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년 전인 2007년 2월 20일 대동강가의 길을 두 쌍의 청춘남녀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다정한 모습이나 옷차림이 남쪽과 너무나 흡사했다. 사진만으로는 이게 평양인지 서울인지 모를 정도였다. 평양의 모란봉을 나란히 걷고 있는 다른 20대 남녀의 모습도 남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의 튀는 패션
2008년 10월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을 찾은 7명의 여성이 보라색 ‘나뉜옷’(투피스)를 똑같이 입고 걸어가고 있는데 모두 ‘통굽구두’를 신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평양에서 통굽신발이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지방까지 상륙한 셈이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와 20대 북한 여성들의 패션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2007년 북한의 여성잡지 《조선여성》 8월호에 실린 〈옷차림도 우리의 것, 우리 식이 좋습니다〉란 제목의 기고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글쎄 딸애가 얼룩덜룩한 샤쯔(셔츠)에 기장이 짧고 찰싹 달라붙는 양복치마(스커트)를 입고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쯧쯧....”
평양시 서성구역 서천동에 사는 주부 김연희 씨는 휴일에 가족과 함께 가극을 보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다 방에서 나온 딸아이의 옷차림을 보고 혀를 차고 말았다. 그는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딸애의 옷차림을 보고 “무슨 옷차림새가 그 모양이냐”며 ‘고상하고 유순한 색깔의 옷, 우리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으라고 나무랐다. 딸은 꾸지람을 듣고 얼굴을 붉혔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연청색 치마저고리(한복)로 갈아입은 뒤 집을 나서야 했다.


최고지도자까지 나서서 ‘겉멋만을 추구하면서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경향’을 비판했지만 유행에 민감하고 ‘자기만의 패션’을 추구하는 신세대의 지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북한 패션을 선도해온 TV아나운서들의 복장도 한복보다는 투피스 정장을 입는 경우가 많아졌다.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수입의류의 증가와 대외교류의 확대


그러나 1990년대 국가의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지면서 중국 등지에서 수입된 의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북녘 여성들의 패션에도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추도식에 나온 북한 젊은 여성들의 차림새는 중국 패션의 영향이 북한 사회에 깊게 파고들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 남북경협가는 “북한 의류는 과거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생산해왔기 때문에 개인적인 특색을 찾는 것이 어려웠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시장이 활성화되고 중국제 의류가 밀려들어오면서 주민들의 옷차림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둘째는 해외와의 교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적 추세’에 따라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북한의 여성들이 종전의 흰색과 검정, 회색 계열의 단조로운 복장에서 탈피해 꽃무늬 원피스를 착용하고, 주홍색 등 원색의 와이셔츠나 티셔츠, 심지어 무릎까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7월에는 중국 《인민일보》까지 ‘북한 여성들이 패션에 눈떴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북한 주민들은 사회주의 생활방식에 부합하는 정결하고 단정하며 소박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왔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미적 감각에 눈뜨고 변화에 적응하면서 화려한 의상을 입기 시작해 평양의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북한은 “여성들의 옷차림은 무릎위로 치맛자락을 올리지 않는 것”이라며 “현대적 미감에 맞는 옷을 입어도 조선여성의 절개가 뚜렷이 나타나게 해야 한다”라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지만 이미 북한 여학생들 교복까지도 상당히 짧아진 상황이다. 한복 자체도 예전에 비해 색깔이나 디자인이 상당히 다양해졌다.
그동안 꺼려했던 반지, 귀고리, 목걸이를 착용한 여성들도 평양에서만큼은 흔해졌다. 평양 시내에서 바지 입은 여성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됐다. 젊은 여성들의 머리모양 또한 다양해졌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친머리’, 중년층에서는 파마머리가 인기다. 여성들 사이에 《아름다운 머리 100》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평양 여성들의 다양해진 취향과 관심을 반영한다. 이 책에는 짧은 머리, 중간 머리 등 창광원의 미용사들이 창안한 100여 가지 머리형태와 방법들이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돼 있다. 과거 10~20가지 머리 유형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셈이다.


