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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6.15산악회원들의 ‘신뢰’ 관계처럼 남과 북도 그랬으면<여행기> 6.15산악회 1박2일 무의도 여행기
리정애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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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20  16: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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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정애 / 재일동포, 양심수후원회 회원


“토요일 임진각에 갔다가 아예 그냥 무의도까지 가면 어떨까?”

   
▲ 6.15산악회는 6월 산행을 무의도 호룡곡산으로 잡았다. [사진-6.15산악회 제공]

6.15산악회(회장 권오헌)의 이번 6월 산행 목적지는 인천 앞바다에 있는 무의도 호룡곡산이었다. 일요일 아침 9시에 인천공항역에 집합해야 한다.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최소 2시간. 아침 6시에는 일어나고... 생각만 해도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토요일에 갔다가 밤에 낚시를 해서 점심 때 회를 먹자!”는 ‘말로만 낚시꾼’ 김익 총무대리의 제의에 찬성했다. ‘회’는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한없이 매력적이었다. 낚시꾼 나순석 총무도 찬성하셔서 이 계획이 성사될 줄 알았는데 왠지 어느새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여기서 잠깐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이 ‘일본사람들이 회를 좋아한다’며 내가 일본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당연히 회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도미나 연어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예전에 초밥집에 가면 ‘새우, 문어, 오징어’만 번갈아 먹었다. 다 익힌 것들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후식으로 ‘닭알’말이 초밥을 먹고 끝내는 것이 내 방식이었다. 나는 계란을 닭알이라고 한다. 김익 씨는 처음에 자꾸 ‘닭알 아니라 달걀’이라며 내 말을 고치려고 했다. 어떻게 ‘닭의 알’이 ‘달걀’이 되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내 성씨 ‘리’도 마찬가지이지만 조선말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이제까지 고집하고 있다.

14일 금요일의 이야기다. 양심수후원회에서는 1주일에 한번은 가까운 서울구치소에, 한 달에 한번은 먼 지방에 양심수 면회를 간다. 이 날은 김익 사무국장과 함께 강담 선생님을 차로 모시고 서울구치소에 다녀왔다. 선생님이 몸이 불편하셔서 우리 6.15산악회 회원이신 범민련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님 면회를 계속 못 하고 계셨다. 2005년 겨울에 중풍으로 쓰러져 왼쪽이 마비되셨고 몇 년 동안 전립선암 때문에 계속 고생하고 계신다. 작년 일본에 있을 때 경과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현재 그나마 ‘양호한 상태’이시다. 마비 때문에 걸어 다니는 것이 힘드셔서 이번 무의도 산행도 못 간다고 하셨다. 나도 지난 산행 때 다친 오른쪽 발목과 작년 12월에 다친 왼쪽 발등뼈가 계속 아팠다. 산행은 무조건 참가해야 하지만 산에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조금 걸어 다니면 금방 아파진다. 그런 와중에 토요일 임진각에서의 6.15행사 이야기가 나왔다. 김영식 선생님 또한 요즘 다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그러면 차로 토요일 임진각에 갔다가 아예 그냥 무의도까지 가면 어떨까? 이렇게 강담, 김영식, 박희성 선생님을 모시고 6.15행사부터 시작되는 무의도 1박2일 여행이 결정되었다. 실은 단짝 4인 1조로 여기에 양원진 선생님이 들어가셔야 하는데 차가 5인승이라 물리적으로 곤란하다는 이유와 무엇보다 양원진 선생님한테는 극진하게 선생님을 챙겨주는 딸 강태희 언니가 계신다는 이유로 죄송스럽게도 내가 꼭 챙겨드려야 하는 세 분만 모시게 된 것이다.

지난 6월 9일에 남북실무회의, 12일에 장관회의가 제기되면서 김익 씨가 말했다. ‘선생님들이 갑자기 올라가시게 될지도 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선생님들을 처음 뵌 것은 2007년이었다. 그때부터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요즘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체류기’의 주인공 얼굴을 본 후에 거울을 보니까 많이 늙었다고 느꼈는데 선생님들도 지난 고통의 5년과 앞으로도 이어지는 고난의 세월 때문에 확실히 많이 나이를 드셨다. 특히 1년 반 만에 뵈었을 때 보기에도 체력적으로도 확실히 이전과 다르시다. 요즘 강담 선생님이 ‘이 1, 2년 사이에 많은 선생님들이 가실 것’이라고 하신다. 하루빨리 북녘 땅으로 올라가셔야 한다고 뵐 때마다 생각하지만 내 무력함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올라가시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외로워져서 막 눈물이 났다. 선생님들을 모시고 여행도 다녀보고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여행 한번 못해봤다.

나는 외할아버지를 초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를 고등학교 3학년 때 잃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장사하느라 바쁘신 것도 있어서 늘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 후 떨어져 살다가 다시 같이 살게 되었는데 몇 년 후에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다. 요양 때문에 병원에 계셨지만 치매증상이 많이 심해지셔서 병원에서 이제 돌볼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집에서 계속 돌보게 되었지만 도저히 어머니 혼자서는 곤란한 상황이 돼서 친척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가 할아버지 증세에 대해 설명을 하셨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치매에 대해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치매 관련 소설을 읽으셔서 이미 지식이 있으셨다. 그러나 친척들은 어머니 말을 도저히 못 믿겠다며 반대로 어머니를 막 비난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맏이라 늘 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이때도 어머니 편을 들었다가 친척들한테 맹공격을 당한 것으로 그 후 계속 친척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마저 안 좋아져 집안이 할아버지 때문에 완전히 망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욕을 하고 그것을 막으려는 나한테까지 욕을 하셨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것이 병 때문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후도 계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원망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느 새 그것을 많이 후회하게 되었다. 3세인 나는 1세인 할아버지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엄청난 고생 속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전혀 몰랐다. 어떻게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오시게 되었는지,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물어볼 생각조차 못했다. 지금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되고 죄송해서 눈물이 난다. 선생님들과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들 존재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온 것이 너무나 죄송했고 후회했다. 그 후로 선생님들은 내 할아버지가 되셨고 친할아버지한테 못 물어본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전혀 못해 드린 효도를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옥류관 냉면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지네...’

