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4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평양 능라도의 5월1일경기장을 찾아 관람석과 육상주로, 축구장 등의 여러 시설을 돌아보고 경기장을 “세상에 자랑할 만한 종합경기장으로, (북한) 체육시설의 상징으로, 문명국의 체모에 어울리는 경기장으로 개건 보수할 것”을 지시했다.
1973년 건립된 북한 최대 실내체육관인 평양체육관 리모델링 공사는 이미 끝났다. 북한은 당 창건일인 10월 10일을 앞두고 미림승마클럽도 준공할 예정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국가체육위원회(위원장 장성택)를 설립한 후 ‘사회주의 문명국’과 ‘체육강국’건설을 내세우며 체육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확충하고 있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온 나라에 체육열풍을 세차게 일으키자”며 “체육열풍을 세차게 일으키는 것은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체육의 대중화와 생활화 위한 시설 확충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경제가 어려운데 체육, 놀이시설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깔려 있다. 지난 초여름 2주간 평양을 방문한 독일 시사주간지 <차이트>의 취재기가 대표적 사례다.
“북한 주민들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평양의 모습은 다소 달랐다. 이제는 즐기며 살라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하루아침에 국훈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새로운 놀이공원에 투자하고 아이스링크와 수영장 건설에도 군인 수만명을 투입시키고 있다. 또한 돌고래 수족관을 짓기 위해 황해에서 평양 도심까지 수백km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을 깔도록 지시했다. 주거지역엔 운동장과 배구 경기장, 인라인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평양은 청소년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서방에서 들어온 것은 모두 비도덕적이라고 매도하던 북한에 1년 전부터 롤러블레이드가 등장했다.”
평양의 롤러스케이트 등장은 이미 10년 전 이야기다. 문화, 체육시설에 대한 집중투자가 시작된 것은 이미 1년이 넘었다. 역시 북한의 정책에 대한 이해가 없는 단편적 관찰만으로는 북한사회의 변화를 읽기 쉽지 않다.
키워드는 ‘사회주의 문명국’건설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4월 6일 공식 취임을 앞두고 가진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의 담화(‘4.6담화’)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문명국’을 주요 과제로 언급했다.
“교육.보건.문학예술.체육을 비롯한 문화건설의 모든 부문에서도 끊임없는 혁명적 전환을 일으켜 우리나라를 발전된 사회주의문명국으로 빛내여 나가야 합니다.…그리하여 우리 인민들이 고상하고 문명한 사회주의문화의 창조자, 향유자가 되게 하며 온 사회에 희열과 랑만이 차 넘치게 하여야 합니다.”
북한이 표방한 ‘사회주의 문명국’이란

북한은 ‘사회주의 문명국’의 조건으로 높은 문화지식과 건강한 체력, 고상한 도덕품성을 제시했다.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함께 높은 문화지식, 건강한 체력, 고상한 도덕품성은 문명한 인간의 풍모를 특징짓는 중요한 징표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회주의문명국은 전체 인민이 높은 문화지식과 건강한 체력, 고상한 도덕품성을 지니고 가장 문명한 조건과 환경에서 사회주의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리며 온 사회에 아름답고 건전한 생활기풍이 차 넘치는 가장 선진적인 문명국”이라는 게 북한의 설명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위해 각종 체육.휴양시설과 문화시설 등을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한편 도시미화법, 공원.유원지법 등 관련 법규도 속속 정비하고 있다.
올해 5월에 공개된 ‘도시미화법’은 “도시의 구획정리, 건물과 시설물의 미화, 도시청소사업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워 인민들에게 문화위생적인 생활환경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 법에는 도시미화사업에 대한 투자 확대, 도시미화를 위한 과학연구사업 장려, 도시미화 분야의 국제 교류와 협력 강화 등도 담겨 있다.
