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화가들의 대표적인 미술재료는 먹과 붓과 종이였다.
이런 미술재료로 그린 그림을 수묵화, 혹은 엷은 채색을 한 수묵채색화라고 부른다.
이 연화도는 현재 심사정이 그린 것이다.

▲ 심사정/연지유압(蓮池遊鴨)/비단에 채색/72.5*142.3/1760년/호암미술관 소장.
먹과 물감을 적절히 사용해 단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그림의 화제가 ‘연지유압(蓮池遊鴨)’인데 풀어 쓰면 ‘연못에 노는 오리’가 된다.
일반적으로 연꽃과 오리가 등장하는 그림은 모두 ‘연화도’라고 부른다.
궁중회화나 민화의 경우에는 그림에 특별한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그림 자체가 곧 그림의 제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는 작가의 서명도 없지만 그림의 내용에 관한 설명도 없다.
그러나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를 추구했던 선비문화의 영향 때문에 화가들의 그림에는 시의 한 구절 같은 느낌의 화제가 들어간다.
연화도(蓮花圖)라고 하지 않고 ‘연지유압’이라고 화제를 쓰면 “한여름 연꽃 아래 오리가 편안하게 노닐다” 혹은 “연꽃이 있는 못에 오리가 노닐고 있네”라는 운치가 느껴지는 간단한 시(詩)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서양화에서 사과를 그려놓고 ‘정물화’라고 하지 않고 ‘이브의 눈물’이라고 제목을 다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 그림은 비단 위에 채색을 한 것이므로 당연히 수묵화는 아니다. 수묵담채화처럼 채색을 엷게 한 것이 아니니 수묵담채화라고 볼 수도 없다.
수묵화의 준법은 사용하지 않았고 먹은 사물의 형태를 만들거나 물과 섞어 어두운 색을 내는 용도로 사용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물감의 원색은 퇴색되어 정확한 채도를 알기 어렵다.
하지만 궁중회화의 진채보다는 채도가 훨씬 낮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채색을 사용했으면서도 화려하거나 천박하지 않다.
배경에 형성된 여백은 공간을 무한히 확장하여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먹에 스며든 묵직한 색상으로 표현한 연잎은 단아한 군자의 품격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하얀 속살을 보이는 연꽃은 수줍은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선묘로 형태를 잡아 색을 칠하는 방법과 즉흥적인 붓질로 사물을 단번에 표현하는 두 가지 방법(구륵법과 몰골법)이 적절히 사용되어 화격을 높이고 있다.
연화도는 전형적인 선비문화를 담은 그림이다.
연꽃은 진흙에서 자라면서도 크고 단아한 꽃을 피우는 수생식물이다. 이런 연꽃의 생태적 특성과 선비들의 고고한 지조와 기개가 잘 맞는다. 또한 연꽃과 함께 그려진 갈대와 청둥오리는 노년의 유유자적함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하지만 연꽃은 ‘연달아 초시와 진사라는 과거시험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이중의 의미도 담고 있다.
과거시험에 급제하는 일은 ‘출세’를 의미한다. 조선 말기에는 ‘출세’의 의미가 ‘벼슬을 해서 부귀영화를 누림’이라고 변질되지만 원래는 선비가 학문적 이상을 펼치기 위해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굳이 이 작품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학문적 이상을 펼치기 위해 관직에 나아가 어려움 속에서도 백성을 위해 일하여 성과를 이루고 난 후 고향으로 낙향하여 유유자적한 노년을 보낸다.’
아무튼 비단에 채색을 한 그림이긴 하지만 수묵화 특유의 화법과 결합되어 있다.
수묵화 특유의 화법이란 바로 여백을 말하는 것이다.
채색화와 수묵화의 미술 조형적 차이는 크다. 가장 큰 차이는 채색이다. 진하게 색을 칠하는 ‘진채기법’은 채색화의 핵심이고, 엷게 색을 칠하는 ‘담채기법’은 수묵화의 전형적인 채색기법이다. 같은 색을 칠하더라도 ‘진채’와 ‘담채’는 건널 수 없는 강처럼 큰 차이가 있다.
채색화에서 빈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묵화에서 하늘이나 구름, 안개 따위를 표현할 때는 빈 공간 즉, 여백을 활용하여 표현한다. 그러나 채색화에서는 모두 적절한 색을 칠해야 한다. 채색화에서 빈 공간은 곧바로 미완성을 뜻한다. 또한 공간이 무작정 생략되거나 비워놓는 경우도 없다. 궁중회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생도’에는 모든 공간이 색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의 조형기법은 수묵화의 기법과 궁중회화의 진채기법을 적절히 융합한 것이다.