   
▲ 임진각 가는 도중에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들렸다. [사진-6.15산악회 제공]

여행이 결정된 순간부터 나는 엄청 신났다. 무엇보다 6월 15일에 6.15행사, 그리고 6.15산악회에 선생님을 모시고 참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의 깊고 마음이 설레는 일인가!

11시 반에 강담 선생님 댁 근처인 가양역에서 뵙기로 했는데 11시에 벌써 도착해 계셨다. 다행히 우리는 11시 15분에 도착했다. 앞으로 선생님들과 약속을 잡을 때는 30분 전에는 도착해놔야 한다. 이게 철칙이다. 가는 도중에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들렸다. 북녘 땅이 육안으로 보였다. 선생님들이 북녘 땅을 바라보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찡했다. 선생님들한테도 북쪽은 조국땅이지만 또한 고향땅이기도 하다. 그리고 50년 전에 헤어진 가족들이 살고 있다. 김익 씨가 선생님들이 보시라고 망원경에 동전을 넣었다. ‘봐도 마음만 힘들어.’ 강담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망원경을 꽉 잡고 뚫어지게 보고 계셨다. 김영식 선생님은 시간이 지나서 끝났는데도 다시 보시려고 하셨다. ‘선생님, 끝났어요.’ 다시 보여 드릴 걸 그랬나...

   
▲ 선생님들이 북녘 땅을 바라보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찡했다. [사진-6.15산악회 제공]

예쁜 아줌마가 있었는지 강담 선생님이 매점 쪽으로 가신다. 나한테 아이스크림을 사 주신다고 한다. 그런 데는 비싸고 또 점심을 먹기 전이라 ‘안 먹겠다’고 했는데 할아버지 고집은 손녀도 꺾을 수 없다. ‘그럼 음료수로 할래요.’라고 음료수를 고르고 있었더니 ‘이걸로 하자,’며 손수건을 하나 사셨다. ‘두고온 山河’라고 쓰인 북녘 땅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날씨도 덥고 간단하게 먹자는 이야기가 돼서 냉면을 먹기로 했다. 마치 통일전망대 근처에 냉면집이 있는 것을 지나가다가 봤다. 평양냉면집과 함흥냉면집이 있었는데 선생님들은 함흥냉면이 좋다고 하셨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이라는 차이? 뭐가 다른지 정확한 차이를 몰라서 물어봤더니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로만 만들고 함흥냉면은 감자녹말이 들어가서 엄청 질기다고 한다. 그래서 평양냉면집을 지나서 함흥냉면집으로 갔는데 거기는 ‘동남아 단체객 전용’이라고 한다. 이런 가게가 어디 있나.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김익 씨와 나만이면 도로 평양냉면집으로 갈 건데 어쩔 수 없이 그 근처에 있던 고기집에서 냉면을 먹게 되었다. 맛은 나름 괜찮았지만 함흥냉면이 아니라서 너무나 아쉬웠다. 김익 씨는 사진과 너무 달라서 불만이었던 것 같은데 어쩌겠나 이게 자본주의 상술인 것을. 선생님들은 북남(北男)이라 무척 냉면을 좋아하신다. 특히 박희성 선생님은 냉면이라고 하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나시는 것 같다. 근데 늘 남쪽에는 괜찮은 냉면집이 없다고 서운해 하신다. 내 효도 과제 중 하나가 괜찮은 함흥냉면집을 찾아 선생님들을 모시고 가는 것이다. 제대로 된 함흥냉면집을 아는 분이 계시면 꼭 가르쳐 주시길. 냉면 이야기를 하니까 옥류관 냉면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지네...

임진각에서 열린 6.15행사

   
▲ 15일 임진각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발표 13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사진-6.15산악회 제공]

