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고 그립고 외롭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취임 4개월째를 맞아 지난 28일 통일부 출입기자들과 함께 한 워크숍 간담회에서 자신의 심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류길재 장관은 "새로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괴로움을 느꼈다. 교수시절이 너무나 그립다. 자유로움에 대한 그리움이 들었다", "외롭다. 머릿속으로 떠올려봐도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가. 내가 잘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특히 중요사안이 벌어질 때마다 들었다"고 말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현재의 자신이 괴롭고, 과거가 그리우며, 일과 사람관계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류길재 장관도 50대 초반이기에 중년 남성의 감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 주무부서의 장으로서 류 장관의 '괴롭고 그립고 외롭다'는 표현은 장관직 수행과 더불어 개성공단 전원철수, 남북 당국회담 무산 등 일련의 남북관계 사안들에서 오는 자조섞인 말로 들린다.

장관이 그럴 진데,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어떠할까. 장관보다 더한 심정 아닐까.

개성공단 철수로 회사가 휘청거릴 지경에 몰린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괴롭고, 이산가족들은 북녘의 가족들이 항상 그립고, 대북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주변에 모금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민간단체들은 외롭다.

통일부 직원들의 마음도 어떠할까. 남북대화 한번 해보지 못해 괴롭고, 남북관계 호시절이 그립고, 타 부처의 눈치를 봐야하니 외롭지 않을까.

이런 감정의 원인을 따질 수 없지만, 굳이 꼽자면 류길재 장관 스스로 괴롭고, 그립고, 외로운 나날을 만들었고, 그렇기에 국민들은 장관보다 더한 느낌이지 않을까.

류길재 장관은 취임 초기부터 정책 건의.결정자의 역할보다는 대통령의 정책 수행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정부 내 통일.외교.안보 의사결정자들보다 목소리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입증하듯 박근혜 정부 남북관계 4개월이 이명박 정부 5년보다 더 악화되어 갔음에도 류 장관은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렇기에 장관은 북한을 향해 '핫바지'라고 한 말이 부메랑이 되어 청와대.정부 내 '핫바지'로 인식받게 됐고, '핫바지'이기에 괴롭고 그립고 외로운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괴롭고 그립고 외롭다"라고만 할 수는 없다. 괴롭고 그립고 외롭지 않으려면 괴로움의 고리를 끊고, 그리움을 승화시켜 힘을 내고, 목소리를 키워서 외로움을 떨쳐내야 한다.

이른바 '격' 문제로 무산된 남북 당국회담은 이제 과거의 역사가 됐다. 과거의 역사를 분석하고 평가해 옳고 그름을 가려 좋은 것은 취하고 잘못된 것은 반성해서 남북관계 정책의 디딤돌로 삼으면 된다.

상황은 다시 온다. 다음달 20일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이 8년만에 서울에 온다. '2013동아시안컵' 참가가 이유지만, 탁구공이 미국과 중국관계를 변화시켰듯, 축구공 하나가 남북관계 호시절을 만들 가능성은 있다.

이 기회에 남북관계 주무부서의 장으로 류길재 장관은 힘을 키워 정부 내 정책결정 목소리를 내야한다. 국민들도 당국회담 무산으로 움추린 어깨를 펴고 집안 구석에 묵혀둔 단일기를 힘차게 흔들며 남북 양팀을 응원하고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를 다시 외쳐야 한다.

류길재 장관은 '핫바지'를 벗어버리고, 국민들도 이제는 괴롭고 그립고 외로울 틈이 없도록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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