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들은 예술가는 시대를 앞서 간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창작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예술가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유럽의 추상미술이나 모더니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길게 잡아야 150여 년을 전후해서 형성된 사고방식이라는 말이다.
시대를 앞서가거나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상과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또한 군사, 경제, 정치적 바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예술가는 철학자도 아니고 군사, 경제, 정치에 관련된 전문가는 더욱 아니다.
예술가는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앞서가는 존재가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는 사람이다.
다만 여타의 전문가처럼 오랜 공부를 통해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보통사람들 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감지할 수 있다.
물론 예술가는 예술창작을 통해 형성된 특유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연의 흐름이나 질서에 반응하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나 평등을 억압하거나 자연이나 공동체를 해치는 행위나 생각에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컴퓨터를 미술도구로 사용해 창작하는 디지털회화는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반영한 것이다.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기기는 이미 시골 동네의 할머니들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그럼에도 일반 사람들의 디지털회화에 대한 반응은 새롭고 낯설다.
예술가는 시대의 흐름을 개척한다고 여기면서도 정작 창작품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것이다.
보통 미술과 과학은 전혀 별개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과학에는 천체물리학이나 의학, 공학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학과 이성, 합리적 추론과 실험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학문은 과학이다.
미술이 감성이나 표현이라는 추상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어엿한 학문이고 과학의 발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유화물감이 개발되기까지 대부분의 미술작품은 수성물감으로 창작되었다. 수성물감은 식물이나 동물, 혹은 흙이나 돌처럼 자연에서 색소를 채취하여 가공한 것이다.
이런 수성물감은 물감을 붙이는 어떤 화면, 화지, 화폭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표현기법이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물감과 화폭의 수준이 미술표현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흔히 ‘명필이 붓을 탓하랴’는 말이 있다. 뛰어난 서예가는 허접한 붓으로도 좋은 글씨를 쓸 수 있다는 뜻이지만 창작의 현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명필일수록, 실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도구에 민감하다. 좋은 도구가 아니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가는 습관적으로 미술도구를 파는 화방에 들린다. 거기서 좀 더 좋은 물감이나 미술도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실제 구매해서 창작에 반영한다.

유화물감이 언제 개발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대략 10세기 전후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어쨌든 물감을 기름에 녹여 사용하는 유화기법은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유화물감의 발명으로 미술은 엄청난 발전을 이룬다. 수성물감으로는 그 당시 최첨단 조형기법인 원근법과 명암법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다. 유화물감은 원근법이나 명암법의 표현은 물론이고 사물의 질감이나 색상까지도 실제와 비슷하게 재현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인물, 풍경, 정물 따위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 빛이나 곰팡이, 습기에도 강해 현재까지 보존되는 작품이 많다.
초기 유화물감은 분말형태의 안료를 기름에 개어 사용했다. 그러니까 대량으로 구입한 분말안료를 그림제작에 맞게 양을 조절하고 필요한 색깔을 그때그때 만들어 사용했다는 말이다.
물감을 미리 만들어 놓으면 좋겠지만 쉽게 굳어버리고 한번 굳은 물감은 사용할 수가 없다. 어떤 화가는 동물의 오줌보를 이용하여 물감을 보관했다는 기록도 있다.

초기 화폭은 대부분 두툼하고 무거운 나무판을 사용했다. 조금 지나서는 나무판 위에 광목천을 씌워 그렸고 나중에는 나무 조각을 잘라 이어서 만든 가벼운 화폭이 등장한다. 19세기 말에는 동물의 오줌보 대신에 튜브에 물감을 담는 기술이 생기면서 전문가에 의해 미리 만들어진 다양한 색상의 물감이 보급된다.
가벼운 화폭과 소량의 물감을 넣은 튜브물감의 발전은 미술도구를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가벼워진 미술도구를 들고 햇볕이 창창한 거리에 나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회화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인상주의는 이런 미술도구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유화물감이 가지고 있는 단점은 늦게 마르고 투명성이 없으며 화폭의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는 이것을 보완한 물감이 개발되는데 바로 ‘아크릴 물감’이다.
아크릴물감은 ‘아크릴 에스터 수지’를 사용하여 만든 화학물감이다. 유화물감과 달리 아크릴물감은 수성물감이다. 그럼에도 접착력이 높아 광목천뿐만 아니라 벽, 종이, 나무, 유리 따위의 다양한 소재를 화폭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수성물감이라 빨리 마르면서도 물감끼리의 접착력이 좋아 유화와 같은 덧칠기법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보조제를 사용하면 유화나 수채화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기법과 표현이 가능해 젊은 화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상품을 만들거나 생활 공예 영역에 많이 사용된다.