임진각을 향해서 가는데 임진강 건너편에 북녘 땅이 보였다. 날씨도 덥고 임진강이 한강보다는 훨씬 물이 깨끗할 것이고... 리정애, ‘헤엄치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희성 선생님, ‘그럼, 양원진 선생님이 헤엄치고 몇 번이나 다니지 않았어.’ 맞아, 그러셨지. 거리가 어느 정도일까 지도로 알아봤다. 가장 가까운 곳은 500미터, 걸어서 8분, 자전거로 3분. 우리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것보다 가깝다. 그러나 내 체력으로는 아무래도 헤엄치고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전성기 수영 최장거리가 100미터 좀 넘을 정도니까... 이것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작년 대마도에서 부산까지 헤엄치고 남쪽으로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아무튼 임진강을 헤엄치고 가는 것은 어려워도 고무보트만 있으면 충분히 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철조망이 우리 앞을 이중으로 막고 있다. 파주에 살던 만화가 임소희, 김홍모 부부를 만나러 갈 때, 수십 번이나 지나간 곳이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너무나 설레고 너무나 그리워서 미칠 것 같은... 생각하면 행복해지지만 또한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그런 느낌... 6.15남북공동선언만 제대로 실천되어있으면 지금쯤 선생님들은 평양에 계실 것이고 나도 선생님들을 만나러 평양에 놀러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철조망들은 바로 이명박 정권이고 박근혜 정권이다. 선생님들이 나중에 이 철조망들이 필요 없어지면 갖다 팔아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리정애, ‘그딴 것 도대체 누가 사겠어요!’ 선생님들과 김익 씨, ‘아이고~, 고물상들이 사지~!’, ‘엄청난 양이니까 꽤 돈이 되는데.’ 정말로 고물상들이 그것을 살까? 한번 찾아가서 물어봐야겠다. 베를린 콘크리트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본 이후 몇 번이나 우리 땅의 콘크리트장벽과 철조망이 사라지는 날을 상상해봤다. 나는 이제 서울에서 사니까 그날이 오면 내가 직접 가서 부셔버릴 것이다!! 그나저나 베를린 장벽은 관광객들한테 많이, 엄청 비싸게 팔렸고 가짜 장벽까지 나왔다지. 우리 것도 어쩌면 고물상에 갖다 파는 것보다 의외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몇 년 우리 운동권들에 대한 당국의 탄압과 그것에 위축되어버린 모습을 상징하듯 6.15행사도 보신각에서 아주 작은 규모로만 열렸었다. 매년 6월 15일만 되면 마음은 설렜지만 막상 행사장에 가서 그 행사규모와 모인 사람들의 수를 보며 참으로 실망이 컸었다. 그러나 이번 6.15행사는 나름 큰 행사였다. 각 지역에서도 임진각으로 가는 버스가 조직되었다고 들었다. 직전에 실무회담이 열려서 그랬을까? 나는 남북 간의 대화가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면 6.15 행사가 공동 개최될지도 모른다는 아련한 희망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권오헌 선생님과 김익 사무국장이 금강산이나 평양에 가게 될 것인데 어떻게 하면 나도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내년은 꼭 남북 공동 개최할 수 있도록 우리가 여론을 일으켜 정부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당이 하나로 뭉쳐야 할 것인데... 그런데 현실은 축사 때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6.15, 10.4를 평가하여 ‘90대 어머님이 자식을 북에 두고 왔다, 하루빨리 이산가족이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민주당 의원분이 행사도중에서 일어나셨다. 그 말이 마음속으로부터 나온 말이고 진심으로 6.15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한다면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야 했을 것이다.

   
▲ 6.15대회 참가자들. [사진-6.15산악회 제공]

많은 방송국 촬영진, 언론 사진기자들이 와서 계속 행사를 찍고 있었다. 이것 또한 이 몇 년 동안 못 보던 일인 것 같다. 왜 갑자기 이렇게 관심이 많아졌을까 했다. 63빌딩에서 열렸다는 또 하나의 행사와 비교하기 위해서일까? 결국 민주당 측의 6.15에 대한 견해와 우리의 뜻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5.18, 8.15 등 이제까지도 정부 측 행사와 운동권 주최 행사가 따로 열렸으니까 놀랄 것도 없지만 왜 무대 현수막에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민주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이라고 적혀있었을까. 최고의원 한명 보내면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번 일로도 민주당의 양면성과 기만성이 증명된 셈이지. 여전히 역사와 통일에 대한 입장을 정리 못하고 있으니 참...

무대 앞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 속에 낯이 익은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그 속에 연세가 많으시지만 젊은 기자들보다 발놀림이 가볍고 멋진 분이 계셨다. 우리 6.15산악회 전속 사진가 김영승 선생님이 아니신가! 요즘 류경완 선배의 전문가 카메라에 밀리시는 추세이지만 현장을 날아다니도록 다니시며 비디오카메라와 디카 두 개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사진가는 오직 김영승 선생님뿐 일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무의도를 향해 

   
▲ 무의도에 먼저 들어온 선생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6.15산악회 제공]

4시를 넘어서 행사 일정이 다 끝나고 우리는(나만?) 설레는 마음으로 드디어 무의도를 향했다. “나는 앞에 안 타.”라고 하시는 김영식 선생님을 김익 씨가 “선생님이 가장 덩치가 크셔서 앞에 앉으셔야 합니다.”라고 설득했다. 차를 타는 내내 박희성, 강담 선생님과 나는 뒤에서 계속 수다를 떨고 있었지만 김영식 선생님은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계속 주무시고 계셨다. 강담 선생님이 ‘야, 영식아! 어서 일어나!!’라고 몇 번이나 깨우셨지만 꼼짝도 안 하셨다. 강담 선생님은 잠이 적으셔서 그런지 자주 자는 사람을 깨우신다. 지난 번 양심수 면회로 전주에 가셨을 때도 주무시는 양원진 선생님을 “야, 형님, 일어나~!!”라고 몇 번이나 괴롭히셨다는 정보가 있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서 잠진도로 가는 쯤에서 김영식 선생님이 겨우 일어나셨다... ‘와~!!’ 영유도로 가는 길에 들어가자 감탄의 소리가 나왔다. 우리 눈앞에 허허갯벌이 펼처져 있었다. 그 풍경은 도저히 내 우리말 실력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 시간대는 갯벌이었지만 바다 위에 길이 있는 셈이다. 너무 편하게 바다를 건너 섬에 갈 수 있고 무엇보다 도로 양쪽이 갯벌인데다가 멀리 바닷물이 보여서 전망이 아주 끝내주지만 문득 프랑스의 몽생미셸이 생각났다. 거기도 편하게 섬에 갈 수 있도록 옛날에 도로를 만들어 놨다. 그런데 도로가 조류를 막게 되면서 모래가 쌓이게 되었고 그것이 오랜 세월 사이에 육지화된 것이다. 그러면서 거기 갯벌에만 서식하던 희귀한 생물들이 많이 살아져버렸다. 현재 예전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도로를 없애고 주변에 쌓인 모래를 제거하는 엄청난 국가적 계획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자연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국가적인 사업을 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국가원수가 어마어마한 비자금을 챙기기 위해 국민에게 ‘생태계 복원’이라는 새빨간 사기를 치고 삽질하는 미친 나라가 있다.

