들이었고 백성들은 문자를 읽거나 쓸 줄 몰랐다.
조선 말기는 선비의 권위가 무너지고 백성들의 힘이 분출하고 있던 시기였다.
백성들은 선비들의 보편적 욕망을 담은 그림을 자신들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고 변주했다.
백성들은 사물이 가진 생태적 특징과 민간신앙을 이용하여 선비화가들의 문자 상징을 재해석하고 변주한다.
‘여유와 부귀영화’를 뜻하는 물고기는 많은 알을 낳는 생태적 특성을 살려 ‘다산’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또한 눈을 뜨고 잠을 자는 물고기 특성을 이용하여 도둑을 막는 열쇠를 만들기도 한다.
‘기쁘게 보답한다’는 뜻의 ‘까치와 표범그림’은 텃새인 까치의 생태적 특성과 벽사의 상징인 호랑이를 결합하여 ‘새해 액을 막고 좋은 소식만 들으소서.’라는 뜻으로 재해석한다.
‘높은 관직에 오르다’라는 뜻의 닭그림은 새벽에 울어 귀신을 쫓는 액막이와 암탉과 병아리를 함께 그려 가정의 화목이란 뜻으로 변주한다.
‘연달아 과거급제, 다산’의 의미가 있는 연꽃그림은 진흙에서 피는 연꽃의 생태적 특성과 연결하여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고 부귀영화를 누리다’로 바꾸고 ‘자연의 질서’를 담은 화조도(花鳥圖)는 ‘부부금슬과 사랑의 노래’로 이해한다.
특히 ‘출세(出世)’는 정치와 관련이 없는 백성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출세(出世)’는 ‘돈과 권력’의 상징으로 대체되었고 곧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가진 상징으로 바뀌었다.

아래-장한종/궐어도. [자료사진 - 심규섭]
생태적 특성과 보편적 욕망과 관계없는 사물은 선택하지 않는다.
또한 높은 관직을 뜻하는 학이 장생도의 상징을 빌려와 ‘장수’의 뜻이 되는 것처럼 애매한 사물은 모두 ‘수복(壽福)’의 상징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변주된 대중그림을 민화라고 한다.
같은 사물을 그리지만 그 뜻은 선비와 백성들에게 다르게 인식된다.
하나의 그림에 여러 뜻이 결합한 것이다.
사물이나 형상에 붙어있는 상징은 함부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
상징은 공동체나 집단의 가치나 정서가 함축되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다.
민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오랜 전통이 집약된 궁중회화이다. 장생도, 궁중모란도, 책가도, 문자도와 같은 궁중회화는 백성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그래서 침구, 가구, 식기, 의복 따위의 생활용품에 다양하게 접목되었다.
반면 문자의 유희나 말장난에 의한 선비들의 상징은 조선이 망하면서 동시에 사라졌다.
그래서 조선이 망한 이후 선비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제대로 해석하는데 약 100년의 세월이 걸렸다.
궁중회화에 담긴 뜻의 원형은 아무도 훼손할 수 없었다.
화가들은 궁중회화의 원형을 그대로 두고 문자의 유희를 통해 새로운 상징을 부여한다.
문자의 유희를 통해 만든 새로운 상징은 대부분 수묵화나 수묵담채화로 그려 궁중회화와 구분했다.
민화는 대부분 궁중회화의 상징을 수복(壽福)의 상징으로 한 단계 낮추어 수용한다.
이것도 궁중회화의 상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보편적 욕망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대중그림은 너무 복잡하거나 어려우면 안 된다.
단순한 도안과 명쾌한 내용, 그리고 이런 것을 하나의 화면에 비빔밥처럼 결합시켜야 한다.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궁중회화의 상징은 은폐되어 버리고 ‘수복(壽福)’, 출세, 다산, 가정화목, 액막이 따위의 보편적 욕망만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미술인 민화의 상징을 통해 반대로 선비들과 궁중회화의 높은 상징을 찾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궁중회화나 수묵화의 가치와 상징을 높이는 일은 민화의 가치를 높이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학문을 바탕으로 글자를 이용해 다양한 상징을 만들고 그 상징을 이용하여 많은 그림을 그렸다. 이런 그림들은 세화가 고작이었던 백성들에게 다양하고 풍부한 형식의 그림을 제공했다.
선비들이 사회적 체면과 명분을 유지하면서도 그림을 통해 보편적 욕망을 구현하고자 했던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