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장을 둘러싼 회색 담에 포토존이 그려져 있다. 강정마을을 방문한다면 이 포토존에 서서 사진을 찍어도 기념이 될 것이다. [사진-김양희]

회색 담을 따라 아주 한참을 돌다보면 강정포구가 나오는데 그쪽에서는 좀 더 공사현장을 쉽게 볼 수 있다. 공사현장은 아이들이 쑥쑥 자라듯, 몇 달 만에 큰 구조물들이 들어서고 배의 접안시설들도 자리를 잡았다.

제주해군기지사업단은 2014년까지 9천587억 원을 들여 해군 함정 20여 척과 최대 15만t급 크루즈 선박 2척이 동시에 댈 수 있는 해군기지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을 통해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 일대 49만㎡에는 육상 지휘·행정·정비시설이 들어선다. 공사장 근처에는 늘 경찰이 상주하며 지키고 있다. 활동가들이 공사장에 들어가 공사를 방해할까봐 상주하는 것이라는데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조용한 곳이라 시설을 운동기구 삼아 운동을 하고 자기들끼리 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등대쪽 제방에 그려진 이 벽화는 강정마을을 지키는 활동가들이 지난 9월 구럼비에서 사라지는 동물들을 그리워하는 의미로 그린 것이다. [사진-김양희]

회색 담에 막힌 탓도 있지만 이제는 검은 물결이 넘실대는 모양의 해안이 잘 보이질 않는다. 다만 등대 쪽 제방에 그려진 그림들만이 쓸쓸하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이 그림들은 지난해 9월 방문했을 때 강정에 터를 잡은 활동가들이 그리기 시작한 벽화였다.

그려져 있는 동물들은 모두 강정바닷가에서 살고 있는 것들로 당시 그림을 그리던 활동가들은 “이제 구럼비 해안에서 볼 수 없는 동물들을 그리워하는 의미”라고 했다. 이제는 그곳에서 그들을 볼 수 없다.

강정바닷가에서는 구럼비 해안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바닷가가 생활의 터전인 이들의 생계마저 빼앗고 있었다.

강정포구를 방문했을 때 바닷가 쪽에 뭔가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무슨 짐 같기도 했고 저 멀리서 볼 때 파란색의 덩어리가 놓여져 있었는데 과연 저게 뭘까 궁금해서 그쪽으로 향했다.

▲ 이복순 할머니는 외지 사람들이 어촌계에서 심어놓은 해산물을 훔쳐갈까봐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사진-김양희]

거의 다가갈 즈음 파란색의 덩어리는 움직였다,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이름은 이복순, 77세로 해녀였다. 그는 바닷가를 지키는 중이었다.

외지사람들이 양식을 위해 심어놓은 전복 등을 캐 갈까봐 물이 빠져 있는 동안에는 바다를 지키다가 물이 육지까지 들어오면 그때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어촌계에서 돌아가며 지키는데 혹시라도 지키는 시간에 늦거나 빠지면 해녀일도 며칠씩 빠져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밭에 나가서 일을 하다가 급히 왔다는 그는 신발도 신지 않고 있었다. 물질을 할 수 있는 날보다 지켜야 하는 날이 더 많고 하루라도 빠지면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비가 올 것 같아 바람이 거세게 부는 궂은 날 그는 그렇게 바닷가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내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서울서 왔다”는 내게 “남의 처가 더 어여쁘다는 말이 있듯, 서울 사람들은 제주로 오고 제주사람들은 서울 구경을 간다”고 했다. 웃는 내게 “부모자식 간에는 아무리 못나도 내 자식만 바라보는데 부부지간에는 자기 처가 아무리 예뻐도 남의 처가 더 나아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 않냐”고 했다.

▲ 공사는 30% 이상 진척된 상황으로 이미 접안시설의 형태도 갖추고 있다. [사진-김양희]

그리고는 한참을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아온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 해주었다.