잠진도에서 페리를 타고 무의도에 도착한 것은 6시를 넘어서였다. 페리에는 많은 갈매기가 몰려있었다. 노래패 ‘우리나라’의 이광석 형님의 ‘갈매기 똥구멍에 바람을 넣는다~’는 노래가 머리속에서 들렸다. 나는 광석 형이 어릴 때 그렇게 해서 노셨구나 해서 김익 씨한테 물어봤더니 ‘바보아냐?’라는 표정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라고 했다.

섬을 돌아봤지만 무의도는 바다와 자연 이외 아무 것도 없는 섬이었다. 좁은 섬에 펜션만은 많다. 그래도 북쪽에 있는 선착장에서 동쪽으로 반 바퀴 돌고 남쪽으로 가봤다. 소무의도가 있었다. 경치가 참 좋다. 다 같이 기념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김영식 선생님은 계속 차에 계셨다. 무의도에서 소무의도까지 다리가 있어서 걸어서만 갈 수 있게 되어있다. 강담 선생님이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가보자!’고 하셨다. 아무래도 박희성 선생님이 제일 걷는 게 빠르시다. 그 뒤를 김익 씨가 가고 그 다음에 나, 그리고 많이 떨어져서 강담 선생님, 겨우 차에서 내리신 김영식 선생님으로 이어졌다. 다리 절반까지 안 가고 강담 선생님이 ‘이제 돌아가자.’고 하셨다. 박희성 선생님이 ‘그래도 가운데까지 가보자.’고 하셔서 겨우 중간쯤까지 갔다.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마침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했는데 김영식 선생님이 안 계셨다.

나는 김익 씨한테 갯벌로 가자고 몇 번이나 말했다. 김영식 선생님은 갯벌로 가서 문어나 조개를 잡는다고 호미까지 가져오셨다. 오는 도중에도 갯벌에서 잡은 것으로 오늘 저녁이 해결된다고 기운이 만만하셨다. 그런데 자꾸 다른 곳으로 가니까 삐지신 것 같았다. 큰 갯벌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길이 없었다. 겨우 길이 하나 있어서 들어가 봤는데 경비원들이 막았다. 보니까 ‘테스코 홈플러스 아카데미’라고 쓴 간판이 있었다... 제기랄! 진짜 마음에 안 든다. 바다까지 독점해서 말이다!! 시간이 늦어 갯벌이 거의 없었다. 할 수 없이 선착장 근처의 좀 지저분하고 조그마한 갯벌로 갔다.

무의도는 물론 무인도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두 ‘야생남’

   
▲ 무의도는 물론 무인도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두 ‘야생남’. [사진-6.15산악회 제공] 

‘야생남’ 김영식 선생님과 김익 씨가 의기양양하게 갯벌로 들어갔다. 가만히 보니까 김영식 선생님과 김익 씨는 닮은 점이 많다. 그 곰과 같은 외모에 산에 가면 나물꾼, 바다에 가면 고기잡이가 되고 때로는 사냥꾼이 되기도 한다. 무의도에서는 물론 무인도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영식 선생님은 낙성대 ‘만남의 집’ 넓은 마당에서 유기농 상추나 깻잎 등등을 키우신다. 김익 씨 또한 좁은 베란다의 조금만한 화분에서 부추나 고구마를 키우고 있다. 얼마 전에 김영식 선생님이 미꾸라지를 키우시다가 많이 죽어버린 바람에 열 받으셔서 김익 씨를 보고 다 가져가라고 하셨다. 김익 씨는 엄청 좋아해서 내가 블루베리를 ‘예쁜이’라고 하는 것에 대항해 미꾸라지를 ‘내 예쁜이’라며 키우고 있다. 말이 예쁜이지 자기는 밥을 많이 먹으면서 제대로 먹이도 안 준다. 솔직히 나는 징그러워서 싫다. 비린내가 날 것 같고.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조금 정이 들기도 하다. 그래서 먹이를 안 주는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오늘은 먹이 주었나... 요즘 ‘곰’들이 같이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자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목적은 오직 하나, 먹기 위해서다. 추어탕은 좋아하지만 집에서 키운 미꾸라지는 먹기 싫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야생남들을 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김익 씨는 내려가서 그냥 등산화를 신고 ‘보물찾기’를 시작했다. 김영식 선생님은 안 가시고 밑에서 계속 뭔가 하고 계신다.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바지를 벗기 시작하셨다. 팬티로 ‘보물찾기’를 하시나 해서 놀랐는데 아쉽게도 반바지를 입으셨다. 그 다음에 배낭에서 뭔가 하얀 것을 꺼내셨다. 그건 뭘까? 고무신이었다! 하얀 예쁜 고무신은 곰과 같은 선생님 덩치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나는 이날 고무신과 비슷한 까만 고무 샌들을 신고 있었다. ‘생활한복’에도 잘 어울리는 마음에 드는 샌들이지만 선생님의 하얀 고무신도 탐났다. 사이즈가 맞으면 선생님과 바꿔 신을 건데... 장마철이 시작됐다. 나는 신발이 젖는 것이 너무나 싫어서 비가 오는 날에는 꼭 장화를 신고 다니는데 장마철 같은 무더운 날에는 장화보다 고무신이 훨씬 좋지. 요즘 남쪽에서도 장화가 많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80만원을 넘는 장화가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정도라고 한다. 다 우리 민족에는 자랑스러운 고무신 존재를 잊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고무신 업자면 분홍색이나 꽃무늬 고무신을 만들 텐데. 개성공단에서 만든 ‘Made In Corea’ 고무신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 엄청 큰 손칼국수 냄비가 두 개나 와서 일동이 놀란 저녁식사. [사진-6.15산악회 제공]