미술도구는 과학기술의 집합체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술표현의 영역을 크게 확대했고 대중화에 기여했다.
조선말 대중그림인 민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질 좋고 값싼 종이와 물감이 대량으로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 민화를 그리는데 사용하는 물감과 붓. 이미 만들어진 수채물감을 작은 접시에 덜어 사용한다. [자료사진 - 심규섭]

모든 미술물감의 출발은 수성물감이다.
특히 동양은 유화물감이 수입되기까지 수성물감만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화폭은 종이와 비단이다.
궁중회화의 진채기법은 수성물감과 아교라는 미술용 접착제를 사용한다. 당연히 자연에 채취한 분말안료를 물에 녹여 색깔을 만들었다. 안료를 섞어 다양한 색깔을 만드는 일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수성이기에 만들어 놓은 물감이 말라도 다시 물로 녹이면 된다. 보관문제는 크게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성물감은 담채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감을 물로 녹이는 과정에서 묽어지기 때문이다. 담채란 슬쩍 칠해 밑그림이 드러나는 채색기법이다. 그러니까 담채기법에서 제값의 원색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수묵화나 수묵산수화에 주로 사용한다.
궁중회화의 진채기법은 수성물감을 여러 번 겹쳐 칠해 진하고 선명한 색상을 내는 방법이다.
당연히 투명도는 사라진다. 겹쳐 칠하기 위해서는 물감을 비단에 붙이고 물감과 물감이 서로 붙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미술용 접착제인 아교가 한다. 물감과 아교를 번갈아 칠하는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과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을 요구한다. 많게는 수 십 차례의 물감과 아교가 겹쳐진다.
그래서 진채기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오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10폭짜리 장생도, 대략 3m 정도 크기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궁중화원 2~3명, 보조해주는 사습생도 4~6명이 3개월 이상 꼬박 그려야 한다.
궁중회화의 진채는 대중화가 불가능하다.
작품의 크기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너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진채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이렇게 어렵고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기법의 그림은 대중성을 얻지 못한다.

▲ 간편한 수채물감의 보급으로 약간의 미술적인 기술과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민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수채물감은 19세기 말에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분말안료를 서로 섞어 물감을 만드는 시대에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색상의 튜브물감은 가히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튜브에 담은 물감이 비싸다면 이미 색상이 만들어져 있는 물감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작은 용기에 담아 사용했을 것이다. 또한 수채물감은 건식과 습식기법이 모두 가능하다. 물감을 말려놓고 물로 녹여가면서 그리는 기법인 건식기법, 마르지 않은 물감은 그대로 사용하는 습식기법이 있다. 건식기법은 물감의 보관이 편하면서 담채기법에 적합하다. 습식기법은 진한 색상을 얻기 좋다.
수채물감을 건식기법으로 사용하면 적은 물감으로도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미술의 3대 조형요소는 ‘형(形), 상(像), 색(色)’이다. 이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없으면 그림의 가치가 떨어진다. 특히 색이 없는 그림은 시각적 아름다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중들은 사물의 형태보다는 의미와 상징인 ‘상(像)’과 아름다운 색을 더욱 선호한다. 동물이나 꽃은 실제처럼 똑같이 그리지 않아도 된다. 강아지의 몸에 귀만 크게 그려도 사람들은 토끼라고 생각한다. 개의 몸에 줄무늬만 넣어도 호랑이라고 여긴다. 비슷하게만 그려도 금방 알아보는 것이다.
상징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화가가 만들 필요는 없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알록달록한 색은 그림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지금은 흔해 빠진 것이 색상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색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백성들은 ‘관혼상제’와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다양한 색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수채물감의 보급은 궁중회화가 대중화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궁중회화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핵심에 색과 색을 칠하는 기법에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도구의 예술이다. 도구에는 사용법이 내재되어 있다. 수채물감을 사용한다는 말은 물감 속에 내재되어 있는 사용법, 즉 기법을 활용한다는 말과 같다.
수채물감의 보급은 복잡하고 어려운 채색기법을 간편하고 쉽게 만들었다. 이미 만들어진 물감은 화가가 색깔을 만들고 섞어야하는 고급기술에서 벗어나게 했다. 또한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었기에 구하기가 쉽고 가격도 저렴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물감의 발전이 색과 표현기법을 쉽게 만들었다.
색의 해방과 아울러 민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