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7월 6일 모란봉악단 시범공연 때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리설주 부인. 당시 북한의 언론은 이 사진을 게재하면서 리설주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지난해 7월 6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한 여성과 함께 나란히 앉아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을 관람했다. 다음 날 북한의 언론매체는 아무런 설명 없이 이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7월 8일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과 이 여성이 함께 김일성 주석 18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남쪽에서는 이 여성이 누구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신상 비공개로 궁금증 유발

일주일 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 여성이 평양 경상유치원을 현지지도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을 근접거리에서 수행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다. 노란색 물방울무늬 원피스와 하얀색 카디건 차림에 하이힐을 신어 매우 세련돼 보이는 이 여성은 김 제1위원장이 원아들을 안고 웃을 때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바로 옆에 서서 미소까지 지어 보여 금실 좋은 부부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 여성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부인임이 확실해 졌다.

7월 25일 김 제1위원장이 릉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참석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북한 언론매체는 처음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동지’가 동행했다고 실명 보도했다. 중요한 대목은 이 행사에 류홍차이(劉洪才) 중국대사를 비롯해 평양주재 외교 및 국제기구대표, 임시대리대표들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는 것이다. 준(準)외교행사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한 셈이다.

처음에 아무런 설명 없이 국내 행사에 참석한 사실을 공개해 대내외적으로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20여 일만에 외교석상에 나타나면서 부인이라는 점과 실명을 전격적으로 공개하는 과정은 잘 짜여진 한 편의 드라마였다. 또한 김정은시대에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과 활동이 다를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 2012년 7월 말 릉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참석한 김정은 제1위원장 부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실제로 릉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참석한 리설주 부인은 이미 안면이 있는 류홍차이 중국대사 부부와 자연스럽게 악수를 했고, 다른 외국대사 및 부인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더구나 릉라인민유원지를 돌아보며 김정은 제1위원장의 팔짱을 끼고 자연스럽게 걷는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팔짱을 끼지 않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파격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조선노동당 비서도 이런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조카며느리와 웃으며 대화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부인이 현지지도에 동행하거나 독자적으로 대외활동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평양의 인민대학습당을 비롯해 북한의 주요 공공기관 및 시설, 학교, 공장 등에는 예외 없이 ‘백두3대장군’의 사적비와 현지지도 현황판이 설치돼 있다. 여기서 ‘백두3대장군’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숙 부인,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의미한다. 북한에서 김정숙 부인은 김일성 주석의 ‘가장 충실한 호위전사’이자 ‘인민의 어머님’으로 추앙된다. 김정숙은 해방직후인 1946년부터 김일성 주석의 현지지도에 수행하는 한편, 여맹 간부들과 만나는 등 독자적인 대외활동에도 나섰다. 1949년 김정숙 부인이 사망한 뒤에는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형제국가와의 정상외교 때 김일성 주석의 두 번째 부인인 김성애가 퍼스트레이디로서 자리를 함께 했다. 다만 1970년대 초반 김성애가 ‘권력남용’으로 비판을 받고 모든 직위에서 해임된 뒤에는 김성애의 수행 모습이 언론매체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과거에도 부부동반 사례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이후에는 한 번도 최고지도자의 부인이 언론매체에 공개되지 않았다. 물론 꼭 필요한 경우 김정일 위원장도 예외적으로 김영숙 부인을 동행한 적이 있었다.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은 지난해 <민족21>과의 인터뷰에서 “1990년 가을 어느 날 김정일 위원장(당시 노동당 비서)이 마련한 연회에 김영숙 부인을 동행한 적이 있다”며 “내가 여자라서 김 비서가 부인을 대동하고 나온 것 같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995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에는 ‘존경하는 어머님’, ‘평양의 어머님’이라고 호칭된 고영희 부인(2004년 사망)이 수행했다. 방문한 곳에서는 근로자, 군인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공식매체에서 이를 보도하지 않아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장소에 있던 주민과 군인들은 당연히 부부 동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02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갑연에서 고영희 부인은 많은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주의 강성부흥조국을 일떠세워 갈 굳은 마음 가다듬으면서...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우리들 모두가 맡겨진 본분을 잘할 것을 다짐하며 축배를 들 것을 제의합니다”라며 직접 축배사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정은 제1위원장 부부가 나란히 현지지도를 하는 모습이 언론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에 대해서 북한 주민들은 상당한 파격으로 받아들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모습에 상당한 기대와 호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사업가로 지난해 평양에서 방문했던 쩌우쯔펀(鄒子芬)은 홍콩의 한 주간지와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이 리설주 부인을 패션 감각이 있고 단정하며 품위 있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북한 주민들은 리설주 부인이 김정은 제1위원장 곁에 있어 지도자의 친화력이 더욱 돋보이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 2012년 9월 리설주 부인은 평양 대동강타일공장과 평양민속공원 현지지도에 동행하며 잇달아 바지 차림으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자료사진 - 민족21]
북한이 지난해 퍼스트레이디를 전격적으로 공개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김정은시대에 들어서면서 최고지도자가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책노선과 마찬가지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숙 부인의 활동이 기본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리설주 부인은 군부대와 지방사업장 시찰까지 동행하며 활동반경을 넓혔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난해 7월 6일부터 8월 7일까지 한달 간 진행된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 13회 가운데 이설주 부인은 모두 9차례(7월 6회, 8월 3회)나 동행했다.

