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모란도 중에서 괴석이 들어간 그림을 ‘석모란도’라고 한다.
‘석모란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해서 독립된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궁중모란도’가 민화풍의 모란도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처럼 괴석이 없는 모란도와 구분하는 정도이다.
‘석모란도’는 모란의 뿌리 부분에 괴석이 들어가 있는 그림이다.
모란이 바위틈에서 자라는 생태적 특성을 표현한 것은 전혀 아니다. 미술 구도로 본다면 괴석이 그려진 모란그림은 아래에 어두운 색상과 묵직한 질감으로 인해 안정감을 준다. 또한 꽃과 바위라는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으로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괴석이 결합되었다는 것은 미술 조형적 요소 외에도 내용적 상징이 추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모란그림에 괴석이 결합하는 그림은 조선 말기에 나타나는 형식이다.
다시 말해, 괴석이 없는 모란그림과 괴석이 있는 모란그림 중에 원형에 가까운 그림은 괴석이 없는 모란그림이다. 기존의 모란그림에 시대의 요구나 흐름에 따라 괴석이 추가된 것이다. ‘석모란도’의 괴석에 일본풍의 이끼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에 정착된 것으로 추정한다.

▲ 모란그림에 괴석이 결합하면서 ‘석모란도’가 생겨났다. ‘석모란도’는 부귀의 상징인 모란에 괴석의 상징인 ‘장수’가 더해서 ‘부귀영화와 장수’를 뜻한다. 원래 ‘불변성, 자연합일’ 따위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괴석이 ‘장수’의 상징을 얻게 된 것은 장생도의 한 요소인 괴석(바위)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궁중모란도’의 원래 의미가 ‘생명의 만개, 생명의 찬양’이지만 일반백성들에게는 그냥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수용된다.
보통사람들은 괴석이 들어간 모란그림을 ‘부귀영화와 장수’, ‘오랫동안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니까 괴석의 상징을 장수로 본다는 말이다.
모란이 부귀를 뜻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괴석, 바위가 장수를 뜻하는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괴석(怪石)을 해석하면 괴상한 돌, 이상한 돌이라는 뜻이다. 물론 괴석은 작은 크기의 돌부터 집채 만 한 바위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괴상하다는 말은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 멋있고 아름답다는 긍정의 의미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없는 자연의 신비, 아름다움, 오묘한 질서 따위를 괴석에 투영한 것이다.
괴석은 선비문화의 상징이다.
선비들에게 괴석은 모양이 가진 특이함, 특별함, 경이로움보다는 영원불변성의 의미로 사용한다. 그래서 평범한 돌, 허름한 돌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고려 말의 선비 이곡(李穀)은 “암석은 견고 불변하여 천지와 함께 종식되는 것, 두터운 땅에 우뚝하게 박히고 위엄 있게 솟아서 진압하며, 만 길의 높이에 서서 흔들어 움직일 수 없는 것, 깊은 땅에 깊숙이 잠겨서 아무도 침노하거나 제압할 수 없는 존재”라 하면서 바위의 덕을 칭송하였다.
그러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청빈한 기개라는 선비의 사상을 움직이지 않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바위와 돌의 생태적 특성에 투영한 것이다.

흔히 괴석을 수석(壽石)과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선비들의 평범한 돌, 허름한 모진 풍파를 이겨낸 돌이나 바위를 선호했지 아주 특별한 형상과 색을 가진 수석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참고로 수석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 이렇다.

수석(壽石)은 ‘水石’이라고도 쓴다. 수석이란 두 손으로 들 정도 이하의 작은 자연석으로 산수미의 경치가 축소되어 있고 기묘함을 나타내고 회화적인 색채와 무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 환상적인 추상미를 발산하는 것으로서 시정이 함축되어 있으며 정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수석은 큰 정원석과는 구별되는 자그마한 돌로 천연 그대로여야 하며 주로 실내에서 감상한다.
이 취미의 바탕은 대자연은 곧 나요 나는 대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자연과 인간과의 혼연일체에 도달하여 자연의 깊은 이치를 갖가지로 이해하려는 동양적 사상 감정에 있다.
자연의 산수미를 사랑하고 우주의 분신이 되고자 하는 간절함이 그 아름다운 자연을 항상 몸 가까이에서 즐겨 누리려는 욕망으로 발전하였다. 이윽고는 웅대, 장중한 산수경을 뜰 안에 축소, 조성하는 가산(假山)을 창조하였다.
가산을 조성하는 중에 기기절묘한 암석도 배열하다가 다시금 하나의 작은 돌에 산수미가 보다 더 작게 축소되어 있는 형상을 발견하였다. 이를 서재의 책상 위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경지를 맞게 되었다. 즉, 자그마한 돌 가운데에도 자연경치가 신비롭게 축소되어 있으며, 온갖 만상이 응축되어 있음을 찾아낸 것이 수석의 발견이다.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위와 같은 의미로 본다면 수석(壽石, 水石)이 아니라 빼어난 돌, 특별한 돌이라는 의미로 수석(秀石)이라고 쓰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정리하면, 괴석은 불변성, 수석은 자연합일의 의미로 사용했다.

