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도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비슷한 형식의 그림이 있다.
그 중에서 ‘십장생도(十長生圖)’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성 형식의 그림이다.
보통은 십장생도라는 말처럼 열 가지 장생하는 요소가 들어가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십장생도에 들어가 있는 요소를 열거하면 이렇다.
‘하늘, 해, 구름, 바다, 산, 바위, 소나무, 복숭아나무, 대나무, 불로초, 사슴, 학, 거북’.
십장생도라고 제목이 붙어있지만 실제 그림에 나오는 요소는 열 가지가 넘는다. 또한 그림에 따라서는 각각의 요소가 더해지거나 빠지기도 한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의 장생도에는 그 전에 없던 모란이 추가되고 바다 대신 개울이 그려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십장생도를 보면 열 가지 요소를 찾는데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열 가지가 넘는 요소를 찾아내고는 어느 것을 빼고 넣을지 고민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요소가 진짜인지 논쟁을 하기도 한다.
원래 10진법에서 숫자는 0에서 9까지이다. 10이라는 숫자는 결국 0이다.
십장생도는 열 가지 장생하는 요소를 넣은 그림이라기보다는 ‘완성된 장생도’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가끔 민화의 개념과 영역을 따지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중그림인 민화에 장생도나 일월오봉도와 같은 궁중회화가 결합하기 때문이다. 민화 전시에 버젓이 십장생도가 걸리고 실력 있는 민화작가들은 궁중회화를 창작하기 위해 안달이다.
민화이론가들은 개념에 따른 영역을 명쾌하게 정립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민화작가들은 민화와 궁중회화의 영역을 넘나든다.
이런 현상은 이론으로 막을 수 없다.

민화의 개념을 ‘민중화가’, 즉 떠돌이 환쟁이가 그린 자유롭고 실용적이며 못 그린 그림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정작 현대의 민화작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떠돌이 환쟁이에게 두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이론가는 민화를 떠돌이 환쟁이가 아닌 ‘민간화가’가 그린 작품이라고 애매하게 정하기도 한다.
‘민간화가’라는 말이 떠돌이 환쟁이보다는 폭이 넓고 수준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궁중화원’에 상반되는 개념이다. 궁중화원은 화단의 화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고 화단의 화가는 선비나 양반들의 사상과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창작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궁중화원이 되지 못한 모든 화가를 ‘민간화가’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궁중화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평생 수묵산수화만 그린 화가들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궁중화원과 화단의 화가를 뺀 나머지 화가를 말하고 있는데 지전이나 표구사에 소속된 전문 화공과 소속 없이 장마당을 떠돌며 그림을 그렸던 환쟁이들을 지칭하게 된다.

민화는 대부분 전문 화공들에 의해 창작되었다. 민화로 분류하는 화조도, 문자도, 모란도, 책거리 병풍그림의 대부분은 잘사는 기와집에서 수집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 말은 민화병풍의 값이 상당히 비쌌다는 것을 의미한다. 4~10폭 정도의 병풍그림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화가는 많지 않다.
떠돌이 환쟁이의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결국 채색물감을 다루고 진채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궁중화원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사고파는 지전이나 표구사에 소속된 전문 화공들이 그렸다는 말인데 낙관이나 수표(서명)가 없는 그림은 대부분 전문 화공에 의해 집단 창작된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
이름난 화가가 민화풍의 채색화를 그리는 일은 화단에서의 체면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던 화가들은 어쩔 수 없이 화조병풍을 그려 지전이나 돈 많은 사람에게 팔았지만 낙관이나 이름은 의도적으로 넣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혹 뛰어난 전문화공이 개인적으로 독립하여 자신만의 화실을 차려놓고 그림을 판매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유통망을 장악한 지전의 사장들이 쉽게 용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단의 수묵화와 궁중회화는 충돌하지 않지만 민화와 수묵화는 형식과 내용적인 면에서 부딪히는 부분이 많다.
일단 민화가 채색화가 중심인데 반해 화단의 수묵화는 그야말로 흑백의 그림이다. 민화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을 올곧이 드러내는데 반해 수묵화는 학문에 근거한 엄격한 사상체계와 절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선비들은 민화를 세속적인 그림이라는 뜻인 ‘속화(俗畵)’라고 낮추어 불렀다.

이에 반해 민화와 궁중회화는 형식과 내용적인 면에서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
일단 둘 다 채색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궁중회화의 ‘충만한 생명력’과 민화의 ‘원초적 욕망’도 충돌하지 않는다. 생명력이 충만하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야 하고, 병들지 말아야 하며, 자손을 많이 낳고, 재앙을 막고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
생명의 만개(滿開)를 뜻하는 궁중모란도가 민화에서는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변주되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궁중회화를 대표하는 장생도는 민화에서 가장 많이 변주되고 응용되었다. 의복, 장신구, 장롱이나 노리개, 심지어는 숟가락, 젓가락에도 장생도의 학과 소나무, 대나무 따위의 요소들로 장식했다.