▷평양에 ‘친머리’를 한 여성들이 많이 늘었네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실용성을 추구합니다. 머리가 길면 아무래도 거추장스럽죠.”
▷화장도 예전에 비해 진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예술인들이 화장을 짙게 했는데, 최근에는 20~30대 여성들 중에도 화장을 짙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멋을 내는 여성들이 참 많아졌네요.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죠. 예전에 비해 참 세련됐지요.”
▷최신 옷들은 어디서 구입합니까?
“과거에는 외국에 출장을 가거나 무역하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시장에 가면 없는 게 없으니까요.”
▷중국에서 들어온 물품이 많나요?
“중국제가 많습니다. 그런데 품질이 좋지 않은 게 많아요. 머리핀이나 목걸이 같은 장신구는 우리 것도 괜찮은 편이에요.”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하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나요?
“아주 특별한 경우 외에는 아직까지 귀걸이 하는 여성은 많지 않아요. 귀걸이를 하더라도 너무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면 일없어요(괜찮아요).”
2007년 7월에 만난 북측 여성안내원의 설명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패션’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나 해외체류자 등 일부만 이해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제 북한의 도시에서는 ‘패션’에 관심이 갖는 층이 폭넓게 자리잡기 시작했고, 패션의 변화 주기도 빨라졌다. 젊은 여성들의 패션은 날이 갈수록 과감해지고 있다.
‘리설주 패션’을 통한 젊은 세대의 변화 수용


특히 지난해 9월에 열린 제10차 전국조선옷전시회에서는 다양한 여성용 바지 제품이 출품돼 눈길을 끌었다. 또한 최근 북한에서 발행되는 대중잡지들에는 피부를 아름답게 하거나 구두, 핸드백 등을 옷차림과 어떻게 하면 잘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여성들의 관심사를 다룬 기사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들 잡지들은 여성들에게 ‘세련되면서도 점잖은 옷’을 입도록 권장하고 있다.
북한당국의 변화된 흐름은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화제가 된 리설주 부인의 패션과 모란봉악단 단원들의 파격 의상은 지난 10년간 변화된 북한의 패션경향을 일정 정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패션은 시각적으로 바로 전해져 설명을 덧붙일 필요 없이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행위’를 대신하기도 한다. 패션의 정치적 힘을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회자되는 대표적 사례가 있다.
1961년 4월 미국의 피그스만(Bay of Pigs) 침공 사건으로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과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이때 케네디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에 동행한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 케네디가 프랑스 패션업계를 위한 특별 조치로 프랑스 대표 브랜드인 ‘지방시’를 입고, 프랑스 국민과 언론의 환대를 받음으로써 관계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의 한 여성기업인이 말한 것처럼 때로 “옷은 총보다 강력한 무기다”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회담 때는 올브라이트 장관의 브로치가 회자된 바 있다. 10월 23일 첫 만남 때 올브라이트 장관은 적대국 방문 때 다는 성조기 브로치를 달았지만 다음 날 만찬석상에서는 하트 모양의 브로치로 바꿨다. 회담이 만족스럽게 진행됐다는 무언의 표시였던 셈이다. 벌.나비.거미.악어 등 갖가지 모양의 200여 개 브로치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유명했던 그는 2000년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햇살 모양의 브로치를 달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뜻을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전 농구스타 로드먼을 만났을 때 인민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나왔다. 친근감의 표시이자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한 것은 아니었을까?
패션의 힘을 일찍이 깨달은 유명 연예인, 정치인들은 인기 관리나 메시지 전달에 패션을 이용해 왔다. 패션은 백 마디의 말이나 행동보다 신속하게, 개인 혹은 집단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패션은 또 다른 형태의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언어이고, ‘취향의 기호’다.

젊은 세대의 변화만으로 북한 사회에 새로운 ‘패션 문화’가 일반화됐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남자의 경우 인민복과 검은색 양복, 여성들의 경우 치마저고리가 차림새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패션이 다양해지고 있고, 그러한 다양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이 이를 점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세계적 추세에 따른 패션의 변화는 남과 북 젊은 세대의 이질감을 줄이고,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