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당국간 실무접촉이 9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오전까지 회의 분위기가 좋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실무접촉은 오는 12일 서울에서 열릴 남북 장관급 회담 운영 전반에 대한 내용을 협의하는 자리로, 6년만에 장관급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에 열리게 될 남북 장관급 회담의 의제는 지난 6일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특별담화를 통해 제기하고 정부가 화답한 것으로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상봉, 6.15선언 13돌 및 7.4공동성명 41돌 기념 공동행사 개최, 민간교류 재개 등이다.

장관급 회담 수석대표는 남측에서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나서며 북측에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수석대표로 나올 것을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일정은 지난 회담 사례에 비춰 2박3일로 예정되며, 장소는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 워커힐호텔, 신라호텔, 올림피아호텔 등지에서 열린 바 있어 이 중 한 곳이 선택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실무접촉에서 합의가 되면, 12일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 장관급 회담은 22차가 된다. 지금까지 2000년 7월 29일 서울에서 1차 회담을 시작으로 2007년 6월까지 21차례 개최됐다.

남북 장관급 회담은 2000년 6.15공동선언 5항에 적시된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한 데 따라 남북 당국간 대화를 총괄하는 성격의 대화로 열렸다.

1차 회담은 2000년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으며, 남측에서는 박재규 통일부 장관, 북측에서는 전금진 내각 책임참사가 수석대표로 참가했다.

이 회담에서는 장관급 회담의 운영원칙을 정하고 판문점 연락사무소 업무 재개, 총련 동포들의 고향방문 협력, 경의선 철도의 끊어진 구간 연결 등에 합의했다.

2차 회담은 같은 해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박재규 통일부 장관, 전금진 내각참사를 각각 수석대표로 열렸다.

여기서는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사업의 추가적 실시, 군사당국자 간 회담 개최, 남북간 경협 확대.발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경의선 철도 연결 및 문산-개성간 도로개설,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 공동추진, 한라산.백두산 시범 관광단 교환 등을 합의했다.

3차 회담은 같은 해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렸으며, 수석대표는 동일했다.

이 자리에서는 이산가족 생사확인.서신교환.면회소 설치 등에 관한 조속한 조치, 경제분야 제반 문제 협의를 위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설치, 서울.평양 친선축구대회 및 교수.대학생.문화계 인사 상호 교환방문 검토 등에 합의했다.

4차 회담은 같은 해 12월 12일부터 16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수석대표 변동없이 진행됐다.

여기서는 경추위 1차 회의 일정, 어업부문 상호협력, 태권도 시범단 교환,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시범 실시, 북측의 한라산 관광단 및 경제시찰단 파견 등에 합의했다.

특히, 당시 남북경제협력 실무접촉에서 합의된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청산결제.상사분쟁 해결절차 등 4개 경협합의서를 정식 서명했다.

5차 회담은 2001년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올림피아 호텔에서 열렸다. 남측에서는 홍순영 통일부 장과, 북측에서는 김령성 내각 책임참사가 수석대표를 맡았다.

이 회담에서는 남북.러시아 사이의 철도와 가스관 연결사업 추진, 금강산 육로관광과 개성공단 건설 실무협의 개최, 민간선박들의 상호 영해통과 협의 등 5개항 9개 세부사항에 대해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2001년 11월 9일부터 14일까지 6일 동안 금강산에서 열린 6차 회담은 아무런 합의나 공동보도문도 도출하지 못했고 7차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헤어졌다.

이에 2002년 4월 임동원 특사가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관계 복원에 합의했지만 6월 29일 서해 연평도 사건이 발생, 우리 군 6명이 사망해 장관급 회담 성사가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북측이 7월 25일 대남 전통문을 통해 유감을 표명해옴에 따라 2002년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신라호텔에서 7차 회담이 열렸다. 남측에서는 정세현 통일부 장관, 북측에서는 김령성 내각 책임참사가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여기서는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군사적 보장조치, 이상가족 상봉행사,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북측 참가 등 10개 항에 합의했다.

8차 회담은 2002년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9차 회담은 2003년 1월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10차 회담은 2003년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각각 같은 수석대표로 만났으나 2차 북핵위기로 진전은 없었다.

11차 회담은 2003년 7월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신라호텔에서 정세현 통일부 장관과 김령성 내각 책임참사를 각각 수석대표로 열렸다.

이 회담에서는 남북 장관급 회담 하위 협의체로 '남북사회문화협력분과회의'를 구성하기로 했다.

12차 회담은 2003년 10월 14일부터 17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렸으나 북측의 폐연료봉 재처리 완료 및 핵 억제력 강화 발표로 갑론을박만 하다 성과없이 끝났다.

13차 회담은 2004년 2월 3일부터 6일까지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으며, 북핵 문제는 6자회담과 남북관계 진전을 균형있게 추진해 나가는 방향에서 논의가 진행됐다.

양측은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쌍방 군사당국자회담 개최와 개성공단 1단계 개발 본격 추진 등에 대해 합의했다.

14차 회담은 2004년 5월 4일부터 7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렸으며, 남측에서는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는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수석대표로 마주했다.

여기서는 남북 장성급 회담 개최에 합의했지만 북핵 상황의 악화와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파동 문제로 남북 장관급 회담은 1년여의 공백기에 접어들었다.

15차 회담은 2005년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개최, 남측에서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북측에서는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수석대표를 맡았다.

회담에서 양측은 장성급 군사회담 재개, 수산협력실무협의와 농업협력위원회 구성.운영, 금강산 면회소 착공 및 이산가족 화상상봉 실시, 북측 민간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등에 합의했다.

또한 '전쟁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생사확인 등 인도주의 문제들을 적십자회담에서 계속 협의.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해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의 기반을 마련했다.

16차 회담은 2005년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렸으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지원에 합의했다.

17차 회담은 2005년 12월 13일부터 16일까지 제주 롯데호텔에서 개최, 개성지역 역사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및 보존.관리에 협조한다고 합의했다.

18차 회담부터는 남북 장관급 회담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18차 회담은 2006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개최, 남측에서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 북측에서는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각각 수석대표로 참가해 기존 합의사항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19차 회담은 2006년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부산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렸으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위협조치 중단, 6자회담 복귀 등에서 격돌했다.

20차 회담은 2007년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렸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각각 수석대표로 마주해,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열차 시험운행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21차 회담은 2007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렸으나 실질적 논의 없이 끝났다.

이후 2007년 10.4선언에서 남북총리회담 가동을 합의함에 따라 남북 장관급 회담은 중심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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