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글쓰기 도구는 먹과 붓, 벼루, 종이였다.
이것을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한다. 글쓰기에 필요한 네 가지 도구를 친근한 벗으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이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글쓰기는 불가능했고 서로의 유기적인 관계에 의해 좋은 글씨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먹은 묵(墨)의 우리 발음인데, 소나무 진액(송진)이나 식물성 기름을 태운 그을음을 아교 용액으로 다져서 굳힌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씨에 흰색과 검은색을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눈에 가장 잘 띄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검정색은 곧 문자, 글자를 상징했다.

미술에서 ‘흰색과 검은색’은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감안료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노랑을 모두 합치면 검정색이 나온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녹색을 모두 합치면 하얀색이 나온다.
그래서 흰색과 검은색은 모든 색의 결합체이고, 이것을 반대로 뒤집으면 흰색과 검은색에서 모든 색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흰색과 검은색은 색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 흰색이나 검은색이 섞일수록 고유의 색상은 빛깔을 잃는다. 흔히 무채색이라고 하는 색들은 모두 흰색이나 검은색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흰색과 검정색은 모든 색의 출발이자 종착점인 것이다.
흰색과 검정색은 현실의 색이면서 상상과 관념의 색이기도 하다.
완전히 밀폐되어 조금의 빛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 완전한 검정색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색을 인지하거나 구분하지 못한다.
완전한 하얀색은 빛의 양이 극단적으로 많을 때나 볼 수 있겠지만 이 상태에서 인간의 시력이 견뎌낼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미술계에서는 흰색과 검은색을 ‘색’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가 논란거리이다.

그림의 3대 요소는 ‘형(形), 상(像), 색(色)’이다.
형(形)은 사물의 꼴을 말하고, 상(像)은 사물에 붙어있는 상징과 의미를 뜻하고, 색(色)은 사물의 질감이나 무게감을 드러내고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초창기 문자도는 검정색의 문자에 여러 색을 입히는 것으로 출발한다. 글자는 곧 검은색이라는 관념이 강한 상태에서 색을 입은 문자는 시각적으로 충격이었을 것이다.색을 입은 문자는 글씨가 아니라 그림으로 인식한다.
문자가 색을 통해 그림으로 바뀌는 순간 문자의 형(形)과 상(像)도 함께 반응한다.
글자의 원리가 아니라 그림의 원리에 맞게 형태가 변형되고, 문자에 담긴 뜻은 이야기를 담은 상징으로 바뀌는 것이다.

문자는 극단적으로 추상화된 형식이다.
특히 ‘수복(壽福),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염치(廉恥), 충효(忠孝) 따위의 글자에는 조선의 지배이념이 함축되어 있다. 이런 내용을 풀어내면 수 만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이런 추상문자의 내용을 그림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하고 그 이야기를 구체적 형상에 담아야 한다.
문자도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대부분 중국의 고사나 설화에서 차용했다. 그 설화를 상징하는 사물 따위를 문자의 모양이나 획에 맞추어 그림으로 그렸다.

▲ 좌측-글자모양을 잡아놓고 안에다 그림을 그렸다. 글자와 그림이 공존하는 상태이다.
우측-글자 모양이나 획을 이용에 그림을 그렸는데 이렇게 되면 글자가 그림에 덮여져 글자를 알 수 없는 상태까지 변주된다. 글자보다는 그림이 우선하는 문자도이다. 글자의 의미를 강조하려면 좌측방식으로, 그림의 장식성을 높이려면 우측방식으로 그린다. 이런 두 종류의 문자도는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필요나 요구에 따라 서로를 보완하며 공존할 것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문자도는 글자의 모양을 그대로 살린 형식과 글자가 그림에 덮여 형태를 알기 어려운 형식으로 나누어진다.
글자의 모양을 살리는 형식은 글자를 정확하게 그려 놓은 다음, 획이나 글자 안의 모양에 맞춰 그림을 그려 넣은 방법을 쓴다. 반면 글자의 모양이나 획을 비슷한 사물의 모양으로 바꾸거나 형태를 파괴하면서 그림으로 채우면서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까지 몰고 가는 형식도 있다.
글자의 모양이 살아있는 형식에 반해 글자의 모양이 흐트러지는 형식일수록 그림에 가까워진다.
문자의 뜻은 그림의 상징으로 대체되었고, 글자를 상징하는 검정색은 온갖 색상으로 뒤덮여 화려하게 변신했다. 문자의 마지막 자존심인 검정색은 색상이 있는 괴석이나 괴목으로 대체되면서 최소한의 형태를 잡아주는 역할로 축소된다.

