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정애 / 재일동포

▲ ‘2013동아시안컵’ 여자축구 북일전에서 남측 응원단이 북측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민신문]

오늘 현장에 와 계신 김익흥 통일뉴스 국장님이 나한테 ‘기사를 쓰라’고 하셨다고 전해 들었을 때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언론들이 못하고 있는 일이지만 기사는 ‘주관없이 공평하게’ 써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내가 북일전 기사를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기사가 아니라 ‘참관기를 쓰라’는 것이었다. 그럼 마음대로 한번 써 보자구나.

드디어 이 날이 왔다. 이 날 생각만 하면 저절로 긴장되었다. 21일 일요일, 남북전을 참관하러 6.15산악회 식구들과 함께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갔는데 그때 긴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남쪽과 비기거나 져도 크게 낙담할 일은 없지만 상대가 일본이면 이야기가 다르다. 죽어도 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면 너무나 당연한 정서가 아니겠는가. 그날 우연히 일본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남북이 한 팀이 되어 일본팀을 꺾어야 하는데요”라고 대답했다.

▲ 경기전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북측 선수들. [사진제공-수원시민신문]

남북전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나 복잡했다. 북쪽 선수들이 남쪽에 들어와서 국제시합 무대에 서는 것은 반갑지만 ‘친선’시합도 아니고 서로 ‘적’으로 싸워야 하니 말이다. 6.25 때부터 이어지고 지금도 계속 ‘적’이어야 하는 현실을 재인식시켰다. 전쟁만 아니라 국제적인 시합에서 동족끼리 싸워야 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한없는 비극이다.

민가협 주최의 목요집회에 참가하고 선생님들과 함께 바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종로3가역에서 수원역을 거쳐 경기장까지 2시간 이상 걸린다. 승용차로 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하다. 내가 남쪽에서 면허증을 딸 수 있으면 승용차로 선생님들을 모시고 갈 수 있을 텐데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니 면허증도 못 따는 신세다. 이날 김익 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은 다른 행사가 있어서 함께 못 가게 되었다. 내가 책임지고 선생님들을 모시고 가야 했다.

수원역에 도착한 것이 4시 반이었다.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데 30분 이상 걸린다. 5시 15분 경기인데 5시를 넘어야 도착하겠다. 마음이 너무나 급했다. 겨우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너무나 조용했다. 주변에 사람이 전혀 없었다. 바로 축구시합이 시작되려는 경기장 치고는 너무나 한산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 먼저 가있던 6.15산악회 회원이신 김래곤 형님과 통화를 해서 겨우 알았다. 우리는 ‘수원 월드컵경기장’에 있었다...

▲ 북일전, '일본한텐 무조건 이겨야지.' [사진제공-수원시민신문]

‘화성종합경기타운’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이상하게 꼭 ‘타운’이라는 외래어를 써야 할까.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런 지명도도 거의 없고 가장 가까운 수원역에서도 버스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교통편도 완전히 안 좋은 곳에서 국제시합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제 수원월드컵경기장 일정을 봤을 때 전혀 일정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갱신 안 했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었다. 통일뉴스 기사에 실린 일정도 봤었는데 그냥 ‘수원, 화성 = 월드컵경기장’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멍청했는가. 믿기지 않았고 너무나 황당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들한테 너무나 죄송했다. 어쩐지 김익 사무국장이 같이 안 가는 것이 불안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부부 둘 다 멍청했다...

겨우 택시를 잡고 너무 멀다는 기사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진짜 경기장으로 향했다. 40분 걸렸다. 전반전이 0-0으로 끝나고 휴식시간이었다. 미리 표를 구해 주신 래곤 형이 나와 계셨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산에서 만날 때보다 훨씬 반가웠다. 이날 우리가 관람하는 표는 화성노동인권센터 최진선 소장님이 구매해 주셨다. 처음 뵌 분이라 명함을 받았더니 통합진보당 화성시 을 지역위원회 부위원장이시기도 하다. 나와 래곤 형이 통화하는 것을 듣고 계셔서 우리 표까지 사 주셨다고 한다. 인사는 드렸지만 다시 한 번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반전에 대한 참관기는 못 쓰지만 들은 이야기로는 실력이 거의 비슷해 보였고 북이 일본을 밀어부치고 있었다고 한다. 못 본 전반전을 하이라이트 동영상으로 봤는데 아쉬운 슛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것이 들어갔으면 분명 북이 이겼을 텐데. 후반전은 처음에는 거의 비슷하게 나갔지만 점점 일본의 공격이 많아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이 패스를 잘했다. 거의 실수를 안 했고 공을 잘 돌려서 짜증나기도 했다.

▲ 일본응원단은 ‘붉은 악마’의 태극기보다 수배나 큰 일장기를 좌석 한 쪽에 걸었다. [사진제공-수원시민신문]

짜증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덩덩덩덩...’ 아무 장단도 없이 그냥 막 치는 일본 응원단의 일본북 소리가 내 비위를 거슬리게 했다. 35년 이상 일본에서 살았지만 일본북 소리는 내 정서에 안 맞는 것은 물론 전쟁 출진 소리 같아서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았다. 게다가 ‘붉은 악마’의 태극기보다 수배나 큰 일장기를 좌석 한 쪽에 걸었다. 우리는 상암동경기장에서 작은 통일기도 못 가지고 들어갔는데 그것은 괜찮은 것일까?