특히 리설주 부인은 지난해 9월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창전거리 아파트에 입주한 일반 가정집을 방문했을 때 노인에게 준비해간 음식을 직접 차려 대접하는 모습, 아이들에게 먹이라며 직접 만든 음식을 선물로 주고 조리방법을 알려주는 모습 등을 연출함으로써 ‘위민정치’를 하는 ‘인민의 지도자’로 김정은 제1위원장을 부각시키는데 일조하는 활동을 보였다. 또한 최고지도자의 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바지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내 여성들이 자유롭게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해금(解禁)’시켜 북한 젊은 여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부부동반 정상회담 성사될까

둘째는 대외적으로 최고지도자로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며 “언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오셔서 내가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썼더라”라고 농담처럼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국제사회가 자신의 지도자를 보는 시각은 그다지 밝지 않은 점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북한은 이러한 점을 불식시키고 대외적으로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부부동반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한 한반도문제 전문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부부동반으로 나와 중국 대사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놀이기구까지 함께 타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중국인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호전된 듯하다”라며 “중국은 리설주 부인이 중국 유학 경험이 있는 것에 대해서도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김정은 제1위원장 부부의 활동모습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젊은 지도자라 역시 다르다’, ‘상당히 신선한 변화’라는 이미지가 형성된 것 같다”며 “북한이 애초부터 이러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일정부분 성과를 거둔 것은 확실하다”라고 평가했다.

셋째는 남북정상회담이나 정상외교를 ‘세계적 추세’에 따라 부부동반으로 할 경우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부인의 공식화를 통해 부부동반 형식의 정상외교를 예고한 셈이다. 릉라인민유원지 준공식 때 외교사절과 인사를 나눈 것이 그 첫 무대였다. 리설주 부인은 남쪽을 방문한 경험이 있고, 중국 유학 경험도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을 둘러본 경험도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현지지도 때마다 강조하는 ‘세계적 추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준비된 퍼스트레이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리설주 부인의 등장은 중국 시진핑 (習近平)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펑리위안 부인은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며 과거 다른 중국의 ‘디이푸런(第一夫人, 퍼스트레이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2008년 5월 ‘쓰촨(四川) 대지진’때는 피해 주민 및 피해 복구에 나선 군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과거 중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이 대부분 남편의 내조에 그쳤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는 산둥(山東)성 출신으로 18세에 가요계에 데뷔한 ‘민족성악의 대표가수’로도 유명하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리설주 부인도 은하수관현악단의 ‘독창가수’ 출신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향후 6자회담 재개 시점을 전후해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부부동반으로 북중 정상외교에 나설 경우 중국의 국민가수 출신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펑리위안 부인과 역시 유명 독창가수 출신인 리설주 부인의 만남은 큰 화제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대통령이라는 점, 리설주 부인이 남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박근혜 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만찬석상에 부부동반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 2007년 5월 금성학원 재학 중이던 리설주 학생이 남측방문단을 위한 공연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 2005년 9월 제16회 인천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 북측 청년학생협력단의 일원으로 남한을 방문한 리설주 학생이 〈꽃놀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다(왼쪽 첫번째). [자료사진 - 민족21]
잘 알려진 것처럼 리설주는 금성학원 전문부(대학부) 재학 중이던 2005년 8월 31일 제16회 인천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맞아 인천을 방문한 124명의 북측 청년학생협력단의 일원으로 뽑혀 5박 6일 동안 인천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그 기간에 청년학생협력단의 3차례 공연에 나와 동기생 유별님 학생과 함께 <꽃놀이>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남한의 여성대통령, 역시 최고지도자의 부인이 되기 전 남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화젯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조건인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유훈을 남겼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부인을 공식화하고 현지지도에 함께 하는 모습을 공개한 것도 이 같은 유훈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최고지도자의 부인 공개와 현지지도 동행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이미지 제고 차원이든,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든 김정은시대에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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