민화작가들이 궁중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창작하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중그림인 민화로 시작해서 창작의 결실을 얻으려면 언제나 궁중회화와 만난다.
민화는 궁중회화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 장생도/이미영/종이에 수채/162×70cm/2010. [자료사진 - 심규섭]

위 그림은 궁중회화인 장생도가 민화로 변주되는 중간과정을 잘 보여준다.
좌우에 하늘 높이 치솟은 소나무가 있고 그 옆에 대나무도 보인다. 여러 식물과 불로초가 피어 있는 땅에는 사슴, 두루미가 있고 바다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헤엄친다. 붉은 해가 화면 중앙에 떠 있고 물결치는 바다에는 마치 섬처럼 표현된 산이 있고 그 산의 중간에 폭포가 흐른다.
그림에는 하늘, 구름, 해, 바다, 산, 바위,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사슴, 학, 거북과 같이 12개의 장생 요소가 나온다. 빠진 것은 복숭아나무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그야말로 거대한 장관의 장생도를 최대한 압축하면서도 장생도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점이다. 장생의 모든 요소가 들어가 있지만 각각의 숫자는 최소한의 필요만큼으로 줄였다. 두 그루의 소나무, 네 마리의 학, 두 마리의 사슴과 거북, 섬처럼 표현된 간단한 산과 하나의 폭포, 문양처럼 표현한 바다를 가지고 장생도를 구현한 놀라운 작품이다.

복잡하고 웅장한 기존 장생도의 화면을 압축하기 위해 놀랍게도 일월오봉도와 비슷한 좌우 대칭구도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완벽한 좌우대칭은 아니다.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붉은 해가 담당하고 좌우로 소나무, 대나무, 두 마리의 학이 엇비슷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대칭과 관계없는 요소는 불로초, 사슴, 거북, 산과 폭포이다.
궁중회화에서 좌우대칭구도를 사용하고 있는 작품은 일월오봉도 밖에는 없다.
전체 구도는 좌우대칭 구도인 일월오봉도를 부분적으로 차용한 것처럼 보이는데 뛰어난 화가가 장생도와 일월오봉도를 적절히 결합하여 이런 구도의 그림을 창작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일월오봉도는 왕의 상징이라는 필요에 따라 장생도에서 나왔는데 장생도를 작은 화면에 압축하고 단순화 시키는 과정에서 일월오봉도와 비슷한 구도가 자연스럽게 나왔다는 말이다.

이 작품은 궁중화원 출신의 화가가 지전이나 표구사의 주문과 요청에 의해 창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것은 이런 구도와 방식의 장생도는 궁중회화에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그림은 궁중회화의 조형원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그릴 수 없다.
물론 처음부터 궁중화원 출신의 화가가 이와 똑같은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엇비슷한 구도에 각각의 사물은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했겠지만 전문 화공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그려지면서 점차 이런 정형화된 그림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 그림은 대략 8폭에서 10폭의 병풍으로 제작했는데 요즘 값으로 환산하면 대략 1,000~2,000만 원 정도로 거래되어 장안의 내로라하는 부잣집의 방안이나 고급 기생집을 장식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공예품이나 생활용품을 만드는 장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공예품에 들어가는 장식그림은 최대한 단순하고 정형화되어야 한다. 장식그림이 복잡하면 물건에 새겨 넣기가 불가능하고 일정한 수준의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물건을 장식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좌우대칭에 의한 안정적인 구도는 규격화된 장롱이나 쌍을 이루는 장신구에 적합하다.
또한 단순화된 사물은 수저나 밥그릇, 밥상, 가마, 의복을 장식하는데 적합하고 반복적인 요소는 물건의 집중력을 높이고 세련미와 장식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지전이나 표구사의 사장들은 궁중화원이나 화단의 화가들과 밀접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일반 백성들에게도 그림을 팔았지만 주된 고객은 돈이 많은 양반들이었다. 화가와 친분이 있는 선비들은 공짜로 그림을 얻거나 물물교환방식으로 그림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현금을 직접 건네면서 거래를 하기는 체면상 어려웠을 것이다.
그림을 돈으로 바꾸려면 화상, 즉 지전이나 표구사를 통해야 한다. 지전의 사장들은 이름 난 화가의 그림을 사서 표구하고 병풍으로 만들어 더 비싼 가격으로 팔았다. 이들의 목적은 이윤을 남기는 장사였고 돈이 될 만한 그림은 가리지 않고 수집하고, 적절한 이윤만 남는다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팔았다.
장생도는 구매력이 높고 판매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구하기 어려웠고 그릴 수 있는 화가도 많지 않았다.
화상들은 궁중의 장생도를 양반이나 일반 백성들이 수용할 만하게 변주할 수 있는 화가를 물색했을 것이다.
궁중회화의 정수인 십장생도를 전문 화공들이 대량으로 창작할 수 있는 정도로 압축하고 정형화할 수 있는 화가는 궁중회화와 대중들의 요구, 전문 화공의 체계와 실력 따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실력 있는 여러 화가에게 주문을 넣었고 여러 그림 중에서 하나가 선택되었다.
이렇게 선택된 그림은 전문화공의 손을 거쳐 다시 변주되었다.
억대를 넘나들던 장생도는 1~2천 만 원까지 가격을 낮춘 대중적인 장생도로 탈바꿈했다. 대중적인 장생도는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소통되었다.
비록 체면 때문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궁중회화를 대중의 그림으로 변주하여 제공한 화가의 탁월한 능력은 민화에 미학과 조형원리에서 튼튼한 뿌리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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