결국 수확은 한 비닐봉지에 가득한 게였다. 많이 잡은 김익 씨가 선생님을 놀린다. ‘김영식 선생님! 4마리밖에 못 잡으셨어요?!’ 수확이 별로 없어서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손칼국수와 섬낙지무침을 먹었다. “대부분 식당들이 수입산을 쓰니까 회나 조개를 먹지 않는 게 좋아요.” 펜션 주인아주머니가 가르쳐주셨다. 박희성 선생님이 “조개는 거의 다 북측에서 들어왔었는데 지금 남북관계가 단절되어있으니 다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지.”라고 하셨다. 남북관계의 악화는 이런 작은 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낮에 냉면을 먹었기 때문에 솔직히 밥을 먹고 싶었지만 바닷가의 추운 날씨에 차가워진 몸이 칼국수 덕분에 따뜻해졌다. 엄청 큰 냄비가 두 개나 와서 일동이 놀랐다. 김영식 선생님과 김익 씨야 많이 먹지만 우리 셋은 많이 못 먹으니까 남을 것이라고 다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국물 한 그릇정도밖에 안 남았다. 나중에 온 낙지무침도 맛있었지만 절반이상 남았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식사용으로 싸가지고 갔다. 식당 아주머니한테 “김치가 엄청 맛있네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김치도 싸주셨다. 뭐, 그것을 계산해서 말한 것이지만 역시 시골은 인심도 좋아~

할아버지들과 여행을 다니면 힘든 점이 한 가지 있다. 아침 5시에는 일어나시니까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영식 할아버지는 ‘수확’ 때문에 새벽에 나가셨고 담 할아버지와 희성 할아버지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면서 너무나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계셨다. 몇 번이나 방에 와서 큰 소리로 뭔가 말하고 가셨는데 너무 졸려서 무슨 말을 하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앞으로 방을 2개 빌려야 하나... 숙소는 거실, 부엌, 큰 방, 작은 방으로 구성되어있었다. 31평짜리라 우리 6.15산악회 식구들이 다 와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 같았으면 다들 불러서 같이 놀고 싶었지만 이제 페리가 끊겼다. 드라마를 보면 이럴 때 멋진 남자와 섬에 갇히는데 나는 멋진 할아버지들과 섬에 갇혔다. 작은 방에는 짐을 놔두고 큰 방에서 다 같이 자기로 했다. 이것은 사실 비밀이었는데 이제 결혼했으니까 공개해도 괜찮겠지? 예전에 금강산에 갔을 때, 나는 선생님들 방에서 잤다. 그때 나한테 할당된 방은 왠지 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 재미없었고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자는 것보다 할아버지들 방에서 자는 것이 편했다. “정애야, 금강산에서 우리 같이 잤잖아. 오늘도 다 같이 한 방에서 자자. 가족처럼!” 강담 선생님이 말하셨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김영식 선생님은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주무셨다. 아직 9시였지만 박희성 선생님이 “영식 선생은 이 시간이 되면 꼼짝도 못하게 돼.”라고 하셨다. 그러셨군. 김영식 선생님은 9시의 남자, 김익 씨는 10시의 남자... 그러시던 박희성 선생님도 내가 씻고 있는 동안에 방에 들어가셨다. 김익 씨는 ‘낚시하러 가겠다.’며 혼자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와 강담 선생님은 TV를 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난 오늘 여기서 혼자 잘 거야!”며 이불을 거실 TV 앞으로 가져오셨다. 그래, 할아버지들은 이런 거지, 뭐...

드디어 6.15산악회 회원들이 탄 페리가 섬으로 들어오다

   
▲ 16일 아침 6.15산악회 회원들이 페리를 타고 깃발을 펄럭이며 섬으로 들어왔다. [사진-6.15산악회 제공]

다음날 16일 아침 드디어 6.15산악회 회원들이 탄 페리가 섬으로 들어왔다. 올 때까지 애타게 기다린 것도 있어서 그런지 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속에 우리 깃발을 든 순석 형과 그 뒤에서 오는 윤경 언니를 비롯하여 여러 형님들과 언니들 모습을 찾았을 때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전날 행사장에서 만난 유영호 형님마저 무척 반가웠다! 지하철 입구에서 만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감개가 있었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산에 안 올라갔다. 해발고도 242미터밖에 안 되는 쉬운 산이라고 들었지만 무엇보다 발의 부상 때문에 자신이 없었고 윤경 언니가 안 올라간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차 때문에 김익 씨도 못 올라간다. 그러나 밑에서 기다리는 ‘선생님 팀’은 엄청 심심할 것이다. 적어도 2시간은 걸릴 텐데 뭐하고 놀지... 박희성 선생님을 따라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남편을 따라가기로 했다. “뭐야~!,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었어요?!” 5년 동안 ‘엄청 심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선생님 팀’은 과일, 고구마, 믹스견과 등등 맛있는 간식이 넘쳐나는 엄청 재미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고 또 웃고 있었는데 바로 옆을 흐르는 시냇물 냄새가 ‘곰익’의 본능을 자극했나 보다. 김익 씨가 불쑥 시내 쪽으로 갔다. 윤경 언니가 궁금하셔서, “익이, 너 뭐하니?”라고 물어보셨다. 곰익은 먹기 위한 게를 잡고 있었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잡은 것을 먹는다는 습관에 익숙해지지 않다. 예전에 아버지가 낚시에 빠지셨을 때도 잡아온 물고기는 잘 안 먹었다. 그래서 김익 씨가 이것저것 잡아와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오히려 귀찮게 생각한다. 그런데 윤경 언니가 김익 씨가 잡은 게를 보고 “와~! 신기하다~!!”며 엄청 좋아하시니까 신이 난 김익 씨는 더 많은 게를 잡으러 다니는 것이었다.

‘엉~!’ 짐승이 짓는 소리가 들렸다. 순석 형이 내린 신호였다. ‘산행 팀’이 내려왔다! 모성용 형님이 지시를 내리셨다. “자~, 빨리 정리합시다! 그리고 다 같이 재미없었다는 얼굴을 하는 거예요, 아셨죠!!”, “안 그러면 다 산에 안 올라가게 되고 ‘6.15산악회’가 ‘6.15동호회’가 되고 마니까요!” 우리는 싹 안주를 지우고 “너~무 심심해서 죽을 줄 알았어요~”라고 회원들에게 말했다. ‘산행 팀’은 다 그 말을 완전히 믿으신 것 같았다.

