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유족회 500여 회원이 참가한 ‘사법부 규탄 기자회견’이 9일 오후 대법원 앞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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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말을 하는 양용해 유족회 상임대표의장.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사법부는 독립적 국가기구였던 진실화해위원회가 철저한 조사를 거쳐 내린 진실규명 결정에 대해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이 시점에서 희미한 증거를 이유로 새삼 추가 증거조사를 다시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구제에 힘써야 할 사법부가 도리어 그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이하 한국전쟁유족회)는 9일 오후 1시 대법원 앞에서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에 대한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는 ‘사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영호남과 충청, 경기 등 전국 각지의 유족회 회원 500여 명이 참가한 이날 기자회견은 전쟁희생자에 대한 묵념과 대표 인사말, 연대발언에 이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지역유족회의 자유발언과 결의문 낭독 순으로 1시간 30분간 진행되었다.

지난 5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진도민간인희생자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하급심의 승소에도 불구하고 ‘입증이 미흡하다’는 등의 이유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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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유족회 이상철 상임대표.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은 “당시 아버지, 형님 등 가족들이 왜 끌려갔는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수십 년을 고통과 한으로 살아왔다. 사법부는 죽은 날짜도 모르고 시신조차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제사를 지내야 하는 수많은 유족들의 심정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라고 반문하고 “거기다 연좌제라는 올무를 씌워 이 땅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으로 살아가게끔 한 국가의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보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아울러 “약자를 보호하고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고, 인권과 정의가 실종된 사회를 바로 잡아주고 특히 국가권력이 불법적으로 휘두른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고, 그리고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사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라고 사법부의 존재이유를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법부는 인권과 정의를 지켜야 할 당연한 책무를 망각하는 엉터리 판결로 유족들뿐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한국전쟁 전후 국가가 저지른 민간인 집단학살 범죄에 대해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반드시 정의의 이름으로 법과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또한 피해당사자인 유족들에게는 피해회복과 명예회복을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국민에 대해 불법적인 만행을 저지른 국가에 대해 엄중하고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를 바란다. 수많은 민간인학살에 대해 진정으로 정부가 사죄할 수 있도록 사법부가 통 큰 결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무이다”라고 호소했다.

▲ 박의원 유족회 상임대표가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자유발언에 나선 유족회 박의원 상임대표(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대표)는 “우리 100만 유족은 당신들을 대한민국의 사법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와서 국가기관의 진실규명을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당신들을 영원히 코발트광산 저 차디찬 갱도에 유배시킬 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명한다”고 규탄하고 “대한민국 마지막 양심의 보루라는 대법원에 일말의 국가관이 남아 있다면 지난 전원합의체의 결정을 폐기하고 멍울진 유족들의 가슴에 박은 대못을 뽑아내라. 이것이 우리 유족들이 사법부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라고 일갈했다. 3,500명이 학살당한 경산코발트광산의 원한이 묻어나왔다.

▲ 경산코발트광산의 유해. [사진출처 - 다음 카페 <소리새>]

▲ 집회 현장을 꼿꼿이 지킨 할머니 유족회원.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자유발언에서 절규하는 전금자 경주유족회 부회장.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집회 내내 울먹이는 유족회원.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여순항쟁 때 부친을 잃고 항소심 중인 순천유족회 장옥자 이사(67).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여순항쟁 때 부친을 잃고 항소심 중인 순천유족회 장옥자 이사(67)는 “면사무소에 근무하다 퇴근하던 부친이 트럭에 끌려가 학살되고 시신은 불살라졌다. 국가에 의한 희생의 고통은 92살 노모와 자식들에까지 대물림되어 드라마보다 더한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듯 한나라당사 앞에서 얼음밥을 먹으며 싸워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보수적 판사들이 진실규명을 되돌리고 있다. 이 억울함을 어디다 호소해야 하느냐”고 울먹였다.

▲ 결의문을 낭독하는 최형규 전주형무소유족회 회장, 박봉자 임실유족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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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문 (일부)]
1. 최근 사법부는 국가가 저지른 불법적인 만행에 대해 원칙도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들쭉날쭉한 판결로 더 이상 유족들을 우롱하지 마라!

1. 사법부는 한국전쟁전후로 국가가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에 대해 다시는 그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단호하고도 엄중한 책임을 묻는 판결을 하라!

1. 사법부는 국가 재정 등을 이유로 형편없는 배상금액으로 유족들의 가슴에 더 이상 피눈물 나게 하는 판결을 중단하라!

1.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재발한다. 사법부는 더 이상 정부의 몰상식한 과거 청산에 동조하지 마라!

▲ 양승태 대법원장에 전할 탄원서를 들고 있는 양용해 상임대표의장(가운데), 이상철 상임대표와 박용현 운영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탄원서 (일부)]
1. 사법부는 국가기구였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결정을 인정하여 수용하여 주셔야 합니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악전고투 끝에 얻어진 <결정서>를 부실이라 하여 보완을 요구함은 국민의 권리구제 차원에서 힘써야 할 사법부가 본연의 직무를 방기함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진상규명을 신청할 당시만 해도 손∙배의 소를 제기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하였던 저희들의 진정성을 이해하여 주셔야 합니다.

2. 국민의 생명권을 지켜주어야 할 국가가 도리어 생명을 박탈한 사건에 대해 국가재정 등을 빙자하여 터무니없는 낮은 보상을, 그것도 같은 류의 사건을 재판부마다 2, 3배의 차이로 판결하는 것은 법의 최대이념인 형평에 반한 것이며, 이는 정치적 고려에서 판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선진국으로서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국가의 위상과 정체성을 위하여서는 국가 스스로가 이러한 오욕의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는 의지와 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행사를 마친 3명의 유족대표는 탄원서를 대법원장에 전달하고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을 항의방문했다. 11일부터는 대법원 앞 릴레이 1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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