궁중회화의 진채기법을 사용했지만 수묵화의 기법인 여백과 선묘를 결합한 작품이다. 이러한 조형적 실험은 미학과 사상의 부재와 일제의 침략으로 좌절되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여백과 준법 따위의 수묵화 기법과 진채기법을 결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창덕궁 재건벽화인 ‘백학도’, ‘봉황도’, ‘조일선관도’, ‘삼선관파도’ 따위의 작품에서는 수묵화의 여백, 선묘와 궁중회화의 진채기법을 결합하고자하는 의도가 나타난다.
그림이 검게 만들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시작된 여백은 공간의 구성이라는 형식까지 발전한다. 다시 말하면 화면을 나누고 각각의 사물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드러내는 방법으로써 여백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풍경에 여백을 활용하면 원근투시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가깝고 먼 느낌 즉, 원근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정지된 화면에서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사물의 존재감을 강조하고 크기를 조절하며 공간의 확대나 축소 따위의 다양한 조형기법과 연계되어 활용된다.
선묘는 사물의 형태와 모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명암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또한 선묘의 강약으로 원근감을 표현하고, 선묘의 흐름을 통해 방향감을, 묘사를 통해 질감을 드러낼 수 있다.
물론 채색은 사물의 존재감이나 질감, 장식, 화려함 따위를 드러내는 주요한 표현 수단이다.
결국 수묵화의 장점과 채색의 장점을 모아 결합하면 보편적이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화면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형적 실험이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바탕에 흐르는 미학, 사상적 가치이다.
다시 말해 ‘청빈과 풍류’를 상징하는 수묵과 여백은 ‘허영과 사치’를 상징하는 채색과 반대되는데 이 둘을 결합할 사상적 바탕이 있어야 한다.
세계는 탐욕과 살육이 넘쳐나는 제국주의가 휩쓸고 있었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무한히 확대시킨 자본주의가 잉태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비켜가지 못했던 조선 말기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혼란스런 시기였다.
화가들은 궁중회화의 가치를 녹여 대중미술인 ‘민화’가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고 ‘민화’는 대중의 원초적 욕망의 발현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정작 화가 자신들은 궁중회화의 가치와 대중의 요구, 그리고 자신들의 수묵화를 결합시켜 새로운 흐름에 걸맞은 미술형식과 화풍을 만들 수 없었다.
조선이 망한다는 것은 곧 선비세력들이 망했다는 것과 같다. 조선이 망하면 궁궐 속에 있었던 궁중회화의 가치가 사라지고, 선비들이 망하자 선비들로부터 미학과 사상적 가치를 공급받았던 화가의 수묵화도 갈 길을 잃어버렸다.
세상의 흐름을 미묘하게 감지했던 화가들은 절망했을 것이다. 조선이 망하고 난 후 더 나은 세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더욱 힘든 일본제국주의의 세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제는 식민통치를 하기 위해서 조선의 흔적을 최대한 지워내고 왜곡했다.
화가가 망한 조선의 전통을 따른다는 것은 곧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었고 결국 도태할 것이 자명했다.
일본풍의 그림과 서양화법이 물밀 듯이 들어와 빠르게 주류를 형성했다.
서양화법을 도입한 화가들은 ‘선구자, 개척자’로 추앙되었다.
조선의 궁중회화는 은폐되었고 선비의 수묵화는 ‘동양화’라는 일제의 입맛에 맞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세계의 욕망이 한반도로 응축되어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한반도는 분단되어 북쪽은 ‘조선’이라는 국호를, 남쪽은 대한제국의 전통을 이어 ‘한’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다.
1990년대, 민족문화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면서 민화도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현대 민화의 발전은 먹고 살만한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요구하는 특유의 자존심과 정체성이 채색이 상징하는 ‘부귀영화와 장수’라는 인간적 욕망과 만난 결과이다.
조선 말기의 화가들이 보는 미래는 암울했지만 현재의 화가들의 미래는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남북의 통일이고, 남북의 통일이 만들어내는 정치, 경제, 문화적 가치는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다.
통일하는 과정에서 남북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철학이 나올 것이다. 그것의 형식이 어떠하든 ‘생명의 존엄을 바탕으로 하는 공생과 화합, 평화’의 내용이 담길 것은 확실하다.
이런 통일철학을 바탕으로 화가들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은 채색화와 공동체의 가치를 담은 수묵화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이상세계’를 담은 놀라운 미술세계를 창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