실제로 북한은 평양 주요 도로에 잔디 깔기, ‘건물 외장재 바르기’, 울타리 보수, 구획 정리, 보도블록 깔기, 하천 원림(園林) 녹화, 강안(江岸) 정리, 공원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대대적으로 도시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또한 올해 7월 공원, 유원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내용의 법규를 새로 제정해 공표했다. 이 법은 “국가가 인민들의 수요가 높아지는 데 맞게 공원과 유원지를 더 훌륭하고 현대적으로 꾸리도록 투자를 계통적(체계적)으로 늘릴 데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역시 공원, 유원지의 건설과 관리운영에서 다른 나라, 국제기구와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 마련된 ‘도시미화법’, ‘공원 유원지법’ 모두 국제교류와 협력을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강조하는 ‘세계적 추세’를 수용해 도시환경 개선과 공원 건설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능라인민유원지, 평양민속공원, 대성산유원지 등을 현대화하거나 새로 건설했고, 올해도 전국 각지에서 공원과 유원지 공사를 벌이고 있다.
평양에 이어 지방에도 속속 건설

함경남도 함흥시에서는 기존의 청년공원을 확장하고 인라인스케이트장과 배구장, 테니스장 등을 갖춘 큰 규모의 공원을 새로 건설 중이고, 양강도 혜산시는 숲 속 산책로 등을 갖춘 공원을 새로 건설했다. 평안남도 평성시는 매일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고 길이가 33m에 달하는 물미끄럼틀을 갖춘 2만5천㎡ 면적의 물놀이장이 새로 건설했고, 황해북도 사리원시도 대규모 야외물놀이장을 완공했다. 또한 북한은 원산(명사십리해수욕장), 함흥(마전해수욕장) 등 기존의 해수욕장을 리모델링해 수용능력을 늘렸다.
북한의 이 같은 노력은 물놀이 등 문화오락생활 향유에서 평양과 지방 주민 사이에 격차를 해소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동안 북한에서는 놀이공원이나 물놀이장 등 오락시설.여가시설이 주로 평양을 중심으로 밀집돼 있어 지방 주민들은 평양시민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던 게 사실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김정은시대의 북한은 평양에 ‘본보기’ 공원 및 체육시설을 건설하고, 이를 모델로 전국에 확산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차이트>의 기자는 이같은 현상과 관련해 “그렇다면 투자비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북한 안내원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평양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외국인들 역시 고개를 내젓기는 마찬가지였다”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북한 당국이 어떻게 예산을 마련해 건설사업에 투자하고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내각의 예산뿐만 아니라 2009년 실시한 화폐개혁, 250만대에 육박하고 있는 휴대폰 단말기 판매수익, 일부 해외에서 유치된 자본 등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또한 군인 건설자들을 동원, 활용해 공사비를 절감하고 있다. 다만 지방의 경우 지방 자체의 예산으로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체육, 문화시설의 확충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5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해 13개 직할시.도와 220개 시.군.구가 지역별 특성에 맞는 자체 개발구(경제특구) 개발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도.시.군이 자체 수익을 확충할 수 있는 길을 터 줬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능라유원지의 능라곱등어(돌고래)관은 지난해 7월 개장해 1년 만에 63만여 명의 관람자들이 찾았고, 올해 여름에는 매일 평균 5천 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올해 8월에 문을 연 능라유원지 전자오락관에도 개장 10일만에 수만 명이 찾았다고 한다. 특히 매일 수천 명이 찾는 전자오락관은 “낮이나 밤에는 물론 심지어 새벽에도 근로자와 청소년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라고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능라유원지의 입장인원은 하루 1만~1만5천여 명, 개선청년공원유희장은 5~6천명 수준으로 이용객이 너무 많아 사전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유원지 입장료는 성인 20원, 어린이 10원, 기구이용 150~300원이다.
물론 아직까지 대다수 북한 주민들이 이용하기에는 체육, 문화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경제적 여건도 녹녹치 않은 게 현실이다. ‘보여주기 식 전시행정’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시대를 맞아 북한이 ‘인민경제 생활’ 향상과 ‘사회주의문명국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방향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경제여건상 단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밀고 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또한 낙후된 체육, 문화시설 건설에만 집중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전반적인 경제건설과 연관돼 강조되고 있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경제적 전망에 대한 북한의 낙관적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여러 차례 강조하고, 정치국 결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 목표는 일시적인 정책이 아닌 ‘전략적 노선’으로 추진 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