늘 그러듯 윤경 언니 옆에 자리를 확보하고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는 오이장아찌와 땅콩볶음이 맛있었다. 나도 빨리 언니처럼 음식을 맛있게 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늘 산행기 쓰느라 바빠서 요리를 할 시간이 없단 말이다. 다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뒤를 누가 왔다갔다한다. 돌아다보니까 법랑 사발을 든 순석 형이었다. “맛있다~, 맛있다~”하면서 회원들 주변을 계속 맴돌고 계신다. 이제 생각해보니 맴돌면서 회원들이 가져온 여러 반찬을 나눠 받고 그 사발로 맛있게 비벼 드셨나? “챙기라고 하는 건 안 챙기고 그것만 가져왔어?” 영호 형이 놀리신다. 강아지 같은 총무 나순석은 우리 6.15산악회 마스코트다.

점심을 먹고 1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있었다. 할아버지들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나는 또 다른 할아버지 유종인 선생님 무릎을 빌려 잠깐 잠들었다. 유인옥 어머님이 질투하실까 봐 좀 걱정이었지만 어머님도 나를 예뻐해 주시니까 괜찮겠지? 깨어보니까 우리 산악회 막내 용준이의 큰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용준이도 유종인 선생님 무릎베개로 자고 있었다. 윤경 언니, “니들 때문에 선생님이 엄청 불편하셨을 거다.” 리정애, “저는 자면서 선생님이 불편하실까 봐 몇 번이나 일어나려고 했어요.” 막내 용준이는 완전 푹~ 자고 있었다...

   
▲ 산상강의. [사진-6.15산악회 제공]

산상강의는 이계환 대표님이 하셨다. 지난 남북실무회담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남북관계 흐름에 대하여 순서대로 정리가 되도록 설명해주셨다. 결국 이번 장관급실무회담이 무산된 것은 남쪽 정부가 억지를 부렸기 때문이다.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격을 맞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통일부는 북쪽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대표로 내놓을 것을 요구했는데 이것은 완벽한 내정간섭이다. 그런데 통일부에서는 “꼭 통전부장을 나오라고 한 게 아니”라고 했다지. 늘 입만 열면 거짓말이니 이제 정말 지겹다. 아무튼 이번 일로 인해 확실히 증명되었는데 애당초 박근혜 정부는 대화를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생각지 않게 북쪽이 100% 양보하여 대화를 제기해 와서 당황했지만 안 받을 수 없으니까 일단 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더 이상 전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속 구실을 찾고 있었다가 트집을 잡아 무산시킨 것이다. 치사한 것은 그것을 북측이 ‘장관급 대표를 안 내놨다’고 모든 책임을 북쪽 탓으로 돌린 것이다. 북쪽은 상당히 인재가 많은 것 같다. 너무 많아서 그런지 나는 북쪽 인사들 이름을 잘 기억 못한다. 남쪽 인사들이야 매일처럼 엄청난 문제를 일으켜서 자주 언론에 등장하니까 다 외울 수 있지만 말이다. 인선에 한 달 이상 걸리는 것이 당연한 나라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 않나. 놀랍게도 이 사실들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그냥 정부가 한 말을 일반 언론들이 그대로 흘리고 그 정보만을 믿고 판단한다. 이것이 남쪽사회의 현실이다.

마침 이 날 아침에 북측이 북미 고위급회담을 제의했다는 뉴스가 들어왔다. 강의 때도 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사흘 지난 현재 아직도 미국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있다. 하여튼 양키들은 사람의 기본적인 예의도 모른다니까.

자연 속에서 진행된 뒤풀이

   
▲ 뒤풀이는 자연 속에서 진행되었다. [사진-6.15산악회 제공]

이날 뒤풀이는 자연 속에서 진행되었다. 덥고 복잡한 길속을 박윤경 경리이사님과 나순석 총무님이 술을 사와 주셨다. 박윤경 경리이사님의 날카로운 경제적 단속, 아니 빈틈없이 영리한 경제 감각과 나순석 총무의 알뜰하고 자상한, 때로는 귀찮을 정도의 배려가 없으면 우리 6.15산악회는 제대로 안 돌아갈 것이다. 강담 선생님이 ‘여자친구’이신 김지영 원장님이 오셔서 참 기분이 좋으셨는지 “한마디만 하겠습니다!”를 4-5번 하셨다. 선생님은 은근히 여자한테 인기가 많으시다. 작년에 내가 없는 사이에 여자 두 분과 같이 몇 번 산행에 오셨단다. 예전에는 손녀 앞에서는 좀 자제해주셨으면 했지만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할아버지가 외로움을 많이 타셔서 그러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내가 많이 챙겨드려야지... 지팡이가 없어서인지 취하셔서인지 선생님이 자꾸 뒤로 넘어가실 뻔 되는 것을 나순석 총무가 뒤에서 계속 받치고 계셨다. 총무 업무가 참으로 많다. 나는 순석 형과 김익 씨가 없을 경우 ‘총무대리’로 총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오늘 총무가 해야 할 일을 하나 더 배웠다.