심지어는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마저 몰수당할 뻔해서 제대로 걸지도 못했지 않은가. 그런데 무식하게도 우리 땅에 그렇게 큰 일장기를 들고 와서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자유석이라 하지만 그렇게 많은 좌석을 점령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가 입구를 들어갈 때 일장기를 가지고 ‘사무라이’ 분장을 한 일본남자가 입장거부 당하는 것을 봤는데 임진왜란이 생각이 나서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았다.

▲ 다 같이 빨간 옷을 입은 응원단. [사진제공-수원시민신문]

▲ '우리는 하나다' [사진제공-수원시민신문]

그러나 천만 다행하게도 우리 응원단이 너무나 잘했고 멋있었다. 다 같이 빨간 옷을 입고 조직적으로 구성된 응원단이 따로 없었다. 소리도 동작도 다 맞추어져 있었고 ‘우리는 하나’까지 잘 불렀었다. 나는 시합을 보면서 살 거 같이 않아서 제대로 응원 못했는데 그 분들이 있어서 북쪽선수들도 기뻤을 것이고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 침작된다. 우리도 그 응원단 쪽으로 가서 같이 하고 싶었지만 못 가게 막아놓았다. 그런데 유일하게 6.15산악회 나순석 총무는 박희성 선생님의 말씀 그대로 ‘마치 홍길동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몇 번 일본선수들이 슈팅을 했는데 홍명희 골키퍼가 진짜 잘 막았다. 그 중 발로 막은 것은 진짜 예술적이었다. 못 막았으면 점수가 들어갔었다. 결과는 비겼지만 피파랭킹 3위인 일본에 9위인 북이 비긴 것만이라도 얼마냐. 게다가 북은 국제경기 경험이 아직 많지 않다. 이번 동아시안컵이 끝나면 순위가 올라갈 것이다. 우리는 나라 반쪽만으로 인구가 2배 이상 되는 일본에 이긴 거니까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다음은 토요일에 중국과 대결하고, 그리고 일요일은 남측이 일본과 대결하는 차례다. 제발 이겨 주길 바라며 최악의 경우라도 비겼으면 좋겠다.

▲ 북측의 슈팅을 일본 골키퍼가 막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민신문]

▲ 경기후 북측 선수들이 응원단 쪽으로 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민신문]

경기장을 나가서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입구에 버스들이 보였다. 우리 일행은 자연스럽게 거기로 가게 되었다. 듣고 보니 선수들의 버스라고 한다. ‘VIP’라고 크게 쓰인 버스를 보러 갔는데 ‘JAPAN’ 버스였다. 제기랄. 북측선수 버스는 우리와 접촉 못하도록 안쪽에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버스가 지나가면 손이라도 흔들고 배웅할 수 있지 않나, 래곤 형과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에 ‘붉은 코리아 응원단’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다. 어디서 온 분들인지 알고 싶어서 물어봤더니 그 분은 울산 진보연대에서 오신 분이고 울산, 부산에서 오셨다고 한다. 학생들이 많아서 너무 기뻤다. 우리는 가까운 서울에서 거의 안 와 참 실망스러웠는데 참 고마웠다. 알고 보니 내 페친 분도 그 자리에 계셨다고 한다. 서로 얼굴을 몰라서 인사도 못했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 경기 후 북측 선수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 밖에서 기다렸다. [사진-리정애]

▲ 북측 선수들이 손을 흔들며 운동장 바깥으로 나왔다. 순간 기다리던 남측 응원단 쪽에서 “와~~!!!” 환성이 터져 나왔다. [사진-리정애]

“와~~!!!” 환성이 나왔다. 북측 선수들이 나온 것이다! 자리를 잘못 잡아 멀리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너무나 반가웠다. “우리는!!! 하나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일동이 한결같이 구호를 외쳤다. 2005년 8.15, 장충체육관에서의 8.15민족대축전이 생각났다. 그때는 “조국! 통일!”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바로 눈앞에서 북쪽 대표단을 배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인을 받거나 악수를 하는 것은 물론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못하게 막았고 심지어는 대표선수들의 버스 창문에 까만 시트를 발랐었다. 그래도 우리의 성원에 대답해서 북쪽 선수들이 계속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반가워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강담 선생님도 눈물이 나셨다고 한다. 나라도 이러는데 북쪽이 조국이자 고향이신 선생님들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겨레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는데 말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손 한번 못 잡는다는 것이 정상적인 일일까? 우리 민족을 대학살하며 둘로 갈라놓은 미국과 함께 겨레가 사는 땅을 대상으로 1년에 몇 번씩이나 군사훈련을 해서 위협하는 것이 ‘정의’란 말인가?

우리는 27일 정전 60주년을 맞이한다. 이 세상에 전쟁을 좋아하는 민중이 어디 있겠는가. 전쟁위기를 높이려는 세력에 반대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여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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