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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년 범민련 부경연합 고문 1주기 추모제 엄수
박준홍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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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14  13: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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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년 범민련 부경연합 고문의 1주기 추모제가 12일 묘소인 양산 솥발산 공원묘역에서 유족, 범민련 관계자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하태년 범민련 부경연합 고문의 1주기 추모제가 12일 양산 솥발산 묘역에서 엄수됐다. [사진제공-범민련 부경연합] 

시간은 금새 1년이 흘러서 다시 선생을 기리기 위해 도착한 솥발산 공원 묘역, 시계는 어느 덧 12시40분을 가리키고, 전국에서 하태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오신 선생님들과 부산지역의 동지들 후배들이 70여분 가까이 선생님의 묘역에 모였다.

가족분들의 간단한 약식 제사가 끝나고 하태년 선생 1주기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애국의례의 시간, 묵상과 이어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숙연함과 슬픔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짐하는 결의가 사람들의 표정에서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하성원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은 "자주통일의 시일을 앞당기는데 범민련 부경연합은 더욱 매진할 것"이며, "이를 위해 다른 여러 단체들과의 연대에 힘쓸 것"이라고 힘차게 인사말을 열었다.

이어서 민자통 손재현 선생이 고인의 약력보고를 하시고 범민련 남측본부의 추모사를 이성우 범민련 부경연합 부의장이 대독했다

임방규 통일광장 대표는 "조국을 위해 장렬히 숨을 거둔 동지들은 그 뼈도 추수리지 못한 채 산화한 이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박판수, 하태년 선생 내외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고 삼남매 훌륭히 키워냈으니 두 분은 행복한 분들이다. 이제 남은 후배들이 선생들의 뜻을 잘 이어갈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임방규 선생은 낮지만 강단있는 어조로 서구 몰락의 징조들과 남미 자주화 운동의 활성화에 대해 그리고 북측의 경제건설 완성화 단계의 정세들이 필연적으로 평화협정 채결과 조국통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역설해 참석자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범민련 부경연합 후원회원의 추모시 낭송에 이어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의 추모사가 있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고인이 박판수 선생을 21년만에 만난 소회는 어떠 했을까를 묻고 자연스레 선생님의 생전 모습을 더듬어 회고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현재 9명의 구속자가 발생한 범민련 탄압은 최근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역설하고 온갖 난관을 뚫고 이 땅에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은 추모사를 끝맺었다.

'분계선 코스모스' 추모 노래공연이 나즈막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계속된 추모제는 고창권 통합진보당 부산시당 위원장의 추모사와 유족 대표인 장녀 박현희씨의 유족인사로 마무리됐다.

"통일조국의 염원을 안고 저희 어머님게서 돌아가신지 벌써 한 해를 맞이하였습니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여기 산소까지 오신 선생님 그리고 동지 여러분!
너무나 고맙습니다.
조국통일과는 먼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저희 삼남매 자식들은 어머님 아버님 유지를 잘 받들어 하나된 조국을 앞당기는데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하태년 선생의 묘비명
'나는 존경하는 네 아버지를 만나 영광스럽게 살았다. 감옥살이를 했지만 내 생애는 영광뿐이다. 나 죽거든 우리엄마 고생만 했다고 불쌍하다고 절대 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온 길은 떳떳하고 영광스런 길이었다. 수십년 보따리장사를 하며 힘들게 살았지만 조금도 부끄럽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 죽거든 절대 엄마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사진제공-범민련 부경연합]

추모제를 마친 오후 3시, 따사로운 가을햇살이 박판수.하태년 두 선생님의 묘소를 비추고 그 속에 두 분은 환하게 미소짓고 계신 것 같았다.

그 뒤로 하태년 선생이 사경을 헤매시는 와중에도 잠시나마 눈을 뜨게 했던 범민련 진군가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하태년 선생 약력>

1926년 6월12일 경남 사천군 사남면 죽천리 부친 하종헌 모친 강석순 슬하에 2남1녀중 막내로 출생
1944년 3월 항일학생운동 지도자 박판수선생과 결혼
1950년 7월 경남 진양군 진성면 여맹위원장
9월 전쟁시기 인민군 후퇴시 자녀분들과 입산. 지리산에서 자녀분들과 생활
1951년 7월 어린 자녀문제로 하산하다 체포
1958년 12월 비전향출소. 이후 보따리 옷장사를 하며 박판수선생 옥바라지.
1960년 6월 박판수선생 병보석으로 형집행정지로 출소.
1972년 1월 박판수선생 조직사건으로 피검. 4년형 언도(형집행정지 11년 포함 15년 복역)
1986년 3월 박판수선생 출소
1990년 11월 범민련 결성후 범민련 활동 전개
1992년 1월18일 박판수선생님 지병으로 별세
1994년 6월 범민련 부경연합 결성.
범민련 남측본부 중앙위원 역임(2007년까지)
범민련 부경연합 재정위원장 역임(2001년까지)
범민련 부경연합 운영위원 역임(2003년 2월까지)
1997년 2월 범민련 부경연합 서상권의장 구속후, 의장 대행 역임
1997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 구속(범민련 남측본부 의장단)
1997년 11월 출소
2003년 2월 범민련 부경연합 고문 역임
2012년 10월12일 12시40분경 향년 87세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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