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은 ‘책가도’이고 궁궐을 대표하는 그림은 ‘일월오봉도’이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하나의 그림을 꼽으라면 단연 ‘장생도’이다. 또한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사상이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홍익인간 재세이화’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서 ‘홍익인간 재세이화’라는 개념은 생소했고 백성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하나의 글자를 꼽으라면 ‘수복(壽福)’을 선택할 것이다.
왕실의 가례나 혼인과 같은 행사에 사용하는 의복, 장신구에는 빠짐없이 ‘수복(壽福)’이란 글자가 그림에 들어갔다.
궁중뿐만 아니라 양반들과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수복(壽福)’만큼 많이 사용된 글자는 없다. 장신구, 노리개, 가마, 가구, 식기, 의복, 장롱, 보자기 따위의 생활용품에는 어김없이 ‘수복(壽福)’이란 글자가 문자그림형태로 그려지고 새겨졌다. 심지어는 뒷방 할머니가 사용하던 요강이나 담벼락에도 ‘수복(壽福)’이란 글자가 들어갈 정도였다.

‘수복(壽福)’은 ‘신의예지신염치(仁義禮智信廉恥)’, ‘충효(忠孝)’와 함께 문자도의 주요 소재였다. ‘신의예지신염치(仁義禮智信廉恥)’, ‘충효(忠孝)’가 조선의 핵심사상을 담고 있는 정치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라면 ‘수복(壽福)’은 삶의 핵심을 담고 있어서 시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다.
‘수복(壽福)’이란 글자에 여러 장식을 더해 그림을 그렸으며, 글자와 형상을 결합해 ‘백수백복도’를 창작했다. ‘수복(壽福)’이란 글자를 자유자재로 변형해 추상그림의 경지까지 올려놓았다.
우리민족은 그야말로 ‘수복(壽福)’에 빠져있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수복(壽福)’은 일반적으로 ‘부귀영화와 장수’를 뜻한다.
‘부귀영화와 장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속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오래 살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물질적 풍요보다는 청렴하고 청빈한 삶을 추구했고, 생물적인 수명보다는 사회적 수명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앞선 글에서 ‘백수백복도’를 설명할 때, ‘수복(壽福)’은 ‘사회적인 존재(壽)가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회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 내는 정신적, 물질적 가치(福)’라고 해석하고 백(百)은 100개의 글자가 아니라 ‘완성’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목숨을 뜻하는 명(命)이 하늘에서 받는 수동적인 목숨이라면 수(壽)는 사회 속에서 구현되는 능동적인 목숨이다. 나쁜 짓을 하면서 오래 살거나 중환자가 되어 오랫동안 연명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반면 짧은 세월을 살아도 가치 있는 목숨이 있다.
사람의 수명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규정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복(福)은 일반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뜻한다.
하지만 원래의 뜻은 ‘제사’이다.
[福(복)자는 示(시)는 祭祀(제사)를 뜻하는 글자로 첫劃(획)은 祭祀(제사)때 받치던 家畜(가축)을, 2~3劃(획)의 고무래 정(丁)字(자) 비슷한 部分(부분)은 祭壇(제단), 그리고 나머지 4~5劃(획)은 家畜(가축)에서 떨어지는 핏물을 뜻한다. 나머지 部分(부분)은 술병의 모습이다. 甲骨體(갑골체)나 小전體(소전체)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복자(福字)는 제사(祭祀)의 뜻이다.
중국 후한시대(기원후 3세기) 한자의 연원을 밝혀 놓은 최초의 책 ‘허신의 설해문자’에 보면
시(示)는 신명께 제사를 드리는 형상이고 찰 복(畐)은 술이 가득 찬 호리병의 형상이라고 한다.-인터넷에서 검색하고 발췌]

그러니까 복(福)을 원형 그대로 해석하면 ‘풍성한 제물로 하늘, 신령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다’가 된다.
한자를 해석하는 사람 중에는 복(福)이라는 글자가 제사를 지내고 하늘이나 신령으로부터 음덕을 받아서 풍요롭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늘이나 신령에게 받는 ‘은혜나 축복’은 제사가 끝나고 난 후의 문제이다.