할머니는 제주에서 일제 강점기를 겪었고 6.25에 4.3사건을 겪었다. 4.3사건으로 한동네에서 열 집도 넘게 같은 날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렇게 숱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또 바닷일을 나간 남자들이 죽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제주가 삼다도로 여자가 많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많은 남자들이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남자들이 귀했고 남자들은 바람도 많이 폈다고 했다. 제주 여자들은 그렇게 바람피우는 남자들이 곳곳에 외상지어 놓은 빚도 그저 묵묵히 일하면서 갚고 생활비를 대며 살아갔다고, 정말 모진 세월을 살아갔다고 했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귀하게 여기는 모습도 보이고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힘든데 비해 보수가 작아 해녀 일을 배우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 해녀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도 이제 2년 정도 밖에 남은 것 같지 않다고, 나이 들수록 더 힘들어지는데 해산물 수확량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 공사장 옆 강정포구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 여전히 아름다운 이곳은 오염돼 예전에 비해 해산물이 많이 줄었다. [사진-김양희]

할머니는 주변에 콘도, 광어양식장, 해군기지 공사 등으로 강정바닷가가 오염이 돼서 미역, 톳 등이 수년 째 안 나온다고 했다. 어촌계가 심어놓는 전복도 10개를 심어봐야 2개 밖에 살아남지 못하고 문어와 해삼도 없어졌다고 했다.

그리고는 해군기지 건설공사 이전에는 올레꾼들도 많이 오가서 길가에 커피장사들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올레꾼들이 거의 오질 않으니 장사꾼들이 사라진지도 한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머닌 내게 “해군기지 공사를 찬성하는가” 물으셨다. 나는 “저는 아름다운 강정 바닷가가 사라지는 것이 서운하죠” 답하며 할머닌 어떤지 되물었다.

할머니는 단호히 “나는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위가 경찰이고 동생이 반대를 하니 나는 반대도, 찬성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할머니에 따르면 처음 강정 바닷가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할 때 어촌계에 가입된 사람들은 모두 1억씩 보상을 받는다고 했고 해군기지도 바닷가까지는 들어서지 않고 육지 땅도 얼마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고 했었다고 한다.

▲ 공사현장은 주민들에게 약속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육지와 바다를 빼앗았다. [사진-김양희]

그렇게 말하면서 도장을 받으러 다녔고, 도장 하나만 찍으면 1억원을 준다는 말에 어촌계에서는 도장을 찍어주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바다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보상을 받은 돈도 5천만원이고 해군기지는 바닷가까지 건설되고 육지 땅도 처음 말했던 것보다는 훨씬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오염된 바닷가에서는 예전만큼 해산물들이 잡히지 않아 생계를 위해서 바다 일은 물론이고 남의 집 밭일도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고 한다. 또한 추진하며 도장을 받으러 다니던 사람은 도망을 가버렸고 처음 공사를 추진했을 때와는 너무 달라졌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미 보상을 받아먹고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예전에는 강정이 너무 살기 좋은 마을이어서 일강정이라고 불렸으나 이제는 똥강정이 됐다”며 “마을 사람들끼리 인심 좋게 살았는데 동기간에도 말을 안 할 정도이고 친척끼리 기일 제사도 가지 않는 똥강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 같은 무식한 이 생각에도 촌사람들이 힘도 없고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냥 밀어붙이지 말고 동네 사람들도 달래고 화합이 되도록 말이라도 좀 하면 좋은데 면담도 없고 대화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아울러 “찬성을 하는 사람들이건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건 화합하자 그러면 좋은데 해결은 안 되고 원수만 남았다”며 “발전은 누가 하는지, 아무리 나라법도 있지만 마을에서는 나라법이 없이도 살아가야 하는데 원수가 되어서 살 수 없는 마을이 되었다, 화합이 제일 시급하다”고 하소연했다.

▲ 공사현장에는 경찰이 항상 상주하며 지키고 있다. [사진-김양희]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던 터에 목이 마르실 것 같아 할머니께 “한참을 여러 재밌는 말씀을 들어 물 한 병이라도 드리고 싶다”며 가지고 있던 물 한 병을 드렸더니 한사코 받으시지 않았다. “두 병을 갖고 있어 드리는 것이니 괜찮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제주 사람들은 결코 물 한 병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물이 두 병이고 내일 다시 서울로 가기 때문에 물이 필요 없다, 버리고 가야할 상황이니 짐을 가볍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물을 가져달라”고 말씀드리자 그제야 한 모금을 드신다.

그리고는 “집이 가까우면 커피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많이 구경하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제주도에서 벌써 두 번째로 느낀 인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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