이런 의미의 괴석이 모란과 만나 장수의 상징을 가지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괴석의 불변성을 인간 생명의 영원함으로 바꾸어 수용한 것인지 혹은 수석(壽石)의 목숨 수(壽)를 차용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아니면 수석과 괴석의 상징을 합쳐 ‘목숨의 불변’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그림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변주되지 않는다.
이질적인 요소가 불쑥 결합해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경우보다 이미 수용되어 익숙한 요소가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장수’와 관련된 가장 일반적인 그림은 ‘장생도’이다.
장생도는 ‘생명력이 충만한 이상세계’를 표현한 그림이다.
하지만 ‘생명력이 충만한 이상세계’는 일반사람들이 수용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이해하기 쉽고 원초적 욕망에 부응하는 장수와 대치된 것이다.
장생도를 장수도라고 본다고 해서 장생도의 본질이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라는 영역 안에는 오래 사는 일, 출세하는 일, 풍요롭게 사는 일 따위도 모두 포함된다.

장생도는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어 백성들의 생활 속에 녹아 있었다. 또한 모란그림도 마찬가지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장생도의 한 요소인 바위는 장수(長壽)로 수용되었고 모란그림과 결합해 ‘부귀영화와 장수’의 의미로 변주된 것이다.
이것을 역으로 추정하면,
조선 말기에 그려진 장생도에는 모란꽃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서수낙원도, 백학도, 군봉도 따위의 장생도 변주 그림에는 빠짐없이 모란이 들어가 있다.
엄격한 형식의 장생도에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모란꽃이 들어가 있다는 말은 장생도의 요소와 모란의 결합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모란그림에 장생도의 요소가 결합해 자연스러워지면 반대로 장생도에 모란꽃이 들어가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꽃이 없었던 장생도에 모란이 들어가자 나리꽃이나 연꽃 따위의 다른 꽃이나 동물도 쉽게 결합했다.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엄격한 장생도의 형식은 무너지고 세속화 되었다.
‘생명력이 충만한 이상세계’를 담은 장생도는 조선의 운명과 함께 사라지고 ‘부귀와 장수’라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궁중모란도는 궁중회화 중에 가장 화려했지만 단아한 품위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괴석이 결합되면서 품위는 사라지고 화려한 욕망만 꿈틀거리는 그림이 되었다.
모란도는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화병에 담겨 표현되고 대중들의 관심을 끈 음양오행론이나 12간지의 동물 따위와 결합했다.

▲ 위와 좌측그림-모란그림에 결합한 괴석은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괴석을 12간지의 동물 형상으로 만들어 표현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부귀영화와 장수를 누려라.’는 구체적인 대중성을 획득한다.
아래의 우측 그림-모란나무를 이용하여 ‘목숨 수(壽)’라는 문자를 만들었다. 엄밀히 ‘석모란도’는 아니지만 괴석이 장수를 상징했기 때문에 이런 변주가 가능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조선이 망하면서 조선이 추구했던 꿈과 이상도 사라졌다.
궁중회화는 궁궐의 깊숙한 곳에 유배되었고, 화가들의 수묵담채화는 사상과 미학을 잃어버리고 재료에 따른 형식만 남았다.
대중그림인 민화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부합하는 싸구려 그림으로 전락했다.

민화는 대중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강한 도구를 이용하여 궁중회화의 이상적 가치나 수묵담채화의 절제미를 끌고 내려와서는 안 된다.
반대로 대중들의 그림인 민화에 ‘생명의 가치와 자발적 청빈’이라는 미학적 가치와 조형적 원리를 부여해 수준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화는 대중의 요구나 흐름에 따라 무한 변주될 것이다.
하지만 험난한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공동체의 미덕은 자기희생이라는 ‘자발적 청빈’이고 ‘생명에 대한 찬양’은 세상이 망할 때까지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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