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부르는 민화는 일본인에 의해 규정된 말이다.
‘민속회화’의 준말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민중회화’라는 계급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수상한 개념이다. 우리의 그림을 우리말로 부르지 않고 일본인에 의해 규정된 말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무능하고 부끄러운 일이다.무엇보다 이렇게 규정된 민화라는 개념이 정확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우리 그림의 범주나 영역, 혹은 가치를 축소하거나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어떤 학자는 한화(韓畵)라는 말로, 또 어떤 분은 '겨레그림'이라고 부르고, 천인화(天印畵)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진채화’, ‘궁중회화’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다. 어떤 맛이 간 일본인은 민화가 행복을 주는 그림이라며 ‘행복화’라고 불러야 한다고 해서 헛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런 이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름들은 여전히 멀고 친숙하지 않다.또한 일반사람들에게 통용되지 않고, 민화를 그리는 창작자들도 잘 모르는 용어이다.
 
나는 궁중회화에서 출발한 민화가 대중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를 '민족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민족'이란 개념은 서구의 근대사상에서 나온 것이고 조선 후기에 민족사상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여기서 말하는 '민족'이란 같은 공간, 같은 언어와 같은 정치, 경제, 문화적 전통, 관습과 혈통 따위를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여긴다. 공동체는 각 구성원들이 집단의 가치를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양반과 백성, 하늘과 노예 따위의 이분법적인 구조는 서구사회의 오랜 전통이다.이런 사고방식은 지배 문화와 피지배 문화,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이라는 구분법이 가능하게 했고, 각 문화는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변증법적인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과 현재가 충돌하지 않는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도 왕권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과거의 부정이 아니라 전통의 바탕 위에 현재를 재창조하는 것이다.전통은 변주라는 방식을 통해 현재에서 재해석된다.

조선사회가 만든 가치는 왕족이나 양반들만의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었다.당연히 지배 문화, 피지배 문화나 고급미술, 저급미술 따위로 구분되지 않는다. 궁중에서 사용하던 그림이 백성들의 집에 걸려도 통제하지 않았다. 양반들이 시조창을 즐겼다면 일반백성들은 춘향가라는 판소리를 즐겼다. 반대로 양반들이 춘향가를 무시하지도 않았고, 뜻과 깊이를 아는 일반백성이 시조창을 듣는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단지 체면과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경계했을 뿐이고 백성들이 시조창과 문인화를 즐기지 않았던 것은 통제해서가 아니라 별로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 심규섭/서수장생도/디지털 회화/2013.
서수(瑞獸)는 영험한 동물이라는 뜻이다. 위 그림은 장생도를 배경으로 용과 봉황, 공작, 해태, 사슴, 학, 물고기, 거북(현무), 구미호 따위가 어우러져 있다. 원래 궁중회화의 장생도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동물을 그리지 않고 학과 사슴, 거북이 주로 나온다. 용이나 봉황은 단독으로 그린다. 이 그림은 민화의 전성기인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한다. 원본 그림에는 민화의 대표 격인 연꽃과 모란꽃, 청둥오리 따위가 등장한다. 도화서의 궁중화원에 의해 그려진 것인지 아니면 도화서 출신의 화가가 그린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백성들이 선호하는 민화적 요소가 궁중회화인 장생도를 배경으로 결합하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 궁중회화와 민화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통되었다는 것을 이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현재도 우리나라에는 귀족, 혹은 양반문화가 없다.양반이나 왕족은 일제시대,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모두 없어지고 모두가 평등한 조건에서 다시 시작했다.  가끔 족보를 통해 자신이 양반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는데, 조작을 했든, 돈을 주고 샀던 간에 우리는 모두 유명 성씨의 직계나 방계의 족보를 가지고 있다.지금도 약간의 돈이면 얼마든지 그럴싸한 족보를 만들 수 있고, 이것을 사회적으로나 민법,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머슴출신이건, 백정출신이건 간에 우리는 모두 양반의 후손이 된 것이다. 오히려 이런 가문이나 족보의 개방은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벌이나 대통령도 우습게 생각한다. 머슴 출신의 부모를 둔 사람이나 고등학교 출신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이다.또한 돈 많은 사람이나 지도층들이 뭔가를 하면 모두가 따라한다.모두가 골프를 치고, 모두가 명품을 가지고, 모두가 해외여행을 하고, 모두가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고, 모두가 비슷비슷한 아파트에서 비슷한 문화를 향유한다. 모두가 김치와 삼겹살을 먹고, 거의 똑같은 가전제품과 휴대폰을 가지고 국산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모두가 가야하는 군대에 아들을 보내지 않았다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낙마를 한다.  아이들에게 평등한 무상급식을 반대하다가 사퇴하는 서울시장도 있다.  여기에 문화나 사상, 가치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비싸거나 싸거나 하는 차이일 뿐이다.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집,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엄마 아버지, 우리 고향, 우리 정당,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생각, 우리 문화, 우리 음식, 우리 자동차...'우리'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 있는 독특한 정서와 어감을 가지고 있다.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서양 사람들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my(나의)'와 비견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의 집단이나 물건이나 사상을 공유하는 일부의 무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라는 단어는 영어의 'we, our' 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우리'라는 개념은 가족단위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말이다. 또한 '우리 가족'과 '우리나라'라는 두 '우리'의 개념은 범위가 다르지만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만약 충돌하고 대립한다면 다른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민족공동체가 집약된 말이다. 가족이든, 회사이든, 고향이든 간에 모두 '우리'라는 말로 통합된다. '우리'와 반대되는 개념의 단어는 없다. '나'와 '너희'는 반대가 아니라 좁은 의미이거나 전혀 다른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라는 말을 이길 수 있는 개념은 없다. 모두가 '우리'로 시작해서 '우리'로 끝난다. '우리'는 공동체의 명령이고, 공동체의 이익이며, 공동체의 정의, 공동체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말을 우리나라 사람들 밖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라는 말에는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민족의 동질성과 삶과 애환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유화를 미술재료로 사용하는 서양그림이 들어왔지만 우리그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서양화'라고 한다. 먹과 화선지를 사용하는 그림도 여전히 '동양화'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화라고 부르자는 합의도 있었지만 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다.
 
궁중회화와 화가의 수묵화, 민화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궁중회화는 조선미술의 교과서이고 전문 화가의 그림은 창조성과 독창적인 화풍을 중시하고 민화는 그야말로 대중의 그림이다.
각각의 그림은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백성들이 자극적인 민화를 선호한다고 해서 궁중회화가 통제하지 않는다. 반대로 민화는 궁중회화의 좋은 부분은 모방하여 백성의 정서에 맞게 변주해 소통했다.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민화를 전문화가가 변주해 그렸고 궁궐에서도 비싼 값을 주고 사들였다. 서로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었고 권력을 사용해 배격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궁중회화, 화가의 수묵화, 민화를 통합해 '우리 그림'이라고 부르고 싶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창작되고 소통된 그림을 우리의 말과 정서에 맞게 표현하면 ‘우리그림’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그림’이라는 큰 틀 안에 역할에 따라 궁중회화나 민화 따위로 분류하면 된다.
공동체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고 세계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공동체의 흔적이고 공동체의 힘에 의해 발전했다.
‘우리그림’은 우리 민족의 가치이자 인류의 가치이다.
우리그림 속에 녹아있는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철학은 지구의 모든 존재들이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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