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사진은 힘이 세다. 잘 조작된 사진은 순식간에 진실을 감추거나 왜곡하고, 반대로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 오랜 시간 사람들을 지배했던 편견이나 선입견이 무너지기도 한다. 몇 년 전 통일전문지인 『민족21』에 실렸던 평양 거리에서 휠체어를 타고 가는 장애인 사진이 ‘선전 도시 평양에는 장애인이 없다’는 낭설을 사라지게 만든 게 후자의 대표적 사례다.

▲ 정창현 『평양의 일상: 사진으로 북녘 생활을 엿보다』(역사인) 표지. 책 표지 사진의 주인공은 김책공업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여학생이라고 한다. 창밖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건물은 쌍둥이 건물로 유명한 고려호텔이다. [사진제공 - 도서출판 역사인]
『평양의 일상: 사진으로 북녘 생활을 엿보다』도 바로 이러한 ‘사진의 미덕’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민족21』 대표를 맡고 있는 정창현이 『민족21』의 방북취재 사진, 북측 협력사인 『통일신보』, 일본측 협력사인 『조선신보』가 보내준 사진 등을 선별하고 여기에 글을 더해 만들었다. 이 책이 북녘 일상을 다룬 기존 책들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풍부한 사진자료를 통해 북녘 일상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넓혀주고 있다는 점이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등을 계기로 남쪽 주민들이 북쪽을 찾을 기회가 과거에 비해 급격히 늘어나기는 했지만, 북쪽 주민의 일상생활을 접할 기회는 여전히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대다수 방북기가 여러 유적과 시설 참관 일정을 나열하는 식으로 씌어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글들에는 평양 옥류관의 음식, 주체사상탑, 개선문, 평양산원 같은 장소, 묘향산, 청천강, 백두산, 금강산 같은 산천이 등장하지만, 북녘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방북자들은 차를 타고 가며 보거나, 스쳐지나갈 뿐 버스기사, 안내원, 해설사, 접대원을 제외하면 북쪽 주민과 좀처럼 대화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호텔 건너편에 그들의 아파트가 있고 식당과 주점이 있고 주민들이 다니고 있지만 우리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 호텔 앞 4차선의 도로를 건너가지 못한다. 그 도로가 사실상 남과 북의 또 다른 국경인 셈이다. 평양 관광은 북측이 그어놓은 선을 벗어나지 못한다.(…) 북한 주민들과는 언제나 스쳐지나갈 뿐이다. 우리가 손을 흔들 때 손을 흔들어 답해주는 주민들이 없었다면 숨이 막혔을 것이다.”(정일근, 「천천히, 가까이, 따뜻하게-5박 6일의 북한방문기」, 『환경과생명』 45호, 2005, 105쪽)

현실이 이렇다보니 북녘 주민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또는 그들이 나서 죽을 때까지 어떻게 한 생을 보내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정작 지금은 남녘으로 거처를 옮긴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에 많이 의존해 풀어왔다. 곧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북녘 일상의 대부분은 북한이탈주민들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과거의 일상인 것이다.

게다가 국내 정착 북한이탈주민은 67.3%가 함경북도 출신이고, 두 번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함경남도 출신이 9.4%에 불과할 정도로 지역적 편중이 크다(통일부 2010년 12월 기준 통계). 특히 북한 전체 인구의 약 14%를 차지하고 있는(2008년 북한 인구센서스) 평양 출신은 전체 북한이탈주민 중 2.1%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과거의 일상 중에서도 우리는 대부분 함경도 사람들의 일상을 전해 듣고 있는 셈이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 살더라도 도시 주민과 농어촌 주민의 일상이 다르고, 지방과 수도의 일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일상에 대해 듣는 것에 더해 사진이나 영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훨씬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의 일상: 사진으로 북녘 생활을 엿보다』는 우리가 뜻밖에도 잘 모르는 ‘수도’ 평양 시민의 일상을, 평양 사람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전달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수백 장이 넘는 사진으로 직접 보여줌으로써 북녘 일상 연구의 공백을 훌륭히 채워주고 있다.

한편 이 책은 출생부터 학교생활, 취업, 연애·결혼, 여가생활, 직장(협동농장, 공장·기업소), 명절, 종교생활, 제례문화까지 북녘 주민의 생애주기를 따라 글과 사진을 배치함으로써, 하루하루 생활만 보면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남녘 생활과 북녘 생활의 ‘차이’를 확인할 기회도 제공해준다. 독자가 자신이나 가족, 지인들의 생애를 추억하고 상상해보면서 북녘 주민의 생애를 듣고 보는 묘미도 상당할 것이다.

▲ 평양산원의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 [사진제공 - 도서출판 역사인]

▲ 즐거운 소풍: 소학교 학생들의 소풍가는 모습. [사진제공 - 도서출판 역사인]

▲ 평양 통일거리시장. [사진제공 - 도서출판 역사인]

▲ 2005년 국제노동절을 맞아 직장별로 보통강가에 나온 근로자들이 노래자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도서출판 역사인]
『평양의 일상: 사진으로 북녘 생활을 엿보다』 덕분에 이제 우리는 북녘 일상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아쉬움은 많다. 일단 북녘 주민의 생애 중에 책의 저자도 빠져 있어 아쉽다고 말한 ‘군대생활’을 좀 더 알고 싶다. 남녘에서는 ‘군디컬 드라마’, ‘군대 예능’까지 나올 정도로 군대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북녘 군대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하다. 북녘 여성들도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지루해할까? 남녘과 다른 북녘 군대생활의 특징은 무엇일까?

나아가 기왕 ‘듣는’ 일상에서 ‘보는’ 일상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면, 수도 평양뿐 아니라 지금까지 조금씩이라도 들었던 회령, 청진, 신의주, 혜산, 라선, 원산, 사리원, 해주 등 북녘 곳곳 주민의 일상도 사진으로, 영상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통일이 ‘제도의 통일’을 넘어 ‘사람의 통일’로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녘 주민의 일상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다. 만약 위에서 말한 아쉬움까지 채워진다면 남북은 사람의 통일에도 성큼 다가섰다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출간을 계기로 북녘 일상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고, 북녘 일상에 대한 남녘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여: 저자에게 물어보니 책 표지 사진의 주인공은 김책공업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여학생이라고 한다. 창밖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건물은 쌍둥이 건물로 유명한 고려호텔이다. 책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평양 어디쯤일까 궁금한 독자는 ‘구글 지도’에서 평양 시내를 살펴보기 바란다. 고려호텔 오른편으로는 기다란 평양역 건물도 보일 것이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또는 구글 지도로 만족이 안 되는 독자를 위해 재판을 찍을 때 상세한 평양 지도를 첨부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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