문자도는 글자의 울타리를 벗어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그림형식으로 완성된 문자도는 여러 그림과 결합하여 수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궁중모란도에 나오는 괴석이 문자와 결합하여 ‘문자궁중모란도’가 창작되고, ‘신선도’, ‘수묵산수화’, ‘화조도’, ‘책거리그림’ 속에 들어가기도 한다.
글자의 모양이 살아있으면서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효제도(孝悌圖), 윤리문자도는 선비나 점잖은 양반집을 장식했지만 백성들은 수복(壽福)그림을 더욱 좋아했다. 수복 문자도는 사람의 기본 욕망에 잘 부합했기에 다양한 상징과 결합하여 실생활에 폭넓게 응용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변주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문화의 특징인 ‘비빔밥’ 원리가 문자도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문자도는 한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자는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그림으로 변형되기에 적합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뜻글자라서 상징을 담는데 유리하다.
서예도 한글보다는 한자가 훨씬 아름답다.
한글의 가치가 한자보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형적인 표현에 있어 소리문자보다는 상형문자가 유리하다는 말이다.

▲ 다양한 형태의 한글문자도이다. 글자 자체의 변형이나 아름다움보다는 글자를 장식하는 측면이 강하다. 한글문자도는 정해진 글자나 문장이 없고 유행이나 개인의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전통문양이나 궁중회화, 민화 따위에서 그림을 차용해 전통적인 상징과 느낌을 살리고 있다. 우리그림의 상징은 모두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비판이나 부정적인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좌측 하단에 영어상표를 한지에 문자도 형식으로 그린 작품이 이채롭다. 문자도의 현지 적응력과 세계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최근에는 한글문자도가 창작되고 있다.
한글문자도는 한자문자도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 글자를 소재와 주제로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사용하는 상징과 쓰임새는 달라졌다.
이처럼 한자문자도와 한글문자도가 차이를 보이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문자도의 한계는 그림이 아니라 문자 자체에 있다.
문자도는 모든 문자나 문장을 소재로 하지 않는다. 문자를 그림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수복, 인의예지신 따위의 핵심적인 글자만 추렸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핵심 글자와 현대를 대표하는 글자는 많이 다르다.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수복(壽福)이나 충효(忠孝), 인의예지신이라는 가치가 필요하겠지만 그 보다 더 많고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개인성을 추구한다.
조선시대에 문자도에는 없었던 ‘사랑’, ‘꿈’, ‘희망’, ‘도전’ 따위의 글을 사용하고 심지어는 ‘꿈은 이루어진다.’, ‘하면 된다.’, ‘부자되세요.’ 따위의 문장이 등장하고 개개인의 이름을 가지고 문자도를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한자를 사용하던 조선시대에 비해 현대에는 한글을 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한자와 한글은 조형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상형문자인 한자가 그림과 사촌관계라면 소리글자인 한글은 그림과 별 관련이 없는 타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의 뜻과 모양을 그림과 결합해 변형하는 일은 조형적으로 아름다움을 주지만 한글을 그림으로 변형하는 일은 아주 어렵고 멋이 없다.
그래서 한글문자도는 글자를 최대한 살리면서 주변을 장식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글자와 그림의 결합이 주는 맛을 덜하지만 대신에 글자나 내용에 얽매이지 않는다.
한글문자도는 그림의 조형성은 과거에 비해 약해졌지만 개인의 요구에 부합하는 대중성은 강해졌다.

한자를 사용하든 한글을 쓰든 간에 문자도는 우리그림의 소중한 유산이고 문화이다.
독립된 그림형식으로도 가치가 있으며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문자도는 글자와 그림이 결합한 것이다. 글자를 사용하지만 읽는 것이 아니라 보고 감상하는 그림이 된 것이다.
글자는 고도의 추상성을 가지고 있고 많은 내용을 몇 개의 글자나 문장에 담을 수 있다.
추구하는 가치나 선호하는 글자에 따라 지식인의 취향에 맞춰 고급스럽게 만들 수도 있고,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가치나 이름과 같은 개인성을 담아 대중적인 그림으로 창작할 수도 있다.

유럽여행 중에 중국인이 서양인의 이름을 한자로 써 주는 것을 보았다. 파리의 세느 강가에서 보았던 모습인데 제법 짭짤하게 장사가 되었다.
서양인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소리 나는 데로 한자로 받아 적었다. 뜻글자인 한자를 소리글자로 바꾼 것인데 마치 코카콜라를 음차(音借)하여 可口可樂(커코우커러)이라고 쓰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자로 쓴 자신의 이름을 서양인은 글자로 볼까 그림으로 볼까? 아마 대부분은 신기한 그림으로 인식할 것이다.
만약 서양인의 이름을 한글로 받아쓰고 각종 길상문양과 그림을 결합하면 멋진 관광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력이 충만한 이상세계’를 담은 궁중회화를 비롯해 장수와 부귀영화, 출세, 가족화목 따위의 내용을 담은 민화는 세계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우키요에’라는 채색판화가 유럽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우키요에’가 강렬한 색채를 사용해 사회풍속이나 인간감정 묘사에 치중한 내용이라면 우리의 궁중회화와 민화는 ‘생명과 이상적인 삶’을 다루고 있으며 형식면에서도 회화적 깊이와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그림은 대중화에 성공한 경험이 있고 종교와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적응하는 변주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그림의 세계화는 멀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그림을 제대로 알고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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