늘 나한테 산행기를 쓰라고 하시는 권오헌 선생님도 김재선 대장님도 이 날 안 계셨다. 권오헌 선생님은 요즘 많은 일정이 겹친 바람에 힘드셔서 못 오셨다. 예전보다 더 살이 많이 빠지셨다. 게다가 눈도 안 좋으신데 방대한 글을 쓰시다 보니까 눈이 더 안 좋아지셨다. 입력을 배우시면 좀 더 편하게 글을 쓰실 텐데... 나도 몇 년 전까지 우리말 타자를 전혀 못했는데 계속 글을 쓰다 보니 지금은 이렇게 엄청나게 긴 산행기를 쓸 수 있게까지 되었다. 내가 한번 선생님들을 모시고 타자학원이라도 열어볼까... 김재선 대장님은 위암 때문에 지난 달 말에 입원하셨는데 다행히 수술이 잘되고 지금은 댁에서 요양 중이라고 한다. 생존율이 95%라고 하니까 한숨 놓인다. 얼른 회복되셔서 하루빨리 ‘산 사나이 김재선’의 모습을 보여 주시길...

뒤풀이 내내 아무도 ‘산행기’ 소리를 안 했다. 나는 산에 안 올라갔고 이대로 가면 이번 달은 산행기를 안 써도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게 된 바로 그때, 강담 선생님이 ‘사장님’이라고 부르시는 이계환 대표님께서 “이번 달 산행기는 누가 쓰지?”라고 하셨다. “저 산에 안 올라갔는데요!” 열심히 호소해봤다. 이번 주에 마감이 두 개가 겹쳐 일이 엄청 밀려있다. 산행기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게 안 올라갔지.” 마음속에서 외쳤다. ‘아싸~!’ 그때 김익흥 국장님이 “괜찮아, 1박2일 여행기 쓰면 돼~” 허걱. 무슨 말을 하셨는지 까먹었지만 아까 말실수하신 영호 형님과 김익흥 국장님은 완전히 나한테 찍혔다. 그나저나 성용 형님은 어떻게 아셨지? 영호 선배가 말실수하셨을 때 “정애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가만히 있지만 넌 완전히 찍혔어~!!”

실은 영호 선배와 김익흥 국장님이 나한테 찍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체육대회 때부터 완전히 찍혀 있었다... 지난 6일에 열린 체육대회에서 나는 병원에 계시는 김재선 대장님께 우승기를 가져다 바치고 싶었다. 그런데... 양심수후원회는 4위로 끝나고 말았다. 말이야 4위이지 4팀밖에 없으니까 꼴등인 것이다. 그나마 농구 경기에서 박희성 선생님, 하정아 언니, 성용 형님 부인이신 세미 엄마, 그리고 나 리정애가 한 골씩 넣어서 우승했다. 어떻게 명목을 갖춘 셈이지. 내가 뛰기만 했어도 준우승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제1회 6.15체육대회에서 이어달리기 두 번 1등, MVP까지 탄 여자라는 것은 지난 달 산행기에도 썼다. 그리고 지난 산행 때 발목 아래를 삐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인대가 늘어난 것이었다. 어쩐지 엄청 아프다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조금 걸어 다녀도 아파진다. 그런데 이 날은 상태가 좋았다. 실은 한의사 선생님은 안 뛰는 게 좋다고 하셨지만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남자 축구 결과만 좋으면 안 뛸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완패했다... 이 날 양심수후원회 선수로 뛰기 위해 참가한 ‘우리학교’ 카페 회원이자 내 동무 ‘뗏목’이 아킬레스건이 단절되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산악회 회원으로는 김남순 형님, 순석 형, 래곤 형이 뛰셨다. 다들 자신의 능력 한에서 열심히 뛰셨으니 뭐라 할 수 없었다. 김익 씨가 생각보다 잘해서 유일하게 한 골을 넣었다. 전 시합 통해서 한 골만... 시합 전에 양희철 선생님이 “김익이 그 큰 엉덩이로 뛸 수가 있냐?”라고 나한테 물어보셨다. 나도 그 점이 궁금했다.

나와 6.15산악회원들의 ‘신뢰’ 관계처럼 남과 북도 그랬으면

   
▲ 하나개해수욕장에서 찰칵. [사진-6.15산악회 제공]

페이스북에 다친 이야기를 올렸더니 바로 범민련 측 회원들이 반응했다. 강인옥 언니, 이창림님(회원 아니신가?)은 “괜찮냐?”, “무리하지 마,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거야” 등등 걱정하는 척 하시면서도 “이제 범민련이 우승이다!”라는 댓글들을 올리셨지. 정태 형은 양심수후원회 운영위원이기도 하는데도 “양쪽 다리로 할 걸 그랬네~”라고 올리셨고. 통일뉴스 이계환 대표님과 김익흥 국장님도 당일 날 몇 번이나 ‘뛸거냐’고 물어보셨고 내가 아프다고 말씀드리니까 걱정하는 척 하시면서도 표정을 관리하느라 애쓰시는 것 같았다... 직전까지 뛸 생각이었다. 김익 씨를 비롯하여 선수로 나가는 언니들과 형님이 ‘우리가 잘 뛸게’라고 막으셨지만 선수입장 때 같이 들어갔고 마지막 순간까지 양심수후원회 회원이신 모지희 언니한테 교대하면 어떨까 물어봤다. 끝나고 나서 권오헌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들이 낙담하시면서 말하셨다. “니가 뛰었어야 했는데...”

1주일 전 체육대회 때에는 서로 ‘적’이었지만 지난 산행 때보다 더 서로 친해졌고 즐거운 하루였다. 큰 행사를 끝내고 더 신뢰관계가 쌓인 것 같다. 너무 많이 친해져서 요즘 좀 걱정이 된다. 우리 도대체 어디까지 친해지나? 남북관계도 이래야 하는데 말이다. ‘신뢰.’ 나와 6.15산악회 회원들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너무나 잘 아는 말이지만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 국어사전으로 찾아봤다. ‘굳게 믿고 의지함.’ 내가 굳게 믿어야 상대방도 나를 믿어주지 않겠나. 요즘 ‘신뢰’라는 말뜻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진짜 많다. 특히 이해관계로만 움직이는 사람들이 ‘신뢰’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지. 함께 할 동지가 없어서 신뢰의 말뜻을 제대로 모르는 것일까? 김대중평화센터 등 ‘6.15 남북정상회담 13주년 기념 행사위원회’가 개최한 6.15행사 축사에서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이번 당국자 회담 무산에 대해 “이번에 보여준 북한의 모습은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북한이 신뢰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위해 진정성 있는 태도로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지...