제사를 지낸다고 하늘에서 귀한 재물이 떨어질 리는 없다. 재물과 권력은 모두 인간의 노동과 사회적 활동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제사는 수동형이 아니라 능동형이다.
제사는 인간의 가치와 하늘의 가치를 통합시키는 행위이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 어떤 가치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의 행동과 실천을 의례로 만든 것이 곧 제사의 형식이다. 풍성한 제물을 받치는 것은 사람의 의지를 뜻한다.
하늘의 뜻을 묻는 것은 사람이 하는 행위에 합리성과 절대성을 부여한다.
‘수복(壽福)’을 능동적 행위로 보는 것과 수동적 행위로 해석하는 것의 차이는 아주 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장수와 풍요’를 누리겠다는 발상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남녀노소, 왕족과 선비, 농민 할 것 없이 모두 ‘행운’만 추구했다면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망했을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왕이 거처하며 정치를 한 궁궐을 ‘경복궁(景福宮)’이라고 불렀다.
‘경복(景福)’의 뜻이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토록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잘못 해석하면 왕과 왕족이 큰 복을 받는 곳이 되어버린다.
사회가 부패하는 것은 ‘밥은 자기가 먹고 밥값은 남에게 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절에 일제가 도로와 전기, 철도, 공장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발전한 것이라는 일본 관리의 말은 망발이다. 일제가 철도와 공장을 만든 것은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발판이었지 조선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밥은 일제가 먹었는데 우리더러 고마워하라는 것은 정말 나쁜 놈이다.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라고 권력을 주었는데 권력을 통해 자신의 이익만 챙긴 정치인을 우리는 ‘나쁜 정치인’이라고 한다. 권력을 이용해 밥은 정치인이 처먹고 국민에게 밥값을 내라고 하는 것은 일본 관리의 망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정치의 수혜자는 언제나 백성과 국민이다. ‘수복(壽福)’의 수혜자도 왕과 선비가 아니라 백성이었다.
‘경복궁(景福宮)’은 왕과 왕족, 혹은 양반들이 큰 복을 받는 곳이 아니다.
경(景)은 볕, 햇빛, 밝음이란 뜻으로 공간의 개념을 들어가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경치(景致), 경제흐름을 말하는 경기(景氣) 따위는 모두 보이지 않는 공간과 흐름을 의미한다. 이것을 ‘크다’는 뜻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햇볕이 내리쬐는 세상, 이상적인 세계’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복(福)은 제사를 뜻하니 경복궁은 ‘제사를 통해 이상적인 세계를 구현하는 곳’이라고 의역할 수도 있다.
물론 제사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뜻하고 정치의 수혜자는 백성이다.
경복궁은 큰 복을 받는 곳이 아니라 큰 복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조선은 학문의 나라였다. 주자성리학의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라는 사상을 구현하여 500년 이상을 발전시켰다.
무장(武將)출신의 태조 이성계와 달리 태종 이방원은 사병을 거느린 호족들을 혁파하여 문민정치의 길을 닦았고 사찰에 얽매여 농노(農奴)의 굴레에 있던 농민을 해방하여 양민으로 만들었다.
선비들은 반도의 특성상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끊임없는 침략에도 종묘사직을 유지하는 뛰어난 정치력을 보여주었고 부족한 자원과 좁은 땅에서 청렴을 바탕으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켰다. 이것은 행운을 기다린 결과가 아니라 치열한 사회적 실천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또한 수복과 경복의 수혜자가 백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민족만큼 ‘수복(壽福)’에 미쳐있는 나라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에서는 어딜 가든 수복이란 글자를 볼 수 있다. 의복이나 식기, 가구와 같은 생활품, 장신구나 노리개와 같은 공예품에도 수복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고 성벽이나 담벼락, 기둥 따위에서 커다랗게 수복이란 글자를 붙여 놓는다.
일반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수복(壽福)’ 능동성과 수동성의 결합이다.
수동성이란 좋은 정치를 통한 혜택을 백성들이 받는다는 의미이고, 능동성은 노동과 사회적 활동을 통해 스스로 ‘수복(壽福)’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물론 정치인이 만드는 ‘수복(壽福)’과 백성들이 만드는 ‘수복(壽福)’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수복(壽福)’을 통해서 얻고자하는 최종적인 가치는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 ‘태평성대’인 것만은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