이날 마지막 일정은 하나개해수욕장이었다. 처음에는 일정에 들어있었고 선생님도 나도 수영복까지 가져갔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하고 입장료도 내야 해서 안 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남쪽 해수욕장들은 치사하게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뭐, 하도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리니까 어쩔 수 없을까... 그런데 류경완 선배가 쏘신단다. 전날 6.15행사에 ‘6.15합창단’으로 출연하셨다가 과음으로 인해 아침에 못 오시고 오후에 가족과 함께 오셨다. 처음 만났을 때는 술에 취해 ‘반갑다!’면서 나를 때리는 아주 나쁜 아저씨였다. 그러나 이제는 6.15산악회 회원도 되시고 맛있고 귀한 북녘의 ‘목련포도술’을 주셨으니 좋은 선배가 되셨지. 이 글을 읽으시면 미안해서라도 남아있어서 다시 주시겠다는 나머지 포도술까지 다 주실 것이다. 아무튼 요즘 ‘리정애가 좋아하는 형님 목록’에 들어가실 것 같지만 산행 전날 과음을 하셔서 산행에 안 나오실 때가 많아 생각 중이다.

평통사의 하상군 형님이 내 옆에 계셨다. 형님은 참 상냥하고 부드러운 분이다. 나보다 10살이나 많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으시다. 아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확실히 ‘목록’에 들어간다. 우리 6.15산악회 총각형님들 속에서는 가장 좋은 신랑감인 것 같다... 보니까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계신다. 이끼가 들어있었다. 아까 시냇가에서 캐셨나 봐. 내 남편은 거기서 먹기 위해 게를 잡았는데... 이끼는 마르면 안 되니까 자주 분무기로 물을 풀어주어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식물이다. 내 남편이 ‘야생남’이면 형님은 ‘섬세남’이다. 이끼 대신 괜찮은 짝을 찾아드려야 하는데...

모래톱에서 사진을 찍었다. 50대 형님, 언니들이 20대로 돌아가신 것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었다. 여자 회원만으로 사이좋게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유인옥 어머님한테 빌린 햇빛가리개 모자를 쓰고 있었더니 순석 형이 벗으라고 하신다. 어머님이 꺼내주신 체육대회 기념품 모자를 썼더니 “그러니까. 정애 씨는 모자가 잘 어울린다니까~” 그래서 순석 형이 좋아한다니까~ 당장 목록 1위에 등록해야지!

‘다음 주에는 꼭 맛있는 밑반찬을 연구해서 만들어봐야지’

   
▲ 무의도 전경. [사진-6.15산악회 제공]

우리 일행은 회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먼저 떠났다. 먼저 가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랬다. 예상대로 선착장까지 가는 길은 페리를 기다리는 차로 긴 줄이 생겨 있었다. 우리가 줄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옆을 회원들이 탄 버스가 지나갔다. 아까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우리가 막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모성용 형님한테 “손드는 게 보이냐?”고 전화가 왔다. 차량 4대 앞이었으면 회원들과 같은 페리에 탈 수 있었는데...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보일 리가 없잖아! 전화까지 해 주셨지만... 형님들도 우리를 남기고 먼저 떠나는 것이 외로우셨던 모양이지. 나는 차에서 내려서 손을 흔들렸다. 형님, 언니들을 태운 ‘무룡5호’가 우리를 남기고 떠나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많이 외로워졌다. 뒤풀이 4차 가자는 것을 안 잡히려고 도망가는 재미도 없으니 말이지... 북측의 ‘만경봉호’가 생각났다. 일본정부의 ‘입항금지조치’ 때문에 재일동포를 못 태우게 된 만경봉호... 니이가타항에 나를 남겨 놓고 북녘 땅에 가버린다. 잠시 그런 착각에 빠지면서 1주일 후 양심수후원회 월례강좌 때 다시 만날 회원들을 바랬다...

잠진도에 도착해서 선착장으로 올라가보니까 먼저 떠난 형님, 언니들이 계시지 않는가!!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내려서 악수를 나누고 싶었지만 운전사인 김익 씨는 인정머리도 없이 그냥 지나가버렸다. 손만 흔들고 잠시나마 ‘재회’를 반겼다...

강담 선생님을 모셔다 드리고 김영식 선생님이 뜯어 오신 큰 봉지에 가득한 쑥과 농가에서 얻어 오신 양파를 내려놓기 위해 낙성대에 들렸다. 7시가 넘었다. 저녁을 먹고 가기로 해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마땅한 것이 없어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면 늘 미안해진다. 밑반찬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놔야 하는데 계속 못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꼭 맛있는 밑반찬을 연구해서 만들어봐야겠다. 매실을 담그겠다고 얻은 예쁜 항아리를 챙기고 귀로에 올랐다. 할아버지들과 함께한 즐거운 1박 2일 여행이 끝났다. 전날 행사장에서 만난 영호 형님이 우리가 선생님들을 모시고 먼저 무의도에 간다고 하니까 ‘그냥 둘이서 재미있게 가지. 뭘 힘들게 어르신들 모시고 가냐.’고 하셨는데 모르는 소리. 나는 할아버지들과 함께 노는 것이 즐겁단 말이에요. 집으로 가는 길, 1박 2일은 너무 짧다, 다음에는 강담 선생님이 가고 싶으시다는 백령도에 2박 3일로 가자. 언제 갈까... 생각만 해도 신났는데 문득 김익 씨 얼굴을 보니까 ‘처가댁 식구를 모신 후의 사위’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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